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첫주일(섬돌향린 나눔과 세움주일)

아름다운 헤어짐, 영원한 동행

이사야 60:1-6; 72:1-7; 에페 3:1-12; 마태 2:1-12

(하늘뜻펴기: 김영국집사, 조헌정목사)

 

말씀과 씨앗:

나눔과 세움 예배 하늘 뜻 펴기(2013. 1. 6.)

김영국

씨앗, 싹 그리고 옮겨심기

 

제가 섬돌향린의 첫 번째 목회운영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지만 이 직분은 섬돌의 새싹들 중 많은 분들이 돌아가면서 맡을 예정입니다. 지난해 광고시간에 교우여러분께 망고 씨앗과 새싹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어린 싹이 잘 자라는지 안부를 물어 오기도 했습니다. 간략하게 이런 이야기입니다.

 

지난 여름 어느 날 아이들과 망고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망고를 먹고 남은 씨앗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들이 망고씨앗을 심어보자고 했습니다. 저는 반신반의하며 애들아 망고는 열대과일이란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곳은 온대지방이니 아무리 여름이라도 망고씨앗에서 싹이 나지는 힘들지 않겠니?” 하고 시도해 보지도 않은 채 아는 체 했습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나 검게 할 수 없다는 성서의 말씀을 망각한 체 주제넘게 아이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설왕설래 몇 차례 후 물에 적신 휴지를 접시에 깔고 망고씨앗을 올리고 햇빛이 드는 창가에 두고 며칠을 보냈습니다. 갈색의 씨앗에서 노란 물이 배여 나오는 신기한 현상도 관찰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 단단해 보이던 씨앗의 한쪽 끝이 열리면서 조그마한 싹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차, 싶어 작은 화분에 씨앗을 옮겨 심고 기다리자 싹이 올라왔습니다.

 

교우 분들 가운데 제가 웹사이트에 올린 망고싹 사진을 기억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6개월 남짓 시간이 지났고 이 엄동설한에 망고 싹은 옛 잎은 떨어뜨리고 새 잎은 틔우며 한반도의 겨울을 견디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면 망고 씨앗에서 싹을 틔워 키우는 경험을 하지 못했겠지요. 진리의 말씀을 통해 분가의 희망을 품고 그 희망이 씨앗이 되고 물방울들의 도움으로 새싹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종을 옮겨 심을 때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향린교회 교우와 분가의 씨앗이 함께 세우는 섬돌향린교회가 주님 성전의 섬돌 역할을 할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성령의 검과 하늘 말씀

 

다음은 칼에 관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도 일전에 새싹모임을 위한 광고시간에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가 과일을 즐겨 먹기도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과일 깎는 것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껍질째 먹는 것이 좋은 과일도 있기는 합니다만 때론 깎아야만 먹을 수 있는 과일도 꽤 있습니다. 잘 드는 칼은 과일의 쓸모없는 부분을 명쾌하게 구분하여 날렵하게 깎아냅니다. 마치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잘 드는 칼은 먹을 것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하지만 잘 드는 칼은 능숙한 솜씨의 칼잡이가 아니면 손을 베게 할 수 있습니다. 칼날은 과일껍질과 손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다만 칼을 잡은 이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쓸모없는 부분을 도려낼 수도 있고 과일을 잡은 손을 다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에베소서 마지막 장에는 기독인들 즐겨 인용하는 비유의 구절이 나옵니다. 진리의 허리띠, 정의의 가슴막이, 평화를 전하는 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그리고 성령의 검입니다. 특히 마지막 성령의 검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십시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늘 뜻 펴기를 통해 분가의 싹을 틔울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 뿐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많은 분들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잘 벼려진 切磋琢磨한 성령의 검 즉 하늘의 말씀은 저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쓸모없는 부분을 도려내고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도록 할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비밀의 계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힘을 빌려 사도들에게 계시된 심오한 계획은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면서 유다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한 몸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함께 받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분가를 준비하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임과 회의에서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다수의 의견도 있고 소수의 의견도 있고 그리고 말하지 못한 의견도 있을 것입니다. 말하지 못한 의견이 지금 이 땅에 전해지는 복음일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섬돌을 구성하는 새싹들의 의견을 모아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생명의 씨앗이 싹으로 자라나 쉼이 필요한 자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가 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아름다운 헤어짐, 영원한 동행]

 

조헌정목사

 

오늘은 새해 첫 주일로 지난 한해를 매듭짓고, 새로움의 시간을 희망과 연대로 힘차게 시작하는 날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지난 몇 년동안 애써온 분가의 새 아가 섬돌향린교회가 세상에 첫 울음을 터트리는 날입니다. 사회와 개인도 그러하지만, 교회마저 큰 것이 옳고 좋다고 하는 자본주의 사고방식에 물들어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과는 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빛과 소금이 되는 사회적 사명을 잃어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가 사회 구원을 얘기하는 시대가 아닌 사회가 교회 구원을 얘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구원을 외치면 너나 잘 해라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의 태도입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교회의 대형화로 인한 일들입니다. 개인의 신앙이 아무리 돈독하다 하더라도 부와 권력의 비대함으로부터 오는 구조적인 부패는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 교회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입니다.

 

[분가선교]

 

그래서 향린교회는 소수가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 삶을 지향하는 신앙공동체로 시작했고, '분가선교'라는 단어가 오래전부터 얘기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창립 40주년에 발표한 교회갱신선언, 2005년 채택한 '향린교회 정관'에 명시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향린교회가 분가선교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교인 수가 늘어남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교회건물 신축 또는 증축, 교회의 공동체성 상실, 목회자의 경영자화 등 대형교회의 폐해를 극복하고, 둘째 분가를 통해 교우들과 지역의 특성에 걸 맞는 창조적인 목회와 선교의 모습을 만들어 가며, 셋째 분가교회 및 작은 교회들과의 연대를 통해 고난 받는 이웃과 함께 하는 사회선교를 감당해 나가기 위함이다.

 

올해는 계사년 뱀의 해입니다. 저도 끝자락에 놓여 있지만, 뱀띠생이라 올해가 남다릅니다. 예전에는 환갑이라고 하면 죽을 때가 다 된 사람의 상징성이 강했지만, 이제는 8, 90세가 보통이라 환갑은 말 그대로 두 번째의 인생을 시작하는 해입니다.

 

괴테는 뱀은 허물을 벗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분가선교가 허물은 아닙니다만,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향린교회가 분가를 하는 것은 향린교회가 계속 살아남기 위한 허물벗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 몇 년동안 새 교우들이 매년 7,80명씩 등록을 하며 성장해 갈 때, 그간 열심히 일하던 교인들이 슬슬 뒷걸음치는 모습을 보면서 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분가를 향린교회가 살아남는 길, 거듭나는 길로 보았던 것입니다.

 

섬돌향린교회가 살림을 떼어 나갔다고 해서 우리의 역할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 또 하나의 분가를 향한 시작일 따름입니다. 섬돌향린은 섬돌향린으로서, 60년 역사의 어머니 향린은 또 향린으로서 또 하나의 출산을 위해 새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처음처럼, 보다 더 강하게, 보다 더 알차게,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다져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십자가를 다시 다는 이유입니다. 교회는 역사로 말하는 조직체나 건물로 말하는 외형이 아닙니다.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사랑과 정의로운 외침으로 자신의 존재성을 증명하는 생명체입니다.

 

[아기 예수께 드리는 우리의 보물]

 

오늘은 교회력으로 말하자면 주현절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신 날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와 황금 유황 몰약을 드리며 경배한 날입니다. 동방박사의 이야기 속에는 사회정치적인 혁명의 얘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별을 보고 세상의 운명을 예언하는 지혜자들이 아닙니다. 이들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서서 자신들은 유대인의 왕을 찾아 왔다고 얘기했을 때, 헤롯 왕으로부터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은 공포를 느꼈습니다. 당시에 동방은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들인 파르티아 제국을 뜻했습니다. 로마의 지배아래 식민지 백성으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600년 전 조상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붙잡혀 갔을 때에 바빌론제국을 넘어뜨리고 해방을 가져온 페르시아제국의 고레스왕과 같이 페르샤의 후예들인 이 파르티아로부터 두 번째의 해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동방박사의 얘기 속에는 정치적 해방의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해방의 소식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던 동방박사들은 오히려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 태어난 한 이름 없는 아기로부터 진정한 해방이 임함을 세상에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제국들은 통치자의 이름은 다를지 모르지만, 그 속성은 같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황제가 바뀌고 제국이 바뀌는 것으로 진정한 평화는 오지 않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변혁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는 베들레헴과 같이 작은 고을인 향린에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자신들만의 잔치에 눈이 팔려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작은 자들의 헌신과 눈물을 귀히 여기십니다. 마치 동방의 박사들이 오랜 시간 별을 따라 광야를 건너고 물을 넘고 시내를 건너왔듯이 저희 또한 교회 개혁과 분가선교라는 별을 따라 오랜 세월을 견뎌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동방의 박사들이 보물함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아기 예수께 드리듯이 오늘 우리 또한 우리의 보물함을 열어 섬돌향린이라는 선물을 드립니다. 이 모든 영광은 오로지 하느님께만 돌립시다. 지난 온 과정은 하나의 신비요 기적이었습니다.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결말은 하느님께서 지으신다는 성서 말씀 그대로입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기적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그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고 뜻을 합하면 기적은 이루어진다고 하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영원한 동행]

 

분가에 참여하신 한 교우께서 31일 저녁에 제게 이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조목사님, 새해 더욱 건강하세요. 오랫동안 함께 해온 향린교회를 떠나는 것이 너무 큰 안타까움입니다. 그러나 분가실천이라는 향린역사에 동참해 볼 유일한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감당해보겠다는 마음이 행동으로 옮길 용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목사님 떠나지만 그러나 가끔 함께 하는 기쁨이 있을 것을 알기에 희망을 안고 떠납니다. 목사님 그간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제가 이런 답 글을 보냈습니다. “언젠가는 헤어지는게 인생이지요. 저도 몇 년 있으면 떠나가구요. 분가는 하느님의 명령이고, 어느 한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닌 주님을 위한 일입니다. 교우님의 아픔의 결단이 교회를 위하고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새해에 우리의 희망을 향해 더욱 힘차게 나아가십시다. 축복합니다.”

 

향린과 섬돌향린은 아름다운 헤어짐, 그러나 영원한 동행입니다. 사랑하기에 떠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섬돌향린교우들은 정말 향린을 사랑하기에 그 향린의 정신을 실천해야 하기에 그 희생으로 나선 사람들입니다. 저는 누구 한사람을 향해 당신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다시 한 번 고백하십시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들임을. 사도바울은 이 심오한 계획을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면서 유다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한 몸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함께 받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 이방인으로 사회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러했듯이 섬돌향린은 바로 그러한 이방인들을 위해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권센터와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 또한 심오한 계획입니다.

 

우리는 몸은 떨어져 있지만, 언제나 하나의 몸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서로 오고 갈 것이며 또 현장에서 자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섬돌향린 교우 여러분! 예언자 이사야는 오늘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사람이다.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를 보살펴준다.”

 

향린교우 여러분! 예언자 이사야는 계속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나의 백성이다. 나의 영광을 빛내려고 창조한 내 백성, 내 손을 빚어 만든 나의 백성이다.”

 

섬돌향린, 강남향린, 들꽃향린, 명동향린 여러분, 새날이 밝았습니다.

일어나십시오!

빛을 비추십시오!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향린-섬돌향린 공동신앙고백

 

다함께 : 60년 전 예수의 삶을 따르려는 젊은 청년들의 몸부림에서 시작된 작은 발걸음이, 이 땅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웃들과 함께 아픔과 희망을 나누는 오늘의 향린 공동체로 자라나기까지 지켜주고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향린 : 저희는 작아짐으로 예수의 발걸음을 따릅니다.

 

섬돌향린 : 저희는 인간의 욕망과 권세를 추구하는 무한성장과 팽창의 논리를 거부하고, 예수의 삶으로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작지만 참된 공동체를 통해 실현해 나갑니다. 저희 공동체는 작은 씨앗이지만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그 속에 간직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걸음이 되겠습니다.

 

향린 : 저희는 나눔으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합니다.

 

섬돌향린 : 개개인의 생각과 마음의 차이를 공동체 내의 소통과 나눔을 통해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아름다운 공동체는 우리의 울타리 안에 가두고 쌓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하고 이웃과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다함께 : 하느님의 선교를 위해서는 나눔과 소통의 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는 믿음을 간직하게 해 주시고, 이를 분가를 통한 선교의 꿈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실천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섬돌향린 : 저희는 함께 함으로 예수의 고난에 동참합니다.

 

향린 : 이제 저희는 두 개의 교회로 나누어지지만, 기도의 목소리를 함께해 나가며 간절한 소망을 함께 품습니다. 저희의 나뉨은 큰 함께 함을 위한 것이며, 가난하고 억압당하고 차별받는 이웃과 함께 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의 고난에 함께 하기 위함입니다.

 

섬돌향린 : 저희는 다시 일어섬으로 예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향린 : 큰 좌절을 만나더라도 작은 진실을 보듬으며, 쓰라린 고통을 겪더라도 큰 희망을 잃지 않으며, 쓰러지고 무너져도 끝내 다시 일어나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증오와 불신을 끝없이 재생산하며 민족과 개인의 삶을 왜곡하는 분단의 장벽을 희생과 사랑으로 허물고 평화의 땅을 일구어 나가겠습니다.

 

다함께 : 한 없이 멀어보이던 분가선교의 꿈을 은혜의 선물로 안겨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기도, 저희의 목소리, 저희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통해 하느님의 은혜에 응답해 나가겠습니다. 사랑과 정의와 평화와 생명이 저희 가운데 가득 차고, 나아가 이웃과 사회에 퍼져나가는 향기가 되겠습니다.

 

[나눔과 세움 공동기도문]

 

섬돌향린 : 향린이 60주년을 맞아 나누고 세워서 이름 지워준 "섬돌들이 두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설립위원장 : 섬돌은 별스럽지 않은 평범하고 소박한 돌입니다.

어린이1: 대수롭지 않은 돌이지만 간단한 손질을 거쳐 초가집의 마당과 마루 사이에 놓이면 긴요하게 쓰입니다.

목운위1: 섬돌은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들게 합니다.

목운위2: 섬돌은 땅과 하늘을 이어줍니다.

목운위3: 섬돌은 벽과 담을 허물고 몸과 마음을 이어줍니다.

목운위4: 섬돌은 남과 북의 분단의 벽을 넘어 상처를 어루만지고 평화를 이룹니다.

목운위5: 섬돌은 자기를 밟고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몸을 내어줍니다.

목운위6: 섬돌은 끝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발길에 닳고 무뎌지면서 감싸안는 품을 배웁니다.

목운위7: 섬돌은 완강한 몸짓으로 묵묵히 숱한 세월을 버텨냅니다.

목운위8: 섬돌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내는 아픔이 박혀있습니다.

 

섬돌향린: 이제 섬돌향린교회는, <생명 평화 일구는 작은 공동체>가 되려고 합니다.

향기로운 이웃이 딛고 오르내리는 공동체가 되려고 합니다.

나를 밟고 설 수 있도록 내어주는 공동체, 교회 안과 밖의 경계를 넘어서는 공동체, 하느님의 집 마루에 소외된 이웃들이 밟고 올라갈 수 있는 공동체가 되려 합니다.

예배지기: 우리 섬돌향린은, 이제 잔잔하지만 당당한 웃음으로 첫 걸음을 내딛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삶을 서로 마주보고 어루만져 채움으로 하느님의 고운 빛을 담고 싶습니다.

 

길라잡이: 함께 하는 웃음과 도움으로 고통과 고난을 당당하게 맞서고 싶습니다. 손님과 이방인을 환대하고 영접하면서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살림지기: 작다고 약한 것이 아니고, 소수라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가난하다고 비루한 것이 아님을 알고, 나중된 자가 처음의 자리가 되는 하늘나라의 이치를 이땅에 이루고 싶습니다.

 

친한친구: 그래서 하느님 형상을 닮은 이가 되고, 하늘나라를 여기 이 자리에서 함께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향린+섬돌향린: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로, 예수의 삶을 몸으로 살아 삶 전체가 예배가 되는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도망가거니 숨지 않고 따로 또 같이 가는 공동체, 다름과 같음이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당장은 불가능해 보여도 변화를 주저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공동체,

세상을 위해 교회를 위해 서로를 위해 스스로를 위해 일하고 노래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늘 설레고 기다려지고 반가운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 일을 하는 일꾼들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여기 섬돌향린의 소망을 담아 기도드리오니 하느님, 들어주소서.

 

(침묵)

 

서로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