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교회 자매결연주일

포도밭의 탄식

이사야 5, 1- 7 ; 에베소서 5, 8- 14


이  세 우 목사


포도향기가 온 땅에 그윽하게 펴지는 계절입니다. 성서에는 포도 과일과 관련된 구절이 자주 나옵니다. 포도뿐만이 아니라 포도와 관련된 많은 단어들이 나옵니다. 포도나무, 포도원, 포도원지기, 포도주, 포도즙 등이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포도와 관련된 많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성서의 배경을 이루는 지중해 연안에는 포도과일이 흔한 농작물 같습니다. 기후, 토질 등이 포도 농사를 짓는데 알맞고 고대 이스라엘인에게 영양소를 보충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포도 과일을 가까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농산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매우 흔하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에 있어서 포도는 주식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그런 이유로 포도는 번영과 평화를 상징하는 과일로 대접받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잔치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음식이었고, 약용(딤전5;23), 마취제(막15;23), 음료(룻2:14)로도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도 포도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대부분의 포도와 관련된 성서말씀은 교훈적이고 긍정적인데 반해 오늘의 말씀 분위기는 고발과 저주의 내용을 담고 있어 무겁고 부정적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과 배경은 이렇습니다. 포도밭은 기름진 산등성이에 있습니다. 이것은 포도 열매를 맺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포도 열매를 위해 산등성이를 개간하고, 또 돌을 골라내어 열매를 맺는 데 방해되는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였습니다. 또한 침입을 막기 위해 망대도 설치하여 포도밭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주인의 노력이고, 따라서 포도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곧 맛있는 포도가 아니라 몹쓸 신 포도만 열렸습니다. 전혀 먹을 수 없는 포도가 그 열매가 되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요지입니다.

본문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본문의 역사적 상황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활동했던 시기는 기원전 740-700년경으로 추측됩니다. 그는 주로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였으며, 수도의 정치적인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인물입니다. 그는 그의 활동 가운데 큰 사건들을 경험하였는데, 기원전 733년에 발생한 시리아-에브라임(동맹) 전쟁, 기원전 722년 북왕국의 멸망과, 아시리아가 많은 조공을 요구한 결과로 주변 국가들이 봉기를 일으켰는데 히스기야는 이 봉기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참여하였을 때에는 더 많은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조공논쟁). 이사야의 활동 중 마지막 사건은 기원전 701년에 발생한 아시라아의 임금 산헤립의 침공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사야 36-39장과 열왕기하 18-20장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혼돈과 격변 상황에서 예언자는 활동하였고, 그 첨예한 대립 속에서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그 원인을 줄타기 외교만을 치중하면서 오직 야훼만을 신뢰하지 않은 점과, 사회적인 불공정과 악이 만연했던 것이 멸망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2분의 장로님이 계신데, 원로장로님은 농사를 꽤 많이 짓던 분인데 5년 전에 농사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신임장로님은 올해 논농사를 중단하고 남에게 모두 넘겼습니다. 우리교회의 표어가 ‘악착같이 논농사 지어보세!’로 정해 교우들이 이를 위해 다 노력하고 있는데 가장 모범을 보이셔야 할 장로님이 가장 먼저 교회의 입장과 반대되는, 이를 어기신 것입니다. 오죽 했으면 그랬으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움은 정말 컸습니다. 물론 잘돼서 농사 아니라도 먹고 살만 하거나 ,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이제 농사 은퇴를 하는 것이라면 덜 서운할 것입니다만 농사를 지어봤자 고생만 잔뜩 할 뿐이지 도무지 이득 되는 것도 없고, 그 고생도 이제는 나이 먹어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던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농사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고, 또한 제값을 받아서 아이들 학자금, 결혼자금 등도 해결하고 그리고  생계유지를 하면서 행복한 삶에 대한 소망을 갖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당연한 마음입니다. 누구도 깰 수 없는 소중한 권리입니다.

만일 가을에 열매가 없고, 값도 받지 못하면 농부는 실망할 수밖에 없죠? 그리고 이것이 해마다 바뀌지 않고 반복되면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농사 중단하신다고 하실 때 좀 더 ‘참고 해 보시죠’라고 도저히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잘하셨네요! 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농촌은 비료값, 농약값, 농기계값, 사료값, 인건비 등 모든 것이 인상되어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생활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동네 입구에 농민들이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농사를 지라는 거여, 말라는 거여!’라고.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어느 해보다도 농사를 지을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더 더욱 농업해체 작업이 가속도가 붙을 것을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농업이 포기되고 해체되어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향린교회와 처음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첫 설교를 할 때 그러니까 13년 전이지요. ‘이런 상태로 가면 우리나라도 앞으로 식량위기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린 것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 ‘식량위기는 식량전쟁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되면 도시고 농촌이고 다 위험해 질 수 있다’고 그 때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안타깝게도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시아의 몇몇 국가들이 이미 진통을 겪었는데 특별히 쌀 수출국이던 필리핀마저 식량부족문제로 폭동이 일어나고 식량 확보가 최대의 정치적 사안이 된 것은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결코 남의 일 일수 없는 것이 우리도 코앞까지 다가와 발등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농부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최상품인 농산물을 생산할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서에서도 가장 좋은 농산물을 얻고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결과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들포도가 열리고 말았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이를 외면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달리 표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공평과 정의(7절)를 요구하시고 기대하셨습니다. 그런데 들포도인 포악과 불의(7절)만이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신 공평과 정의는 없고, 오히려 기대하지도 않은 포악과 불의가 가득한 영적 상태, 사회 현실을 말합니다. 포악과 불의한 생활은 5장 8-30절까지 무려 여섯 번이나 ‘화 있을진저’라는 경고의 말씀과 동시대 선지자인 미가서(2,3장)에도 자세히 기록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와 정치지도자들의 죄악이 극에 달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가난한 자에 대한 착취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의 농촌현실과 현 정부의 농업정책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우리사회현실과 돌아가는 정세를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농민들도 얼마나 영특해졌는지 모릅니다. 현실이 어렵다 보니 같은 농민들끼리도 더 자주 다투고 싸우고, 비방하고 분열하고 단합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참 답답하고 걱정스럽습니다. 농민들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 왜 이렇게 까지 되었는지, 누가 농민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원망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양계장과 돈사, 그리고 소 막사에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동물들을 키우는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서 가 본 것입니다. 차마 못 옮기겠습니다. 닭이 낳는 것이 알이 아니라 독 덩어리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돼지고기는 어떻고요? 소가 짜내는 것은 우유가 아니라 고름덩어리를 내 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습니다. 조류독감, 광우병 문제는 언제든지 재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혼수품목 1위가 혼전임신이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3-4학년 여학생들이 초경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 죽임의 행렬에서 멈춰야 합니다. 멈춰야 삽니다. 뛰쳐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죽지 않습니다.

성서에서 나오는 들포도는 가짜를 가리킵니다. 포도나무인들 들포도를 생산해 내고 싶었겠습니까? 자기 몸에서 들포도가 나오니 포도밭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억울하고 분했을 것입니다. 지나친 인간들의 욕심이, 소비문화, 경제논리 등이, 그리고 맘몬 숭배 등이 멀쩡한 포도를 들포도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포도밭의 탄식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포도밭의 눈물이 대지를 적시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지금 가짜문화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농촌문제뿐만이 아닙니다. 정치, 경제, 외교, 통일, 교육, 군사, 문화, 특히 종교 등 모든 것이 가짜인 들포도가 우리사회를 완전 점령하고 득세하고 있습니다. 진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공의와 진실을 세우지 못한 이스라엘,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진노와 심판을 결코 면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 심판은 우리의 가난, 병, 고난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과 정신 상태에서 발생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차단하고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경고하는 것은 죽음이 목적이 아니라 치료, 회복, 생명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어 말씀하는 것은 징계가 목적이 아니라 회복이 목적입니다. 본문의 이사야서의 예언은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실망과 징계를 말하나, 징계가 목적이 아니라 범죄의 차단과 회복이 목적입니다. 이 경고의 말씀은 아직 때가 늦지 않았고,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이라고 죄를 인식하고 중단하면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바벨론의 침입으로 멸망하고 말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목적, 기대를 파악해서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농촌을 살리고 지켜내야 합니다. 광우병정국이 한미FTA 정국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한미FTA저지운동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기대인 공평과 정의의 삶을 살아 극상품인 최고의 포도열매가 주렁주렁 달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향린과 들녘의 자매결연이 모범이 돼 우리 기장내에서 전국여신도회와 농목이 함께 합의해 연내에 6개 교회가 자매결연을 맺을 것을 현재 추진 중에 있습니다. 농촌교회는 모두 농사를 짓고 있는 교회로 선정을 마쳤습니다. 도시가 특별히 도시교회가 농촌살리기와 농촌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합니다. 향린교회와 교우들께서 항상 주안에서 풍성하고 탐스러운 최상품 포도를 주렁주렁 생산하시는 포도열매의 복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