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지향적 공동체

시편 92,1-4, 12-15; 이사 55,10-13; 1고린토 15,51-58; 루가 6,39-49

한 문 덕 목사

[창립60주년 행사들]

지난 주에 60주년 축하공연을 준비하고 또 참여하셨던 모든 분들,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60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우리 공동체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며 축하하는 자리가 됨과 동시에,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오신 외부 손님들에게도 좋은 시간이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축제의 과정을 계획한 축제위원회 구성원들과, 축제를 펼쳐나간 많은 공연팀들, 천막 설치며, 선물 준비며 음식 차리고 설거지 하기 등등 보이는 곳에서 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여러 교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이 무척 흐뭇해 하셨을 것 같습니다. 오랜 만에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크게 한바탕 웃을 수 있었던 지난 주였던 것 같습니다.

올 초 분가선교의 실행을 시작으로 우리의 60년을 되돌아 성찰하는 사업들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분가선교와 함께 오래도록 준비를 해 왔던 향린60년사 편집위원회는 그 동안, <향린 60년,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향린, 우리는 누구인가?> 그리고 <자유인의 교회> 등 세 권의 책을 만들었고, 이제 60년사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향린의 많은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여 인터넷 공간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아카이브 작업까지 하고 있습니다.

정책과 선언 위원회가 준비한 교회 갱신 및 사회 선교 실천 선언은 다음 주 공동의회의 가결을 남겨 두고 있고, 이것이 교인들의 전체 회의에서 통과되면 앞으로 향린교회가 나아갈 하나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40주년 때에 발의하고 계속 실행하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던 사회선교센터 또한 이제 조금씩 모습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60주년을 하나의 계기로 삼아 우리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이러한 일들은 참으로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헌정 목사님은 4주에 걸쳐 창립정신을 되새기는 하늘뜻펴기를 하고 계십니다. 창립정신 4가지는 길게 60여년 계속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되고 재해석되면서 우리 안에 녹아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향린의 분위기와 독특한 성격, 위치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것은 40주년을 맞이해서 스스로의 개혁과 한국교회 갱신을 기대하며 발표한 교회갱신선언의 결과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갱신선언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되어 있는데, 예배와 교회문화에 민족정서를 도입하는 것과 교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 그리고 교회가 선교 지향적 공동체로 갱신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향린교회의 독특성을 갖게 하는 핵심적 요소입니다. 5월5일과 12일 모두 외국의 신학교수들이 우리교회에 찾아오듯이 우리교회의 국악예배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목회자의 권위의식이 강하고, 비민주적 교회 운영으로 분쟁이 발생한 교회들이 정관을 만들거나 새로운 교회 운영을 해보려고 할 때면 우리 교회에 이것 저것 많이 물어봅니다. 여러분들은 별로 전화를 받으실 기회가 없겠지만 향린교회의 목회자들은 다른 목회자나 장로님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게 됩니다. 향린교회의 민주적 운영과 관련된 소통방식은 특히 인간의 해방과 구원을 외치는 종교가 오히려 인간을 억압했던 것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며 책임 있는 신앙인이 되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고, 다양한 의견들을 교환하며 때론 갈등이 있더라도 대화와 협의를 통해 교회를 운영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인을 만드는 데 무척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향린교회가 다른 교회들에 비해 조금 나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물론 여전히 부족한 부분도 많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산적한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앞의 두 가지 보다 세 번째 항목인 선교지향적 공동체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하늘뜻을 나누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앞의 두 가지는 이미 있는 교회의 문화를 바꾸거나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의 문제라면 선교 지향적 공동체라는 말은 바로 그 공동체의 정체성에 관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40주년을 맞아 선언한 교회갱신선언의 세 번째 항목은 바로 교회가 무엇인가를 묻는 뿌리를 건드리는 문제입니다.

[선교지향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교회는 선교 지향적 공동체로 갱신되어야 한다는 선언은 지난 30-40년 동안 한국교회를 지배했고 지금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교회성장신학에 일침을 가하는 선언입니다. 교회가 구원의 방주이니 교회로 오라고 전도하고 교회의 외형적 성장이 곧 하느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여기던 기존의 신학에서 하느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이 세상의 변혁을 위해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공동체는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처럼 이웃과 세계를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신학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의 교회는 무교의 영향과 미국 교회로부터 수입된 소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 버무려져 현세에서의 출세와 성공, 물질적 축복이 곧 하느님의 축복인 양 가르쳤고, 그래서 교인들은 세속적인 욕망을 채우는 이기적인 탐욕을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 시켰을 뿐 만 아니라 비윤리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결과만 좋으면 좋다는 식의 삶의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 또한 본질을 잃어버리고 외형적으로 성장하고 수적으로 부흥해야 마치 하느님의 뜻을 이룬 것인 양 여기게 되었고, 교인들의 신앙생활과 가치관, 신앙의 에너지와 열정을 순전히 교회의 성장을 위한 계기로만 사용하기에 급급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경영기법을 도입하여, 목사는 사장이 되고, 장로들은 중견 간부가 되어 회사를 운영하듯이 교회를 운영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순수한 마음과 신앙의 열정을 가지고 목회현장으로 나아가는 초년생 목회자에게 선배 목사들이 들려준다는 얘기가 “학교에서 배운 모든 신학은 잊어라”는 것이고, 목회자를 청빙하는 당회는 “어떻게 교회를 성장 시킬 것인가?”에 만을 묻는가 하면, 평신도들은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친교와 사귐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친교의 장으로서 교회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성장신학과 그것 때문에 변질되어 버린 복음의 왜곡은 교인들로 하여금 신앙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의미, 보편적 가치의 추구 등을 상실하도록 만들었으며, 교회의 예언자적이고 도덕적인 사명을 방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과 별 반 다를 것이 없는 공동체가 되어 버렸고, 어떤 면에서는 세상보다 못해 세상의 걱정거리, 조롱거리가 된 것입니다.

암흑의 시기로 불리는 서양 중세를 벗어나 근대 이후 세상의 학문과 세계관을 이룬 토대에는 세 가지 믿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것을 전통적 철학의 범주에 따라 분류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존재론 및 형이상학적으로 근대적 세계관의 기초는 유물론입니다. 물질적인 것이 진짜로 있는 것이고 나머지는 다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인식론에서는 실증주의입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확실히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으며 진리라는 것입니다. 셋째, 가치론에서는 다수가 이익을 얻는 것이 좋은 것이고 가치 있다는 공리주의입니다. 본래 이 세 가지는 인간을 억압했던 중세적 세계관에 대항하여 해방의 이론으로 등장했던 것인데, 오늘의 모습에서 보자면 이것은 오히려 천박한 자본주의 속에서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얄팍한 인간을 만들어 내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억압하는 도그마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세상에 대해 교회는 유물론을 넘어서는 초월적 지평에 대한 상상력을 지니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통해 실증주의를 넘어서며,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에 굳건히 발을 디디면서 한 마리의 양을 찾아가는 탈공리주의를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다”는 사람들이 많고, “아직도 교회 나가냐?”는 말이 일상이 되었으며, 기독교가 ‘개독교’로, 목사가 ‘먹사’로, 평신도가 ‘병신도’로 불리는 이 세상 속에서 향린교회는 꿋꿋이 살아왔고,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이루어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선교지향적 공동체라는 선언으로 터져 나왔던 것입니다.

선교 지향적 공동체로 갱신하여야 한다는 선언에 따라 우리 향린교회는 남북 동족간의 화해, 평화, 통일의 실현을 위해 선교부 내에 통일선교위원회를 설치하였고, 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의 30%를 사회선교에 할당하였으며, 교회의 건물에 치장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교회정원제를 통하여 분가선교를 실행하며, 개교회 중심주의를 벗어나 다른 교회들과 선교동역자 협약 즉 자매결연 관계를 맺어 선교사업을 전개하고자 농촌의 들녘교회와 교류하기 시작했으며, 집회 중심의 교회 구조를 ‘흩어지는 교회’ 즉 생활 중심의 교회가 되도록 목회와 선교의 구조를 바꾸었습니다. 이밖에 교회건물의 개방, 목회자의 세금 납부와 사례비 평준화 운동, 기복적이고 미신적인 부흥회 폐지 등을 실행했습니다.

그 당시 내놓은 선언들은 사회와 교계에 신선한 충격이었고, 한국의 많은 교회들은 아직도 우리가 제안한 것들을 받아 않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향린교회! 너희는 잘 하고 있느냐? 이런 물음 앞에 우리는 뼈를 깎는 마음으로 솔직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40주년부터 60주년까지는 20년이라는 시간이 벌써 흘러 버렸습니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교회의 본질, 사명, 그리고 우리의 선교과제를 되짚어 봐야 합니다.

[향린교회 현 상황 분석]

그래서 실시했던 것이 2011년 9월 25일 전교인 신앙 및 사회의식 조사입니다. 당시 주일 평균 출석 인원이 300명 가량이었는데 이 설문조사에 354명의 교우가 참여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분가를 하여 현재 여기 계신 교우들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향린교회의 현 상황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20주년과 30주년 설문조사에 이어 30년만에 한 것이라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추측해 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그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년 9월에 보고서를 냈고, 이미 많은 분들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결과는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늘뜻펴기를 하면 아마 최소한 10주는 걸릴 것입니다. 오늘 저는 간략하게 몇 가지만 짚어 보려고 합니다.

현재 향린교회는 남녀와 연령에 있어 고른 분포비율을 보이고 있기에 향린교회의 목회와 선교는 다양한 세대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 연령대가 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것은 세대 간 소통의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사회의 어려움이 우리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교인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과 문화적 환경을 가진 이들과 함께 대화하는 능력, 새로운 것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키워야 합니다. 동거 가구원 수를 보면 4인 이하가 전체의 84.9%이고 홀로 사는 이나 2인 가구도 27.7%나 되기에 삶의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역할이 향린에게도 무척이나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향린교회가 다른 교회와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지점 중에 하나는 고학력자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향린교회의 잠재적 가능성을 보여 주면서도 동시에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학벌사회의 폐해가 교회에 침투할 가능성도 많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또 어떻게 해야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지 우리 모두가 함께 합심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향린교회를 구성하는 이들은 대부분 모태신앙이거나 청소년기의 이른 나이에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들이고, 많은 교인들이 교회생활 전반에 걸쳐 만족하고 있으며, 특히 목회자의 설교가 가장 끌리는 특성으로 나왔습니다. 교회출석, 성서읽기, 기도생활, 헌금 등은 서로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으며, 향린교인들의 신앙관은 기존의 전통적 교리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이 모두는 각각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과 해석이 필요합니다만 저는 오늘 하늘뜻펴기의 주제와 관련해서만 살펴 보겠습니다.

현재 향린교회가 선교 지향적 공동체로 다시 한번 거듭나기 위해 분명하게 인식해야 하는 점 몇 가지를 말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향린교회 구성원들의 다양성입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것은 성숙한 민주의식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다양한 욕구들을 조정하여 합의하고, 한 공동체로서 선교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실행할 때 서로 대화하고 협의하는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또박또박 말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의견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는 것이며, 상대방의 의견이 자신과 다르다고 그 사람의 의견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길 때, 바로 그 순간 자신이 틀린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인지해야 합니다.

둘째, 향린교회로 찾아오는 태신자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교인의 감소추세와 더불어 교인의 수평이동 현상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향린교회는 단기적으로는 기존 교회에 실망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존교회와는 다른 차별적 교육과 선교를 하는 우리교회의 목회와 선교를 잘 이해하도록 돕는 일과 동시에 그리스도교를 알지 못하는 비기독인에게 어떻게 그리스도를 알리고 선교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인간화되어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음하는 일반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참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에 동참하도록 권면하고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스스로의 개혁과 갱신과 관련된 문제로서,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과 교인으로서의 책임성을 갖는 것입니다. 향린교인은 성서를 읽는 빈도가 상당히 낮고, 기도생활 또한 매우 저조합니다. 심지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만 주로 기도한다는 의견이 42%나 되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됩니다. 예배 외에 교회의 어떤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는 인원이 32.2%나 되고, 교회출석 후 5년이 지나면 교회활동에서의 모든 만족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며, 헌금과 사회기부의 비율 또한 5천만원을 기준으로 향린교인들을 두 소득 집단으로 나누었을 때, 소득수준이 낮은 집단의 교회 헌금과 사회기부 비율이 더 높다는 사실 등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들입니다.

이런 각도에서 목회자의 설교가 가장 끌린다는 점, 예배 만족도가 높다는 점, 이런 교인들의 대다수가 오래도록 신앙생활을 했다는 점 등을 연결해 보면, 사회선교에 헌신하고 봉사하여 일상에서 생활목회자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보다는 예배하고 설교를 듣는 것에서 그치고 만족하는 경향이 향린교회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젊은 청년들이 향린교회의 사회선교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사실은 청년들의 상황이 매우 어려운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맞물린 것이기도 하지만 향린교회의 선교방법이나 목회의 구조가 갱신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향린교회가 그리고 그 구성원들이 예수 살기를 위해 지녀야 할 강인함의 측면에서 볼 때, 그 힘이 점점 나약해 지는 것은 아닌지 총체적으로 점검할 때라고 생각해 봅니다. 자신이 고통당할 때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많이 있겠지만, 오히려 하느님이 고통당하실 때 거기로 나아가는 사람이 많아져야 향린교회는 굳건히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지향적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40주년을 맞아 예배 중심적 공동체에서 선교지향적 공동체로 그 지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 철야기도회, 수요기도회, 춘계/추계대심방, 특별기도회, 주일 1, 2, 3부 예배, 부흥회 등등 너무 많은 집회를 줄이고 세상으로 흩어지는 교회를 지향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지금은 그것이 역효과를 낸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선교 현장에 참석하는 교인의 수는 많지 않고, 게다가 교회의 출석율조차도 떨어지며, 성서공부에 참여하는 이도 10명 내외이고, 한달에 한번 하는 수요기도회도 15명 남짓만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도리어 더 많이 모이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7-80년대 한국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반복적이고 주술적인 의례를 위해서 혹은 단순히 일처리를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을 확립하고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서로 사랑을 나누고, 함께 뜻을 모아 하느님 나라를 일구기 위한 모임이 꾸준히 계속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누구나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여러 모임을 만들고 또 사라지곤 했습니다만 이제는 선교 지향적 공동체라는 큰 틀에서 조금 더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그리고 구성원들이 책임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리고 꼭 우리가 해야할 일, 이 사회는 보지 못하지만 교회는 볼 수 있고, 교회는 해낼 수 있는 일들을 찾아 긴 호흡으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제가 5․18 광주민중항쟁 33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모든 고통에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도 상황에 맞게 써야지 아무 때나 써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올해도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하지 않았고, 80년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당하고 상처를 입었던 분들의 고통은 치유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통해 국가가 국민에게 저지른 폭력과 또 친일 청산 등 과거 청산에 있어서 그나마 바람직한 모습으로 되었다고 한 것이 광주 민주화 항쟁 관련이었습니다. 과거 청산의 5가지 원칙을 보면 1. 진상규명, 2. 책임자 처벌, 3. 명예회복, 4. 배상과 보상, 5. 기념사업 등인데 여기에는 희생자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부분은 빠져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보상하고 기념사업 한다고 국가 폭력에 의한 상처, 사회적 배제로 인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80년 이후로 33년의 세월을 지내는 동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후 빨갱이, 용공 세력 등으로 매도당하며 사회적 소외를 당했기 때문에 80년 광주는 아직도 여전히 계속 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송하라고 하면서 거기에서 승소하면 배상과 보상을 해주는 작태는 한 인간의 무너진 존엄성과 깨어진 영혼을 치유하는 근본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그나마 80년 고등학생의 나이에 도청에서 시민군으로 있었고, 또 구미간첩단 사건으로 14년이나 복역을 했던 강용주 선생이 의사가 되어 작년에 광주 트라우마센터를 개소하여 그분들의 고통을 치유하고 있습니다만 바로 이런 일들이 교회에서 나서서 해야할 일입니다. 세상은 쓸모 없다 버리고, 돈이 안된다 여겨신경 쓰지 않는 그곳에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소중한 한 가지는 우리가 약자가 되었든, 강자가 되었든 가장 나약한 한 구체적인 인간의 고통에 반응하는 인간이 되라는 것입니다. 거시적인 안목도 중요하고 새 시대를 이끌어갈 이데올로기도 중요하지만 정말 이 땅에서 고통당하는 그 한 사람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친구를 위해 자기를 내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조금씩 모습을 갖추어가는 사회선교센터가 이러한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사회선교센터는 향린교회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다양하고 체계적인 교육들을 가능하게 해 주고 또 배움과 현장들을 이어주는 역할들을 감당하게 될 것이고, 또 한 교회가 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대 사회적인 일들과 여러 단체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 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일에 향린교우 전부가 참여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의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기 때문에, 조합원이 되어야 하고, 조합원이 된다면 무임승차하여 책임을 방기하고 구경꾼의 모습으로 소문만 무성하고 군더더기 말의 잔치만 벌어지는 일은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6월 2일 창립총회가 있는데 우리 교우들의 모두 거기에 참석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함께 읽은 세 본문은 모두 튼튼한 반석위에 영원토록 지속되어야 할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 말씀이 성취되기까지 계속 들려질 것이며, 우리들의 썩어질 몸들은 새롭게 변화되어 썩지 않을 몸이 될 것이며, 굳건하게 주초를 쌓아 반석 위에 지은 집은 홍수가 나서 큰 물이 닥쳐와도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 개인은 태어나서 죽고 스러져 가겠지만 살아있는 동안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는 우리들의 노력을 통해 향린교회는 굳건히 서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을 위한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나섭시다. 지지 난 주에 김창희 장로님의 하늘뜻펴기에서도 말씀하셨지만 몇 몇의 지도력 있는 평신도만 나설 일이 아닙니다. 또 목사가 다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함께 나설 때입니다. 그렇게 모두 함께 나서서 우리 공동체가 하느님의 선교를 이루어 나갈 때 우리 자신도 자유의 기쁨과 하느님이 내리시는 무한한 은총의 감격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