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 약속은 목숨

2:4-13; 81:1,10-16; 13:1-8,15-16; 14:1, 7-14

 

[식사 초대: 호의? 흑심?]

 

오늘 루가복음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러분은 지금 예수를 식사자리에 초대한 바리사이파 지도자의 의도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호의를 갖고 대화를 하기 위해 초대를 한 것일까요? 아니면 뭔가 꿍꿍이속, 흑심이 있어서 예수를 초대한 것일까요? 호의가 있다고 생각하신 분 손들어 보세요. 아니면 뭔가 흑심이 있다고 하신 분 손들어 보세요? 그 이유를 한번 설명해 보세요. 심증만으로는 안 됩니다. 물증이 필요합니다.

 

어떤 얘기이든지 도입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한다 하더라도, ‘그는 긴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그는 매우 흥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완전히 반대의 결론이 날수도 있습니다. 1절 말씀에 근거해서 여기에 호의가 있었는지 아니면 흑심이 있었는지를 설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성서공부입니다. 그냥 자기 입맛에 맞는 성서구절 몇 개 외우는 것은 진짜 공부가 아닙니다. 그건 잘못하면 성서의 오독 내지는 모독이 될 수 있습니다.

 

1절에 나오는 단어 한두 개를 가만히 연결해보면 우리는 당장 이 바리새인 지도자가 예수를 식사 자리에 초대한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단어입니까? ‘어느 안식일,’주중의 하루가 아니라, 어느 안식일에 있었던 이야기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면 벌써 감이 오지요. 안식일에 바리사이파가 등장을 한다고 하면 이는 백발백중 안식일 논쟁의 이야기입니다. 루가에게 있어 이 안식일 논쟁은 이미 6장에서 두 번 그리고 13장에서 또 한 번, 이미 3번이나 예수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논쟁을 벌인바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자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비비는 행동을 하느냐?며 공격을 합니다. 예수께서는 다윗 일행도 도망을 가다 배가 고파 사제들밖에 먹지 못하는 제단의 빵을 먹지 않았느냐? 역공을 하며 사람의 아들딸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안식일의 주인은 야훼 하느님이시고 그래서 이 야훼 하느님을 지성전에 모시고 있기에 성전의 권위로 해석하는 안식일 법은 절대적이다라는 주장을 뒤집어엎는 매우 파격적인 주장입니다.

 

둘째 이야기는 회당에서 손 마른 사람을 고쳐준 사건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회당 가운데 세우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에게 한 가지 물어 보겠다. 율법에 어떻게 하라고 하였느냐?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악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사람을 살리라고 하였느냐? 죽이라고 하였느냐?” 이런 장면을 보면 예수님의 탁월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지만, 조금은 얄밉지 않아요? 어떤 분들 얘기할 때 정말 말 잘하는 사람 보면 전 정말 부러워요. 원고도 없이 어떻게 조리 있게 말을 잘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제가 그렇지 못해서 얄밉기도 하거든요. 예수님 어쩌면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지요? 율법에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라고 했느냐? 악한 일을 하라고 했느냐? 사람을 살리라고 했느냐? 죽이라고 했느냐? 도대체 상대방이 꼼짝할 수가 없잖아요?

 

세 번째 논쟁이 오늘 본문 앞장인 13장에 나오는데, 여기서도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는데, 18년동안이나 허리가 굽어 땅만 쳐다보고 살아가는 한 여인이 앉아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그 병을 고쳐줍니다. 그러자 그때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항의합니다. 아마 이때는 자기들도 예수의 논리에 대항하는 논리를 준비를 해온 것 같습니다. ‘갈릴리 예수 그대여, 그래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것은 맞다. 그러나 안식일 외에도 일할 날이 엿새나 더 있다. 이 사람은 이미 18년이나 이렇게 살아왔다. 그러니 하루 이틀 늦는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안식일에는 하느님도 쉬었고 우리에게 쉴 것을 명령하셨으니 이 사람을 고치는 일은 안식일을 지나 내일 하는게 옳다.’ 여러분이라면 이 논리에 대해 뭐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법 규정인가? 생명인가?]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저의는 무엇입니까? 법의 문자적 규정입니다. 예수님은 그 안식일 법의 문자가 아니라 안식일의 근본 취지를 말합니다. 기계와 같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쉼없이 일을 해야만 했던 노예나 가축들을 보호하기 위한 근본 취지가 중요합닌다. 그래서 법에 대한 정통 해석권은 자신들에게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이 더욱 중요하기에 실정법을 더 중요하게 말합니다. 그래 예수께서 저들의 간사한 마음을 읽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위선자들아, 너희 가운데 누가 안식일이라 하여 자기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이지 않느냐? 이 여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십 팔년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다. 그런데 안식일이라 하여 이 여자를 사탄의 사슬에서 풀어 주지 말아야 한단 말이냐?’

 

‘18‘18년 하루하고는 산술로 말하면 거의 똑같은 숫자입니다. 61일과 62일은 숫자상의 차이는 있지만, 기간으로 본다면 실상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이라는 질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연 다른 것입니다. 이 여자에게 만약 예수께서 오늘은 안식일이니 고쳐주기 힘들고 내일 고쳐줄 테니 내일 오라고 하는 것이 과연 맞는 말일까요? 그것도 무슨 거창한 수술도구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말 한마디면 나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사람의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내일은 알 수 없습니다. 아니 당장 오늘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생명은 그 순간이 전부입니다. 지금 여기가 전부입니다. 내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지난 주 류길재 통일부장관이 이런 말을 했더군요. ‘남북관계는 서두른다고 될 문제가 아니고 조급하게 성과를 구할 일도 아니라며 멀리 내다보고 신중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말이야 백번 맞지요. 남북이 서로 죽이기로 다짐을 하고 총을 들이된지가 벌써 70년이 다 되어가고, 천만이 넘는 이산가족들 이제 살아있는 사람 얼마 없습니다. 어떤 할머님은 이번 이산가족 추첨에서 떨어졌다고 통일부 사무실 그 자리에서 쓰러져 대성통곡을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추첨되었다고 당장 북의 가족을 만날 수 있는건 아닙니다. 일단 북에 가족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것도 또 300명 중에 100명만 되기에 33%의 확률입니다. 그런데도 사무실 바닥에 엎드러져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류장관이 자기 엄마나 누나가 북에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도 조급하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가자 그렇게 얘기하겠어요? 만약 그렇게 얘기한다면 이 사람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 아닌 차가운 피가 흐르는 철면피입니다.

 

남북관계는 생명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정권의 관점에서 보면 맨 날 같은 얘기입니다. 서두르지 말자는 얘기는 이미 50년 전 박정희정권이 즐겨 쓰던 용어입니다. 제가 위원장으로 있는 NCCK 통일위원회에서는 10월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의 북측 교회 대표의 참석과 독일통일의 상징인 베를린 브란데부르크 광장에서부터 출발하는 평화열차의 평양 통과를 위해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만남을 위해 여러 달 동안 접촉을 시도하여 왔습니다. 그간 남북관계가 막혀 있어 연락이 없다가, 지난 814일에 평양에서 만나자고 하는 초청장이 왔고, NCCK에서는 15명의 대표단을 구성하고 통일부에 방북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이 바로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남북회의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사실 교회 방북은 그것과 아무런 상관은 없지만, 개성회의가 끝나고 가면 좋겠다고 제의를 해서 저희들이 양보를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연락을 해서 다음 주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고 통일부에 연락을 했는데, 이제 와서 모른 채 하고 있습니다. 정부 입장은 민간단체는 남북만남에서 빠지라는 것입니다. 지금 천만 이산가족 생명이 죽어가고 있고, 한반도의 생명이 허리 잘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의 만남이 가장 중요하건만 이를 거부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정권유지를 위해 정략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박근혜정부의 흑심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로 회귀하는 정권]

 

김대중 노무현정권 때에 수 십 만명이 북을 방문하였지만, 이명박정권 때부터 갖가지 이유를 대어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래서 5년이란 시간이 그냥 흘러갔고, 박근혜정부도 말은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아버지 정권에 핵심역할을 하던 75세의 김기춘씨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는 것을 보면 결국 정권유지용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들이 그렇게 애타하고 있는데, 격을 따지거나 생색내기 만남만 한두 차례 하고 말 것입니까? ‘통일은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이게 바로 오늘 남쪽 정부의 논리이고 예수님 당시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그 사람 이미 18년이나 그렇게 살았는데, 안식일 지나 내일하면 되지 않느냐? 꼭 실정법인 율법을 어겨서 이 사람을 고쳐주어야 하느냐? 이들의 논리는 생명이 우선이 아닌 정권유지가 우선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어떤 경우에도 생명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생명 살리기 이게 모든 우리들의 삶의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루가는 세 번째 안식일 논쟁을 마치면서 이런 얘기를 덧붙입니다. “이 말씀에 예수를 반대하던 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으나 군중 오흘로스들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온갖 훌륭한 일을 보고 모두 기뻐하였다.” 지난 주 목요일 섬돌향린교회로 간 노은아집사 남동생께서 광주에서 있었던 T 50 국산비행기를 운전하다 고장이 일어나 그만 추락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세 개의 봉고차가 향린교회에서 출발을 했는데, 저는 일정이 맞지 않아 혼자 기차로 다녀왔습니다. 광주송정역에 내려 택시를 탔는데 운전수가 60대 초반이었습니다. 광주 인심은 어떤가하여 이번 통진당 국가내란음모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슬쩍 떠보았습니다. 그래도 광주이니까 뭔가 조심스러운 답변을 기대했었는데, 즉각 나온 답이 그냥 다 죽여야 해요.’ ! 정말 세상 참 무섭데요. 재판도 하지 않아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국정원이 하는 말만 믿고 그냥 죽여야 한데요. 아니 3년 동안이나 감청을 하며 미행을 해왔는데, 하필이면 국정원대선공작 촛불이 한참 타오르는 지금 이 시점에서 그런 얘기를 터트렸다면 무슨 꿍꿍이속이 있다고 일단 의심을 해 보는게 정상적인 사람의 태도가 아닌가요?

 

모든 기소는 무죄추정에서 시작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 사람의 논리는 무조건 국가권력이 옳고 국정원이 옳다는 겁니다. 지금 국가내란 운운하면서 많은 사람이 덩달아 돌을 던지는 상황입니다. 김대중대통령 때도 그랬고, 함석헌선생도 그랬고, 여기 앉아 계시는 김낙중선생님도 그러했습니다. 아니 총도 탱크도 없는 일반 시민 당원들이, 무슨 국가내란 음모입니까? 대한민국이 사람 백 명이 모여 내란음모를 꾸민다고 해서 무너질 국가입니까? 그랬다면 진즉에 무너졌지요. 왜 세계가 지금 우리를 비웃고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여러분 예수님이 무슨 죄목으로 로마정부로부터 십자가 처형을 받았습니까? 민중소요죄 곧 국가내란음모죄였습니다.

 

정확한 실체를 알게 될 때까지는 판단을 미뤄야 합니다. 6,70년대 유신정권 시절 갖가지 명목으로 뒤집어 씌웠던 정치음모죄들 지금 모조리 무죄로 판결나지 않았습니까?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 법에 따라 모두가 돌을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뭐라고 하셨어요? 죄 없는 자가 먼저 쳐라! 제가 처음 목회 시작할 때, 부부싸움 일어나면 처음 한쪽 얘기만 듣고 상대방 그 사람 잘못했구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반대편 얘기를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에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부부싸움이든 무슨 싸움이든 양쪽 얘기 다 들어보고, 그리고 다 들었다고 해도 판단을 해서는 안되는게 다반사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거기에 또 말 못할 사연들이 또 숨어 있더라구요. 여러분 이게 인생입니다. 한 개인의 삶도 이렇게 복잡다단하거늘, 국정원이 발표했다고 그걸 그대로 믿어요? 지금까지 국정원이 한 게 뭔데요. 하구하날 빨갱이 양산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어떤 때입니까? 지난 대선에 부정개입하였기에 국정원 개혁하라고 엄청 시민들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지 않았습니까?

 

[첫째가 꼴찌로]

 

검은 안경 끼고 국가안보를 운운하며 큰소리치던 대통령들 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박정희는 일본 천황에게 혈서로 충성 맹세하였던 일본육사 출신입니다. 전두환 노태우는 광주시민들 국가내란죄로 빨갱이로 몰았다가 나중에는 자신들이 바로 국가내란죄로 징역을 살았지요. 게다가 전씨는 29억원밖에 없다고 해도 안 믿을 판에 29만원 밖에 없다고 말하였다가 지금 얼굴에 똥칠을 하고 있습니다. 제 얼굴에만 똥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들 시집온 며느리들 얼굴에 똥칠을 하고 있고, 육사생들 얼굴에 똥칠을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대통령 골프 치러 갔다가 기자들 등장했다고 하니까 중간에 이러저리 도망치느라고 바빴다고 하더군요. 참 한심한 사람입니다. 아니 전직 대통령이 골프 치면 안 된답니까? 뭐가 무서워서 도망을 칩니까? 오바마마냥 당당하게 나서서 당신네들이 쫓아다니니까 잘 안 맞으니까 끝나고 보자그래야지 뭘 이리저리 도망을 다닙니까? 아마 동반자가 문제가 되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4대강 사업에 관련 건설회사 사장일수도 있구요.

 

그건 그렇고. 이명박씨, 그렇게 숨어 다니지 말고, 퇴임 후에 아내랑 함께 4대강 자전거 도로 일주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골프는 그만치고 국민 앞에 약속했던 자전거 일주나 빨리 했으면 좋겠네요. 지금 녹조가 한참이라고 하니 그거 좀 보고 한마디 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이런 모습들을 보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 첫째가 꼴찌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정말 이해가 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보면 세 번째 안식일에 관해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꾸짖은 다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고, 문을 두드린다고 다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들에게는 난 네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지 못하겠구나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서 그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애 둘러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당시 첫째는 누구였습니까?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권력 좀 잡았다고 뭐 좀 가졌다고 큰소리치는 인간들. 그런 못된 인간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첫째가 꼴찌되고 꼴찌가 첫째될 것이라는 구원의 혁명성을 얘기한 다음 권력자 헤로데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얘기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여우에게 가서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를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이면 내일을 마친다,’고 전하여라. 이는 국가권력에 대해 맞설 것과 그로 인해 자신이 죽을 것임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

 

바로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오늘의 루가복음 본문 말씀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사이파 지도자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곧 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를 빌라도 법정에 고발할 명목을 찾기 위한 흑심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1절에서 한글번역이 이러한 루가의 의도를 흐릿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서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다니던 군중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바리사이파 사람들인지도 분명하지 않고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는 말인지 뭔가 캐내기 위해 의심하는 눈빛으로 살펴보았다는 말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원문을 보아야 합니다. 희랍어 원문에는 사람들이 아닌 그들입니다. 곧 앞에서 말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지켜보고 있었다로 번역된 희랍어 동사 파라테로는 그냥 쳐다본다는 단어가 아니라,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에서 뭔가를 캐내기 위해 의심의 눈빛으로 유심히 살펴본다는 말입니다. 정확한 한글번역은 감시혹은감찰하다입니다. 국정원이 국가내란 간첩죄를 적용하기 위해 이메일에서 오고간 단어 하나하나 모임 장소에서 발언한 말 하나하나를 따져본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이 파라테오라는 단어가 쓰인 루가복음 67절을 보면 한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기만 하면 그를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었다.’‘고발하기 위해, 죄목을 찾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기 위해감시하고 있었다는 말이 바로 파라테오라는 단어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그냥 사람들이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로 번역한 것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안식일 논쟁을 벌일 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예수가 논쟁을 벌였습니다만, 오늘 본문에서는 그냥 바리사이파가 아닌, 바리사이파의 지도자 곧 우두머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정원장이 직접 나서서 예수의 반란음모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국정원장이 진두지휘한다는 말은 이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임박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루가복음 본문은 안식일에 수종병자를 고쳐준 이야기가 있는 2절에서부터 6절까지를 빼고 1절에서 7절로 바로 건너뛰었습니다. 이는 어디에 초대받았거든 처음부터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낮은 자리에 앉아라 혹은 교만하지 말고 언제나 겸손히 행동하라는 말씀을 강조하기 위해 뺐는데, 사실 이 초대받은 자리에서 안식일 대결 사건을 빼버리면 1절에서 시작한 안식일바리사이파 지도자그리고 그들이 감찰하다라는 모든 단어들의 의미가 퇴색해버리고 마는 것이고 낮은 자리에 앉으라는 이 얘기 또한 얘기의 맥락이 사라지고 맙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대상은 일반 사람들이 아니라 소위 당시 사회의 지배계급이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 곧 오늘날의 정치사회의 지도계층들을 두고 하는 말이고 이는 단순히 겸손을 강조하는 생활의 지혜로서 하는 말씀이 아니라, 사회의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느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음을 말하는 매우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경고인 것입니다.

 

식사 초대를 할 때에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사는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말고, 되갚을 수 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같은 사람들, 곧 이 땅에 가장 낮은 자들, 사람들이 무시하고 경멸하고 피해가는 그런 사람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하라. 그러면 너는 행복하다. 그러면 너는 하늘의 영적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갚지 못할 터이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주실 것이다. 부자들과 권세자들, 느네들끼리만 끼리끼리 모여 파티하고 술자리하면서 음모 꾸미는 얘기하지 말고, 파티를 열려거든 이 땅의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초청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에게 적용하면 기부가 되는 것이고, 나라에 적용하면 복지가 되는 겁니다.

 

[약속은 생명]

 

요즘 서울시의 무상급식이 예산부족으로 중단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배후를 보면 박근혜정부가 박원순시장을 물 먹이기 위해 서울시에만 추경예산을 세우지 않고 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1월 박근혜씨가 전국시도자 간담회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보육사업과 같은 전국단위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게 맞다.” 말은 개인이 약속을 해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지만, 나라의 대통령은 더욱 중요합니다. 그래서 공약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말을 해놓고는 모른 채하고 있습니다. 공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하늘뜻펴기 제목으로 정한 약속은 생명이다라는 말은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천주교에서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기 위하여 신문에 광고를 내면서 붙인 제목입니다. 대통령이 후보시절 분명히 하겠다고 약속했으니, 그 약속 이행하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얘기가 달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천주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 4개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대한문에서 쌍용차 해고자를 위해 매일 미사를 드려왔고, 그리고 최근 1,2개월동안 14개 전국교구가 저 남쪽에서부터 차례차례 교구별로 거의 모든 신부들이 참여하는 국정원대선음모 사건에 대한 시국선언을 하여오고 있습니다. 대구경부 교구는 10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대구경북은 현 정권의 아성입니다. 그 아성이 흔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번 통진당 사건을 부풀려서 부랴부랴 터트린 것으로 봅니다. 더 있다간 큰일 나겠다. 민주당은 천막농성하지 대표는 거기서 먹고자고 하겠다고 하지. 잘못하면 선거 다시 하라는 촛불 열풍이 불어닥칠까봐, 이러다가 우리 모두 죽겠다 싶어 말도 안 되는 국가내란음모사건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내란죄는 사형인데, 내란음모를 하려면 비밀리 소수가 끼리끼리 산속에 숨어서 모여 논의를 해야지, 무슨 130명이 집단으로 그것도 서울 중앙에서 논의를 한다는 것입니까? 물론 폭력적인 발언에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게 그냥 지나가는 발언인지 아니면 이를 실행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 모의를 했는지, 발췌된 말만 갖고는 그 진의를 모르는 겁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게 말입니다. 발췌를 해도 국정원이 아닌 믿을만한 교수나 종교지도자들이 해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긴 오늘 예레미야서 말씀을 보면 지도자라고 해서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사제라는 것들은 야훼께서 어디 계시냐?고 찾지도 않는다. 법 전문가라는 것들은 나의 뜻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백성의 목자라는 것들은 나를 거역하기만 하였다. 예언자라는 것들은 바알의 말이나 전하며 아무 데에도 쓸모없는 것들만 따라다녔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와 따지리라.” 여러분 이 말씀에 근거해서 누구의 말도 믿지 마세요. 목사의 말도 믿지 말고, 판사의 말도 믿지 말고, 사회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정치인들의 말도 믿지 말고 그러면 누구만 믿어요. 하느님만 믿고,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자신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말씀을 보면 하느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일러준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를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여기서는 지도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권고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도자와 예레미야서에서 믿지 말라고 하는 지도자와는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여러분들이 따라야 할 자와 따르지 말아야 할 자, 참 지도자와 거짓 지도자를 구별하는 기준은 딱 하나입니다. 그건 생명입니다. 꼴찌 곧 약자들의 권리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가? 아닌가? 입니다. 이 정부가 참다운 정부인가? 아닌가? 하는 판단은 이 정부가 재벌을 위한 경제정책을 펴는지 아니면 이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신음하며 살아가는 가장 작은 자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경제정책을 펴는지를 보면 쉽게 판단이 되는 것입니다. 후보 시절 했던 약속을 생명으로 여기고 지키는지, 아니면 정치적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이 약속들을 헌신짝처럼 버리는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에 귀한 잣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