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축제이어라

62:1-5; 71:1-6; 고전 12:4-11; 2:1-11

 

새해가 되면 가장 많이 듣는 덕담이 복 많이 받으십시오입니다. 5년 전 우리 모두를 부자 만들어주겠다고 호언하던 이명박정권이 시작하면서 갑작스레 부자되세요라는 유행어가 등장했었습니다. 그러더니 작년 봄부터 정권 실세들의 뇌물사건이 줄줄이 터졌습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잘 알려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왕 차관으로 불리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감옥을 가더니 최근에는 만사형통,’ ‘영일대군으로 불리던 막강 친형 이상득 의원과 실세 중의 실세였던 정두언의원마저 뇌물 수뢰로 감옥에 갇히자 이명박정권이 말하는 부자되는 길은 곧 뇌물을 먹는 일이고 이는 곧 쇠고랑 차는 일이라는 등가 공식이 성립되면서 부자되세요라는 새해 덕담은 시대의 수치를 상징하는 한때의 유행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와 부패(腐敗)의 상관 관계]

 

돌이켜보면 참으로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일입니다만, 여전히 우리 머리속에는 복이라고 하면 재물 복이 첫 번째로 떠오르게 되는 것을 보면 이것이 인간 육체성의 한계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욕망의 바다가 심어준 사회성에 근거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됨의 근본 어리석음을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다람쥐 채바퀴 도는 1차원의 신앙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말들을 주제별로 묶으면 재물이 첫 번째인 것을 보면 시대의 구분없이 이는 인간이 풀어야 할 난제 중의 난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지난 한 주간 내내 신문 1면에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저지른 파렴치한 일- 대부분이 돈에 관련한 기사들이 연일 폭로되었습니다. 저는 판사직을 그렇게 오랫동안 해오면서 그간 국회 청문회를 수없이 보아왔을텐데, 자기 잘못이나 죄가 감추어지리라고 생각하는 그런 어리석은 인간이었나? 하고 그의 지성을 의심하였습니다만, 엊그제 갑작스레 깨달은 것은 ! 그는 그의 잘못이 감춰지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 친구들이나 사회 지도자들이 저지르는 일에 비하면 자기 잘못 정도는 헌법재판소장이 되는 일에 그리 큰 걸림돌이 될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전연 부끄럼 없이 이리저리 변명하고 불리하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을 하여왔던 것입니다. 아마 그가 판사로 있으면서 검사가 증거를 들이댐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계속 답변하면 이놈은 상습 악질이구나.’ 하고 중형을 때렸을 것입니다.

 

저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단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법을 다루는 법관 사회가 얼마나 썩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명박대통령은 -이제는 정말 대통령이라고 부르기조차 부끄럽습니다만- 분명 담당 직원들이 사전 조사를 통해 이런저런 비리들이 있다고 보고했을텐데도 추천을 하였던 것은 자기 기준으로 볼 때, 이 정도면 그래도 깨끗한 사람이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고, 그보다 그를 추천한 더 중요한 이유는 이제 자신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그간에 저지른 비행들에 대해 법적 추궁을 당할 것이 분명한대, 그 때를 위해 미리 방패마기로, 구원투수로 그를 헌법재판소장으로 앉히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엊그제는 강원도 골프장 개발을 반대하는 기도회에 하늘뜻펴기 부탁을 받고 삼청동 인수위 앞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5년 전 이명박 인수위원회에서 통일부를 없애고 외교부 산하로 두겠다는 계획에 반대하여 그 자리에 선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 5년 전에 비해 한 다섯 배쯤이나 많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갖가지 피켓을 들고 항의 시위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들이었습니다. 지난 5년동안 이명박정권 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권력횡포와 부정부패로 인한 억울한 일을 겪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고발하러온 한 시민은 아예 이상득을 사형시키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의 중심에는 재물이 있고, 이 재물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은 이것이 복의 핵심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성서에도 복된 사람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이 복과 재물의 연결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이런 일들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은 넓게 보는 일]

 

그런데 한자어 복()의 기원을 설명하는 설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넓게 보는() 것이라는 해설입니다. 이는 반대어인 화()를 보면 더욱 분명해지는데, 화는 허물()을 본다는() 뜻입니다. 곧 복이란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세상과 이웃을 넓게 보는 일이요, 화란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과 이웃을 좁게 보는 일로 대비시킨 이 해석은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들이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이를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는 사상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습니다.

 

요즘은 복이라는 말보다는 행복(幸福)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합니다. 행복이라는 제목이나 이를 주제로 다루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행복지상주의 시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박근혜대통령 당선자도 행복국민시대를 열어가겠다는 말을 핵심 정치구호로 썼습니다. 그런데 이명박씨가 말하는 복과 박근혜씨가 말하는 행복은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문법으로 말한다면 복은 받는다라고 말하지만 행복은 받는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복은 물질적인 것이 반면 행복은 정신적 영역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을 쓰는 것을 보면 이 둘의 구분은 무의미해 보입니다. 국무총리후보로 75세의 김용준인수위원장을 추천했는데, 이분의 두 아들이 7,8세 때인 70년대에 이미 수 십 억원의 부동산을 취득하였는데, 증여세는 제대로 내었는지, 게다가 둘 다 군 징집 면제를 받았다는 사실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분의 아버님이 일제시대에 총포공장을 운영한 큰 부자 집안이었다고 하는데, 그때에 무기를 만들었으면 이게 누구를 죽이는 일에 쓰였을까를 생각해보면 그가 이룬 부란 곧 의인의 피 값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후보자가 이분을 추천하는 배경에는 자기 아버지의 배경과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 보이고 또 이분은 부자에 나이도 많으니 뇌물 사건은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확신 때문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쓰레기 사회]

 

우리네 기준으로 보면 문제투성이인 김용준씨나 이동흡씨 같은 사람들이 추천을 받는 이유는 이분들이 현 정치지도자들 가운데는 그래도 깨끗한 측에 속하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그래 제 마음은 씁쓸하다 못해 절망적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서민의 아픔을 어찌 알겠는가? 장발장이 어린 조카딸의 배고픔 때문에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4년 감옥을 살아야 하는 부조리의 현실을 어찌 알겠는가? 자기 아버지가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자기 아들에게 20억짜리 아파트를 선물로 줄 당시, 풀빵 하나 사먹을 수 없어 각혈을 하며 일을 해야 했던 평화시장의 열서너 살의 여공 시다들의 슬픈 현실을 그 어찌 알겠습니까? 자신의 발탁 이유에 대해 스스로 법과 질서를 잘 지켰기 때문이다.’라고 답을 했는데, 7,8세의 자기 아들들이 부자의 반열에 오를 그때, 청년 전태일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까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친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약자의 인권 보호를 생명으로 하는 법관으로서의 양심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한주 전, 한국교회협의회 김영주총무와 WCC 준비위원장 김삼환목사 그리고 한기총 회장 등 직책상 현재의 남한 기독교를 대표하는 목사 4명이 세계교회협의회 10차 총회 성공적 개최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지금까지의 교회협의회의 활동과 신학적 입장을 송두리째 뒤집고, WCC 신학 자체를 무시하는 선언이었습니다. 이 선언이 갖는 법적 규제는 하나도 없지만, 민주적 절차도 깡그리 무시한 채, 한 두 명의 사람들에 의해 이런 일들이 자행되는 일을 보면서 참으로 암담하기 짝이 없었고, 이는 NCCK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를 규탄하는 회의석상에서 정교회 대주교께서는 이를 쓰레기문서라고 폄하했지만, 저의 귀에는 야 이 쓰레기 같은 인간들아! 야 이 쓰레기 같은 교회들아! 이 쓰레기 같은 사회야!’로 들렸습니다.

 

[/포도주 이야기의 본 뜻]

 

요한복음 2장의 물로 포도주로 만든 기적 이야기는 논란의 소재도 많고 참으로 독특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이 기적 이야기는 복음서에서 유일한 이야기입니다만, 정말 이상한 것은 요한은 이 이야기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1장에서 예수님이야 말로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는 신학적으로 말하면 로고스선재설이라는 매우 웅장한 어조로 말문을 연 다음, 이 로고스의 하느님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하셨다고 하는 거룩한 화육을 선포하고, 이어 세례 요한의 입을 빌려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는 인류속죄론을 설파하고 나서, 인간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 놓으신 신-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이 겨우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일인가? 이게 도대체 로고스 우주선재론과 신화육과 십자가 대속과는 무슨 관계가 있기래, 이 얘기부터 써내려간 것일까?

 

아니 하고 많은 기적 중에 하필이면 믿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게 하는 술 얘기부터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술도 조금 만든게 아니잖아요. 엄청나게 큰 여섯 개의 독에 그것도 물을 대강 부은 것도 아니고, 찰랑찰랑 넘치듯이 채워 엄청난 양의 포도주를 만들어서, 그것도 이미 결혼식 잔치 집에서 넉넉하게 준비한 포도주를 다 먹어치울만큼 취할대로 취한 이 하객들이 아예 인사불성이 될 만큼의 포도주를 만들어 주는 이야기가 뭐 그리 중요하였던 것인가? ‘예수님도 술은 취하도록 마시게 하셨으니까 염려 말고 마셔.’라는 성서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일까?

 

하여간 저도 포도주를 좋아합니다만, 이 물로 포도주 만드는 얘기가 있어 시험에 드는 교인도 있지만, 이를 빙자하여 마음껏 마시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세계 교회에서 술 먹고 담배 피는 일을 구원에 관련시키는 교회도 남한교회가 유일하지만, 또 반대로 그렇다고 해서 술 담배의 규제가 너무 약해 술은 어딜 가나 마음대로 먹을 수가 있고, 길이나 식당에서 마음대로 담배 피고 달리는 차장 밖으로 담배꽁초 쉽게 버리는 나라도 그리 흔치 않습니다. 제가 아는 한 술과 담배에 제일 관대한 나라가 남한입니다. 이건 북쪽도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통일이 되면 서로 다른 이념으로 문제가 심각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도 여기에 동의합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둘 다 술을 너무나도 잘 먹으니 한 자리에 앉아 형님 아우 한번 부르고 어깨동무하고 노래 한번 부르면 그놈의 이념의 벽은 쉽게 허물어질 것으로 봅니다.

 

이 포도주 이야기는 단지 술 얘기로 특이한 것뿐만 아니라, 가나라는 지명 또한 요한복음에서만 나오는 지명입니다. 4장에서 왕의 신하를 고쳐주는 두 번째 기적 이야기 또한 가나입니다. 가나는 나사렛에서 북쪽으로 15킬로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요한에게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마을이었던 것 같은데, 현재로는 밝혀진 게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어머니가 오늘 이야기에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데,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어머니의 이름 마리아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게 또 특이합니다. 또 다른 여인 마리아, 어떤 신학자는 이 마리아가 바로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 여인과 혼동을 일으키지 않기 위함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에도 신학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적(miracle)이 아닌 표식(sign)]

 

그리고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우리가 분명하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요한은 다른 세 복음서의 저자와는 달리 제가 오늘 기적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만, 요한은 기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대신 semeion() 영어로는 sign 우리말로 한다면 표식, 증거 혹은 간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달 이야기가 아닌 손가락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표식(간판) 이야기라고 말해야 저자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정확한 제목이 되겠습니다.

 

오늘 저자 요한이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는 공생애 첫 번째 행위이자, 그의 일곱 개의 표식 이야기 중에 첫 번째 기적 이야기를 가나에서의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이야기를 내세우는 이유는 오늘 제가 하늘뜻펴기 제목에서 밝힌 것처럼 삶은 축제이어라는 선언을 하기 위함입니다. 반유대적인 요소가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는 복음서가 요한복음서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유대 사회로부터 축출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물/포도주 이야기에 이어 나오는 이야기가 성전 숙청 사건입니다. 다른 세 복음서가 모두 이 성전 숙청 사건은 예수님 생애 맨 마지막 주간, 그래서 이 성전 숙청 사건으로 인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일어났다고 하는 얘기를 하는데 반해 이보다 후에 쓰여진 요한복음은 성전숙청은 단순히 성전을 정화하는 일에서 그칠 뿐만이 아니라,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선언함으로 새로운 예수부활공동체를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관복음서가 개혁을 얘기했다면 요한복음은 혁명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결예식을 위한 6개의 비어있는 돌항아리가 상징하는 것은 유대율법종교의 역할이 끝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섯이라는 숫자 또한 모자람을 의미합니다. 빈항아리에 물이 채워지고 이게 포도주로 변하고 그래서 흥이 깨져버린 결혼식 잔치에 새로운 흥을 만들어내는, 잔치를 책임지는 사람조차 누구든지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다음에 덜 좋은 것을 내 놓는 법인데, 이 좋은 포도주가 아직까지 있으니 웬일이오하며 감탄해 마지않는, 이전의 방식과는 전연 다른 방식의 하느님 나라 운동이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물 포도주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이런 일이 있은 지 사흘째 되는 날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기적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 운동이 가져오는 흥과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오늘 예수 부활을 믿고 고백하는 교회 공동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도주 떨어진 결혼식 잔치마냥 밋밋하게 살아가지 말고, 마셔도 마셔도 줄어들지 않는 포도주마냥, 새로운 하늘의 영에 취한 사람들이 되라는 뜻입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나는 과연 천국에 들어갈 자격은 있는 것인가? 그런 염려나 삶의 사소한 일에 연연하여 안절부절 아등바등 티격태격 하지 말고, 영생의 사람답게 당당하게 부활의 기쁨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넘치는 포도주로 시작한 가나 이야기는 종교적 껍데기로 전락한 예루살렘 성전시대의 종말을 선언하고 이어 당시 가장 존경받던 지도자 예루살렘 부자촌에 거주하던 니고데모와 당시 가장 멸시받던 사마리아 여인이 각각 예수를 만나 바람과 물로 상징되는 성령에 의한 거듭남이 일어났음을 보여준 다음 다시 갈릴리 가나로 돌아와 고관의 병든 아들을 만지지도 않은 채, 보지도 않은 채 말 한마디로 고쳐주는 기적이 아닌 세메이온 간판 이야기로 예수의 첫 행적의 보고를 마치는 것입니다. 지리적으로 말하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사마리아를 거쳐 다시 갈릴리로 돌아오는, 신학적으로 말하면, 성전 율법의 무미건조함에 대비하여 바람과 물이라는 팔레스타인 사막 지역의 모든 생물을 살아 움직이게 생명의 원천이 곧 로고스이신 신-예수를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가 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이제 결론으로 하나만 더 강조하고 하늘뜻을 마치겠습니다. -포도주 사건을 일으키신 분은 예수이지만, 그러나 그 사건을 작동하게 한 사람은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어머니가 예수께 말합니다. ‘아들아, 술이 떨어졌단다.’ 예수님의 첫 반응은 어머니,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제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직 제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예수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밀어 넣습니다. 할 수 없이 예수는 하인들에게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히 채워라.’ 하고 말하자 하인들이 물을 채웠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퍼서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어라.’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결혼 잔치자리는 다시금 흥에 넘쳐납니다.

 

얘기는 간단합니다만, 이 일이 이루어지기까지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선 어머니의 강권이 없었더라면 얘기는 시작조차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이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빈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일이야 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 물을 퍼다가 잔치 맡은 이에게 가져다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얼마든지 반대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잘못 갖다 주었다가 물벼락을 맞는 사람은 예수가 아닌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하인이 당시 하나의 동물과 같이 취급받던 노예였다면 주인의 명 하나에 자기 목숨도 여차하면 날아갈 수 있었기에 물을 퍼서 갖다 주라는 외간 손님의 요구에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가나 혼인잔치는 예수를 중심한 마리아와 하인들이 함께 만들어낸 축제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또 이를 먹고 즐거워하는 하객들도 없어서는 안 되는 배역입니다.

 

바울 선생은 고린도교회가 제사 음식을 비롯한 여러 문제로 의견이 갈려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등등으로 파당을 이루어 싸운다는 얘기를 듣고, 주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임을 강조하면서, 그 유명한 몸-지체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한 몸에 속한 각기 다른 지체들이다. 다 입이 되고 다 눈이 되면 그게 무슨 몸이겠느냐? 손이 발더러 너는 없어도 된다. 그렇게 말하면 그게 말이 되겠느냐? 너희들이 받은바 육체의 은사들, 자랑거리들은 다 합하여져 하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오히려 강한 지체가 연약한 지체를 돌보듯이, 지혜롭고 강한 사람들이 연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교회 공동체의 나아갈 길임을 말씀하였던 것입니다.

 

너 귀가 있는 자, 주의 말씀 들어라.

그 놀라운 뜻 네 가슴 뛰게 하리라.

너 눈이 있는 자, 주의 행함 보아라.

그 놀라우신 일 네 앞길 밝혀 주리라.

너 손이 있는 자, 주의 사랑 닮아라.

그 부드로운 손 세상 치유하리라.

너 입이 있는 자, 주의 말씀 씹어라.

그 향기로움이 네 입에 가득하리라.

너 코가 있는 자, 삶의 참 맛 맡아라.

네 어둔 얼굴에 미소 가득하리라.

맹물로써 포도주를 만드신 놀라운 솜씨

이 몸을 바꾸사 기쁨 누리게 하신다. (프래드 카인)

 

처음으로 돌아오면, 복이란 넓게 보는 일입니다. 넉넉한 하느님의 마음으로, 너 없이는 나도 없다고 하는 상생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2013년 한해를 새롭게 창조하여 나가시기를 기도합니다.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보냄의 말씀]

 

편한 삶을 위해 간구하지 마십시오.

더욱 강건해지도록 기도하십시오.

당신이 가진 능력에 맞는 일을 구하지 마시고,

당신 앞에 놓인 일을 해 낼 수 있는 만큼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당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받아 해낸다면

그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당신 자신이 기적이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당신 자신을 보고서 하느님의 은혜로

어떻게 풍성한 삶이 임했는지 확인하고 놀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