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오늘의 시대와 예언자 정신(15) 다니엘

“생명평화 세상과의 연대” (전태일열사기념주일)

다니엘 1:1-8;(다함께 8절) 마르코 8:31-38 


        다니엘서는 기원전 6세기의 바빌론제국의 느부갓네살왕이 지배하던 포로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는 기원전 2세기 그리스 알렉산더제국의 한 후예였던 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가 지배하던 시대의 핍박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기원전 6세기의 인물이 아닌 기원전 2세기의 인물이라고 하는 얘기는 기록 언어로도 증명이 됩니다. 1장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곧 2장부터 7장까지는 아람어로 씌어져 있고 이후 다시 히브리어로 씌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가 채택한 히브리 성서는 12장으로 끝나지만, 가톨릭교회가 정경으로 채택한 그리스어번역본 70인역 성서에는 13장 14장이 첨가되어 있고 이는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개신교에서는 외경이라고 부릅니다.


        그리하여 히브리 성서에서는 다니엘서가 역사적 사실성이 희박하고 꿈과 환상이라는 묵시문학적 기술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성문서(케투빔)의 하나로 봅니다만, 70인역과 기독교는 이를 예언서의 하나로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구성이나 내용에 있어서는 소설에 가깝지만, 단순히 삶의 지혜를 말하는 문학서가 아닌 분명 오늘의 시대를 깨우는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에 14번째 예언자 연속 하늘뜻펴기의 하나로 채택하였습니다.


[묵시문학의 공통된 특징]


        묵시(apocalypse)라는 단어는 ‘벗기다. 드러내다.’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왔습니다. 이 용어는 포로기 이후로부터 기원후 3세기에 걸쳐 나타난 종교문헌들을 지칭합니다. 이때는 유대백성들이 나라 없이 외국의 지배를 계속하여 받았던 시기입니다. 묵시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이 다니엘서와 신약성서의 요한의 묵시록인데, 이는 모두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핍박시대에 씌어졌습니다.


        묵시문학은 다음과 같은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역사는 하느님의 통제 아래 어떠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여기에는 시기와 계절의 계산이 계시된다. 우주의 악한 세력과 지상의 적들이 하느님과 신자들을 상대로 대적하지만 결국 패배한다는 것과 하느님의 신실한 백성은 보상을 받아 죽음 이후에도 새로운 생명으로 회복한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통치자들이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숫자와 그림을 이용한 암호를 자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때문에 말세신앙 집단들이 등장합니다.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신앙인들은 대개 다니엘이나 요한의 묵시록에 나타난 종말에 관련한 숫자들을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리하게 풀이한 말세론자들입니다. 묵시문학은 종말의 시간을 인간 역사 안에서 예언하고자 함이 목적이 아니라, 박해받는 신자들에게 굳센 희망을 가지라는 의도에서 씌어진 것입니다.


        우선 오늘 다니엘서를 세세하게 다룰 수는 없습니다. 큰 줄기에서 오늘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중요한 메시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다니엘서는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입니다. 1장부터 6장까지의 다니엘이 바빌론과 메대 왕궁에서 겪은 기적적인 이야기와 7장부터 12장까지의 다니엘이 본 세계 종말과 하느님 왕국에 대한 비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국적 가치관에 대한 거부]


        1장 처음 예루살렘성이 멸망하고 유다백성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다는 역사적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고 나서 다니엘을 포함한 네 명의 유대 젊은이들의 바빌론의 왕궁 교육을 받기 위해 간택되었다는 얘기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바빌론식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이는 마치 일제가 우리말을 금지시키고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제한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때 네 명의 유대젊은이들은 궁중요리와 술 먹기를 거절합니다. 내시부대신이 말합니다. “너희들이 왕께서 정한 음식을 먹지 않아 얼굴이 너희 또래의 다른 젊은이들보다 못하게 보였다가는 내 목이 달아난다.” 다니엘이 말하기를 “소생들에게 열흘 동안만 시험 삼아 야채와 물만 먹게 해 주십시오. 그런 뒤에 궁중요리를 먹는 다른 젊은이들과 우리 얼굴을 비교하고 나서 나리 좋으실대로 하십시오.” 열흘 뒤에 보니 그들의 얼굴이 다른 젊은이들보다 더 좋아 그들에게는 산해진미의 궁중음식과 술 대신 야채를 먹게 하였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신앙인들은 여기서 채식주의자 방식의 다이어트를 성경적 원리로 채택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당시 그리스제국의 지배자 안티오커스는 에피파네스라는 이름을 덧붙였는데, 이 뜻은 ‘신의 현현’이라는 의미입니다. 곧 그는 스스로를 신의 아들로 칭하였고 모든 백성들이 그를 신으로 경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당시 동물들은 먼저 이방신들에게 제사한 후에 먹었습니다. 여기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말은 단순한 채식주의자의 다이어트 방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종교적 결단을 말합니다. 고기를 먹지 않았음에도 살이 오르고 얼굴이 더 좋았다는 말은 야훼 하느님의 위대함을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학식이 뛰어났고 특히 다니엘은 환상과 꿈 해몽에 뛰어났다고 말하는 것 또한 이스라엘 야훼 하느님이 바빌론의 신들보다 위대하다고 하는 것을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으로 야훼 하느님의 유일신론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유일신이냐가 중요합니다. 만약 야훼 하느님 신앙 또한 바빌론의 신들마냥 다른 신은 무조건 안된다는 절대신을 주장한다면 이는 차이가 없는 유일신론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야훼 하느님 신앙이란 제국주의적이고 패권적인 지배자로서의 가치가 아닌 노예와 떠돌이로서 출발한 약자 중심의 자유와 해방적 가치로서의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적 이야기]


        다니엘서를 한번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에게는 두 개의 잊지 않는 기적의 장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왕의 명령인 우상숭배를 거부하여 활활 타는 화덕 곧 불가마 속으로 던져지게 됩니다.(3장) 얼마나 뜨거웠던지 그들을 화덕에 집어넣던 병사들이 불에 타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 친구는 그 화덕 속에서도 머리카락 하나 손상당하지 않게 될뿐더러 그 화덕 안에는 세 사람 외에 또 하나의 사람 곧 천사의 모습이 보였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느부갓네살왕은 “이제 나는 영을 내린다. 인종이나 말이 다른 뭇 백성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섬기는 신에게 욕된 말을 하지 못한다. 욕하는 자는 토막 내어 죽이고 그의 집은 거름더미로 만들리라. 이처럼 자기를 믿는 자를 구해줄 수 있는 신은 다시 없으리라”고 찬양합니다.(4장)


        또 하나의 유명한 장면은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지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때의 역사적 배경은 바빌론 왕국을 멸망시키고 새롭게 세워진 메대왕국의 다리우스왕 때입니다. 이 나라에서 다니엘은 국무총리직에 임명됩니다. 반대파들이 임금님 외에 다른 신에게 절을 하는 자는 사자굴에 집어넣는다는 칙령을 반포하도록 하는데,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 쪽으로 창이 나있는 다락방에서 기도를 하였기에 사자굴에 들어가지만, 그는 무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 메대제국의 다리우스왕은 “삼가 다니엘의 하느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공경하여야 한다. 그분은 영원하신 하느님이시니, 그의 나라는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경배를 올립니다.


        결국 다니엘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당시 위대한 왕으로 신의 아들로 추앙받던 바빌론의 느부갓네살과 메대의 다리우스 왕이 모두 야훼 하느님을 찬양하였고 이후 다니엘은 메대제국을 무너뜨린 페르샤 왕 고레스왕 때까지 활약하였다고 언급하는 것은(6:29) 모두 이 땅의 제국을 넘어선 야훼 하느님 나라의 영원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때로 야훼 하느님 신앙으로 인해 사자굴에 던져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느님을 배반해서는 안되고 어디에 가있든지 예루살렘성과 조국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교도들의 탄압에 대한 순교적 정신을 가르치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최근 우리는 부시정권이 추구하던 제국주의적인 모습 곧 군대의 힘과 황금의 힘으로 세계를 제패하려는 정책이 실패하였음을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불과 2년전 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현상입니다. 미국의 시장금융자본주의가 무너지고 군사일방주의에서 대화와 이해를 추구하는 양방주의로 가겠다고 천명하는 오늘의 미국은 어쩌면 하나의 기적입니다. 저는 20년 넘게 미국에 살았기에 인종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 생전에 흑인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고 그리 확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저 또한 인종차별의 아픔을 많이 당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공부만 한 사람들은 인종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에 대해서 별로 경험하지 못합니다. 오바마당선자가 현실 정치에서 얼마만큼 그가 가진 꿈을 실현시킬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아프리카 케냐의 피와 인도네시아에서의 소수자의 경험 그리고 시카고 빈민지역에서의 풀뿌리 민중운동 경험을 통해 변화를 꾀할 것은 분명합니다. 그도 인간이기에 지나친 기대를 품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러나 그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행사할 수 있는 힘이 너무나 크고 더욱 한반도의 장래에 미칠 영향력이 상당하기에 그가 진실로 바른 판단을 갖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다니엘과 친구들이 경험한 불가마와 사자굴에서 살아난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평양 봉수교회 이야기]


        저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초청에 의한 한국교회협의회 방문단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다녀왔습니다. 97년과 2004년에 이은 세 번째 방문입니다. 오늘 목회자마당에도 간략하게 써놓았지만, 도착하자마자 약간 흥분을 했습니다. 그건 제가 11년 전 미국에서 있을 당시 식량전달을 위해 워싱톤교회협의회 대표단 일원으로 머물렀던 양각도호텔 29층 3호실에 배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47층에 천개의 객실이 넘는 호텔에 백 명 가까운 방문단이 갔는데, 어떻게 같은 방에 배정이 되었는가? 우연이라고 그냥 넘기기에는 뭔가 뜻이 있는 것 같았지만, 알 수는 없었고 후에 다니엘선지자에게 해몽을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평양은 커다란 변화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민들의 옷차림은 보다 밝아졌고 발걸음 또한 활발해졌지만, 여전히 낡은 전차버스들과 정류장에 늘어선 긴 줄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다만 간혹 길가에 좌판을 벌이고 지나가는 손님을 맞이하는 아주머니들과 자전거수리꾼들이 길가에서 고치는 장면, 그리고 군고구마 가게 같은 것들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입니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남북기도회였습니다. 기장이 제안하여 금강산에서 4회째 가졌던 기도회가 이번에 평양 봉수교회에서 5회째로 모인 것입니다. 금강산기도회는 항상 남쪽 기독교인이 많고 북쪽 기독교인이 소수였지만, 이번에는 북쪽 기독교인이 세배 이상 더 많았습니다. 이번 기도회에서 북과 남의 배찬위원들이 서로 바꿔서 성찬을 나누었다는 것과 봉수교회 성가대원들의 아름다운 찬양을 여러 곡 들었던 것이 매우 좋았습니다. 평양 봉수교회에서 북측 남녀 배찬위원을 통해 주님의 살과 피를 먹겠다는 꿈은 몇 년전만 해도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이 기적이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교회 건물입니다. 장로회 통합측 남선교회가 주관하여 20억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 대리석으로 새롭게 지어진 교회 건물은 남쪽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우 웅장합니다. 천장이 매우 높고 2층으로 되어 있어 천명은 앉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내부장식이나 앰프시스템이나 빔프로젝터는 북한에서는 최고입니다. 그러나 저는 과연 이것이 북한주민들에게 어떻게 보일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함께 성찬을 나누고 찬양을 듣는 일은 매우 감격적이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가 별로 즐겁지 않았습니다. 이전 건물이 낡긴 했고 3,4백석으로 좁긴 하였지만, 여러 해외교회들의 힘으로 지어진 그 건물이 그리웠습니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화려한 모습이 평양의 변두리 가난한 주민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 가난한 자를 위해 오셨다는 예수님의 복음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해방 이후 북쪽의 사회주의 혁명이 진행될 때, 교회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교회가 예수님과 같이 가난한 민중의 편에 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제에 협력하고 지주들과 부자들을 옹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필요이상의 교회 건물을 세우는 것은 남한교회의 돈 자랑일 따름이지 이는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 버스 안에서 제가 그런 의견을 피력했더니 목사님들은 답변이 없고 안내하던 봉수교회의 백목사님께서 역시 향린교회 목사님이라 생각이 다르시군요 하면서 동의하더군요. 전력에 어려움이 있는 북한에서 추운 겨울 난방도 커다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난방 때문에 다른 곳에서 예배를 드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쪽 자본주의의 한 타락한 모습인 대형교회의 잔재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이 북조선에 예수의 이름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감동이 아닌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면서 우셨다는 예수님의 울음을 떠올렸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모습을 보시면서 또 다시 우시지 않았을까? 아니 분명히 우셨을 것이고 지금도 우시고 계실 것입니다.


[전태일열사를 추모하며]


        오늘 우리는 예배 후에 전태일열사를 추모하는 기도회를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갖고자 합니다. 1948년생으로 당시 사회적인 혼란과 가정의 어려움으로 공부라고는 초등학교 몇 년이 전부이고 판자촌에 살면서 어려서부터 신문팔이, 구두닦이, 아이스크림, 우산장수, 손수레밀이, 평화시장의 시다 등 사회 밑바닥 일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과 이를 싸워 이기려는 의지를 키워가게 됩니다. 18세에 평화시장 뒷골목의 미상사로 취직을 하면서 자신을 돕는 보조원들인 어린 여동생들이 끼니도 하지 못하고 각혈을 하면서 일하는 지옥과 같은 노동현실에 괴로워합니다. 당시 도봉산 기슭에 살던 전태일은 버스값으로 그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집까지 걸어 다니다 통금시간에 걸려 파출소에서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그는 근로기준법이 있음을 알게 되고 뜻이 맞는 친구들과 바보회를 만들어 근로기준법대로 준수되도록 투쟁하고 공부를 합니다. 한문투성이인 책을 읽느라 어려움을 겪은 전태일은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합니다. 결국 평화시장 일대의 근로조건 실태를 면밀히 조사하다가 위험분자로 낙인이 찍히면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바보회 또한 해체됩니다. 이후 두 달가량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기도 합니다.


        1970년 22세 9월 다시금 평화시장에 재단사로 취직을 하고 바보회를 다시 재조직하고 틈나는대로 서울시청, 노동청, 신문사, 방송국 등을 찾아다니며 평화시장의 근로조건 실태를 진정합니다. 10월 초순 그는 다시금 해고되고 이후 설문지에 근거로 한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개선 진정서>를 작성해 노동청장과 각 신문사에 투고합니다. 10월 7일 각 석간신문에 이 기사가 나고 노동청에서 조사관이 나와 모두가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는 말뿐 거의 실현되지 않자 여러 차례 데모를 계획하나 노동청의 회유와 경찰의 경비로 실패합니다. 결국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데모를 하기로 계획하고 이날 근로기준법을 화형에 처하기로 합니다. 13일 당일 오전부터 평화시장에서 불어난 경비원들과 경찰들에 의해 삼엄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낮 1시부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평화시장 앞에 모인 500여면의 노동자들과 경비원들과 경찰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오후 2시경 전태일은 골목에서 석유를 온 몸에 끼얹고 근로기준법 책을 손에 쥔 채로 몸에 불을 당깁니다. 불길에 휩싸여 거리로 뛰쳐나온 전태일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외침과 함께 쓰러집니다. 숯덩이처럼 온몸이 그을린 전태일.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회생할 가망이 없다는 일로 변변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 주십시오.’라는 유언과 ‘배가 고프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밤 10시경 이 땅의 영원한 청년노동자 전태일은 숨을 거둡니다. 그가 남긴 일기와 그의 삶은 수배중이던 조영래인권변호사에 의해 책으로 만들어지고 이 책은 우리 노동운동사와 민중운동사에 굵직한 선을 긋습니다. 문익환, 서남동, 안병무를 비롯한 당시의 시대를 고민하는 지식인치고 이 전태일열사로부터 깨달음을 얻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저도 당시 미국에서 이 책을 읽고 엄청난 충격 속에 빠져 있었고, 당시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던 한명의 촉망받던 신학박사후보생은 신학의 길을 포기하고 운동의 길로 갔고 지금도 미국에서 통일운동에 앞장 서 있습니다.


         죽던 해 1970년 초 그간 남긴 소설작품 초고의 한부분입니다.


<업주들은 한 끼 점심값에 이백원을 쓰면서 어린 직공들은 하루 세끼 밥값이 50원, 이건 인간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나이가 어리고 배운 것은 없지만 그들도 사람, 즉 인간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생각할 줄 알고, 좋은 것을 보면 좋아할 줄 알고, 즐거운 것을 보면 웃을 줄 아는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의 영장, 즉 인간입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한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빈한 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안식일을 지킬 권리가 없습니까? 종교는 만인인 다 평등합니다. 법률도 만인이 다 평등합니다. 왜 가장 청순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 묻고 더러운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인간의 생명은 고귀한 것입니다. 부한 자의 생명처럼 약자의 생명도 고귀합니다. 천지만물 살아 움직이는 생명은 다 고귀합니다. 죽기 싫어하는 것은 생물체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선생님 여기 본능을 모르는 인간이 있습니다. 그저 빨리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기를 기다리는 생명체가 있습니다. 선생님 그들도 인간인 고로 빵과 시간, 자유를 갈망합니다.> (전태일평전 215쪽]


[익명의 그리스도인 전태일]


        그는 기독교인으로 고백하지는 않지만, 그의 글에는 분명 하느님을 향한 기도가 있고 어머니가 창동에 있는 한 교회를 다니고 있었기에 얼마간 교회를 다녔을 것이고 분명 성서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죽던 해 겨울에 굳이 다른 공사장도 있지만, 당시 어머님이 다니던 교회 목사님과 관련이 있던 삼각산 임마뉴엘의 건물 공사장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졸라 5개월간 인부노릇을 하게 된 것은 분명 예수를 따라 골고다의 십자가를 지려는 의도였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가 일하던 당시 그곳에는 목사 한사람이 묵고 있었는데 전태일은 그 목사와 때때로 성경 원리에 관한 토론을 하였고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툰 일도 많았습니다. 전태일이 분신자살한 후에 이 목사는 ‘자살은 교회에 위배되는 불신자의 짓’이라고 비난하였고 또 전태일이 죽어서 ‘빨갱이들이 춤출 것’이라고 말했다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께서는 죽을 줄 알면서 예루살렘을 올라가고 죽음을 피하자고 하는 제자들의 청을 거절하고 로마병정 앞에 태연히 나서 ‘내가 바로 너희들이 찾고 있는 예수라고’ 나선 것은 자살의 방식이 아닌가요? 저는 마지막 때에는 의료기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가능하면 내가 살던 방에서 죽고 싶습니다. 더 살 수 있지만, 죽음을 선택한다면 이것 또한 자살이 아닌가요?


        현실에 절망하고 낙심하여 의도적으로 생명을 끊는 일은 하느님께서 분명 원하시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의를 실천하기 위한 죽음의 선택은 오직 하느님께서만 판단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십자가를 지라는 명령은 무슨 명령입니까?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똥을 싼다고 해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고 참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예수 때문에 그리고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이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있는 사람입니까? 전태일 열사가 살아있는 사람입니까?


        죽음을 결심한 어느 날 일기장에 그는 이런 글을 씁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전태일평전 239쪽)


이 기도야 말로 분단된 조국을 향한 오늘 우리가 드리는 다니엘의 기도이며 정의평화평등생명의 하느님 나라를 향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수따르미들과 예수님을 살려는 자들의 기도가 아닌가요?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견사]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환멸과 자기 자신의 나약한 소리를 증오하면서.

인간의 둘레를 얽어매고 있는, 인간이 만든, 빠져나올 수 없는 인간 본질의 희망을 말살시키고 있는, 모든 타율적인 구속을.


그는 생각한다.

이세상 어느 곳에서 누구를 지적하여 인간상의 표준을 삼을 것인가

인간의 참 목적인 평화와 희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는 생각한다.

인간은 어딘가 잘못가고 있는 것 같다고.

생존하는 목적의 본질이 희미함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세대.

흐린 탁류속에서 어쩔수없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세대.

자기 자신의 무능한 행위의 결과를 타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대.


나의 또 다른 나들이여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므로 그대들의 존재가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한 영혼의 절규를 외면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의 심적 더러움을 점고해본 일이 있는가? 
                                          (전태일평전 2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