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0일 평화통일주일 : 화해자 예수 그리스도

에제키엘 37장 15-19절 에페소 2장 12-16


        올해 815경축행사가 펼쳐질 광화문 광장에는 60이라는 거대한 숫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명박정부는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받은 광복절 63주년을 축하하는 대신에 1948년 이승만정권의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시작한 건국절을 축하하려 하고 있습니다.


        815의 의미를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옮기게 되면 일제가 지배하기 시작한 1910년으로부터 1948년 이전의 우리나라의 역사를 부정하는 결과가 됩니다. 이 한반도 안에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님들이 살고 있었지만, 1910년부터 1945년까지는 일본의 역사로 1945년부터 48년까지는 미국의 역사로 정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제의 압제 아래에서 일어난 31독립만세운동을 비롯한 수많은 항일독립운동을 부정하고 상해에서 시작한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래 저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해설가(도슨트)로 봉사하시는 이영욱교우님께 오늘 평화통일 주일을 맞아 저와 함께 하늘뜻을 펼쳐 주시기를 부탁을 드렸습니다. 교우님은 올해 나이 70세로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신 교육가이십니다. 아내를 따라 보수교회를 몇 년 다니셨지만, 아무래도 맞지가 않아 새 교회를 찾으시다가 약 1년 전부터 저희 교회에 열심히 참석하고 계십니다. 이제 나오셔서 말씀하시겠지만, 교육자로서의 경험과 형무소에서의 도슨트 봉사경험을 통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이영욱교우의 하늘뜻>


        목사님께서 방금 소개한 이영욱입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왔으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부족하지만 잘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가 1908년에 준공하여 주로 국권회복과 독립 운동을 한 애국지사들을 수감하였습니다. 약 4만 명이 영어의 고통을 당하셨고 그 중 4백여 명이 고문사, 병사, 아사, 교수형 등으로 순국하신 현장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70 여 가지라고도 하고 300 여 가지라고도 하는 고문 방법이 있었고 그 중 몇 가지 고문하는 장면을 재현 전시하고 있으며, 관람객들이 고문과 사형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개발지상주의에 밀리고 역사물에 대한 보존의식이 부족한 관계자들로 인해 옥사의 대부분은 철거되어 많은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해설을 하면서 객관적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대상에 따라 저의 주관적 해석과 견해를 약간씩 첨가하고 있으며 그래서 가끔은 관람객이나 같은 도슨트로부터 의혹을 살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을사늑약에 대한 얘기를 할 때에 현재 한반도의 상황을 비교하여 국군 통수권과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예민한 문제도 거론합니다. 외교권과 더불어 군 통수권은 국가 구성 3요소인 국권의 문제이며, 자주 독립 국가 여부를 재는 잣대임을 말하고 있으며, 동서고금에 어느 나라든지 외국군이 주둔하게 되면 이는 단순한 국방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정치사회 영역에 간섭하여 각종 불평등과 불이익이 있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될 것이 아니냐고 문제의식을 자극하기도 하는데 국가보안법을 의식해서 매우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역사청산의 문제에 있어서도 외국과 우리나라의 경우를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네델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그리고 중국의 장개석과 모택동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까지도 과거 청산을 가혹하게 행하였으며 특히 프랑스는 4년 동안의 독일 점령 하에서 15일 이상 발행했던 신문을 폐간시키고 재산은 국유화했으며 언론 종사자들을 처단하고 재산 몰수를 행했습니다. 당시 정식 판결로 처형된 사람이 약 만 천명이나 되고 즉결 및 약식재판으로 처형 받은 사람이 약 12만 명에 달합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너무 보잘 것이 없습니다. 친일파는 미군정 하에서 재빨리 반공투사로 변신하여 권력에 충성함으로 계속 대를 이어 기득권을 구축하였으며 현재 우리나라의 지도급에는 이들의 후손들이 버티고 있어서 과거 청산은 지지부진하고 따라서 민족정기는 죽어가고 있는 반면 애국독립지사들의 후손들은 해방 조국에서 경제적 하층민으로 살아가야하는 모순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 자칭 민족 신문이라고 억지를 쓰는 다들 알만한 신문들은 권력과 유착하면서 지금도 2분법적 냉전 논리와 강자 편에 서서 여론을 왜곡시키며 사주들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하지요.


       그리고 고문에 대한 것을 잘 알고 있는 경찰관 관람자에게는 욕조 고문 재현장면에서 “박종철군 아시죠? ‘탁’하고 책상을 쳤더니 ‘억’하고 죽더라”는 말로 해설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는 서양인들은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았었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그토록 심한 고통을 당했다는 사실은 여기 와보고서야 알았다고들 말합니다. 일본인들이 많이 오는데 수학여행 학생들이 제일 많습니다. 성인 노년층의 경우는 대부분 자신이나 그들의 부모들이 한국과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가끔 극우 일본인들도 있는데 그들은 저들이 참혹한 고통을 가했던 서대문형무소에까지 와서 식민지 지배를 통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하고 가는 것을 보면서 저는 앞으로 더욱 일본을 경계하여야지 누구처럼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망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양심적인 일본인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알게 되어 고맙다고 얘기하고 깊이 반성한다는 말도 합니다.


        대한제국 말 저들이 한반도를 어떤 과정을 거쳐 식민지화하였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양의 탈을 쓰고 용의주도한 계획 속에 진행된 식민지 침탈의 과거 역사에서 우리는 지혜를 얻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이 나라 대통령이 침략의 원흉인 일왕에게 감격인지 황송스러움인지 어쨌든 굴욕적 자세로 고개 숙여 인사하는 사진을 보는 순간 구토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대통령은 개인이 아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기에 그 사진에서 대한민국이 무참히 무너져 내리는 모욕감에 살이 떨렸습니다. 그렇게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히게 해놓고도 독도 뒤통수를 얻어맞는 저런 사람에게 허황된 부자의 환상에 빠져 착각의 한 표를 던져 준 우리 국민들이 불쌍합니다.


        닷새 후면 광복절을 맞습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일본 우익 못지않게 미화하는 저 뉴라이트 집단이나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몰지각한 사람들을 서대문형무소에 사흘만이라도 수감 체험을 시키는 광복절 특별 이벤트라도 벌리고 싶습니다. 특히 역사의식이 부족한 대통령은 한 주일 쯤은 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년 전 폴란드 크라카우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낭여행 중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저는 이스라엘 청소년들 백여 명이 6각형 별이 그려진 그들의 국기를 두르고 받는 진지한 집단 교육현장을 목격하면서 이사악의 후손들인 그들이 수십 배가 되는 이스마엘의 후손들을 압도하며 발전해가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형무소 역사관에서 봉사하면서 부모의 손을 잡고 와서 진지하게 공부하는 아이들을 바라 볼 때는 많은 보람이 있습니다.


        금년은 서대문형무소가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45년까지 37년간 일제 치하의 대표적 감옥이었고, 해방 이후 1987년까지는 형무소, 구치소, 교도소등으로 사용되었으므로 42년간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감옥이었습니다. 수많은 통일운동가와 민주인사와 양심수 사상가등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며 신음하였던 곳으로써 민주주의 쟁취와 수호의 성역이라고 할 만합니다.


        독립 운동가이면서 정치가인 조봉암씨와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씨 등이 원통하게 사형 당했고, 유신 독재시대에는 저 유명한 사법살인이 정권에 의하여 자행되었는데 그것은 소위 조작된 인민혁명당 사건으로써 1975년 4월9일에 대법원 확정 판결 20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8명을 사형 집행한 사형장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해방 후에도 굴절된 법의 잣대로 인하여 서대문형무소는 수많은 한을 생산한 곳입니다.


        이제 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운영하는 관리공단 책임자에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사실대로 다시 대폭 바꿔야 한다면서, 해방 전 일제 치하의 전시 못지않게 해방 후의 역사적 사실들도 전시를 하여 사상과 양심의 자유의 소중함.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과 같이 중요함을 청소년들에게 깨닫게 해야 한다고 하였더니 협소하다는 이유로 곤란하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저는 일제시대이건 독재시대이건 과거사를 확실히 정리하고 과거에 대한 교육을 잘 하자는 것은 보복이 아닌 용서와 화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며,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화해와 평화로 오신 예수님의 뜻이기도 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역사관에 전시된 허위 의병장이 이곳에서 사형에 의하여 순국 직전. 국가 주권을 회복치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통탄함을 읊은 유시를 낭독하고자 합니다.


國恥民辱/ 乃至於此/ 不死何爲/ 父葬未成/ 國權未復/ 不忠不孝/ 死何暝目

나라 수치 백성 치욕/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죽지않고 어이하리요./

아버지의 장례도 치르지 못했는데/나라의 주권도 회복하지 못했거니/

충성도 못하고 효도도 못한 몸이/ 죽은들 또 어떻게 눈을 감으랴.


<조헌정목사의 하늘뜻>


       815을 건국절로 둔갑시키는 것은 북한은 우리 민족의 일부로 보지 않겠다고 하는 반통일 선언이기도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자주외교권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한 나라가 존재하지 않은 것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 인간이 폭압적인 공권력에 의해 감옥에 갇히고 그래서 공민권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그 인간이 역사에서 그 존재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성서의 야훼 하느님은 그러한 공민권을 박탈당한 히브리 노예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셨고 그 노예들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근거를 삼고 있습니다. 역사를 권력을 가진 자의 입장에서 볼 것이냐? 아니면 눌린 자 빼앗긴 자의 입장에서 볼 것이냐? 할 때 성서는 항상 빼앗긴 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아왔던 것입니다.


        최근 부시대통령이 이명박대통령을 만나고 갖습니다. 별다른 협의사항도 없었고 그저 둘이 친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왔습니다. 신문을 보니까 이명박대통령이 환영사에서 부시대통령을 환영하는 인파는 많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은 적었다고 말하자 부시가 크게 웃었다고 합니다. 이명박정책의 실용이라는 것이 숫자놀이이긴 하지만,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이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구세주로 결코 고백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분명 소수였고 분명 예수는 다수에 의해 그리고 로마와 예루살렘 성전이 단합한 공권력에 의해 처형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이 다 열렬한 기독교인들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이들은 노예의 신음소리를 듣는 야훼 하느님이나 소수 가난한 자의 편에 서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수와 권력의 지배욕으로 대변되는 바알신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날 저녁 저는 약 50여명의 목사 평신도들과 함께 광화문 감리교회관 앞에서 촛불을 켜고 부시의 방한을 반대하는 거리기도회에 참여하고 있었고 시청 앞 광장에는 우리를 사탄이라고 일컫는 3만 명에 가까운 보수기독교인들과 해병대를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성조기를 흔들면서 부시의 방한을 환영하는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예수님 당시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그날 성 반대편에서는 빌라도 총독을 비롯한 로마 군인들의 행렬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시민 대부분은 이 총독의 행렬에 참여하여 로마의 황제 깃발에 환호했습니다. 볼거리도 많았을 뿐더러 그것이 실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수의 행렬에 참여하는 숫자는 매우 적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이미 오래 전에 정부로부터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행렬에 참가하는 것은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했고 사회적 출세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래 그 행렬에는 자연적으로 이름 없는 소수의 민중들 어차피 잃을 것이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흔히 저는 그런 얘기를 듣습니다. 아니 진보는 왜 그 숫자가 적은가? 저는 분명 고백하지만, 숫자가 많으면 그건 더 이상 진보가 아니라고 믿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숫자 적은 것이 항상 옳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숫자로 말할 때 그건 이미 진보의 길을 포기한 것이고 더 나아가 예수의 길을 포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많이 가는 넓은 길은 멸망의 길이요 길이 좁고 험해 사람들이 잘 가지 않으려고 하는 좁은 길이 구원의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길이란 화해자의 길]


        이 좁은 길은 평화를 위한 화해자의 길을 말합니다. 사도바울로는 이 길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율법 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화해자는 그냥 말로만 화해하라고 말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허는 사람입니다. 원수가 되도록 만든 법조문과 규정을 폐지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다인이 아닌 민족은 모두 이방인이라고 불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적대시하고 경멸한 이방인은 지배자 로마인이 아닌 자신들의 반쪽이었던 사마리아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당시의 법은 사마리아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말을 거는 것조차 금지했습니다. 그 지역을 방문하는 것이 금지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것이 무슨 법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남한의 법은 정부의 허락없이 북쪽 사람과 만나 대화하거나 그 지역을 방문하면 범법자로 규정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통역을 세울 필요도 없는 같은 말을 하는 동족이고 더구나 그중에는 한 부모의 핏줄을 나눈 자매나 형제도 있고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자식도 있습니다. 정부가 허락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머니가 수 십 년 만에 자식을 만나 얼굴을 만지고 껴안으면 범법자로 몰아 감옥에 넣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반인륜적인 법을 어떤 목사들은 생명같이 여기고 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북쪽에 계셨다면 그렇게 했을까? 참으로 마음이 병든 사람이고 그 영혼이 죽은 사람입니다.


        그날 촛불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연행해간다는 소식을 듣고 목사님들 일행이 성경구절이 적힌 현수막을 앞세우고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무런 폭력이나 물리적 시위도 없었지만, 경찰은 물대포를 쏴 68세의 문대골목사님은 길바닥에 쓰러지셨고 이에 항의하여 연좌시위를 하던 중 경찰에 완전 포위된 가운데 20여명의 목사님과 교인들이 끌려갔습니다. 그중에는 들꽃향린교회의 김경호목사님과 강남향린교회의 박경장집사님도 있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제 옆에 앉아 있는 여목사님을 끌고가길래 저도 조용히 눈을 감고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나라는 소리가 없어요. 그건 수염덕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한겨레기자가 저한테 와서 인터뷰를 했는데, 목사님 나이가 많이 드셨는데, 무섭지 않느냐고 질문을 하더군요. 그래 법이 보장하고 있는 평화시위를 경찰이 억압하고 인권을 짓밟는 일에 목사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느냐고 대답을 하였지요. 이름과 나이를 묻기에 이름을 말하고 55세라고 말하자 무척 실망하던 눈치더군요. 아마 70세에 가까운 할아버지로 보았는데 그렇지 않아 기사거리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 당시 예장 합동측 목사님인 방인성목사님은 물대포를 온몸으로 막아섰고, 두 아들과 함께 도봉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되지 않아 목사님들은 모두 훈방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 목사님들은 다른 사람들이 함께 나가지 않는 한 나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방인성목사님이 기자회견을 하던 중에 이런 얘기를 하시더군요. “아니 같이 붙잡혀온 신자들을 두고 목사가 혼자 나갈 수도 없지만, 어떻게 아들 둘을 두고 아버지가 혼자 집을 갈 수 있겠느냐고. 이명박씨라면 그럴 수 있는지 몰라도 자기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들 둘을 두고 목사인 아버지 혼자 나가라고 말한 경찰과 검찰들, 그들은 이미 양심이 무엇인지 인륜이 무엇이지를 잃어버린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남북간의 이념갈등은 이렇게 이 땅의 사람들을 모두 반인륜적인 비정상적인 인간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통치자들은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어 낼 때 통치가 편합니다. 형제를 이간시켜 서로를 적으로 만드는 것은 divide and conquer 라는 마키아벨리의 기본통치방식입니다. 미국은 흑백갈등이 있습니다. 일본은 조센징을 비롯한 오끼나와 혹카이도의 소수민족을 차별합니다. 이는 모두 통치를 쉽게 하는 방식입니다.


        남한은 그저 친북 빨갱이라는 단어 하나면 모든 통치가 가능한 사회입니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진리와 평화를 추구하는 아름다운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과 사람을 미워하는 분노가 함께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나쁜 마음은 너무나 쉽게 일어나지만, 아름다운 마음은 정말 각고의 훈련 없이는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는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고 싶은데, 실제 쉽게 나오는 말들은 불평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말들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마음이 더 쉽게 일어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 본성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신앙을 필요로 합니다. 성서는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부름의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우리 인간은 본래 정의와 평화와 생명이라는 하늘의 뜻을 실천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성공과 기쁨이 이런 일들 속에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 야훼 하느님은 예언자 에제키엘을 통해 하늘 깊은 뜻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에제키엘이 본 통일왕국의 회복]


        에제키엘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 가 있던 시대에 하느님의 뜻을 선포한 예언자입니다. 먼저 그는 마른 뼈들이 일어나는 곧 죽었다고 생각하던 유대왕국이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이 민족의 부활 희망은 단순한 유대왕국만의 회복이 아니었습니다. 분단 이전의 완전한 회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과거 원수관계에 있었던 유다왕국과 사마리아 왕국의 통일 왕국의 회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너 사람아 나무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와 한편이 된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써라, 또 다른 나무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요셉, 에브라임의 막대기와 그와 한편이 된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라고 써라. 그리고 이 둘을 붙여서 한 막대기로 만들어라. 둘이 하나가 되게 잡고 있어라. 그리고 사람들에게 일러주어라. ‘주 야훼가 말한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 이제 이끌어 내리라. 그들을 한 민족으로 묶고 한 임금을 세워 다스리게 하리니 다시는 두 민족으로 갈리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반으로 갈라져 두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진지 63년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전쟁을 비롯한 온갖 방법으로 서로는 서로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왔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민주정권을 통해 평화통일을 선언하고 둘이 서로 다투는 것은 모두의 죽음 밖에는 결론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두 번의 정상회담을 비롯하여 서로가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들을 끊임없이 해왔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명박정권의 출발과 더불어 우리는 다시금 이전의 원수 상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남북경색뿐만 아니라 남한 내의 언론장악과 경찰 백골단의 부활은 70년대의 공안정권으로 시계추를 되돌리고 말았습니다.


        세계가 하나 되자고 평화의 올림픽이 지난 금요일 북경에서 열렸지만, 불행히도 이전 두 번의 동시입장과는 달리 남과 북은 따로따로 입장하였습니다. 서로 얼굴도 보기 싫다고 멀리 떨어져서 들어왔습니다. 그곳에 살던 조선족들은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북도 남도 고국으로 삼을 수 없는 떠돌이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북과 남이 서로 원수시하면 누가 이득을 볼까요? 625 전쟁을 통해 이득을 본 나라는 어디입니까?


        이념이란 이렇게 한치 앞을 못 보게 만듭니다. 바로 앞에 낭떠러지가 놓여 있어도 양들은 바로 눈앞의 풀만 보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집니다. 여러분 미움의 포로가 되지 맙시다. 우리의 어리석음과 그 죄악을 깊게 뉘우치십시다. 딸 아들들이 서로 다툴 때에 괴로워하는 어머님의 마음이 곧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어머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그건 불효입니다. 불효한 자식이 성공한 예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성공한 민족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향린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들로 하늘의 말씀을 이 땅에 선포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같은 민족을 미워하도록 만드는 담을 허물고 법조항들을 폐지하는 오늘의 화해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에제키엘에게 말씀하신대로 여기 저는 두개의 막대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하나에는 유다 대신에 대한민국이라 씌어져 있고 다른 하나에는 에브라임 대신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씌어져 있습니다. 야훼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이를 두개의 띠로 묶어 하나의 십자가로 만들겠습니다. 하나의 띠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이십니다.’ 다른 하나의 띠에는 ‘우리는 하나다.’가 씌어 있습니다.


        이제 하나가 된 우리의 조국을 그리면서 남북의 교회가 함께 작성한 평화통일주일 기도문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