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아기 예수를 기다리며

이사야 40, 1- 8 ; 마르코 1, 1- 8


유  연 희 목사



      


       안녕하세요? 지난 수요일 저녁예배에 이어 이렇게 대림절 둘째 주일 예배를 향린의  교우 여러분과 함께 드리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교우 여러분, 대림절을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저는 아주 어줍지 않게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희 아버지께 평생 ‘사랑한다'는 말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어머니하고는 다정하게 장난도 표현도 잘하는데 아버지하고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많아 잘 대들었고, 철이 들었을 때는 쑥스러워서 사과도 못했고, 사랑한다고도 말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연세가 88세이신데, 나한테 사랑한다는 소리도 못 듣고 돌아가시게 하게 생겼구나.’ 그래서 계속 별렀습니다. 가끔 그 생각이 날 때마다 전화를 들고 걸려고 했지만 몇 번이나 못 걸었습니다. 몇 가지 좋은 구실이 떠올라서 그 말을 안 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첫째, 아버지는 귀가 안 좋으시다. 전화로 그 말 해봤자 잘 못 알아 들으실거야. 둘째, 아버지는 옛날 분이라서 그 말을 모르실거다. 맞아, 모르실거야. 왠지 이유가 그럴듯해서 자꾸 전화를 걸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대림절 시작 즈음에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그냥 걸었습니다. 보통 어머니가 받으시는데 외출하시고 하필이면 아버지가 받으셨습니다. “아버지 건강하시고요? 개집은 덮어 주셨어요?” 애꿎은 개를 들먹이고 있었습니다. 울 아버지는 세상에서 통화를 제일 짧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냥 안부 전화인줄 알고 먼저 끊으실 수 있었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그냥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저기, 고생하시면서 우리들 키워주시고 학교 보내주셨는데 제가 한 번도 고맙다는 소리를 안 한 거 같아서요.” 갑자기 아버지는 너무 잘 알아들으시며 “알어, 했어, 됐어”라고 말하셨습니다. 제가 이어나갔습니다. “아버지 존경하고 사랑해요.” 아버지는 “그래, 고맙다”하고 끊으셨습니다. 실제 전화할 때는 “아버지 존경하고 사랑해요.”라면 대목에서 막 울먹이며 했습니다. 저는 대림절을 이렇게 아주 어줍지 않은 사랑고백으로 시작했습니다.

  

       남은 대림절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시며 메시야를 기다리시렵니까?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니 외출을 했다가도 얼른 집에 들어가고 싶어집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우리 대부분은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IMF보다 구조적으로 더 어렵다는 요즘의 경제상황 속에서 우리의 어려운 이웃들은 이 겨울이 아무리 여러 겹으로 껴입어도 참 추운 겨울이 될 듯합니다.

       대림절,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따뜻한 한 아기, 따뜻한 구세주를 기다립니다. 아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이 대림절을 가장 잘 보내는 일 중 하나가 우리 자신을 좀 따뜻하게 데워놓는 일이겠다 생각해봅니다. 체온을 한 0.1도라도 높여 따뜻하게 데워놓으면 아기 메시아를 안아주기가 덜 미안하지 않을까요? 체온이라는 게 신체 내부의 온도인데 마음을 따뜻하게 하면 체온도 소아처럼 좀 따뜻해지지 않을까 상상합니다.


       교우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따뜻한 사람이 되십니까? 저는 지난  겨울에 산타노릇을 하며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산타는 두 종류입니다. 자신이 워낙 부자라서 갖고 있는 것 중에서 남에게 주는 산타든가, 아니면 열심히 절약해서 모은 것으로 남에게 주는 산타입니다. 저는 이에 속하지 않는 산타로서 남의 것을 가지고 남에게 선심 쓰는 일을 해보았습니다. 어떤 분이 쌀이랑 좀 주신다고 하더니 진짜로 트럭 한 대로 가득 쌀, 찹쌀, 배추, 무, 김장김치, 온갖 과일을 보내주셨습니다(이분은 이렇게 선물하는 것으로 유명하신 분입니다). 식구도 없고, 보관도 어려워 주위에 나눠주어야만 했습니다.

  마침 학생 여럿이 함께 자취하는 곳을 알고 있어서 오늘처럼 추운 날 밤에 돼지고기 몇 근을 사서 쌀과 김치를 남편과 함께 배달해주고 왔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했습니다. 마치 제가 무척 착한 일을 한 것처럼 그렇게 보람 있고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도 이상하게 그렇게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참 놀랍고 근사한 감정이었습니다. 세상에, 남의 것을 갖다 준 것인데 그런 생소하고 멋진 감정이라니, 제가 얼마나 그러한 일을 안 해 보았고, 받고만 살았나 싶었습니다. 이 대림절에 내가 무얼 해야 다시 그런 감정 경험할 수 있을까 - 요새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가 어려워지니 복지기관들은 연말이면 줄을 서던 기부가 상당히 축소되었다고 걱정하는 것을 뉴스에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1930년대의 대공황처럼 어렵다고 하는 미국에서 다른 소리가 들려옵니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는 식량은행(푸드뱅크), `노스웨스트 하비스트'는 최근 보잉사 직원들로부터 예년의 세 배 수준인 현금을 기부 받았습니다. 이 식량은행은 회사 직원들이 연말파티를 취소하고 대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를 하기로 했다는 전화를 한 주에 한번 꼴로 받고 있다고 전했다. 미 인디애나대학의 자선활동연구소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자선행위는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인의 자선기부액이 지난 40년 동안 꾸준히 증가했고, 전 국민의 70%가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부는 주식 시장의 상황과 별로 관련이 없었다고 합니다. 주식시장이 폭락했던 2002년에도 국민의 70%가 평균 2천 달러를 기부했다고 합니다.


       미국심장학회(AHA), 자선단체 `유나이티드 웨이'는 올해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기부액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고요. 여론조사기관인 해리스 인터액티브가 지난달 전화조사 결과 성인 10명 중 약 절반은 자선 기부액을 더 늘리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모두 미래를 불안해하면서도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살기가 어려웠지만 희망을 나누려고 했던 모습은 오늘 성경말씀에도 나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에서 돌아온 후인 기원전 약 550년 쯤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그가 예언말씀을 들려주는 청중은 바벨론에서의 약 50년간의 포로생활 내지는 강제 이주생활 중에 돌아와 살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사야는 귀환자들에게서 환영을 못 받기도 하고 실망도 했지만, 열정적이고 긍정적이고 동정심을 갖고 예언활동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도자들을 따라 기원전 537년부터 몇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모습을 에스라, 느헤미야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국의 현실은 귀환자들에게는 경제, 정치, 종교 등 모든 면에서 도전 투성이었습니다.


       이사야로 하여금 40장을 노래할 수 있게 한 상황이 그 녹녹치 않은 사회현실 때문인지, 개인의 상황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희망을 노래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백성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그런 다음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주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의 영광을 함께 볼 것이라고 합니다. 광야에 큰 길을 내고 모든 계곡을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 넓고 넓은 광장을 만들라치면 주님이 오실 때 아주 잘 보일듯합니다. 그런데 예언자는 갑자기 또 크게 외치는 소리가 있다고 전하면서 앞의 이야기와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곧 말라버리는 들풀, 들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풀은 마르고 꽃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미천한 인간에게 위로와 사랑의 말씀으로 임하시긴 하되,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는 너무 엄청남 일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차이는 짧게 있다가 곧 시드는 들풀과 영원한 영광의 차이입니다.


       귀환민의 현실을 배경으로 두고 이 말씀을 생각해보면, 이스라엘 귀환민들은 처음에 돌아와서는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재건하느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행정 질서를 세우고, 옛 법을 개정하고 자리 잡고 사는 모습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사야는 사람들이 한쪽에서는 여전히 어려운 백성이 있는데 자신의 안전을 추구하며 편히 자리 잡고 사는 사람들을 보며 인간의 아름다움을 들풀과 들꽃에 비교하며 무상하다고 가르쳐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귀환 공동체에서 동족간의 경제적 착취를 덜어보려고 노력한 모습을 느헤미야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한 것은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의 사랑이 영원한 것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좋은 일을 참 많이 하셨습니다. 시골구석에서 태어나 서른 살까지 목수로 일했고 그러고는 순회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대학도 안 갔고, 직위도 없었고, 가족도 없었고 집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초대하시며 세워주셨습니다. 열심히 가르치셨고, 열심히 치유하셨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셨고, 낮은 사람들을 높이셨습니다. 그러시다가 어려운 순간도 많이 겪으셨습니다. 성전 상인들의 좌판도 엎었고, 높은 사람들과 부딪혔고, 결국 십자가형을 겪으셨습니다. 세상이 모두 그를 등졌을 때 그는 겨우 33세였습니다. 그분의 삶과 가르침은 너무 놀라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고백했습니다. 20세기가 왔다가 갔지만 오늘날 예수님은 인류의 중심인물입니다. 예수님만큼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여러 높고 낮은 순간이 있었지만 우리는 한 마디로 그분을 요약합니다. 사랑, 그것은 그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것도 아주 따뜻한 사랑. 그 사랑 때문에 향린의 교우 여러분과 제가 오늘 여기 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사람들이 따뜻해집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들려주는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저는 그들의 따뜻한 부모님을 만납니다. 한 여학생은 초등학교 때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보내주지 않아서 가난한 부모님을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보증을 서준 교인이 사라졌는데, 부모님은 그 사람을 고발하지 않고 대신 빚을 갚기로 하고 온 가족이 생활비를 바짝 줄여서 살아야 했습니다. 학생이 커서 부모님을 돌아보며 새롭게 발견한 것은 부모님의 인품과 신앙이었다고 했습니다. 이 학생은 글로벌 리더가 되고 싶고 아시아의 여성들을 섬기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두 번째 학생 역시 중학교 때 메이커 신발을 못 사주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고 합니다. 학생이 커서 새롭게 본 것은, 아버지가 항상 자신과 형의 운동화를 늘 직접 빨아주셨다는 기억이었습니다. 얼마 전 이 학생의 아버지가, 장로님이신데, 심장 문제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가족은 병원비가 걱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한 의사가 아버지를 알아보고 멈추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무개 집사의 아들이라면서 18년 전 의대 입학 때 장로님이 입학금을 대주신 것을 기억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의사의 어머니는 당시 홀로 어렵게 아들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장로님이 그 때 도움을 준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자신이 다 알아서 할 테니 병원비는 전혀 걱정하시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들으며 저는 그 남학생이 중학교 때 메이커 신발을 못 신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학생은 남미의 선교사로 가서 섬길 것을 꿈꿉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이 학생들의 부모님같은 신앙인들을 만듭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믿음 있는 자녀를 만듭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향린의 교우들을 만듭니다.    

       라벗 쉬내이스(Robert Schnase) 목사님(미 연합감리교회 감독)의 책, “열매 맺는 교회의 다섯 가지 특징”에 의하면, 다음 다섯 가지를 실천해야 교회가 성장한다고 합니다. 급진적인 대접/환대; 열정적인 예배; 의도적인 신앙 성장; 위험을 감수하는 선교와 서비스; 엄청난 관대함. 이 다섯 가지가 없으면 교회는 성장은커녕 자연스레 퇴보하고 도태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다섯 가지가 교회만이 아니라 기독교인도 개개인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다섯 가지 열매를 불러드리겠습니다(이따 나가실 때 인사하며 외우셨는지 시험을 보겠습니다). 한번 이 대림절 이 부분에서 체온을 올릴 수 있는 것을 뭘 하실 수 있는지 생각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한 1, 2년 전쯤에 미국의 북인디아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목사님이 동네 피자헛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식사했습니다(미국은 피자헛 안 비쌉니다). 거기서 일하는 20살짜리 제시카 오스본(Jessica Osborne)이라는 젊은 여성을 알게 되었습니다(미국에서는 손님과 일하는 사람들이 친분을 곧잘 쌓습니다). 제시카의 꿈은 언젠가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미국 대학진학률은 80%이고, 학비는 연 12,000-25,000불입니다. 올해 미국서 가정이 어려워 대학을 못간 학생은 40만명입니다. 작년에 대학 졸업생의 60%가 평균 22,700불 빚을 지고 졸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물어보면 상황이 여의치 않아 대학입학은 요원해지기만 했습니다. 사실 고졸로 피자헛 같은 데서 일해 갖고는 돈이 모아지지 않습니다.


       얼마 후 목사님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제시카는 떠나시기 전에 꼭 들러주시면 그 때 피자를 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들러 피자를 먹었습니다. 그 때 제시카는 목사님이 버섯과 올리브 타핑을 한 피자를 시켰고 음료수로는 마운틴듀를 시켰다고 기억했습니다. 제시카가 피자 쟁반을 가지고 목사님이 식탁으로 갔는데, 목사님이 제시카에게 만불짜리 수표를 내놓았습니다. 음, 요즘 환율로는 천오백만원이네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읽었을 때 저는, ‘목사님이 돈도 많네. 이 목사님이 무슨 교단이지? 개신교는 짠데, 혹 순복음이나 성공회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뉴스에서는 익명이었지만 이 목사님은 베키 브라우(Becky Browe)라는 미국 감리교회의 여목사님이셨고, 역시 감리교 목사였던 남편과 딸을 2003년에 교통사고로 잃었는데, 보험금이 나왔던 것입니다. 베키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러면 남편과 딸(브래드와 멜라니)을 기념하기에 제일 좋을 거 같아서요.” 베키 목사님은 엄청난 관대함으로 체온을 높이셨네요(참고로 저도 감리교목사입니다).

       대림절은 교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대림절은 세상력으로는 연말에 있어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할 때이기도 합니다. 대림절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품는 시간입니다. 현재에 속한 이 대림절을 잘 보내시면 과거를 과거의 자리에 놓고 미래를 텅 빈 새로운 공간으로 잘 맞이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향린의 교우 여러분은 남은 대림절 기간 동안 어떤 모습으로 따뜻한 몸을 만드실지 궁금합니다. 가시는 곳마다 따뜻한 난로가 되셔서 여러 사람 따뜻하게 품어주시며 아기 예수를 기다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기도하시겠습니다.


“따뜻한 사랑의 하나님, 들풀이나 들꽃에 불과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영원한 용서와 사랑의 표시를 보내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기다립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을 안고서 부끄러움과 감사함으로 기다립니다. 사랑과 따뜻함으로 오실 주님의 이름으로 비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