믿음의 자리에서 보이는 희망

애가 3,19-26; 애가 1,1-6; 딤후 1,1-14; 루가 17,5-10

한 문 덕 목사

[향린공동체가 없다면~]

지난 주일 강남향린, 들꽃향린, 섬돌향린, 향린 네 교회가 함께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모여 세계성만찬주일 연합예배를 드리고 축제의 한마당을 펼친 뒤, 저는 김경호 목사님의 하늘뜻펴기를 다시 되새기며 향린공동체의 목회에 대해 잠시 사색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지금 한국기독교에서 향린 공동체가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기독교가 기독교이겠습니까?” 김경호 목사님께서 던진 화두를 다시 떠올리며 저의 지난 10년간의 향린에서의 목회경험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향린의 역사, 즉 향린공동체의 목회자와 교인들이 함께 이뤄나간 숱한 사건의 흔적들을 기억하며, 다음 주에 이어질(바로 오늘이지요) 저의 하늘뜻펴기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였습니다. 지난 수요일이 한글날이었고, 23년만에 법정공휴일로 재지정되어 모처럼만에 휴식을 취하면서 부목사로서 하게 되는 향린에서의 마지막 설교를 잘 준비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2006년 7월 2일 전임 전도사로서 향린의 강단에서 처음 했던 하늘뜻펴기의 제목은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였습니다. 그 때 저는 떠돌이 출신의 늙은이 모세가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애굽 제국의 권력자 파라오를 만나는 장면(출애 5:1-5)과 마태오 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마태 2:1-11)를 본문으로 하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그리고 이 땅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때야 하는지를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 부목사 6년차에 접어들었고, 그 동안의 저의 신학적, 신앙적 성장과 또 목회의 경험을 반영하여 이번 하늘뜻펴기 제목은 “우리는 신(神)나는 사람들입니다”로 정하려고 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신나다”라는 말을 찾아보면 “흥이 일어나 기분이 몹시 좋아지는 것”이라 쓰여 있지만 저는 단순히 그런 뜻으로만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신나다’를 ‘신(神)께서 난 것’ ‘신령(神靈)스러움으로 가득한 것’ 즉 서구신학적 논의 속에서 다시 풀면 신께서 우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으로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신(神)나는 사람들입니다]

첫 하늘뜻펴기 제목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와 비교했을 때, “나”라는 개인의 문제에서 “우리”라는 공동체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기독론적 신앙고백의 표현에서 “신나는 사람들”이라는 평범한 말을 통해 종교학적으로 덜 배타적이고, 우리의 하느님 개념과 더 가까우면서 우리네 삶과 문화의 흥과 멋을 표현할 수 있는, 겹겹의 고통으로 생긴 한(恨)마저도 재치와 신바람으로 극복해 내는 우리네 이야기들을 신학적으로 풀고 싶었던 것입니다.

신학의 역사 속에서 인간이 해 왔던 하느님에 대한 논의를 큰 틀에서 단순요약하자면 하느님을 명사로 이해해서 하나의 실체로 보아 왔던 헬라적(그리스적) 사유에서 하느님을 동사로 이해하여 사회변혁적 행위들 속에서 하느님 체험을 했던 히브리적 사유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우시지요? 철학을 공부하는 소모임은 이해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말로 짧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모세가 야훼 하느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파라오를 만나러 가지 전에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을 묻습니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알아야 파라오 앞에 가서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에흐에 아쉐르 에흐에” 개역한글판 번역에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I am that I am, I am that being)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하느님을 자존자(自存者) 즉 스스로 계신 분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그렇게 되면 하느님은 저 하늘 어딘가에 좌정하고 계신 한 분처럼 이해되어, 가끔 이땅에 내려오셔서 기적을 일으키는 분으로 이해되기 쉽습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말 속에는 다른 피조물들과 비교되어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지만 하느님을 하나의 인격적 대상으로 여기는 사유는 결국 마치 하느님도 다른 피조물들처럼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하나의 사물처럼 여겨지게 되는 오류를 만들고 맙니다. 하느님은 물론 인간을 자신의 상대자로 여기시는데 그런데 이것이 역전되어 인간의 한 객관적 대상물로 하느님을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 히브리적 사유 속에서 ‘에흐에 아쉐르 에흐에’는 미래시제로서 ‘내가 있을 곳에 나는 있겠다’라는 말로 모세 네가 내 이름을 물었는데 일단 너는 내 명령대로 파라오에게 가기나 하여라. 그러면 내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하느님은 이름을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만 모세는 그 말씀을 믿고 갔고, 거기에서 놀라운 출애굽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은 사건을 일으키시는 분이시고 그 사건 속에서, 즉 동사로 표현될 수 있는 어떤 행위 속에서 체험된다는 것이 히브리적 사유입니다. 헬라적 사유는 하느님이 누구인가하며 그분의 정체성에 대해 묻고 골머리를 썩어가며 사유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면 히브리적 사유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가를 물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말을 자세히 보면 동사 없이 형용사만으로도 술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꽃이 예쁘다”라고만 하면 되지만 영어는 “The Flower is beautiful”이라고 해서 반드시 “is”라는 동사가 들어가야 합니다. 즉 우리 언어 구조 속에서 하느님은 동사적 성격을 포괄하는 형용사로서 이해될 필요가 있고, 신바람이 일어 흥겨울 때 역동적 힘을 발휘하는 우리 한국인들의 삶에도 적절하다고 여겼습니다. 우리말과 글, 우리가락과 춤 사위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체험을 통해 지금까지의 신학에서 말해오던 하느님 개념의 한계를 살피고, 새로운 하느님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 제가 쓰려는 박사논문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잘 정리하여 삶의 뜻을 묻는 향린교인들에게 종교가 제공하는 역설적 깨달음, 즉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 참 자유이며(불트만), 고통조차도 노래와 흥으로 풀어나가며, 나는 나고, 너는 너지만, 진달래가 개나리가 될 수 없고, 개나리가 진달래가 될 수 없지만 그 모두가 어울려 아름다움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한발 물러서서 자기자신을 과제로 삼아 크게 헤아려 보면(退步就己, 大疑現前) 삶의 자잘한 어려움들이란 훌쩍 넘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실 때만 예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도 그 뒤를 따르는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자신이 고통 당할 때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에서 하느님이 고통 당하실 때도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본 회퍼 목사)으로 변화되도록, 그래서 그렇게 자기를 찍어내는 자에게도 향기를 뿜어내는 향나무처럼, 기쁨과 슬픔, 성취와 좌절, 행복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신나게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신(神)나는 우리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홍 목사님 소천 소식]

지난 9월 29일 공동의회를 통해 제 후임 부목사가 결정되었으므로 저는 인수인계 준비를 하며 10월을 차분히 보내고, 이번 하늘뜻펴기도 그렇게 준비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오전 11시경, 제 손 전화가 울리고 거기에 발신자가 “홍근수 목사님”라고 떠 있었습니다.(김영 목사님께서 예전에 홍근수 목사님께서 쓰시던 손전화를 이어 쓰셨기에 제 핸드폰에는 홍근수 목사님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9월 29일 향린교회 장례준비위원회가 모여 장례를 준비했지만 저에게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저의 머리는 안개처럼 뿌해졌습니다. 일단 조 목사님께 연락을 드리고, 당회 서기이자 장례준비위원장이었던 이현우 장로님, 그리고 고상균 목사에게 연락하고, 저는 바로 옷을 챙겨 입고 홍 목사님께서 입원하고 계셨던 맑은 수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5일이 지나갔습니다. 여기에 김영 목사님을 비롯해 유족들이 지금 와 계시지만 장례일정 내내 큰 어려움 없이, 사고 없이, 아주 맑고 화창한 가을날에 홍 목사님을 하느님의 품으로 보내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김영 목사님으로부터 홍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접하고, 그 날 저녁에 있을 부활증언예배를 준비하였는데, 문득 제가 이번 주일예배에 해야하는 하늘뜻펴기의 제1성서 본문이 슬픔의 노래 즉 애가라는 사실을 떠 올랐습니다. 더욱이 복음서의 말씀에서는 주님이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하”라고 하시는 부분이 나오는 데 이 본문은 홍근수 목사님께서 자신의 생애를 두고 하느님 앞에 서서 하실 말씀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또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디모데후서의 말씀은 어떻습니까? 홍근수 목사님께서 우리에게 보낸 편지 같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대가 우리 주님을 위해서 증인이 된 것이나 내가 주님을 위해서 죄수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 나와 함께 고난에 참여하시오.”(딤후 1:8)

“그러므로 향린교회 여러분들이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쓰는 공동체가 된 것이나 내가 주님을 위해서 빨갱이 목사로 낙인찍힌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이 땅의 평화를 위해, 통일을 위해,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불의한 권력을 물리치기 위해서 나와 함께 고난에 참여하시오.”

이렇게 홍근수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야훼께서도 아시다시피, 사람이 산다는 것이 제 마음대로 됩니까? 사람이 한 발짝인들 제 힘으로 내디딜 수 있습니까?”(예레 10:23)라고 예레미야 예언자가 말했듯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저의 어리석음을 깨우치시듯이 야훼 하느님은 제게 말씀하시고 계셨습니다. “내가 바울을 시켜 디모데를 훈련시켰듯이, 홍근수 목사를 통해 너를 훈련시키려고 이미 계획하고 있는데, 너는 네 생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 했구나! 네가 하늘뜻펴기를 통해서 교인들을 거듭나도록 해보겠다고! 어림 없는 소리, 그건 내가 하는 것이고, 너는 아직 멀었으니 이번 기회에 잘 배우기나 해라”

[홍 목사님을 기리며]

애가는 바벨론 임금 느부갓네살에게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성전이 파괴된 것을(예레 52) 슬퍼하는 다섯 개의 시를 모은 책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그 슬픔이 절절히 묻어 나옵니다. “밤만 되면 서러워 목놓아 울고, 흐르는 눈물은 끝이 없구나.(2절) ~~ 이 나라 저 나라에 엊혀 살자면 어디인들 마음 붙일 곳이 있으랴. 이리 저리 쫓기다가 막다른 골목에 몰려 뒷덜미를 잡힌 꼴이 되었구나. 모든 성문은 돌더미로 주저 앉고, 사제들 입에서는 신음 소리뿐이요, 처녀들 입에서는 한숨 소리뿐이구나, 아, 시온이 이렇게도 처량하게 되다니, ~~ 시온의 원수들이 득세하여 이제 닥치는 대로 어린 것들마저 끌어가는구나”

애가는 이스라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제국주의 총칼에 나라를 빼앗긴 우리 백성의 애가도 있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26년에 발표한 시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이 없습니다.“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이 시는 1919년 삼일독립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모든 한국 민중이 좌절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 아픔을 절절히 느끼며 그 시대의 절망을 극복하려는 한 지식인의 고뇌를 보여 줍니다. 식민지의 백성이기 때문에 갈고 심을 땅이 없습니다. 땅이 없으니 추수할 것도 없지요. 저녁거리가 없어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거지는 인격도 없고, 생명도 없으니 너 같은 놈을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주인이 말합니다. 식민지 백성이기에 집도 없고 민적도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라며 능욕하는 장군 앞에서 무너지는 조선 민중.

홍근수 목사님은 1937년 8월 15일 식민지 백성, 조선 민중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 7년을 보내시고 8살 생일에 해방이 되어 지금 광복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기리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해방이 아니라 다시 미군정의 식민치하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애가의 슬픈 시들은 나라 잃은 우리들의 과거 역사와 주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미국의 자발적 노예로 살고 있는 오늘의 한국 현실을 노래하는 듯 합니다. 일본 제국주의에서 미 제국주의로 넘어간 한국의 현대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반공 이데올로기였습니다. 향린교회의 담임목사로 한국에 오신 홍 목사님의 삶은 바로 그 반공을 깨부수고 통일을 하여 참된 평화를 실현하고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노력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래서 장례위원회는 한겨례 신문에 부고를 내면서 “민족 자주와 민주주의, 민족생존권을 광야에서 온 몸으로 외쳐 온 평화와 통일의 사도”라고 썼던 것이고,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여러분들이 저보다 훨씬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2002년 2월 21일에 향린교회에 평신도로 와서 홍 목사님의 하늘뜻펴기를 처음 듣고 든 생각은 “아! 학교에서 배운 신학이 교회현장에서 울릴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제가 한들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홍 목사님 은퇴 전 하셨던 루가복음 연속 설교를 책으로 만든 적이 있는데, 그 때에도 홍 목사님의 신학적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출판사 사장님께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의 현장으로 가는 이들에게 홍 목사님의 설교집을 한권씩 선물하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60주년을 맞이하여 향린교회의 목회와 선교를 소개하는 단행본을 내면서 기독교사회윤리를 전공하고 천안살림교회에서 목회하시는 최형묵 목사에게 홍근수 목사님의 설교 비평문을 써 달라고 요청했는데, 최 목사가 보내온 비평문의 제목은 <‘정치적’ 목사의 ‘복음적’ 설교>입니다.

한 때 전도사로 교회에서 시무를 하셨던 아버님 홍성만 장로님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매일 가정예배를 통해 성서와 접하셨던 홍근수 목사님의 신학은 어쩌면 보수 근본주의 신학보다 더욱더 철저하게 복음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서 본문 위주의 설교와 전통적 교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홍근수 목사님의 설교는 다른 목사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성서 본문의 해석을 통한 설교가 오늘 현실의 역사적 상황과 촘촘히 엮어진다는 점, 그리고 청중과의 상호소통을 통해 인격적 교감을 나누며 그것을 토대로 일관되게 직언하며 실천적 결단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그 누구보다 더 철저했다고 하겠고, 자신 또한 그 말씀대로 사셨기에 진정한 복음의 사도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의 복음이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려면 그것이 지금 이 시간을 사는 사람들의 사회 경제 정치적 문제들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홍근수 목사님께서 전한 복음이야말로 인간의 전체 삶을 구원하는 총체적이고 근원적이고 통전적인 복음이었던 것입니다.

이번 홍 목사님의 장례를 치르면서 저는 홍 목사님의 품이 얼마나 넓은 것이었는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홍 목사님을 추억하며 가슴 속에서부터 묻어 나오는 존경을 표할 때, 부목사로서 홍 목사님과 함께 목회했던 이혜진 목사의 증언을 들으면서 홍 목사님의 인간적 소탈함과 약한 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 그리고 열정, 하느님 나라 실현을 위한 구도자와 예언자적 자세 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파트타임 교역자로서 제가 홍 목사님을 뵈었을 때는 허리띠를 바지에 끼어 넣으실 때면 꼭 한군데는 빠트리는 약간은 촌스럽고 수수하신 어르신 느낌이었는데, 그 마음 속에는 저 같은 젊은이도 따라가지 못하는 정열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것은 바로 어릴때부터 읽어 왔던 성서, 아버지와 함께 드렸던 기도에서 비롯된 믿음의 자리에서 나오는 것을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자리에서 보이는 희망]

교계 뿐만 아니라 재야의 어른들께서 한분 두분 하늘의 부름을 받으실 때마다 저 같은 사람의 어깨는 계속 무거워집니다.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쌓이는 것이라고 언젠가 제가 하늘뜻펴기에서 말씀드렸지만 역사의 무게는 고스란히 지고 가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 같이 평범한 사람은 어른들과 선배들이 남겨 놓으신 중요한 길들을 이어가는 것만도 벅차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명박 정권을 지내면서 다시 민주세력이 정권을 잡으리라 기대했지만 국정원의 광범위한 여론 조작과 기득권 세력의 감언이설에 밀려 새로운 독재 정권이 탄생하였습니다. 선거용으로 내 놓았던 복지정책은 하나 둘씩 빌공자 공약(空約)으로만 남게 되었고, 유신세력들이 하나 둘 정계에 자리를 잡아가며 1%만을 위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이제는 역사마저 뒤집어 자라나는 후세대들에게까지 왜곡날조되고 편향된 시각을 심어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평화통일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지금 겪고 있는 분단체제 속에서 낭비되는 비용, 쓸데없는 잡음들, 소모적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임에도 정치권의 이해득실 속에서 민족화해의 길은 요원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대단히 빠른 변화 속에서 앞 세대와 뒷 세대의 불통이 심화되고, 마음의 고향이 되어야 하는 가정과 마을에서조차 불신의 벽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노동의 기쁨은 사라지고 생존의 불안만이 가속되는 사회 속에서 인정은 갈수록 메말라 가고, 속내를 드러내놓고 털어 놓을 곳이 없어 속만 끓이는 나날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온통 애가의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루가복음서 저자의 입을 통해서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우리가 더 큰 관점에서 더 넓은 품에서 볼 수 있다면, 하느님의 눈으로, 긴 역사의 호흡을 하는 자리에 서 있다면 우리에게 여전히 희망은 남아 있습니다. 믿음의 자리란 바로 애가의 슬픔을 넘어 서는 자리이고, 세상의 좌절과 절망과 고통을 우습게 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몇 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사진은 1982년 향린교회 의료선교의 중책을 담당하던 사마리아 봉사단이 경기도 파주 교하에 있는 교하교회로 의료선교를 나와 지역주민들에게 봉사를 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여기 교하교회라는 글씨가 보이시지요? 이 장면은 청진기를 대고 진찰하는 장면이고, 이 장면은 동네 주민들이 진찰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제가 왜 이 사진을 보여 드릴까요? 제가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10살의 나이에 여기 모인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가 바로 저였습니다. 이런 시골 동네에 무슨 희망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저는 제 자신이 바로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때 의료선교를 나오신 향린교우들 중 누가 그 때 진찰받은 아이 중 하나가 향린교회의 목회자가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자리에서 보면 언제나 희망은 보이는 법입니다.

여러분 다 아시다시피 29만원 밖에 없다던 전두환, 그리고 그 일가가 최근 장남 전재국의 기자회견을 통해 미납 추징금 1,672억원을 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근 관세청이 조세회피를 위해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로 48명을 적발해 검찰에 송치하였고, 이들이 불법으로 외환거래를 한 규모가 1조원이 넘습니다. 서민들은 세금을 꼬박꼬박 잘 내는데 이렇게 조세회피를 통해 1%의 세금은 술술 빠져나가는 것을 되돌리는 데는 뉴스타파라고 하는 인터넷 언론의 힘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뉴스타파는 해직언론인들이 모여 만든 인터넷 방송매체로서 40명도 안되는 인원으로 운영되는 언론입니다. 정기회원 31,738명의 후원으로 이 언론은 탐사보도의 새로운 영역들을 개척해 내고 있습니다. 만약 거대 신문사나 TV 3사가 뉴스타파에서 보도하는 내용들만 제대로 보도했더라도 이 사회가 이렇게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언론의 진실된 힘으로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새롭게 태어나야 할 우리들]

홍 목사님을 보내드리면서 드렸던 대한문 노제에서 추도사를 한 김경호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홍 목사님께서 하늘로 가신 날은 바로 우리 모두가 새롭게 태어나는 날입니다.” 그렇습니다. 홍 목사님께서 안 계시면 통일의 불씨가 꺼집니까? 그럴 것 같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새로운 탄생을 보는 것이 믿음이고 바로 그 자리에 언제나 존재하는 것은 희망입니다. 오늘 성가대가 찬양했듯이 더 이상 밤은 없습니다. 믿음의 자리에서 희망을 보았다면 이제 무엇이 남았겠습니까? 이제 남은 것은 자유를 향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향린교회 골목 귀퉁이에서 30년 넘게 고구마 장사를 하신 아주머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고 늘 고구마를 사셨던 홍근수 목사님처럼, 사회개혁의 횃불을 높이 드는 것도 바로 정말 인간답게 취급받지 못하는 한 민중이 겪는 구체적 서러움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못살게 구는, 저 자연의 생명까지도 망치는 불의한 사회구조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임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나쁜 놈들이 세우는 악한 계획을 순결한 마음의 선한 것으로 이겨낼 지혜도 필요합니다. 누구나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것을 기억하고 그들이 그 형상을 회복하도록 하는 길은 그들에게 다시 하느님의 형상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나, 여러분, 우리들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분노에 맞서 우리 또한 화를 참지 못한다면 나도 모르게 어느 새 나 또한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지 모르기 때문이고, 악을 처단한다면서 내가 사탄의 자식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와 아내는 아이들을 키울 때 어떤 일이 있어도 폭력은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랬더니 저의 큰 아이가 학교에서 늘 놀림거리가 됩니다. 친구들이 괴롭히거나 물건을 빼앗거나 해도 그냥 당하고 울기만 합니다. 1학년 때는 심지어 맞고 오기도 하여 심각하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상대편이 심하게 때리려고 하면 너도 반격하라고 말한 적도 있고, 권투 연습도 살짝 한 적도 있지만 저희 부부 또한 폭력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을 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2학년이 되어서도 사정은 비슷합니다만 그래도 요즘은 좀 나아졌습니다. 자기 물건을 빼앗기는 일도 적고, 친구들이 뭐라해도 무던히 잘 넘어가며 견디기도 합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 큰 아이가 좋아하는 같은 반 여자아이가 있는데 다른 남자 친구애들이 제 큰 아이와 그 여자아이를 놀리려고 작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여자 아이에게 가서 “선규가 너 좋아한대, 얼레리 꼴레리”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면 분명 여자아이는 아니라고 말할 거고 선규도 아니라고 하면 더욱 놀리기가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자 아이들이 여자아이에게 “선규가 너 좋아한대”라고 놀리는 순간 제 큰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사랑하면 안돼냐? 사람이 사랑도 못해? 너희는 사랑하는 사람 없어? 사람이 사랑하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제 큰 아이의 말에 남자 아이들의 입이 다물어졌고, 놀리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남산동 50번지 판자촌에 살던 전태일 열사 가족들이 판자촌 화재로 다른 이재민들과 함께 쌍문동 쪽으로 집단 이주해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시멘트 블록을 쌓아올리고 지붕은 슬레이트로 대충 덮고 살았는데 그곳이 전부 무허가 건물이라 철거하는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와서 집을 깨부수고 가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언제나 철거반원들과 주민들 사이에 한 판 실랑이가 벌어지고, 한쪽에서는 욕지거리가 오가고, 한쪽에서는 집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철거반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전태일씨는 얼른 쌓았던 블록을 해체해 놓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철거반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쳤습니다. 출근하려던 전태일씨는 다시 허겁지겁 들어와서 집을 해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본 철거반 반장이 뭐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태일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철거당하기 전에 미리 집을 해체하는 거예요. 반장님도 어디 헐고 싶어서 헐겠어요. 위에서 시키니 하시는 일일 것이고, 저희는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집을 지어야 하고요. 괜히 다퉈 봤자 벽돌만 부서질테니 미리 내려놓는 거예요.”

지금 이 사회는 선을 해치는 악의 무리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계획과 방법과 실행력은 교묘하고도 탄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악을 악으로 이길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랑이 집착이 되지 않고, 진정한 자유의 실현이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서로서로의 연대가 패거리가 되지 않고 공공선을 이루게 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 모두가 우리가 이뤄나가야 할 과제들이고 우리들에게 선배들이 남기신 역사의 몫입니다. 이 일을 열심히 했다해서 자랑할 일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따름이라고 말할 뿐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자신이 이룬 공적에 머물러 사는 바리새인의 길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홍근수 목사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향린교우 여러분, 편안히 가십시오. 그리고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