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시편 90:1-6, 누가복음 17:5-10

설교: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먼저 김영 목사님을 비롯한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가 있기를 빕니다. 홍근수 목사님의 부활을 증언하기 위해 함께 모이신 향린교우들에게는 우리의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는 깨달음의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시편 90편 5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 인생은 한 순간의 꿈이고, 아침에 돋아나서 꽃을 피웠다가 저녁에는 시드는 한포기의 풀과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번 뿐이고 태어남이 있으면 또한 죽음도 정해진 것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태어나고 늙어가고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이 땅에서의 여정을 걷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한번 뿐인 인생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릅니다.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인가?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김재준 목사께서 말씀하셨다지만 하느님의 형상을 입어 그 분의 자녀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다간 이가 있는가 하면 주님 주신 생명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제 욕망에 빠져 살다가 인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홍근수 목사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저는 은퇴를 앞두신 홍근수 목사님을 약 1년 6개월밖에 뵌 적이 없는 어린 사람이지만,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의 기억 속에 홍근수 목사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평생을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애쓰신 분, 호탕한 웃음을 가지신 분, 끊임없이 마치 거미 꼬리에서 거미줄이 나오듯이 글을 쓰셨던 분, “자유인으로 사십시오”라는 파송사로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울리셨던 분,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호랑이 같은 목소리로 예언의 말씀을 외치셨던 분!

어떤 사람은 그냥 살기 위해 살지만, 어떤 분은 이렇게 주님께서 세상에 파송한 사람으로 삽니다. 그러나 그냥 살기 위해 산 사람이나 주님께서 파송한 사람이나 모두 주님 부르시는 그 날엔 그분께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죽음의 신비이자, 우리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한계 앞에서 절망하고, 쓰러지고, 아파하고, 슬퍼합니다. 무력감을 느끼고, 공허함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홍근수 목사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홍근수 목사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시고 싶었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향린교회를 은퇴하시고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활약하시리라 누구나 기대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힘겨운 병마와 싸우셔야 했고, 또 가끔은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던 홍 목사님을 뵈면서 저 또한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뒤에 숨어 있는 하느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홍 목사님의 뒤를 이어 하느님의 뜻을, 홍 목사님이 그렇게도 바라시고 애쓰시던 일들을 이어나가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루가복음서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우리가 홍 목사님께서 가지셨던 믿음의 한 부분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민족의 화해와 통일은 훨씬 더 앞당겨 질 것입니다. 그리고 홍 목사님은 지금 주님 앞에서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서 계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유가족 여러분! 하느님의 놀라운 평화와 위로가 지금 이 시간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홍근수 목사님은 하늘보다 높고 바닥 모를 심연보다 깊은 하느님의 사랑의 품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고 계십니다. 1937년 8월에 이 땅에 오셔서 평생을 이 땅의 평화와 통일, 약한 자들의 대변자, 불의한 세상의 하늘의 소리를 외치신 예언자로 사셨던 홍근수 목사님은 언제나 하느님의 아들이요, 영원한 하늘의 시민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목사님의 뒤를 이어 순례자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 목사님의 신앙과 삶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홍근수 목사님은 참으로 우리들에게 지혜와 곧은 신앙의 길을 가르쳐 주셨고 보여 주셨습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의 여정에서 목사님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들어 올 때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었지만 이 세상을 떠나 주님의 품으로 갈 때에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목사님의 삶과 죽음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배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향린교우 여러분! 유가족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시고, 하느님 앞으로 가는 날까지 믿음을 견고히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죽임 속에서라도 부활의 생명을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침묵 가운데 홍근수 목사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신앙의 유산을 다시금 기억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순례자의 길을 되새기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