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오늘의 시대와 예언자 정신(12) 애가

애가 1:1-7; 루가 13장 31-34절


        오늘은 한가위 날입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한국교회들이 추수감사주일을 11월 셋째 주에 지키지만, 이는 미국 교회의 영향입니다. 저희 교회 한가위감사주일은 다음 주에 지킵니다. 한가위에 드리는 조상추모에는 막연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몇 대에 걸친 조상들뿐만이 아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지붕 밑에서 살을 맞대고 살았던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예언자들의 연속 하늘뜻펴기를 하면서 제가 애가서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애가서는 예루살렘의 파괴를 탄식하는 다섯 편의 시를 묶어 놓은 것입니다. 죽음과 상실의 고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애가서를 보통은 예레미야가 저자라고 믿어 예레미야 애가라 불리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의 구약학자들은 표현 양식의 차이와 구성 등을 이유로 저자 미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간 고난의 문제는 인류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된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인간이 된다고 하는 것은 곧 고통을 안고 사는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종교는 이 풀리지 않는 고난을 질문으로 출발합니다. 성서 또한 창세기로부터 요한의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인간 구원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고통의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말하는 것입니다. 흔히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말하지만, 이 안에는 하느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민족 간에 전쟁과 권력쟁취를 위한 암투로 빚어진 고난의 기록입니다.


        구약성서의 주인공인 히브리민족에게는 크게 두 가지 사건이 벌어집니다. 하나는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벗어나 홍해를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엑소더스 해방의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 성의 멸망과 더불어 민족의 핵심지도자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바빌론 유배사건입니다. 엑소더스의 사건이 자유와 해방을 향한 기쁨과 승리의 사건이라면 그보다 600여년이 지나 일어난 바빌론 유배사건은 자유민이 노예로 붙잡혀가는 슬픔과 비극의 사건입니다. 이 출애굽의 엑소더스 사건과 바벨론의 유배 사건은 성서 안에 펼쳐진 하느님의 구원 역사라는 큰 타원형 안의 두 개의 중심점입니다.


        우주의 중심으로 여겨지며 수백년동안 번영과 축복의 근원이었던 예루살렘 성이 이민족에 의해 파괴되고 왕은 눈이 뽑혀 포로로 끌려가며 남정네들은 죽임을 당하고 아낙네들은 강간을 당하고 아이들은 노예로 끌려가는 이 살육과 폭력의 이 최악의 고통을 한 인간의 마음으로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비극입니다. 그러나 여기 한 시인이 있어 이를 글로 풀어냅니다. 감정에 억매여 무작정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의 각 연이 히브리어 알파벳 순으로 시작되는 ‘아크로스틱 형식’을 따라 풀어냅니다. 여기에 애가서의 문학적 미가 숨어 있습니다.


        외국인이 번역을 통해서는 김소월의 시세계가 그려내는 한국적 아름다움을 결코 경험할 수 없듯이 우리 또한 한글 번역으로는 애가서의 히브리적 아름다움을 결코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말은 알파벳의 합성으로 이루어지기에 아크로스틱 형식의 시나 각 연의 끝이 같은 어운으로 끝나는 시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22개입니다. 그런데 애가서는 1장 2장 4장 5장은 모두 22절로 되어 있고 3장은 22절이 세 번 반복된 66절로 되어 있습니다. 각 절의 첫마디가 알파벳 순서대로 시작하고 있고 그 안에는 판소리에서와 같은 음악적 리듬이 담겨 있습니다. 이 애가서는 유대인들의 단식일에 회중들 앞에서 큰 소리로 낭송되어 왔습니다. 이날은 바빌론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와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를 추모하는 날입니다.


[애가, 한국시 그리고 죽음학]


        그래 저는 오늘 하늘뜻펴기를 펴나감에 있어 어떤 논리적 설명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애가 5편의 시가 담고 있는 아픔을 따라 이 아픔들이 한반도에 태어난 우리들의 시인들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5편의 시를 읽어감에 있어 한 사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가서와 죽음의 심리학 사이에는 아주 묘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큐블러 로스는 불치병 환자 500여명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죽음학이라는 새로운 의학의 문을 열었습니다. <인생수업>이라는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습니다만, 그의 첫 책인 <죽음과 죽어감>에서 말기 환자들이 죽음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5단계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한 나라의 죽음을 노래한 애가서 또한 5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의 주제와 큐블러 로스의 5단계가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그것이 한 민족의 멸망이든 혹은 한 개인의 비극적 사건이든 이는 똑같은 고통의 단계를 지낸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고통의 슬픔의 근원은 같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애가와 노래와 몇 분의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이 분류를 따라 읽어 나가려고 하지만, 어떤 틀 안에 억지로 집어넣고자 하는 저의 어설픔의 잘못은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때로 긴 시들은 중간 중간 임의로 생략되는 것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애가의 저자뿐만 아니라 다른 시인들 모두 무덤을 박차고 나와 네 이놈! 무엄하구나! 라고 호통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첫째 단계: 부정과 고립]


        갑작스런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혹은 의사로부터 불치병에 걸렸다고 하는 얘기를 들을 때에 우리들은 충격에 빠지면서 이건 사실이 아니다! 라고 부정하며 고립된 상황에 빠집니다. 의사의 판독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거나 심지어는 엑스레이가 다른 사람과 뒤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기치 못한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을 때 부정은 일종의 완충제 역할을 하면서 환자에게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주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합니다.


        애가 기자 또한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을 1장 1절에서부터 이렇게 탄식합니다. “아 그렇듯 붐비던 도성이 이렇게 쓸쓸해지다니... 시온으로 오가는 길목에는 순례자의 발길이 끊어지고 들리는 것은 통곡소리뿐이로구나 모든 성문은 돌더미로 주저 않고 사제들 입에서는 신음소리뿐이요 처녀들 입에서는 한숨소리뿐이구나 아! 시온이 이렇게도 처량하게 되다니... 길 가는 나그네들이여, 나를 보시오. 야훼께서 노여움을 터뜨려 나를 내려치시던 날 겪던 그런 고생이 또 어디 있겠소? 높은 데서 내려 쏘신 그의 불화살이 뼈 속에 박혔다오.” 고립된 도시와 개인을 보게 됩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상화 시인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고 질문합니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종달이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게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 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무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집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필자에 의해 부문 삭제)


자연의 봄은 왔건만 혼의 봄은 오지 않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혼이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건 곧 죽음의 경험입니다. 봄에 대한 부정이자 자연으로부터의 고립입니다.


[둘째 단계: 분노]


        불치병 선고를 받은 환자들은 처음에는 부정을 하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왜 하필이면 나일까? 하며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병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남을 비난하게 됩니다. 가족들이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왜 나를 낳았느냐고 어머니를 비난하기도 하며 때로는 간호원들이 분노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애가 시인은 그 분노를 하느님을 향해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 나의 주께서 노여움을 터뜨리시어 수도 시온을 먹구름으로 덮으셨구나. 진노하시던 그 날 당신의 발판은 안중에도 없으셨고 이스라엘의 영광을 하늘에서 땅으로 내던지셨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원수로 도둑떼로 비유합니다. “나의 주께서 원수인 양 이스라엘을 삼키셨다. 망대를 돌아가며 허무시고 성채를 다 헐으시어 유다의 수도에서는 들리는 것은 신음소리, 한숨소리뿐이구나. 당신께서는 도둑떼처럼 오두막을 허무시고, 순례절마다 모이는 자리를 결딴내셨다.”(6절) 그리하여 드디어 야훼 하느님을 향해 거칠게 항의합니다. “야훼여, 보이지 않으십니까? 주께서 이렇듯 누구를 괴롭히신 일이 있으십니까? 어미가 제 속으로 난 성한 자식을 먹다니 차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사제와 예언자가 주의 성소에서 살육을 당하다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지난 주 저희교회에서는 지난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무고하게 죽어간 조선인 6,600여명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식을 가졌습니다. 재일조선인 김학렬시인은 이를 <9월의 증언>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수면 위의 저 빨간 번쩍임은 한의 눈물 80년 전 그날의 피의 신음이 아니냐 9월의 그날에 타는 하늘 겨레의 애타는 통분이 아니냐// 수면위의 번쩍이는 저녁노을 이 가슴도 빨갛게 물들이며 숙숙히 흘러내리는 겨레의 한의 강 아라까와 기슭에 서서 9월의 그날의 무거운 증언 그날의 피의 고발을 지금 이 가슴에 듣는다//

     쳐 없애라! 조선인 죽여라! 80년 전 그날 간또 평야를 뒤흔든 저 소리 도꾜, 가나가와, 사이따마, 지바... 거리마다 하늘마다 무시무시하게 울려 간 저 미친 욕설// 불령선인의 방화로 온 시가는 불바다 사상자는 부지기수, 내무대신 미즈노의 이 한 장의 전문이 6,600여 목숨을 앗아 갔으니 대학살 불바다의 불씨되어 31의 만세소리 쌀소동의 아우성소리 민중의 불만, 항거의 불마음을 딴데에 과녁 삼도록 지핀 모략, 불바다의 불시되어 삽시에 온 관동평야에 활활, 물결치는 강물위에 바다 위에 활활, 캄캄함 밤하늘에 활활 활활활활//

     한 군인이 일장연설, 제군 불령선인이 지금 갖은 폭행을 다하는고로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이상한 놈은 모조리, 괜찮아 모조리 쳐 죽여라. 이윽고 무릎을 꿇고 두손모아 제발 살려주소서 애걸하는 사람에게 몽둥이로 때려 패고 쇠갈구리로 찍고 엽총으로 쏘고 아이우에오 까끼꾸께꼬 쥬고엔고짓센을 말해보라면서 동포들 손목을 밧줄로 염주알같이 꿰여 매고, 여보시우 당신은 몇 놈 쳤어? 난 오늘까지 여섯 놈을 쳤지 생대나무가 다 부러져 나가도록 마구 후려 갈겼지 사람 입에 담지 못할 말도 함부로 뇌까린다 짐승임을 자랑하는 족속들이다.(중략) ...

     어두운 밤중에 나는 시체더미 속에서 겨우 나와 구사일생으로 용하게도 살아남았지만 망국노 신세란 참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거였지요. 아이구 저렇게도 잔학무쌍한 대학살을 당하고서도 나라없어 항의하나 못했봤으니가 말이요 정말이지 조국은 바로 생명이에요.(중략)] <치마저고리> 재일조선인 대표시선집, 화남, 148-169쪽) 긴 서사시입니다만 제가 거의 십분지 일로 줄인 내용입니다.


[셋째 단계: 협상]


        처음에는 부정하고 주위를 향해 분노하던 불치병 환자들은 이제는 죽음을 미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협상을 시도합니다. 하느님께서 분노에 찬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면 좀 더 공손하게 부탁해보면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시기입니다. 마치 앙탈을 하여도 부모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때, ‘일주일 내내 말 잘 듣고 저녁마다 설거지 하면 들어주실거죠?’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시에서 야훼 하느님을 원수로 도적떼로 자식을 먹는 어미로 표현하며 항거하던 시인은 세 번째 시에서는 전혀 다른 공손한 태도를 보입니다. “주 야훼의 사랑 다함없고 그 자비 가실 줄 몰라라. 그 사랑, 그 자비 아침마다 새롭고 그 신실하심 그지없어라.(22절) 나의 몫은 곧 야훼시라. 이 몸은 주를 기다리리라. 야훼께서는 당신을 바라며 찾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신다. 야훼께서 건져 주시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좋은 일이다. 젊어서 멍에를 메는 것이 좋은 일이다. 야훼께서 메우신 것이니 잠자코 있어라. 입을 땅에 대고 있어라. 행여 앞날이 트일지 아느냐? 누가 때리거든 뺨을 돌려 대어라 누가 욕하거든 달게 받아라. 우리 모두 살아 온 길을 돌이켜 보고 야훼께 돌아가자.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께 손들고 마음 바쳐 기도드리자.”(41절)


        정호승 시인은 <슬픔을 위하여>라는 시에서 슬픔의 어머니를 만나 기도하자고 말합니다.


슬픔을 이야기하지 마라 오히려 슬픔의 새벽에 관하여 말하라

첫아이를 사산한 그 여인에 대해 기도하고 불빛 없는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그 청년의 애인을 위하여 기도하라


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하다 나는 오늘 새벽, 슬픔으로 가는 길을 홀로 걸으며 평등과 화해에 대하여 기도하다가 슬픔이 눈물이 아니라 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저 새벽별이 질 때까지 슬픔의 상처를 어루만지지 말라. 우리가 슬픔을 사랑하기까지는 슬픔으로 가는 새벽길을 걸으며 기도하라 슬픔의 어머니를 만나 기도하라.


        한국신학대학을 나온 고정희 시인 또한 <상한 영혼을 위하여>에서 이렇게 고통을 노래합니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넷째 단계: 절망과 우울]


        이제 부정하고 분노하고 타협하며 죽음을 연기해보고자 했던 불치병 환자들은 이것도 저것도 다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차가운 운명 앞에 절망하여 우울감에 빠져듭니다. 살아있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한명을 잃으면서 슬퍼하지만,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환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잃어야 하는 고통에 직면합니다.


        그래 시인은 도시의 참상을 보며 절규합니다 “아, 황금은 빛을 잃고 순금은 제 빛을 찾을 길이 없구나. 성전의 헐린 돌이 거리마다 널려있다. 순금만큼이나 귀하던 시온의 아들들이 어쩌다가 토기장이 손에 빚어지는 질그릇처럼 되었는가! 젖먹이들은 목말라 입천장에 붙고 어린 것들은 먹을 것을 찾는데 주는 이가 없구나. 비단옷이 아니면 몸에 걸치지도 않던 자들이 쓰레기더미에서 뒹구는 신세가 되었구나. 젊은이들은 눈보다 정갈하고 우유보다 희더니 살갗은 산호보다도 붉고 몸매는 청옥처럼 수려하더니 얼굴은 검댕처럼 검게 디고 살가죽은 고목처럼 뼈에 달라붙어 이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구나.(8절)” 그리곤 죽음을 예감합니다. “끝 날은 눈앞에 다가 왔다. 우리의 날수가 찼다. 드디어 끝 날은 왔구나. 우리를 쫓는 자 하늘의 솔개보다 빨라 산등성이에는 끈질기게 따라 오고 광야에서는 덮치려고 숨어서 노리고 있구나.”(19절)


        김지하 시인은 유신헌법이 발표되던 그날을 죽음이라 부르자고 말합니다.

     [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  좁고 추운 네 가슴에 얼어붙은 피가 터져 따스하게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하던 그 시간/ 다시 쳐온 눈보라를 죽음이라 부르자//

     모두들 끌려가고/ 서투른 너/ 홀로 뒤에 남긴 채/ 먼 바다로 나만이 몸을 숨긴 날/ 낯선 술집 벽/ 흐린 거울 조각 속에서/ 어두운 시대의 예리한 비수를 등에 꽂은 초라한 한 사내의 겁먹은 얼굴/ 그 지친 주름살을 죽음이라 부르자// 그토록 어렵게 사랑을 시작했던 날 찬바람 속에 너의 손을 처음으로 잡았던 날 두려움을 넘어 너의 얼굴을 처음으로 처음으로 바라보던 날/ 그날/ 그날 너와의 헤어짐을 죽음이라 부르자//

     바람 찬 저 거리에도 언젠가는 돌아올 봄날의 하늬/ 꽃샘을 뚫고 나올 꽃들의 잎새들의 언젠가는 터져 나올 그 함성을/ 못 믿는/ 이 마음을 죽음이라 부르자 아아 1974년 1월의 죽음을 두고/ 우리/ 그것을 배신이라 부르자// 온몸을 흔들어 온몸을 흔들어 거절하자 네 손과 내 손에 남은 마지막 따뜻한 땀방울의 기억이 식을 때까지


[다섯째 단계: 수용인가? 탈출인가?]


        이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환자들은 마지막 단계에서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이를 수용합니다. 이것이 큐블러 로스가 발견하고 학문적으로 정리한 시한부 환자들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애가의 마지막 장은 이것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애가의 시인은 패망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끝내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야훼여 우리가 이런 형편을 당했는데도 기억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욕을 보는데도 굽어 살피지 않으시겠습니까?(1절) 굶주림 끝에 우리의 살갗은 불길에 그슬린 채 까맣게 되었습니다. 시온에서 여인들이 겁탈을 당했습니다. 왕족들은 손이 묶여 매달리고 장로들도 사정없이 당했습니다. 젊은이들은 맷돌이나 돌리는 신세가 되었고 아이들은 나무를 져 나르다가 쓰러집니다. 가슴에서는 즐거움이 사라져 춤 대신 울음이 터져 나오고, 머리에서는 화관이 떨어졌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쓰라리고 우리의 눈앞은 캄캄합니다. 영원히 다스리실 야훼여 어찌하여 우리를 영영 잊으시렵니까? 어찌하여 우리를 영영 버리시렵니까? 야훼여 주께 돌아가도록 우리를 돌이켜 세워 주십시오. 주께서는 아무리 화가 나시어도 우리를 아주 잘라 버리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큐블러 로스의 죽음의 이론이 애가서의 마지막 장에서 어긋나는 것은 한 개인의 시한부 인생은 끝날 수 있어도 한 민족의 자유혼은 끝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지배가 악랄의 도를 넘어서고 점령의 기간이 30년의 한세대를 넘어서자 모든 이들이 독립의 희망을 버리고 내선일체를 외치며 변절하여 갈 때, 20세의 젊은 문학도 윤동주는 그래도 그 꿈을 놓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이를 밤하늘에 빛나는 별에 그 마음을 비추어 봅니다.


<별 헤는 밤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

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

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

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윤동주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문익환목사님은 암울했던 군사정권 시절 삼팔선이 꽁꽁 얼어붙어 있던 1989년 1월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시를 발표하고 실제로 그해 5월에 김일성주석을 만납니다.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 이건 진담이라고 //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 가기로 결심했다구 /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 흐르는 물에 /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풀어버리는 거지 /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살 스무살 때로 / 돌아가는 거지 //


아 얼마나 좋을까 /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 이천만이 한마음이었거든 / 한마음 / 그래 그 한마음으로 /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대군을 물리쳤잖아 //


아 그 한마음으로 /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 아마도 서로 부둥켜안고 평양 거리를 뒹굴겠지 / 사십사 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 괴뢰니 주구니 하며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 부수어버리면서 말이야 //


뱃속 편한 소리하고 있구만 /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


객쩍은 소리 하지 말라구 /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구 /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로 드높이 / 나부끼는 일이라고 /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 주장하는 일이라고 //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 있다고 생각하나 /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


        애가의 시는 마지막 5장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하느님께 요구합니다. “야훼여, 주께 돌아가도록 우리를 돌이켜 세워 주십시오. 우리를 예전처럼 잘 살게 해 주십시오. 누께서는 아무리 화가 나시어도 우리를 아주 잘라버리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분명 남북의 분단은 우리 민족의 최대의 비극이자 고통입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고통은 이 분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헤집고 들어가 보면 그 끝자락에는 빨간색에 대한 공포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공안정국을 만들어내는 요즘의 정부도 그 마음을 헤집고 들어가 보면 빨간색에 대한 공포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곧 죽음의 공포입니다. 겉으로는 상생과 평화를 말하지만 실상은 이 빨간색의 죽음의 힘에 눌려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신앙인들은 더 하구요. 십자가와 부활을 신앙의 생명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 또한 그렇다고 하는 일에 대해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옛말이요 이제는 쌍둥이도 세대 차이를 느낄 만큼 시대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사회는 70년 전에 씌어진 시나 20년 전에 발표된 시나 여전히 오늘의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전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왜 20년 전의 시나 70년 전의 시가 지금도 그대로 들어맞는지 혹 여러분은 아시나요? 아시면 제게 말씀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이 사회는 예언자들을 죽이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돌로 치는 세상입니다.’


        함석헌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산 좋고 물 좋은 중용의 땅으로 인해 우리 겨레는 낙천적이고 인후한 반면 심각성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래 한민족의 역사가 고난의 역사로 점철된 것은 깊이 생각하도록 그래 깊은 종교와 철학을 가진 민족이 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오늘 우리 사회는 저 꼭대기 사람들로부터 저 저자거리 백성들에 이르기 까지 경제 경제 부자 부자를 외쳐 되고 있습니다. 역사의 고난에서 얻을 수 있는 깊은 종교와 철학을 상실하고 값싼 경제논리만 판을 치고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다는 말입니까?


        침묵의 기도가 아닌 절규의 기도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애도의 기도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