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9 들녘/향린 자매결연 13주년기념주일

빈틈없는 세상에서 빈틈을 만들자!  / 임보라 목사
(시편 133 : 1-3 ; 요한 15 : 1-8)

들녘교회 교우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향린교회 부목사인 임보라입니다.
2003년 여름 향린교회에 부임한 후, 2004년부터 매해 들녘교회에서 진행되었던, 농활, 청년 수련회, 입당예배 등 들녘교회를 방문할 기회는 많았는데, 이렇게 주일 예배에 참석한 것은 처음입니다. 그래서 아마 저를 처음 보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인지, 아까 ‘학생!! 저~앞으로 가서 앉지?’그러시는 분도 계시더군요. ‘학생’이란 말에 기분은 좋았습니다만.....

요근래 좀 뜸~했던 것 같습니다만, 매해 6월이면 들녘과 향린이 자매의 연을 맺은 것을 기념하는 주일을 함께 지킵니다.
13년이라는 세월은, 아기가 태어나, 엄마의 젖을 먹으며, 옹알이를 하고, 뒤집기를 하고, 스스로 일어나 걷고, 어느덧, 10대에 접어들어 청소년기의 초반부를 한창 지나고 있는 셈입니다. 13살이면 사춘기 아니 요즘은 좀 빨라져서 10살이 된 제 딸도 자신이 십대라고 선언을 하는데, 그렇다면 오춘기 인가요? 어찌되었던 이 시기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한창일 때인데, 우리의 자매결연 관계도 이즈음이면 지난 시간들에 대한 돌아봄과 새로운 전망 등을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따 읽게 되겠습니다만, 13년 전의 자매결연 공동선언문을 보면,
서로의 창립 정신이 다르고, 교회가 서있는 지리적 위치가 다름에도, 살림과 해방, 자주, 통일을 위해 함께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서로를 탐색하고, 상호 방문하고,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들녘과 향린은 1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린이와 청소년의 연합 활동, 의료선교 활동, 유기농 농산물 직거래를 비롯하여, 서로가 위치해 있는 지역에서의 선교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제가 두 교회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하게 그리고 돈독하게 맺어져왔는지, 그 발자취를 찾아보기 위해, 향린에서 발간한 향린지와 향린 파발마를 1995년도 분부터 쭉 읽어보았습니다.

1997년도에 실린 이세우 목사님의 글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손톱도 지문도 닳아버린 땀에 젖은 농부의 손길과 인간이기에 절대자를 찾는 믿음의 행위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로부터 배운 의와 진리에 합당한 모습을 좇는 빛의 자녀의 삶은 곧 농부의 고된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논과 들로 나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세우, 향린지 여름호, 1997)]

[자매결연을 맺고 우리가 바라던대로 농촌현실이 나아진 것은 없다. 오히려 더 악화된 감도 없지않다. 자매결연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다. 귀찮고 번잡스러운 일들만이 주어진다. 자칫 형식화, 건조화 되면서 짜증스러울 수도 있는 관계를 무릇 따뜻한 가족과 친지의 관계로 다져야할 시기라고 여겨진다. 앞서고 높은 계획을 논하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특별한 의식절차는 없어도 서로 만나보기를 원하며 왕래하면서 밑그림을 그려 가는 것도 꽤나 즐겁고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이세우, 1997. 여름, 향린지)]

이 글은 자매결연 2주년을 기념하는 무렵의 글입니다.
당시의 귀찮고 번잡스러운 일들로 여겨졌던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운명공동체, 생태계 보존, 선교협력관계, 민족 교회
우리의 자매결연관계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4가지의 말이 공동선언문에 담겨있습니다만, 다소 딱딱한 느낌이 들지요.
대신, 앞서 읽어드린 ‘서로 만나보기를 원하며, 왕래하면서.....’라는 말을 먼저 되새김질 해보면, 우리의 관계에 대한 느낌이 훨씬 짠~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만나보기를 원했고, 얼마나 살갑게 왕래하면서 지내온 것일까요?

향린교회는 강남향린교회와 들꽃향린교회는 형제교회로, 들녘교회는 자매교회로 표현을 합니다.
형제는 뭐고, 자매는 뭘까? 형제애, 자매애, 아..그러고 보니 자매결연이라고 하지, 형제결연이라는 말은 거의 쓰지를 않지요.
형제결연하면 무슨 조직폭력배들의 관계를 떠올리게 되다보니 그런 걸까요?

꼭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형제들끼리 모아놓으면 서로 육박전을 벌이거나, 침묵으로 일관한다고 하지요? 그렇다고 향린교회가 강남향린교회나 들꽃향린교회와 육박전을 벌인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
그에 비해 자매들이 모이면-저도 딸만 셋인 집안의 장녀입니다만-온갖 이야기들을 다 나누지요. 같이 울기도 하고, 배꼽을 잡고 구르면서 웃기도 합니다. 
굳이 자매와 형제를 대립관계로 놓고 싶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은 자매애를 더 살가운 관계로 느끼지요. 섭섭하면 섭섭하다, 좋으면 좋다, 이렇듯 감정표현을 더 솔직히 잘한다는 거지요.

자매-형제가 아니어도, 사람과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고, 깊이 서로를 알아가게 되면 당연히 서로를 그리워하고, 또 그 그리움으로 만나면, 끈끈함 속에서, 한 뜻을 세우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보고 싶어 했는지를 확인하고 싶고, 그리고 우리가 품고 있는 한뜻은 과연 무엇인가를 되묻고 싶은 겁니다.

우리, 그동안 얼마나 서로 보고싶어 했는지 한번 여쭤볼까요? 자~먼저 들녘 교우께 묻습니다. 다음은 향린교우요~

들녘은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있습니다. 몇 년 새 주변에 고층 아파트도 생겼고, 가게들도 많이 생겼지만, 생명을 담고 있는 논과 밭의 모습은 여전합니다.
향린교회에서 요즘 매주일 점심식사 때 먹는 유기농 쌀이 자라고 있는 논에, 연중 행사처럼 겨우 한번 들어가지만, 그래도 온갖 생명이 숨겨져 있는 논바닥을 일년에 한번일지라도 한번 밟고나면 그 생명력이 온몸에 전해집니다. 일년에 한번이니까 그렇지, 얼마나 힘든데요?라고 하실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겨우 하루 노동을 했는데도, 목이 잘 돌아가지도 않고, 오늘 아침 일어날 때 보니 ‘아이구...허리야...’하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왔습니다만, 저희들은 짧긴 해도, 이렇게 땀흘려 농사짓는 노동에 참여함으로, 도시생활에 찌든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향린은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있는 명동에 있지요.
저희에게는 일굴 수 있는 논과 밭이 비록 없지만, 요즘 같아서는, 매일 열리고 있는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위해 제공할 거리들이 무엇이 있는지를 고민하면서, 집회 참석 뿐 아니라, 할 수 있는 여력이 될 때마다, 생수를 제공하고, 때론 김밥을 제공하고, 물대포를 맞으며 버텨내야 하는 선두에 있는 분들을 위해 비옷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위치도 서로 판이하게 다르고, 활동하고 있는 겉모양도 무척 다르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은 생명, 정의, 평화라는 공통된 주제를 갖고 서로, 때로는 함께 몸부림 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QSA, MRM, AMR 등등의 말이 한창 나옵니다. 뭔말인지 통 할 수가 없습니다. 품질 체계 인증(QSA), 기계적 회수육(MRM), 기계적 분리육(MSM), 선진회수육(AMR) 이렇게 우리말로 바꾸어 보아도 말뜻을 알기 쉽지 않습니다.

안심, 등심, 꽃등심, 채끝, 양지, 사태 등도 제대로 알까 말까 인데, 또, 곱창, 막창, 사골뼈 등이야 많이 쓰는 말이지만,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살코기가 분리되는지 여부에 따라, 또 살코기 안에 뼈가 얼마나 갈려 들어갔는지 칼슘 성분을 따져보아야 하는 등, 정말 알아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세세한 것들을 굳이 국민들이 일일이 따지지 않더라도, 안심하고 먹거리를 얻을 수 있게 해야 하는 임무가 정부에게 주어진 것인데, 자꾸 거짓말하고, 감추고 하니, 국민들이 복잡하고, 어렵지만, 알아야겠다고 나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서울에서는 정부의 고시가 강행된 지난 수요일부터 촛불집회에는 긴장감이 팽팽합니다. 어제는 전주시 오거리 광장에서의 촛불집회에 참석을 했는데,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한나라 당사까지 행진을 했습니다. 서울에서는 부상자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모여서 발언을 듣고, 문화공연을 하고 하던 분위기에서, 이제는 발언을 듣고, 바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합니다. 명박산성이라고 불리우는-컨테이너 박스에서 유래되었으나, 현재는 전경차들-곳에 어제도 이런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이명박, 국민하고 한번 해보자는거냐!’
정부가 국민을 향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목요일에 집회에 나가있는데, 제가 교회 깃발을 들고 서있게 되었습니다. ‘청년예수’라고 써있고, ‘향린교회’라고 써있는 깃발입니다.
50대로 보이시는 두분의 여성이 제 곁에 서서, 이렇게 묻습니다.
‘왜 저~기서 기도회 안하세요?’
‘기도회를 어디서 해요?’라고 되물었더니,
‘아니 왜, 저기서 밤새 주여주여~하는데 있던데~’
촛불을 반대하는 구국기도회를 말하시는 것 같아서, 
‘저야 여기 있어야지요~’라고 했더니,
되돌아 오는 말씀이 걸작입니다.
‘목사님 몰래 나왔겠네요~’

요즘 목사, 장로가 거의 욕과 같은 단어가 되어버려서, 제가 차마 ‘저 목사인데요~’라고 말을 못하고, 쿡쿡 웃다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 교회는 목사님이 여기 나오지 말라는 말 안해요? 여기 가면 사탄의 무리에 섞이는거라구, 빨갱이들 속에 들어가는거라구....’
‘아..저희는 다같이 나와요. 목사님두, 교인들두....’
그러자, 두분은 박수를 칩니다. ‘어머어머....그런 교회가 있구나....어머어머 좋겠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도 설교시간에 촛불집회같은데 나가면 안된다고 들었는데...저희는 목사님 몰래 여기 나왔어요.’

남한 사회에는 이런 교회가 대다수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릅니다. 2008년 6월을 지나고 있는 요즘은, 믿는 사람들조차도, 기독교인이라는게 너무도 창피하다고, 어떻게하다 교회들이 이모양이 됬느냐며 한탄을 합니다.

정준영 목사라고 향린에서 있었고, 지금은 전북 단양교회 담임목사로 있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근래 기장 총회 회보에 기도문을 실었는데,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주여!

만일 내가 배고픈 이들을 볼 수 없다면,
나는 눈 먼 소경이오니,
나의 불필요한 두 눈을 빼어내소서.
그리고 저를 용서하지 마소서.

만일 우리가 배고픈 이들을 보고도 외면하거든,
우리는 벌써 배부른 돼지이오니,
우리를 부디 모른척하소서.

만일 우리가 배고픈 이들의 아우성을 듣지 못한다면,
우리는 귀가 막힌 귀머거리오니,
우리의 기도에 결단코 응답하지 마소서.

만일 우리가 이들을 양산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보고도
가만히 앉아 허공을 때리는 기도만 한다면,
우리는 이미 빛바랜 빛이고, 맛 잃은 소금이며,
그것으로 경건한 척하는 율법주의자들이오니,
우리가 인생의 구덩이와 수렁에 빠질 때, 조금도 개입하지 마소서. "

보려하지 않고, 외면하고, 귀를 막아버리고 앉아서, 허공 때리는 기도만하고  있는 오늘날의 기독인들의 모습을 꼬집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희망이 아닌 절망을 안겨다주고 있는 상황에서 들녘과 향린은, 자매결연을 맺은지 13주년이 되었다며 자축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자축일까요?

오늘 함께, 읽은 요한복음의 포도나무 이야기는 모두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포도나무에 달린 가지들입니다.
함께 주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그렇게 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머물러 있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도 잊지 않고 강조하십니다.

이 말씀을 예수께서 하신 것은 분명, ‘나는 나무에 붙어있다!!’하면서도 정작 과실은 맺지 못하는 이들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너 아니니? 너지?’이럴 것 없이 ‘바로 우리, 바로 내’가 그렇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둘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나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그러나, 떨어지면 서로가 살 수 없는 사이입니다.
예수님과 나는 그리고 우리는 떨어지면 서로가 살 수 없는 사이입니다.
‘에이~예수님이야 우리 없어도 살 수 있지요~’ 하실런지 모르지만,
예수님도 우리가 꼭 필요합니다.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있는 그런 조각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양팔과 양다리가 되어줄 분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씌여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의 양팔과 양다리가 되어드려야 하기에, 우리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입니다.

들녘과 향린도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서로가 없으면 안되는 사이입니까?
서로서로를 지탱해주면서, 보다 많은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까? 앞으로 함께 맺어가고자 하는 열매에 대한 꿈을 나누고 있습니까?

돈이면 최고이고, 누구를 짓밟더라도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배불리 먹는 사람들은 따로 있고, 죽어라 노동을 해도 늘 빈곤 속에 허덕여야 하는 이 사회 속에서, 우리가 자연생태계를 보존하고, 죽음의 문화를 생명문화로 바꿔내고, 서로를 공동 운명체로 여기며 협력하고 연대해 나간다는 우리의 고백을 되새겨 봅니다. 또, 그렇게 하기로 한 약속을 잊지않고, 서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자리가 바로 이 자리라고 믿습니다.

목사님께서 심방을 못간 줄 아시고, 아프신 교우의 문병을 가서, 목사님이 보내셔서 와 봤다고 하시고, 목사님이 사준 것이니 맛있게 드시라고 하셨다는 속깊은 권사님이 계신 들녘.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생명의 물줄기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하고 이곳에 오신 분이 계신 들녘.

이 시대의 악법 중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거나, 2008년 현재도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는 교우들이 있는 향린.
시청 앞, 광화문 사거리에 청년예수 깃발을 휘날리며 명박산성을 넘기위해 모래산성을 쌓는 일에 어린이, 청년, 어른 할 것 없이 참여하는 교우들이 있는 향린.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자매,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 (시편 133편)

우리끼리 좋기 위해, 우리끼리 즐겁기 위해 모인 것은 아닙니다.
일단 이렇게 시작해서, 우리가 아닌 더큰 우리가 좋기 위해, 즐겁기 위해,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 가기 위해 우리는 열매를 맺어가며 나아가야겠습니다.

숨이 턱턱막혀오는 현실에 굴하지 말고, 잡은 손, 더 굳게 잡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양극화, 경쟁, 독선, 소통의 부재로 대변되는 이 시대.
우리는 넉넉함으로 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동반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완벽, 최상, 최고만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이 시대.
한걸음 더디가더라도, 서로가 더불어 살아감으로  새로운 희망의 꽃을 피우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그러나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채희동 목사님의 시를 읽음으로 오늘의 하늘뜻 나누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하늘뜻 제목도, 이 시 중에서 따온 것입니다.

빈틈을 타고
 
  ‘틈을 보이지 마’
  바늘구멍보다 더 작은 틈만 보여도
  금방 내 온몸의 진액을 빨아먹을 것만 같은
  빈틈없는 세상에서
  빈틈을 만들자

  나도 빠져나가고
  너도 들어 올 수 있는
  빈틈을 만들자
  
  좀 못생겼음 어때,
  멍청하게 보이면 어때,
  실없는 놈이란 소리도 좋다
  내가 열어놓은 빈틈,
  그 빈틈을 타고
  너와 내가 들고 날고
  그 빈틈을 타고
  뭇 생명이
  숨을 쉬고
  그 빈틈으로
  성령의 바람은 불어온다.

(채희동)

다함께 침묵 가운데 다짐의 기도를 합시다.


[파송사/축도]
평안히 가십시오.
그러나 나만의 평화가 아닌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내 멋대로의 자유가 아닌, 하늘과 땅의 뜻을 이어 참된 자유를 누리십시오.
하느님의 사람답게 당당하게 한 주를 열어가십시오.

우리와 더불어 얼씨구나~좋다! 하시는 하느님,
내 곁에 꼭 붙어서 좋은 열매 함께 맺자 하시는 예수님,
막힘없이 온전한 소통을 이루어주시는 거룩한 영, 성령님,
서로의 사랑을 나눈지 13번째 해를 맞이함을 기뻐하는
들녘, 향린의 모든 교우들과
죽임이 아닌 생명을 일구어 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님의 양팔과 양다리가 되어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한 빈큼을 열어가고자, 애쓰는 모든 이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