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인간, 참된 지식

11:1-11; 107:1-9, 43; 3:1-11; 12:13-21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주제별로 나누면 가장 많이 말씀하신 주제는 물질 탐욕에 대한 경계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깊이 깨닫는 것은 신앙이란 곧 구원의 문제이긴 하지만, 이는 하느님께 속한 문제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귀결되는 신앙의 핵심은 세상 물질과의 싸움입니다. 오늘 호세야 본문 말씀에도 나와 있지만, 성서에 등장하는 바알을 비롯한 이방 신들의 우상 숭배의 문제는 단순히 이름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재물에 대한 가치 기준이 달랐던 것입니다. 야훼의 신은 언제나 약자 보호를 위한 정의와 평화를 말씀하고 있고, 이방신들은 언제나 강자, 권력자들의 편에 서서 저들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재물과 신앙]

루가복음은 특히 부에 관해 매우 비판적인 분명한 신학을 갖고 있습니다. 재물은 중립적이 아니고, 이의 축척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루가는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의 목적을 4장 나사렛 회당 선언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데, 여기의 핵심적인 용어가 주의 은총의 해희년입니다. 희년이란 땅은 하느님의 소유이기에 이는 인간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져야 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고대시대에서 땅은 부의 상징이자 재산을 키워나가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따라서 부자라고 하는 것은 땅을 많이 소유한 사람인데, 이 사람은 돌려주어야 할 남의 땅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에 잘못되었다는 것이 루가의 기본 생각입니다. 그래서 1장 마리아의 찬가에서부터 계속해서 권력자와 부자에 대한 비판을 밝혀 말하고,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는 마태의 축복 선언에서 끝나지 않고, 부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저주 선언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또한 같은 기조에서 얘기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가운데 한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아버지 유산을 형이 독차지하려고 하는데, 이를 중재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당시 신명기 법전은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에게서 난 아들이라도 그가 큰 아들이면 그에게 두 배의 몫을 주도록 말하고 있습니다.(21:16-17)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이 작은 아들은 아마도 이에 불만이었던 모양입니다. 이에 예수님은누가 나를 유산 상속의 중재자로 삼았는가?’라고 질책하시면서 한 부자 농부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도 이는 실제 얘기였을 것입니다. 그는 소출이 생각보다 많아지자 더 큰 창고를 지어 거기에 모든 소출을 저장해 놓고 여생을 편히 쉬겠다고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하느님께서 그 영혼을 부르면 그 모든 재산이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는 질문으로 끝납니다. 재산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하는 삶의 우선순위에 관한 질문입니다.

 

우리가 은퇴 후를 위해서 혹은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서 저축을 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소출이 늘어나 창고를 크게 짓는 이 농부는 왜 비난받아야 하는 것인가요? 우선 오늘 본문 말씀을 유심히 읽어 보면 그의 마음속에는 하느님도 이웃도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 창고를 헐고 더 큰 것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어두어야지.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리라.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내 창고, 내 모든 곡식과 재산, 내 영혼. 그의 관심은 오직 자기입니다. , , . 당시에는 부족 간에 민족 간에 전쟁이 잦았습니다. 이웃들이 나서서 재산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그건 결코 자기 재산이 될 수가 없습니다. 또 많은 소출을 얻으려면 땅이 많아야 하고 많은 땅을 일구기 위해서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아마도 그는 많은 소작인들을 거느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눈에는 저들의 희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농사는 하늘의 도움 없이는 결코 풍부한 소출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손에 흙을 묻혀 보지 않았던 그는 하늘과 땅에 대한 감사를 몰랐습니다.

 

심지어 그는 영혼마저 자기 소유로 착각합니다. 내 영혼. 그가 말하는 내 영혼이란 눈 앞에 보이는 현실에 매여 있는 영혼입니다. 먹고 즐기는 영혼입니다. 역사를 멀리 내다보고 이웃들과 함께 아파하는 그런 영혼이 아닙니다. 그의 영혼은 세상에 매인 탐욕의 영혼이었지 세상을 넘어 진리를 찾아 투쟁하는 그런 자유하는 영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영혼과 물질을 동일시했습니다. 물질이 있는 한 그의 인생은 계속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었습니다. 영혼이 먼저이고 물질이 나중이었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물론 죽어서야 그는 이 진리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서를 통해 이 진리를 알고 있지만, 실상 세상에는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극심한 낭비]

낭비벽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19세에 최연소로 1985년 세계 헤비급 챔피온을 지냈던 마이크 타이슨입니다. 19번의 경기 중 12경기를 1KO로 이겼던 일명 핵주먹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지만, 그는 강간죄로 인한 3년간의 복역, 권투시합 중 상대방의 귀를 물어뜯어 자격정지를 당하는 등 숱한 화제를 불러 일으킨 사람입니다. 그는 20년에 걸친 선수생활을 통해서 4,000억 이상을 벌어들였습니다. 요즘 가치로 환산하면 몇 조원이 되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그러나 그는 2004 39번째 생일을 앞두고 380억의 빚을 지고 파산선언을 합니다. 파산 이후 현재는 회개하여 세 번째 아내와 비교적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당시 그의 방탕한 낭비벽은 언론에 큰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한 때 그는 경호원, 운전사, 요리사, 정원사를 비롯하여 자신을 돕는 도우미로 무려 200명을 둔 적도 있었습니다.

법원에 제출한 지출 내역을 보면 더 가관입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구입에 45억원, 의류와 보석류에 34억원, 개인 용돈으로 78억원. 인도 벵갈산 백호 두 마리 구입과 사육에 26천만원. 그의 첫 아내인 영화배우 출신의 로빈 기븐스를 위한 욕조설치에 20억원. 생일파티에 4억원, 더욱 놀라운 것은 1995년부터 1997년 사이의 3년 동안 휴대폰과 무선호출기 비용으로 23천만원을 썼습니다. 이를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상상이 안됩니다. 그야말로 주지육림, 흥청망청이란 말은 그에게 딱 맞는 말입니다.

그의 코치는 사람이 갑작스레 유명인이 되고 돈이 많아지면 유혹을 피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데, 우리라면 어떨까요? 여러분 수중에 갑자기 수십억의 돈이 들어오면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로또 1등에 당선된 사람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얘기는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일까요? 로또에 당선된 사람의 뒤를 조사하여 책을 내고자 하면 반드시 로또 회사가 와서 판권을 비싼 값에 지불하고 이를 폐기하기 때문입니다.

[부의 사회 환원]

물론 돈이 많다고 해서 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와 반대의 이야기도 많이 있습니다. 김밥 할머니가 평생 모은 수억원을 장학금으로 내어놓았다는 기사를 가끔 보고 있고, 매년 성탄절만 되면 가난한 이웃들에게 써달라고 돈을 상자곽에 넣어 동사무소에 보내는 보이지 않는 천사의 얘기도 알고 있습니다. 또 세계에 잘 알려진 이야기로는, 타이슨이 이토록 극심한 낭비로 인해 파산을 했을 때, 세계 최대의 갑부로 알려진 빌 게이츠가 530억 달러가 넘는 재산의 99%를 자신이 세운 기부재단에 희사하고 그는 현역에서 은퇴하여 자선 사업에 나선 것이고, 이 소식을 듣고 세계의 두 번째 갑부인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렌 버핏 또한 전 재산 470억 달러 중 0.07%에 해당하는 300만 달러만 가족에게 남기고 이를 또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것입니다. 이들은 미국정부가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해주려고 했을 때, 반대성명을 냈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워렌 버핏의 세 자녀 모두 자선단체에서 일하고 있는데, 누구 하나도 대학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 자녀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중도에서 탈락했는데, 큰 아들 하워드는 무거운 기계를 다루는 것을 좋아해서 불도저를 사서 일을 했다고 하고, 막내인 피터는 음악에 재능이 많아 뉴 에이지 음악 작곡 활동을 했습니다. '재단이 없었다면 하워드는 농부, 나는 뜨개질이나 바느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딸 수지는 말한다. 딸 수지는 변호사와 결혼했는데, 결혼 당시 사위는 장인이 누구인 줄 몰랐다고 하며, 그 이후에도 장인이 하는 일에 대해 무관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런 아름다운 얘기를 듣지 못하는 것일까요? 오히려 자녀들에게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또 물려주면서도 법정상속세를 내지 않기 위해 별의별 꼼수를 부리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갑부로 알려진 이건희씨나 그의 아들 이재용씨는 사카린 밀수로 돈을 번 아버지 이병철씨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았습니다. 기업 대물림을 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서 시민단체로부터 고발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공로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 성공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삼성은 지금도 노조를 결성하지 못하도록 모든 부정하고 악랄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유일한 세계적 기업입니다. 삼성 의 성공은 하청기업인 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한숨과 피와 땀의 결과입니다.

 

몇 년 전 김용철변호사가 삼성을 폭로하는 책을 냈고, 우리 교회에 와서 특강을 하기도 한 김상봉교수는 말합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주체들이 자연스럽게 삼성의 노예화가 되어가고 있다. 이미 이 나라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언론을 포함한 사법부, 검찰, 행정부 등 모든 권력 집단이 삼성에 길들여 있으며, 그들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이번에 CJ 재벌과 국세청과의 뇌물사건이 터지고 있지만, 이게 어찌 어느 한 기업만의 일이겠습니까? 이건희씨와 그의 배다른 형 사이의 재산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 가족 간에도 아버님 추모식 때, 무덤에서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서로 다른 시간에 출입구를 달리 쓰고 있다는 씁쓸한 소식만이 들립니다. 무덤에 누어있는 아버지 이병철씨의 마음이 어떨까요? 돈을 많이 벌어 자식들에게 물려준 것에 대해 잘한 일이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을까요? 잠언서의 말씀에 집에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다투는 것보다 누룽지를 먹어도 마음 편한 것이 낫다.”(171)고 했습니다.

 

[부의 공공성]

 

왜 재산을 자식에게 안 물려주겠다는 것인가? 빌 게이츠의 대답은 아주 간결합니다. "아이들이 많은 돈을 가진 채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좋지 않다." 현재 그는 아내와 더불어 세계를 돌아다니며 건강, 교육, 연구 등과 관련해 불평등이 심한 낙후지역의 개선을 위해 모은 돈을 쓰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재산을 모은 이들은 더 많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 나머지 인생을 다 살지 말고 이 세상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를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고 박영숙권사님께서 시가 약 30억짜리의 건물을 교회에 기증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향린교회로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오늘 제직회에서 이 건물 현황과 운용에 대한 보고가 있을 것이고, 후에 기일을 잡아 감사예배를 이곳에서 드리고자 합니다. 당회는 이 재산을 여성들의 권익과 환경보호를 위해 평생을 일하셨던 박영숙권사님의 뜻을 이어가는 일에 사용할 것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저는 크든 작든 이렇게 유산을 사회에 돌려주는 상속운동이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남한 땅으로 번져가기를 기도합니다. 한국교회가 십일조를 비롯한 일반 헌금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서 많이 하지만, 유산 기증은 매우 빈약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정치인이나 재벌들이 재산 축척 과정에서 잘못이 드러나는 경우 사회적 압력에 견디지 못해 공익재단을 만들고 재산을 헌납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기 사람들 월급 주는 사적 이익재단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직 우리나라는 경제수치로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나눔 문화나 공익윤리 수치로 본다면 아직도 후진국 대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돈은 우리가 추구하는 선이 될 수 없습니다. 돈은 단지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인데, 그 무언가는 흔히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참 행복은 소유에서 나오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인 나눔에서 오는 것임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외국으로부터 자원을 수입할 필요가 없는 나라가 가장 행복한 나라이듯이 내면의 풍요로움에 만족하여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며 또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이상의 행복한 사람은 없다 하겠습니다.

 

공익윤리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 하겠습니다. 여러분 교회 오시다 보면 골목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가 재개발지역이 되어 상가가 철수하다보니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들어오는 골목 입구에 쓰레기가 하도 차고 넘쳐서 보다 못해 제가 직접 치운 적도 있습니다. 큰 쓰레기봉지 5개가 넘었습니다. 여러분은 보지 못하지만, 주중에는 이곳 주차장이 흡연장으로 변합니다. 빌딩 안에서 담배를 피우기 어렵다보니 근처 빌딩 사람들이 모두 이곳 주차장에 와서 담배를 피웁니다. 그런데 담배를 피웠으면 그 꽁초는 피운 사람이 책임을 져야지요. 제가 10년 동안 지나다니며 보았는데, 모두가 버릴 줄만 알았지 줍는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게다가 담배꽁초만 버리는 줄 아십니까? 음료수병, 커피 컵 등도 그냥 버리고 갑니다. 교회 들어오는 입구 오른편에 있는 작은 텃밭은 지금은 꽃을 심고 어린이부에서 토마토 등을 심어서 최근에는 줄어들었습니다만, 예전에는 그 장소가 꽁초 버리는 곳이었습니다.

 

주차장 뒷골목 쓰레기통 옆은 이들이 던져놓은 쓰레기로 항상 지저분합니다. 음식점 종업원이 치워도 치워도 계속 버리니까 화가 나서 가끔 거기 서서 망까지 보지만, 그것도 그 때 뿐입니다. 아니? 자기가 먹던 음료 컵은 자기 사무실 쓰레기통에 버리면 안되나요? 왜 주차장 구석에다 그냥 버리고 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근처 빌딩에서 일하는 직원들 그래도 다 우리나라 엘리트들 아닙니까? 인도나 네팔에 가면 너무 민도가 낮아서 자기 가게 앞에다 자기가 먹던 컵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예 창문을 열고 쓰레기를 버려서 아파트 바로 앞이 엄청난 높이의 쓰레기터가 되어 있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자기 집 안만 깨끗하면 된다는 것인데,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거기서 나오는 악취, 세균들이 어디로 갑니까? 다 자기 방안으로 자기 코로 들어오는 것 아닌가요?

 

주차장에 쓰레기통 하나 만들어 놓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는데, 문제는 그 쓰레기통에 꽁초나 음료수 컵만 집어넣으면 좋은데, 아예 다른 쓰레기까지 갖고 와서 집어 넣을까봐 못하고 있습니다. 가끔 그 구석에 보면 쓰레기봉지가 통째로 버려져 있거나, 아이들 카시트, 부서진 의자까지 버리고 갑니다. 저는 아무리 국민소득 3만불 4만불 운운해도 이거 하나 고치지 못하면 모두가 헛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몸담고 살아가는 조그마한 환경 하나도 관심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이웃을 생각하겠으며 하느님을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 사회공의를 위해 광화문에 가서 촛불을 켜는 일도 중요하지만, 평소의 작고 사소한 일에서 먼저 공공의 윤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동아시아 평화주일]

 

오늘은 향린교회가 속해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와 일본교단 동경 북지구 연합회가 정한 동아시아 평화주일입니다. 일본은 이웃 나라로 함께 공동의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 나라이지만, 과거 여러 차례 침략을 했고, 지금도 침략의 야욕을 갖고 있는 나라이기에 적국은 아니라 하더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경계 대상의 나라입니다. 최근에는 부수상이 평화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히틀러가 했던 부정한 방법을 본받자는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하여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일본 국내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이나 우리나라, 중국의 반발에는 별 반응이 없더니, 미국의 유태인들이 들고 일어나니까 그제야 공개 사과를 하고 철회를 하였습니다. 이번 815에도 세계2차대전의 주요 전범들이 묻혀 있고,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을 신의 자리에 까지 올려놓은 야스쿠니신사를 군국주의의 부활을 기도하는 아베 정권에서 또 다시 참배하리라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의 양식 있는 사람들과 평화를 사랑하는 기독인들은 함께 뜻을 모아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여 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의 오키나와는 미군 주둔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오키나와는 우리가 세계 제국들의 볼모가 되어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만큼, 2차 세계 대전 패배의 볼모가 되어 일본 본토를 대신해서 대부분의 땅을 미군기지로 내어놓고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세계의 강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는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분단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듯이 일본 본토사람들도 오키나와 사람들을 비웃고 차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함께 투쟁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10월에 사회선교센터 길목에서 오키나와 평화기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 가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한번 시간을 내어 참여보시기 바랍니다. 세계평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것입니다.

 

요즘 동아시아의 평화문제는 미군 주둔 문제뿐만이 아니라,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로 인한 환경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발표하지만, 중국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듯이 일본의 핵재앙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처음 후쿠시마의 핵폭발이 있었을 때, 과학자들은 러시아의 체르노빌 핵 재앙의 열 배를 넘는다고 했습니다. 체르노빌 핵폭발이 있었을 때, 수 천킬로 떨어져 있는 스웨덴이나 영국에서까지 우유를 비롯한 낙농식품을 갖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과 수 백킬로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데도, 위험이 없다고 정부는 말합니다. 이건 거짓입니다. 지금 일본 정부는 국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진실을 감추고 있고, 남한정부 또한 반핵운동을 막기 위해 모른 채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지금 일본 후쿠시마 지방에서 생산되는 과일들 중에는 유전자 변형이 일어나 상상할 수 없는 별 괴이한 모양의 과일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1020년이 지나면 괴이한 모습의 동물들과 인간들이 출생할 것입니다.

 

 

[밀양 투쟁과 새 인간]

지난 주 화요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기독교환경운동연대, YMCA, YWCA 들이 함께 하여 밀양 송전탑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찾아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수십만 볼트의 전력을 끌어가기 위한 거대한 송전탑 세우는 일을 막기 위해 산위에 임시 처소를 마련하고 거기서 먹고 자면서 반대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70, 80이 넘으신 할머님 할아버지들입니다. 그분들이 말합니다. ‘처음에는 내 땅을 지키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구 창조세계를 지키기 위해, 아름다운 자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공권력의 힘에 싸우다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얼마 전에는 힘에 부치자 깡패같은 용역들 앞에서 옷을 전부 벗고 알몸으로 맞서 저들을 물리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교회도 안다니고 성당도 절도 안다니지만, 보상 몇 푼 더 받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동산을 지키기 위해 그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목숨을 내놓는 투쟁을 한다는 말씀을 듣고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것도 한 달 두 달도 아니고,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9년째 투쟁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우리 사회선교부에서도 한번 방문하여 기도회를 갖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골로새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새 인간은 자기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새롭게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아침 예배에 참석한 이유도 굳이 말하자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 인간이란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 그 겉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가는, 곧 창조주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이를 지키고 펼쳐나가는 행동의 변화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 참된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머리로 암기하는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킴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실천적 지식입니다.

 

저는 우리가 밀양 현장을 가지 못하더라도 그분들과 함께 뜻을 같이 한다면 우리 또한 참된 지식을 갖는 새 인간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밀양 투쟁 현장에 새겨져 있는 실천 다짐의 글을 읽어드림으로 오늘의 저의 하늘뜻펴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1. 날이 밝을 대는 전등 대신 햇빛과 햇볕을 즐기자.

2. 전구를 LED 전구로 바꾸자

3. 새벽이나 노을이 질 때 불을 켜지 않고 기도를 드린다. 빛의 아름다움을 즐기자

4. 손수건과 자기 컵 들고 다니기 운동에 참여하자

5. 내내 켜두는 보온 밥솥과 전기 포트를 쓰지 말자.

6. 에어컨 대신 선풍기나 부채를 사용하자 꼭 필요하다면 에어컨 온도는 28도로 하자

7. 죄의식이 아닌 책임의식을 갖자

8. 밀양을 방문하여 이분들을 격려하고 자연보호운동에 동참하자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