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
역사에 도전하라
마르 16,15

이 재 정 신부
(전 통일부 장관)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이 복음의 소리는 갈릴리에서부터 울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갈릴리는 변방이었습니다. 변방은 중앙부, 권세의 자리로부터 아주 먼 소외된 땅이었습니다. 변방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현장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벼랑 끝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더 나갈 길이 막힌 곳이었습니다. 역사에서 보면 때로 변방은 아브라함의 삶의 자리였습니다. 떨기나무가 불타던 호랩산 기슭이었습니다. 문둥병자가 예수를 목청 다해 부르던 간절한 현장이었습니다. 이사야, 엘리아, 아모스, 호세아가 외치던 그 때이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4,19 혁명으로 목숨을 걸고 부정선거를 파기시킨 그 자리였으며, 군부 통치를 몸으로 막아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주민주항쟁의 자리였으며, 민주주의의 원칙을 따라 국민의 권리를 되찾았던 6월민주항쟁의 거리였습니다. 그러므로 변방은 단순히 공간적으로 먼 곳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방은 단순히 어느 한정된 때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변방은 왜곡된 역사 속에서, 불의의 상황 속에서, 억압의 고난 속에서, 거짓과 기만이 날뛰는 현장에서 몸부림치는 그 때 그 자리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벼랑 끝에서 복음의 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복음은 역사를 바꾸라는 역사를 변화시키라는 하늘의 외침이었고 땅의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요한도 예수도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 나서라고 외쳤습니다. 세례는 그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문둥병자도, 눈먼 자도, 듣지 못하는 자도, 앉은뱅이도, 여자도, 어린이도, 과부도, 노인도, 부자도, 가난한 이도, 세리도, 율법학자도, 군인도, 심지어 죽은 이들까지 일어서 외치라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일어서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가 바로 변방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복음은 그래서 도전하라는 명령입니다. 변방이 불현 듯 희망을 만들어 내는 결정적인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선포하라는 말은 곧 역사에 도전하라는 명령이며 동시에 희망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첫 출발지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방으로 내 쫓겼습니다. 불의한 정치 권력자들에 의하여, 국가 권력을 이용하여 국민을 제 멋대로 우롱하며 국기를 흔들어대는 세력에 의하여, 국제 패권주의나 시장 질서를 내세워 신자유주의로 내몰아가는 기득권자들에 의하여 변방으로 변방으로 내 몰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변방으로 내 몰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변방으로 내 쫓기고 벼랑 끝까지 내 몰리면서 비로소 그곳에서 복음을 들을 수 있었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었으며,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희망의 외침을 소리 높여 외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사였습니다. 우리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역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을 돌이켜 보십시오. 35년간의 모진 일본제국주의의 무자비한 폭력과 착취와 유린 속에서도 우리는 독립의 날을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변방에서는 끊임없이 일제에 항거하면서 독립의 역사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무릎을 꿇고 패망을 선언하기 일주일을 앞두고 한반도는 벼랑 끝에 다시 내 몰렸습니다. 1945년 8월 7일 소련군이 북한을 무력으로 점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놀란 미국은 바로 68년 전 오늘 3.8선을 기점으로 북은 소련이 남은 미군이 점령하여 군정으로 다스리자는 한반도 분단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군정 포고령을 내려 우리 민족 지도자들의 독립의 소리를 막고 그해 9월 미군이 들어와 남한 전역을 점령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우리 민족의 존재도 우리 국가의 가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유린하도록 내몰았던 미국이 다시한번 한반도를 분단시키고 우리 민족을 죽음의 길로 몰아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945년 해방은 해방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새로운 군정 식민통치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단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져 지난 60년을 정전협정아래 정전체제로 우리를 묶어 버렸습니다. 보십시오. 지금도 우리의 운명을 우리의 목줄을 국제사회가 쥐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변방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변방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평화의 꿈을 외치고, 부단하게 통일의 길을 열어나갔습니다. 무너진 것은 언제나 정치권력이거나 중앙부였습니다. 그들의 정치적 욕심 때문에 권력을 사유화하고 정치도 독점 독선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어떤 올바른 외침도 거침없이 억압해 왔습니다. 그런데 변방에서 새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988년 9월 남북기독교 대표들은 세계교회 대표들과 함께 스위스 작은 마을인 글리온에서 모여 1945년으로부터 50년이 되는 1995년을 희년으로 선포하고 매년 8월 15일 직전주일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주일로 지키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이 합의는 오늘까지 지켜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결의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살아 있는 복음이었습니다.

 1995년을 “희년의 해”로 선포한 것은 이 땅에 이 역사에 희년을 이룩하기 위한 변방의 외침이었습니다. 변방에 내몰렸던 교회들이 외친 것입니다. 버려진 돌들이 우렁찬 소리를 울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1988년 2월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와 인권을 외치며 변방을 지켜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결의한 한국기독교회선언에서부터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외세에 의하여 여전히 장악당한 채 남북분단에 무릎을 꿇고 살아가고 있는 이 민족이 당당하게 일어서 도전하라는 명령을 외쳤습니다. 진정한 해방과 독립, 진정한 자주와 평화를 위한 변방의 도전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이 변방의 외침은, 벼랑 끝으로부터 밀려오는 도전은 그동안 무참하게 짓밟히기도 하였지만 변방의 외침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돌이켜 보십시오. 이 외침으로 부터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만들어지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이 그리고 2007년 10.4남북정선언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변방에서 시작한 외침이 중앙부를 변화시키고 남북을 이어 새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역사를 역행하는 권력들에 의하여 무참하게 이 합의들은 구겨지고 왜곡되고 짓밟혔습니다.

 이제 변방의 힘으로 변방의 외침으로 다시 남북의 닫혀있는 모든 길을 열어야 합니다. 개성에서 근로자들이 다시 일할 수 있도록 반드시 모든 공장문을 열어야 합니다. 금강산을 찾는 행렬에게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아픔을 덜어주기 위하여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나고 장기수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남북정상들이 합의한 모든 사항들을 제대로 이행하여 진정한 남북의 화해와 공존, 교류와 협력, 번영과 평화, 국가 연합과 민족 통일의 새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남북이 약속했던 대로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하여 종전과 평화협정을 맺어야 합니다. 북한의 핵무기는 물론이려니와 남한의 핵공격을 위한 무력증강도 막아 진정한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정치세력도 남북의 평화를 남북관계를 정치적 목적과 수단으로 악용할 수 없도록 막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해방의 길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희년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복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으로 도전해야 할 부름입니다. 예수께서 그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변방에서 시작했듯이 오늘 남북의 변방에서 도전을 해야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애급의 변방에서 해방의 역사를 시작했듯이 오늘 한반도의 변방에서 변방의 세력들이 역사의 도전을 해야 합니다.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희년의 새 역사를 선포하며 땅 끝까지 복음을 선포해 갑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앞서 갈 것이며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희망의 새 역사가 눈 앞에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힘으로 역사의 변화를 창조해 갑시다. 촛불을 높이 들어 어둠의 역사를 빛의 역사로 만들어 갑시다. 촛불을 들어 변방에 희망의 빛을 비춥시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