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정신(2) 생활목회자(평신도)교회

97:1, 9-12; 16:16-34; 22:12-14, 16-17,20-21; 17:20-26

 

김창희장로(목회운영위원회 위원장)

 

[성경은 잡놈들의 이야기]

성경은 어찌 보면 ‘잡놈’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빌립보 성에서 귀신 들려 점치던 여종이 그렇고, 그 여종을 앞장 세워 돈벌이 하던 주인들이 그런 사람이며,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고 매질한 치안관의 부하 역시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갇혔던 감옥의 간수도 하급관리였을 테니 높은 지체의 사람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지위와 계급,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첫 성, 빌립보라는 도시를 움직이는 정치·경제·문화 또는 행정의 중심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매일 길거리에서 만나고 보는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얘깁니다.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더 대왕의 고향이니 꽤 번성한 곳이었을 겁니다. 그 큰 도시를 움직이는 거대한 체계 속에서 그저 자기 몸 하나 건사 잘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작디작은 사람들이었으며, 그러다가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사연으로 감옥이라는 막장에 처한 죄수들까지 본문에는 등장합니다.

그렇게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와 행정의 체계 속에서 가장 작은 사람 ‘잡놈’들이 가는 가장 마지막 곳 ‘감옥’에 우리의 바울과 실라가 갑니다. 저 같으면 지진으로 감옥 문이 열렸을 때 뛰쳐나갔을 것 같은데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이 “우리가 다 여기 있소”라고 말한 것으로 봐서 죄수들이 대부분 그대로 감옥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 감동한 죄수가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씻기고 대접하고 말씀 듣고 세례까지 받았지요.

저는 지진이 일어난 뒤의 감옥 상황, 그리고 바울과 실라가 방문하게 된 간수의 집이 바로 ‘교회’이자 ‘작은 하늘나라’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두 곳은 모두 가장 낮은 곳인 동시에 감동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하는 감동’, 그것이 오늘 사도행전 본문이 전하는 요체이자 오늘의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겁니다.

오래 전 일본의 아사히신문에 ‘무릎 높이에서 본 동경’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물이 있었습니다. 무릎 높이에서 본 동경 시내의 풍경 사진을 한 장씩 싣고 거기에 간단한 사진설명을 붙이는 기사였습니다. 어떻게 무릎 높이에서 동경을 봅니까? 그건 다름 아니라 우리로 치면 명동 같은 번화가에서 매일 쭈그리고 앉아 구두 닦는 사람의 시선으로 동경을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구두닦이는 무릎 높이의 시선으로 거리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낮은자입니다. 그 입장에서 보는 세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세상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위치에서도 한번 세상을 보라, 그러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아니, 그렇게 보는 세상이 진짜 세상일 수도 있다’는 뜻이 그 아사히신문의 기사에는 숨어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바울과 실라도, 의도했든 아니든, 그런 위치에 처했습니다. 그랬을 뿐 아니라 거기서 낮은자들을 배려한 겁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 두 사도가 지진이 났음에도 감옥을 뛰쳐나가지 않은 것은 아마도 간수를 배려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빌립보 성에서 이방인인 입장에서 혼란 중에 감옥을 뛰쳐나가 다른 성으로 도망쳤다면 잡기 힘들었을 테지만, 첫째, 감옥에 갇히다 보니 그곳에 있는 낮은자들의 입장이 바울과 실라의 눈에 들어왔고, 둘째, 그들의 입장을 이해했기 때문에 혹시 자기들 때문에 곤란에 처할 수도 있는 간수를 배려해서 감옥에 그대로 머물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해석이 맞다면, 그런 작은 배려가 큰 감동을 낳았고, 그 감동이 하늘나라를 낳았습니다. 그런 배려 속에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있었던 겁니다.

[자유인의 교회]

다음 주 창립기념주일을 앞두고 60년사 편집위원회에서 만들고 있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본격적인 60년사는 여름이나 가을쯤에 발간할 예정이고, 우리 교회가 움직이는 방식을 좀 객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자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외부의 요청이 많아서 그런 책을 한 권 준비하고 있는데, 그 제목을 <자유인의 교회>라고 붙였습니다. (마음에 드시나요?) 이건 60년사위원회가 몇 년 전에 펴낸 증언록이나 센서스보고서와 같이 그저 우리끼리 나눠 갖는 비매품이 아니고 제대로 책의 꼴을 갖춰서 정식으로 출판하고 대중을 상대로 판매하는 책입니다. 김종수 집사님께서 고맙게도 출판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지금 마지막 작업을 하고 있는데 창립기념일인 다음 주일까지 그 책이 나오느냐 아니냐는 김종수 집사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공개적으로 잘 도와주십사고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해주실 거지요?)

그 책에는 우리 교회의 내부 필자가 10여 분, 외부 전문가들이 서너 분 필자로 참여해주셨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 글들을 읽고 편집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60년은 그저 우리가 만들어온 게 아니고 하느님의 동행 속에 이뤄진 것이구나 하는 겁니다. 그 중에서 안병무 선생의 평신도교회론을 새롭게 해석하는 김진호 목사의 글이 오늘의 본문과 관련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창립자이기도 한 안 선생이 처음에 생각했던 평신도교회라는 것은 목사의 지도력을 평신도가 대신하는, 다시 말해 평신도의 지도력(leadership)이 중요한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 선생의 민중신학이 절정에 이르던 1985년 전후해서는 그 평신도교회라는 것이 평신도 중에 어떤 지도력을 갖춘, 다시 말해 목사를 대신하는 몇몇 사람(안 선생 자신이 그런 분 중의 한 분이었지요)에 의해 이끌어지는 교회가 아니라 그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눔의 주체가 되는 평등공동체라는 개념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요약하자면 ‘평신도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는 평신도교회에서 ‘모든 평신도가 주체가 되는’ 평신도교회로 생각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달리 얘기하면 이렇게 됩니다. 그 전에는 신학자나 지식인들인 평신도 지도자가 대중을 이끌고 가는 평신도교회의 모델(초기 향린교회가 그런 것이었지요)이었던 것에 반해, 1980년대, 특히 1985년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그런 계몽적이고 예언자적인 지식인의 역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본 겁니다. 그것은 대중이라고 하든 민중이라고 하든 ‘지식인이 아닌 존재’들이 지식인들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각성된다는 도식적인 생각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 혹은 민중이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 시기에 안 선생이 쓴 ‘그리스도교와 민중언어’과 같은 중요한 논문들이 그런 내용을 분석하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김진호 목사는 새로운 평신도교회를 말하는 안 선생의 뜻을 두 가지로 나눠서 이렇게 요약합니다. 첫째, ‘교회 밖’에서 보자면 교회가 이웃, 특히 가난한 자, 실권을 박탈당한 자, 여러 측면에서 수난당하는 자와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고, 둘째, ‘교회 안’에서도 공동체 지도자들(그게 목사든 평신도든)과 민중인 교인들 간의 일치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 내적인 평등공동체 지향은 교회 내에서 누구도 이야기를 독과점하지 않도록 하는 것,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公論場의 형성에 관심을 기울일 것, 누구나 설교자가 되고 예전의 집전자가 되는 것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평신도교회라는 개념은 그저 목회자가 없는, 그래서 평신도가 그 지도자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초기 향린교회의 이념에서 상당히 달라집니다. 목회자가 있든 없든 교회 안팎으로 평신도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서, ‘교회 안’으로는 모든 논의와 예전의 주역이 되며, ‘교회 밖’으로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낮은 자들과 나누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 교회의 지향은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목회운영회가 구성되어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논의에 참여하며, 이렇게 평신도 설교도 하고, 또 공동축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 밖에서 고난당하는 이들의 현장에 함께 하는 일은, 모든 교우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수의 교우들이 일상사처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조헌정 목사님께서 취임 후에 목회자의 권리를 상당부분, 아니 거의 대부분 내려놓으신 것이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저희가 정관을 제정하고 목운위를 운영하며 평신도설교를 하게 된 것이 모두 조 목사님 취임 이후인 최근 10년 안에 이뤄진 일들입니다.

우리가 익숙한 것들은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일상사처럼 하고 있는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안 선생의 지적에 비춰볼 때, 우리 향린교회는 초기의 평신도교회 모습에서 상당히 달라진, 그리고 상당히 의미있게 진전된 평신도교회의 모습으로 와 있는 겁니다. 이제 우리는 몇몇 지도자가 아니라 교우 모두가 주인이고 주역이고 주인공인 상황에 와 있다는 얘기입니다.

[향린의 비밀-다양성 안의 일치]

향린교회가 초기나 지금이나 평신도교회이기는 하되 그 모습이 초기와 많이 달라졌다는 이런 해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생각하기에 따라, 우리가 평등지향적 공동체로 간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시대의 흐름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뭔가 가르침을 받고 일사불란하게 가지 못한다는 점에 내심 불만스러워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평등이란 원래 그렇게 조금 불편한 겁니다. 모두가 주인이고 모두가 평등하게 자기 소리를 낸다는 게 원래 조금 시끄러운 것이니까요. 민주주의가 조금 불편한 것과 비슷한 겁니다. 민주주의란 본래 잡놈들의 제도이니까요. 향린60년사 편집위원회에서는 향린교회가 움직이는 이런 모습을 ‘향린 민주주의’라고 이름 붙여봤습니다. 잡놈들이나 하는 민주주의를 향린교회라는 거룩한 공동체에 가져다 붙이는 게 불편하십니까?

저는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속물의 성격을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괜히 과시하고 싶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선 화를 못 참아 사태를 그르치기도 하고,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자면 가끔은 야동을 보고 싶기도 하고(‘야동’이 뭔지 모르는 분은 자제분들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명분이나 의리보다는 월급 더 주는 회사가 낫다고 생각해서 옮기기도 하고... 그런 것이지요. 여러분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그렇다는 얘깁니다. 우리가 본래 거룩한 모습들만으로 이뤄진 완전한 존재들이라면 어쩌면 교회가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속물이나 잡놈이나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런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서 오케스트라를 형성하려고 하니 잡음도 나고, 이른바 삑사리도 나고, 경우에 따라선 큰 소리도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위원장을 맞고 있는 목회운영위원회의 회의가 대개 그렇습니다. 입장들이 부딪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가 부족한 존재라는 걸 인정한다면 남이 내는 소음이 그리 거슬리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본문 가운데 요한복음의 말씀을 다시 봅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예수님은 간구하셨습니다. 문맥을 보면, 여기서 ‘이 사람들’은 제자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이미 하나였다면 이렇게 기도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제자들이 워낙 제각각이고 생각들의 편차도 컸다는 점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조금 과장하자면 천방지축인 제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겁니다. 하물며 예수를 직접 뵌 제자들도 그랬는데 지금 우리가 하늘말씀에 대한 생각, 선교에 대한 생각, 하느님나라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고 해서 그게 뭐가 이상합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서로 다르기 때문에, 예수께서 기도하신 것처럼,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더욱 절실하기도 합니다. 절실할 뿐만 아니라, 다른 것이 분명한데, 다시 말해 하나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되는 ‘기적’을 이뤄달라는 바로 그 기도에 하늘나라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논리에 의하면, 같은 것은 같은 것이고, 다른 것은 다른 것입니다. 다른 게 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다른 게 같아진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아마 예수께서 돌아가신 뒤 바울과 실라가 전도여행 중에 갇혔던 빌립보 감옥과 같이, 본래는 서로 생각과 입장이 달랐지만 배려에 의해 일치를 이룬 곳, 나아가 식구들 모두가 생각지도 못했던 구원에 이른 간수의 집, 그런 곳들이 바로 그런 일치의 기적이 일어난 하늘나라가 아닌가요?

향린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교회 이 구석 저 구석에 제각기 모여서 와글와글 하는데, 즉 분명히 하나가 아닌데, 그렇지만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성경 말씀을 오늘 모여서 함께 읽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형식적으로 기도한 것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서로 다르지만, 다시 말해서 모두가 평등하게 발언권을 행사하고 서로 다른 소리를 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이해와 배려를 통해 하나가 되고자 하는 노력, 바로 그 노력에 하늘나라의 비밀과 마찬가지로 평신도교회로서의 향린의 내일의 비밀도 숨어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하느님이 역사하셔서 기적을 이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헌정목사

 

[언어 선택의 중요성]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는데 이는 언어는 단순히 소통의 도구로만 그 역할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성 곧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잘 알려진 시가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분명히 사물이 먼저 있고 언어가 후에 생겼습니다. 그러나 꽃의 이름을 불렀을 때, 비로소 꽃은 나에게 하나의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선 것입니다. 꽃의 이름을 불렀을 때, 꽃을 보면서 아 정말 아름답구나!’ 하는 말이 나올 때에 비로소 꽃과 인간 사이에 관계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아담이 새와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또한 인간과 동물들이 같은 흙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이름을 지어 부름으로 이들과 서로 돕고 보살피는 상생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다지 눈길을 보내지 않는 하늘뜻 제목을 정하는데 있어 저는 매번 고민합니다. 왜냐하면 강연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나 사건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그 전이해가 결정이 되고 나아갈 방향이 설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향린 60주년을 기념하면서 우리는 그 제목을 , 이라 정했습니다. ‘()’은 기존의 것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이고 ()’은 하늘 부르심을 좇아 그리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60주년을 맞이하며 지금의 안주된 자리를 떠나 열린 미래에로 나아가겠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몇 년 전에도 말씀드린바 있지만, ‘평신도-목회자라는 일반적인 명칭을 생활목회자교회목회자로 부르자는 제안을 드린바 있습니다만, 제가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평신도라는 단어는 필연적으로 이의 반대어인 특별 신도를 설정하게 됨으로 목사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평신도들과는 달리 뭔가 특별하다고 하는 반성서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평신도, 영어로 layperson이라는 단어는 루터와 칼뱅을 비롯한 교회의 개혁 이전의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사제들이 구원의 중재자가 된다는 중세의 교부신학을 대변하는 단어입니다. 게다가 우리말에 있어 평신도라는 말은 일반 신도라는 말의 의미를 넘어 평범한 신도라는 이미지까지 포함되어 있다 보니, 신도들은 평신도라는 단어를 말하면서 자신들은 그저 평범하게 적당히 믿으면 된다. 목사 당신이나 우리를 대신해서 열심히 잘 믿어라.’는 매우 잘못된 생각을 무의식중에 갖게 됩니다.

 

창세기 1장에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형상을 띤 곧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서의 평등한 존재임을 선언하였고, 베드로전서 29절에서는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제들임을 선포하였습니다. 개신교 신학은 바로 이 만인평등, 만인사제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만인사제설이란 목사와 신도의 구별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또 다른 중재자가 필요 없다는 신앙의 주체성을 선언하는 말입니다.

 

[향린의 평신도교회]

 

60년 전 당시 한국교회 안에서는 매우 생소할뿐더러 금시기되었던 평신도교회를 내걸고 이를 실천해온 향린교회는 이제는 여러 교회들이 평신도의 주체성 확립을 위해 노력하고 특히 성장을 목표로 하는 대형교회들이 평신도목회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오늘의 현실에 있어서 이제는 이런 교회들과 차이를 드러내는 보다 진일보한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오래 전부터 여러 교회들이 평신도를 깨운다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오고 있습니다. 평신도를 깨어 목회의 주체성을 갖도록 한다는 점에서 적극 동의하지만, 평신도를 깨워 교회 밖 곧 저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안에서 정의평화생명의 하느님 나라 가치를 실현하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교회 성장을 위한 목사의 조력자가 되도록 하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교회 성장을 위한 평신도목회혹은 평신도신학에서 말하는 평신도와 차별을 한다는 점에서 생활목회자로 부르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60년 전 향린교회는 4명의 주요 창립교우들이 번갈아가며 하늘뜻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정신을 이어 지난주부터 계속하여 4번의 하늘뜻펴기를 4개의 창립정신을 중심으로 교우들과 제가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중의 한분이신 홍창의장로께서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만, 이들은 당시 일반적인 목사들보다도 더 높은 성서 지식과 깊은 신학적 이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중 안병무선생은 목사를 가르치는 교수였고, 민중신학이라는 한국적 해방신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대 신학자였습니다. 이미 향린교회 40년사의 주요 집필자이면서 현재 60년사를 집필하고 있는 이규성집사는 당시의 평신도교회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평신도 교회를 선택한 것은 목사가 없는이라는 소극적인 개념이 강했다. 즉 이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목사들의 역할에 대해 실망한 바가 컸기 때문이었다. ‘평신도교회의 선택이 비록 스스로 목회 역량을 가졌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었을지라도 이후의 과정에서 평신도교회가 겪어야 하는 혹독한 경험을 거치면서 그것이 가진 적극적인 의미를 체득해 나갔다. 전문 목회자가 아니면서 설교를 준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100명 이상의 교인들이 생기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교회 운영상의 문제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안병무가 독일 유학을 떠나고 교회의 거처도 남산동을 떠나 남창동에 일반적인 교회 건물을 지어 이사한 후에는 평신도교회로서의 하루하루가 악전고투의 나날이었다. 10년만인 1966년 안병무가 귀국하여 설교를 전담하였지만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성례전과 교인들의 삶에 필요한 목회적 돌봄은 빈약하거나 공백으로 남겨져야 했다. 결국 평신도교회 출범 21년 만에 담임목사 청빙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평신도교회를 포기했다는 점보다는 21년이나 평신도교회를 유지했다는 점에 더 큰 방점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힘들었지만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하나의 교회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어떠한 목회적 역량이 필요한지를 확인하게 되었고 이는 현재의 향린교회가 추구하는 평신도목회에 큰 자양분이 되고 있다.

 

[수평적이고 역동적인 새 목회상]

 

저는 민중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생활목회자 교회가 지향하는 장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향린교회 부임 전 이민교회에서 작게나마 실험적으로 적용해 본 생활목회자 목회 원리를 향린교회에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런 지향점을 바라보면서 여러분과 함께 여러 일들을 이루어갈 수 있었습니다. 교회정관을 만들면서 목회운영위원회를 보다 강화시킴으로 보다 많은 교인들이 교회의 운영에 참여하고 토론하고 결정함으로서 교회의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는 일, 목사의 전유물로 알려진 하늘뜻펴기만이 아닌 축도 예전을 공동 축도 예전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런 개혁들은 향린교회 본래의 출발이 그러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창립교우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의 향린교회의 모습에 대해 목회운영위원장으로 수고하고 계시는 생활목회자 김창희장로께서 잘 설명해 주셨는데, 교회목회자로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건 교우들이 생활목회자로서 교회 운영에 참여하고 동참하는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함으로서 가시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신앙훈련입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사람됨에 있듯이 신앙 또한 사람됨에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룬다는 것은 사람됨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고 도구일 따름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목회란 무엇인가? 한자말 그대로 풀이한다면 말이나 소를 놓아기르는 칠 목()자와 이를 우리 안으로 모은다고 모을 회()입니다. 목회의 주체로서 목자 그리고 그 대상을 양으로 구분하는 전통적인 개념은 이제는 수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그리고 우리 모두를 양으로 보는 것은 맞겠지만, 목사를 목자로 보고 그 나머지는 모두 목회의 대상이 된다고 하는 수직적인 주종 목회 개념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목사를 영어로 pastor라 부르는데 이 단어도 바꾸어야 한다고 봅니다.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 교회는 복음서에서 말하는 목자와 양의 관계는 목양의 주체와 객체로 구별되는 이중 개념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목자가 되기도 하고 양이 되기도 하는 수평적인 역동 개념으로 새롭게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필립비 교회의 창립 교우들]

 

이런 관점에서 오늘의 사도행전 말씀을 더 깊이 들여다보십시다. 이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요지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점을 잘 쳐 주인의 돈벌이로 전락한 여종이 고침을 받았다는 곧 운명에 자신을 내어 맡김으로 자유의 책임성을 져버리는 점치는 일은 악령의 짓임을 고발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바울과 실라가 전하는 복음이 당시의 로마 사회를 소란스럽게 하였다는 곧 예수 복음이 갖고 있는 정치적인 민중 저항성을 말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치안관들에 의해 매질을 당하고 옥에 갇혀 있던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느님을 찬미하자 감옥 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풀리는 기적 현상이 일어났다는 곧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기도하며 하느님을 신뢰할 때 기적은 일어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것들이 모두 오늘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본문을 이야기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전체를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을 통해 저자 루가는 바울과 실라가 필립비도시에서 겪은 일들을 전하는 데만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런 사건들을 통해 필립비 교회의 첫 번째 교인들이 누구였는지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첫 번째 신도는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나옵니다. 여성 유대인으로 옷감을 물들이는 일을 하고 있었던 리디아와 그 가족 그리고 그와 함께 일을 하는 여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얘기 마지막에 등장하는 세례를 받은 간수와 그 가족들입니다. 그리고 또 한명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나옵니다. 누구일까요? 바울과 실라를 향해 이분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종으로서 지금 여러분에게 구원받는 길을 선포하고 있소.‘라고 소리를 쳤던 여종입니다. 물론 여종이 바울과 실라를 좇았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우리는 곧잘 악령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를 좇았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과 실라에 의해 시작한 필립비 교회의 처음 예배가 어떤 모습이었을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당대의 한계를 넘어 경계를 깨는 일이었습니다. 우선 리디아와 간수라는 서로를 모르는 여성과 남성이 한 공간에 모였습니다. 당시 하느님의 말씀으로 말해지는 율법의 금지를 깨고 남녀가 함께 했으며 더 나아가 유대인과 로마인이 한 자리에 한 구원의 가족으로 함께 했습니다. 더구나 간수의 직임을 갖고 있었던 로마의 관원과 한때 악령에 붙잡혀 출신조차 불분명한 여성 노예가 로마 사회의 금기를 깨고 함께 했습니다.

 

조선의 초대교회가 백정 출신과 왕족인 양반이 함께 교회의 장로가 되어 섬기는 역사가 있었고, 주인이 타는 말을 끌었던 종과 주인이 같은 교회를 다녔을 뿐더러, 주인에 앞서 종이 장로로 임직을 받았고, 후에 주인의 도움을 받아 그는 신학교를 나와 담임목사가 되었고, 주인은 그 교회의 장로로 한 교회를 섬겼듯이 필립비교회 또한 매우 다양한 계급의 출신들이 하나 되어 주님을 섬긴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그 유명한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새 인간은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스인과 유다인, 할례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 타국인, 야만인, 노예, 자유인 따위의 구별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전부로서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십니다.”

 

생활목회자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는 세상 안에서 자행되는 차별들을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는 더 이상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는 일이 다를 뿐, 그 일에 있어 귀천의 차이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김창희장로님과 같이 하늘뜻을 펼치든, 어린이학교 교사로 봉사하든, 식당 봉사를 하든, 화장실 청소를 하든 그것은 모두 하느님 안에서 하나의 일인 것입니다.

 

[예수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오늘 요한복음 본문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유언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버이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나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어버이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이 사람들 안에 있고 어버이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이 사람들을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는 우리가 완전히 하나가 되기를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시는 것인가요? 앞서 요한복음은 하느님 어버이와 예수가 한분임을 강조하고 동시에 예수는 우리가 종이 아니라 친구이며 하느님의 자녀임을 강조하고 동시에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예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하여 왔습니다. 왜 예수께서는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받아들이기 힘든 이런 도발적인 말씀들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건 이제는 더 이상 하느님을 찾아 제물을 들고 사제들이 있는 성전에 갈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성전의 벽을 허물어라 그리하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선포하신 예수께서는 이미 하느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음을 깨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냥 하느님과 하나 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하나가 되었듯이 우리가 하느님과 예수와 하나가 되는 일이 우리가 원하고 그렇게 믿는다고 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을 행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일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어버이를 알게 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것은 어버이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바로 생활목회자이고 여러분의 몸이 바로 세상 안의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몸은 개인의 몸이 아닌 예수 안에서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몸입니다. 이 공동체에는 강남향린, 들꽃향린, 오늘 우리가 집들이를 나가는 섬돌향린의 향린공동체 뿐만이 아니라, 민중들이 아파하는 거리의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교회들이 포함되어 있고,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모든 교회들을 포함하는 에큐메니칼의 몸입니다.

 

우리 모두는 떨어져 있지만, 거룩한 영에 의해 시공을 넘어 하나의 생명체로, 죽음과 부활의 공동 운명체임을 고백하면서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