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개혁 주일

향린과 기독교 개혁

예레미야 31, 32- 34 ; 루가복음 10, 33- 34


조  헌 정 목사/ 평화나눔작은공동체 여성인권


        

        지난 목요일 기장의 젊은 목회자들이 모여 공부하는 모임에 잠시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이 교회개혁주일이다 보니 자연히 화제가 개혁에 초점이 맞추어졌는데, 자꾸만 종교개혁주일이라고 하기에 제가 종교개혁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와 같이 다양한 종교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적절치 않으니 기독교개혁주일 혹은 교회개혁주일 더 나아가 가톨릭을 염두에 둔다면 개신교개혁주일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들 공감을 하더군요. 그런데 여전히 오늘 남한의 대다수의 교회들은 종교개혁주일이라는 말을 무심코 쓰고 있고, 제가 아는 대로는 역사 교과서에 그렇게 번역되어 있고 사회통념적으로 쉽게 통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번역은 영어의 Reformation을 번역한 말인데, 여기에는 종교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일본학자들의 번역을 한국학자들이 우리 종교나 문화에 대한 자기 성찰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찬과 교회개혁]


        이번 주에도 서울노회가 모였고 여기서 성찬식을 가졌는데 여전히 성찬기를 하얀 보로 덮었다 벗겼다 하고 있어 제가 몇 사람에게 얘기했습니다. 성찬은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는 화육과 수난 그리고 부활에 대한 신앙고백이 담겨 있는 예식이다. 그리고 하늘뜻펴기가 하느님의 말씀 혹은 하느님의 현존을 귀로 듣는 말씀이라면 성찬은 눈으로 보고 입으로 먹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를 덮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냐? 세계 어느 교회를 가보아도 성찬을 덮는 교회가 있느냐? 이것이 바로 일본 신사의 잔재이다. 그날 성찬에 참여한 기장을 대표할만한 목사님에게 목사님 교회에서도 이렇게 하십니까? 하고 물었지요. ‘아니요’라고 말씀하시지 않는 것을 보아 그렇게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보를 덮는 것은 틀렸다고 답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말씀은 그때 흰 장갑까지 끼자고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하시더군요. 제 친구인 한신대학 실천신학교수도 그날 참여하였기에 이런 것은 신학교수가 나서서 분명하게 얘기해서 고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대다수의 남한 교회는 성서 말씀대로 혹은 하느님 말씀대로 믿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성서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들을 이전부터 해왔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배 시작과 끝에 탁상 종을 친다든지 성찬식에 흰 장갑을 끼고 하얀 천으로 성찬기를 덮고 벗기는 일은 모두 일제 신사의 영향이지 기독교 본래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찬식에 관하여 말씀드리면 개혁운동을 일으킨 루터나 칼뱅의 개신교 전통에서도 성찬식은 매주일 하였습니다. 성찬식에서 사제가 ‘이것은 예수의 몸과 피입니다’라고 선포하는 순간 물리적으로 예수의 진짜 살과 피로 변화된다고 주장하는 가톨릭의 화체설에 반대하고 상대적으로 개신교회에서의 하늘뜻펴기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성찬식이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이제는 이것이 반대로 남한 교회 안에서는 너무 교리화 되고 거룩화 되어 일 년에 두 번 부활절과 성탄절에 그것도 잠시 성찬보를 벗기는 그 순간에만 예수님의 화육을 경험하도록 하는 교회들이 대부분입니다. 세계 개신교의 추세가 성찬식을 보다 자주 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매주일하는 교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희교회는 특별예배를 포함하여 일 년에 열 번 정도 하고 있습니다.

        성찬과 교회 개혁에 관하여 한마디를 더 한다면, 올해 세 개의 주요 장로교단이 제주도에서 같은 기간에 총회를 열게 되어, 함께 수요예배를 드렸는데, 교단간의 차이로 성찬식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유인즉 합동측에서 여성목사나 여성장로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성찬식을 하게 되면 여성목사나 장로들이 배찬위원이 되기에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성은 성찬을 먹을 수는 있지만, 들고 다닐 수는 없다는 논리인데,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진 논리입니다.


[신앙고백문과 교회개혁]


        올해 기장 총회가 모여 교회용어를 정하는 결의를 하였는데, 성서는 성경으로 성만찬은 성찬으로만 쓰도록 결의를 하였습니다만, 정말 바꿔야 할 내용은 바꾸지 않고 이름만 바꾸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지난 주 한완상 교수께서 심원안병무추모강연에서 말씀하였듯이 역사적 예수가 빠진 사도신경만을 그 의미도 모른 채 예배 때마다 암송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사도신경은 교회가 고백한 여러 신조중의 하나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마치 유일한 신앙고백인양 인식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사도신조가 나오게 된 교회사적 배경과 의미를 상실한 채 이를 마치 주문마냥 외우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에서 목회할 때부터 사도신조를 순서에 넣지 않아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 교회 국악찬송가 217장에 있는 <이 땅의 향기로운 이웃>, 향린교회 신앙고백문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고백송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락에 맞춰 노래로 만들어내고 또 중간에 음송으로 처리한 것은 내용에 있어서나 형식에 있어서 세계교회에 내놓을 자랑거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때로는 잘못된 것인 줄을 알면서도 전통이라는 이름 때문에 바꾸기를 꺼려하고 때로는 바꾸려고 해도 익숙함에 젖어 변화를 거부하는 교인들로 인해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변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변화한다는 것은 몸에 배인 습관을 깨야하는 고통과 아픔이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온고지신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우리가 하는 예전들은 오래된 교회의 오래된 전통 속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영성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자신들이 하는 것이 모두 그러한 오래된 전통에서 온 예전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잘못되었음을 알려주어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래된 예전이라도 그 의미를 오늘의 시대에 재해석해내야 하는 것이고, 만일 그 숨겨진 능력을 끄집어 낼 수 없다면 그것은 죽은 예전으로서 버려야 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죽은 예전을 계속 반복하게 되면 교회는 그 생명력을 잃게 되고 교인들은 도그마의 노예가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교회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남한교회의 거품]


        지금 남한 교회는 분명 이미 10년 전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속도가 완만하지만, 어느 순간 봇물 터지듯이 급속하게 쇠락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가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경제의 거품을 벗겨내느라 많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말은 미국에서 시작한 부동산에 관련한 금융문제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우리가 겪는 가장 큰 고통의 대부분은 남한의 근본적인 경제구조 속에 담긴 부조리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재벌중심의 경제구조, 부동산개발중심이 만들어낸 부작용입니다. 세계의 경제학자들은 서양의 아이슬란드에 이어 동양에서는 남한이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향린강단을 통해 오래전부터 남한 사회의 부조리한 경제구조나 욕망에 끌려가는 개인의 말로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고를 해 왔습니다. 남한경제나 일반 시민들의 사치는 겉멋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습니다. 어느 교우님이 그래요. 그간 별로 관심이 없어 몰랐는데, 요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보니까 명품 아닌 핸드백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중국산 짝뚱은 별로 비싸지 않지 않느냐 그랬더니 그것도 수십만원 한다는 거에요. 한달 수입 백 수십만원에 불과한 사람들이 핸드백 하나에 수십만원 정품인 경우에는 수백만원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따지고 보면 우리 남한이 겪는 경제위기는 구조적 요인이 일차적이지만, 우리 스스로가 물질 욕망의 노예가 됨으로 일어나는 개인적인 요인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종교 혹은 교회가 이런 인간의 무한정한 욕망에 브레이크를 걸고 영원한 생명과 정의 평화 생명의 진리에 기초한 나눔의 가치관, 절제와 비움의 가치관을 외쳐야 하는데, 반대로 세상의 가치와 논리에 함께 부응해 왔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이것이 지난 수십년동안의 우리 교회의 주된 설교 주제였습니다. 예수 믿으면 살아서는 부자되고 죽어서는 천당간다. 2주전에 제가 미얀마에 다녀왔습니다. 수십년간의 군부독재로 나라꼴이 말이 아닙니다. 저희들이 도착한 날이 이슬람의 라마단과 같이 금식을 마친 스님들이 신도들을 축복하는 공휴일이자 축제날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절밖에는 수많은 장사꾼들로 절 안에는 수많은 참배객들로 가득 찼습니다. 양곤시 중심에 있는 파고다 절 안에는 수천개의 크고 작은 불상들이 있는데, 그 불상들은 모두 하나같이 금칠로 덮여 있고 중앙의 백 미터가 넘는 탑뿐만이 아니라 건물 안과 밖이 거의 모두 금칠로 덮여 있습니다. 금은 부의 상징이자 권력의 상징입니다.

        어느 참배자와 스님이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화폐의 끝을 서로 쥐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기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이 돈 드릴테니 그에 상응하는 수십 수백 배의 돈축복을 비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하얀 봉투에 넣어서 은근슬쩍이 아닌 돈을 공개적으로 꺼내놓고 그것도 기도가 끝나기 전까지는 줄 수 없다는 식으로 그 끝을 잡고 노골적으로 거래하는 모습이 이채로웠습니다. 요일별로 된 조그마한 불상들이 있는데, 거기에는 바가지나 손으로 물을 붓는 사람들로 끊임이 없었는데, 그건 소원을 비는 행위였고 특히 병을 낫게 해달라는 기도의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왜 요일별 불상이 따로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매일 참배하게 하는 방식이 아닐까요? 나라는 군부독재로 민주화는 물론이요 정치 경제 문화 언론이 모두 엉망임에도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자기 혼자만의 물질 축복만을 위해 기도하는 저 수많은 군중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일까요? 그 모양과 양태는 다르지만, 우리 안에도 그러한 이기적 욕망들이 잠재해 있지는 않는가요? 오늘 남한의 교회들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신앙의 근본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 또한 이 물음에서 피해갈 수가 있을까요? 정작 중요한 물음은 예수께서 그렇게 가르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수많은 민중들이 이런 종교적 가르침에 말려들어 살고 있었지요.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이 말하는 대로 그들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가난과 질병은 성전에 나아가 제사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자책하고 있었지요. 체념과 운명에 스스로 노예 되어 살고 있었지요. 그때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애통하는 그들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딸임을 자각케 하셨고,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오히려 자신만의 부와 성공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들도 하는 일이니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먼저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에 대해서는 그냥 하루의 일용한 양식만을 위해 기도하고 나머지는 하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고 혹 빚 받을 것이 있거든 탕감해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의를 위하여 핍박을 당하거나 평화를 위해 일하면 더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셨고 오직 영원하신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살아있음의 증거는 자리 소리를 낼 때]


        다행스러운 점은 요즘 이명박 정부의 친기독교정책으로 인한 불교계의 반발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촛불운동에 자극받은 소수의 기독인들에 의해 교회 안에 개혁운동이 점차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위기를 통해 경제의 거품이 빠지듯이 위기 속에서 신앙의 거품 또한 빠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미국에 의존함으로 세계외환구조에 가장 취약한 구조를 갖게 되었듯이 교회 또한 미국 신학이나 예배문화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자기 주체성을 상실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인구대비 신학박사가 가장 많은 나라이지만, 외국에 내어놓을 신학이 민중신학 말고는 전혀 없습니다. 자기 소리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앵무새인간이요 어용인간이요 살아 숨 쉬고 있지만,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덩치만 컸지, 살아 있는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나라에 선교사는 수없이 나가 있지만, 그들의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라고 질문할 때, 우리는 부정적인 답변 외에 다른 답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때에 저희 교회가 국악예배의 오늘과 내일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주 토요일부터 3주간에 걸쳐서 한국교회를 향해 국악예배 워크샵을 하는 것은 매우 깊은 의미가 있고 후세 교회사가들이 판단할 문제이지만, 87년 6?29 민주항쟁의 점화가 이 자리에서 일어났듯이 이 일 또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나무가 옮겨와서 그 생명력이 유지가 되려면 새로운 토양에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지금 교회가 우리 사회나 전통문화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보는가? 현재 일반 시민들 특히 젊은이들의 기독교에 대한 외면과 배타성은 점점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국악예배 워크샵에 교우 여러분들이 많이 나오셔서 진행에 도움도 주시고 직접 배움에도 참가 하시어 국악예배에 대한 이해를 더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국악예배 뿐 아니라 저희 향린교회는 개혁이라는 관점에서는 모든 부분에서 앞장서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목회의 핵심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하느님의 나라의 선포와 동시에 이를 행하는 제자들의 훈련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 제자들은 모두 사도가 되어 여러 곳에 흩어져서 교회공동체를 세우고 이 공동체를 통해 하느님 나라 운동을 펼쳐나갔습니다. 이를 평신도운동 혹은 평신도사역 혹은 평신도목회라고 부릅니다. 향린교회는 바로 이러한 평신도가 목회의 중심이 되는 평신도교회로 시작했습니다. 루터로 대변되는 기독교개혁운동은 당시 중세 가톨릭의 교황과 사제를 중심한 교권과 잘못된 교리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라틴어로만 되어 있어 사제들의 전용물이었던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평신도에게 돌려준 일입니다. 500년 전의 개혁이 성서를 평신도에게 돌려주었다면 500년이 지난 요즘에 와서 개혁운동은 평신도에게 사역을 돌려주는 일입니다. 이는 베드로전서 2장에 있는 말씀대로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서 사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상징적으로 오늘 여러분은 후드를 두르고 있습니다.

        저는 향린교회에 부임한 이래 지난 5년반 동안 이 부분에 중점을 두어 왔습니다. 그리하여 예배에 있어서 평신도 하늘뜻펴기, 공동축도를 도입하여 자리매김을 하였고 모든 부문에서 여러분이 책임을 갖고 일하도록 격려하였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만큼 평신도목회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 직업을 갖고 있는 많은 분들이 일요일은 물론이요 주중에 진행되는 교회안의 여러 훈련에 참가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제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예수께서 성전의 벽을 허물고 아픔을 당하고 있는 민중의 옆으로 다가가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해왔습니다. 선교사회부가 중심이 되어 여러 고통을 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빈민계층들과 함께 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래 일 년에 최소한 한두번은 현장을 찾아가서 평화예배를 갖기 위해 노력해 왔고, 평택 대추리에 이어 올해도 <한반도 100일 순례>에 참가하여 비를 맞으며 함께 걷기도 했고, 2주전에는 파주 무건리를 찾아가 전쟁기지의 희생자가 되는 저들을 위로하고 평화를 위해 함께 투쟁해 나갈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올해 촛불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과 2주 후 11월 9일에는 매년 계속되는 전태일거리기도회를 갖는 일은 모두 이러한 성전벽을 허물고 나아가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로 모임을 가진 평화목요기도회도 마지막 시간 성전 마당에 나와 각자 촛불을 들고 평화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남한교회의 지각변동?]


        최근 많은 분들이 교회를 방문하거나 새교우 등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의 신앙 모습을 보면 지난 몇 년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 교우들이 예전과는 달리 단순히 진보성향의 젊은이들이 아니고 우리가 소위 말하는 보수교회에서 수십년동안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이 오신다는 것이고 이는 단지 젊은이에 한정되지 않고 전 연령층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분들의 공통된 얘기는 더 이상 교회의 잘못된 행태나 목사님들의 반지성적이고 물질축복일변도, 순종요구일변도의 설교, 아전인수의 성서해석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옮겨왔다는 것입니다. 그래 저는 지금 남한교회의 지각변동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집단성에서 벗어나 교인 스스로 자기 주체성을 갖고자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시대적 영향 때문이라고 봅니다.

        최근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두 분의 목사님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한국교회를 주제로 한 학위논문에 한국의 몇 개 교회를 선정하여 대안적 교회 모델을 찾고 있는데, 그중 하나로 향린교회를 선택한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입니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향린교회는 하나의 특수교회로 취급당해 왔고 이념적으로는 진보교회로 심지어는 빨갱이 교회로 매도당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교회의 대안 교회의 모델의 하나가 되어간다는 것이고 더 놀라운 것은 이 두 분이 복음주의권 목사님들이요 신학교 또한 그런 학교라는 사실입니다. 향린교회로서는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교회가 얼마만큼의 위기 속에 있느냐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감이 서서히 팽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남한교회들은 서서히 뜨거워지는 주전자 안에 있는 개구리마냥 전혀 그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지난 달 우리 교회가 두 번째로 행한 오끼나와 평화기행도 매우 좋은 평화적 선교모델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전 교인이 한번은 오끼나와를 다녀오기를 바라고 향린교회 또한 저들이 하는 것 마냥 외국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 한반도의 평화문제에 관심할 수 있도록 하는 중심센터가 되었으면 합니다.


[Missio Dei(하느님의 선교)]


        Missio Dei 하느님의 선교신학이 외쳐진 지 수십년이 지났습니다. 세상과 하느님 나라를 구분하고 교회 성장이 마치 하느님 나라의 확장인 마냥 외쳐지던 중세의 기독교국가(christendom) 신앙관이 많이 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러한 하늘과 땅을 구분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이 남한 교회에 지배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60년대 하바드대학 하비콕스 교수는 <세속도시>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외침과 같이 하느님의 나라는 이 땅에 임하는 것임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한가지 오해가 있는데, 그가 말하는 세속화라는 말은 교회를 세속화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은 교회가 세상 안으로 들어가 세상을 거룩하게 만들자는 말입니다. 이것이 Missio Dei(하느님 선교) 신학입니다. 하늘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요즈음 선교라는 말은 교회 확장 혹은 기독교세력 확장이라는 교권적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선교 개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음운동 선교는 세상을 섬기는 선교입니다. 사람을 섬기는 선교입니다. 개종이 목표가 아닙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세상이 보다 정의롭고 보다 평화롭고 보다 생명적으로 변화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요 진정한 선교입니다.

        저는 이제 향린교회는 제도적으로는 평신도교회나 사회적 선교 분야에서 나무랄 데 없는 모습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 교우들 자신의 내면의 신앙입니다. 저는 이러한 영성 면에서 향린교회에 보이지 않는 어떤 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래 2주전 무건리 예배를 통해 목요평화기도회를 선포했습니다. 사실 이는 당회는 물론이고 부목사들과도 의논하지 못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날 새벽 하늘뜻펴기를 다듬는 가운데 성령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글에다 성령의 소리를 들었다고 했더니 오늘 목회실습으로 참여한 신학생 한분께서 그때 소리가 어떠했습니까?라고 물어서 제가 웃었습니다만, 여러분도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건 제 귀로 들은 소리가 아니라 내 마음으로부터 울려나오는 확신의 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신비체험을 했던 것으로 오해를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니 실은 어쩌면 인간들이 모여 계획하고 논의하였다면 시작도 하지 못할 무모한 일을 시작하도록 하셨으니 그게 성령체험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라이프찌히의 성니콜라이 교회에서 시작한 작은 촛불이 점점 커져 베를린장벽을 허무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얘기를 읽을 때에 향린교회가 이를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하느님의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과 새로운 계약을 맺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새 계약은 이전 조상들과 에집트에서 데려 내 오던 것과 다른 것이다.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저는 오늘 교회개혁주일을 만자 향린교회와 더불어 맺을 하느님의 새로운 계약,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가슴에 새길 새로운 계약이 어떤 것인지를 스스로 찾아가기를 바라고 이를 꾸준히 실행하여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노라면 평화의 성령께서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 크게 역사할 것입니다.

        끝으로 바라기는 여러분들의 대표가 저에게 와서 ‘목사님 이제 당신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저희들은 다시금 평신도교회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목사님이 평신도로 계속 이 교회에 다니시는 것은 목사님의 선택이지만, 저희들이 스스로 목회자들이 되어 교회를 운영 해보기를 원합니다.’라는 소리를 듣기를 원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 주님께서 바라시는 교회의 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여성인권 평화나눔공동체에서 <공감>이라는 주제를 갖고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새로운 방식의 평신도 하늘뜻펴기를 하겠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지갯빛 수다

평화나눔작은공동체 여성인권


등장인물 : 이야기꾼, 밧세바, 바리데기, 향린여인

무대 위에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이야기꾼 아줌마 한사람만 서 있다. 다른 대화상대자는 앞 의자에 앉아있고 관객석에서는 이들을 볼 수 없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한 사람씩 강단 좌편과 우편에서 차례로 일어나 관객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마지막 향린 여인은 신도석 중간쯤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꾼 : 옛날에 에덴동산에 릴리스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들자마자 곧바로 흙으로 릴리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아담과 릴리스는 소위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어요. 구체적인 사건의 발단은 부부사이의 은밀한 이야기라 전하기가 그렇고요, 하여튼 아담은 릴리스가 자신의 권위에 대해 도전을 한다고 생각을 했고, 릴리스는 아담과 동등한 존재라고 주장을 했나 봐요. 하나님의 창조의 뜻은 누가 누구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과 인간을 동등하게 만들었고, 릴리스도 그와 만찬가지고 아담과 동등하다고 릴리스는 주장을 했던 거지요. 하지만 둘 사이의 의견 차이는 점점 심해졌고 릴리스는 더 이상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살지 못하고 동산을 나와 버렸지요. 그 후 하나님은 아담이 잠든 사이에 그의 갈비뼈 하나를 꺼내 여자를 만드셨어요. 갈비뼈로 만든 이브였어요. 그러니까 본차이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브는 아담의 말에 순종하고 아담의 시중을 잘 드는 여자였나 봐요. 가끔씩 이브는 동산 밖에서 누군가 동산에 돌을 던지거나 동산에 들어오려고 담에 구멍을 뚫은 흔적을 보았어요. 아담은 동산 밖에 릴리스라는 아주 나쁜 여자가 있으니 상종도 말라고 하였지요.

 어느 날 이브는 우연히 릴리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동산 밖으로 뻗어있는 사과나무 열매를 따려다 나무에서 떨어져, 이브는 동산 밖으로 나가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릴리스를 만난 이브는 처음에는 릴리스를 보고 두려워했어요. 하지만 곧 둘은 이야기를 시작했고, 물론 아담의 잠잘 때 버릇하며 정리정돈 못하는 습관하며, 잘 씻지 않는 버릇을 흉보며 친해지기 시작했고, 곧 마음속의 깊은 상처와 외로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어쩜 그렇게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이브는 아담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존중감과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나봐요. 아담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면 그는 이브의 태도의 잘잘못만을 따지고 들거나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떤다는 식이였거든요. 이브의 마음이 어떻게 허전하고 대문짝만 구멍이 뚫려 바람이 슝슝들고 나는 것 같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지도 못했고 아니 우선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었지요. 그는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다스리느라 밖에서 바쁘고 힘들다고 집안에서만은 제발 쉬게 해달라고 도리어 이브를 이해심 없고 참을성도 없는 여자라고만 했었지요. 그런데 릴리스와는 달랐어요. 그 둘은 밤이 되는지도 모르고 또 날이 밝아 오는지도 모르고 이야기를 했지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같이 산 남편과는 안 되던 것들이 이렇게 쉽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는지. 이브와 릴리스는 서로 깊이 공감했었던 듯싶어요. 서로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공감으로 또 상대의 작은 아픔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한 듯싶습니다.

 자, 이렇게 여성과 남성의 역사는 시작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조금 삐걱거리기 시작했지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가지 못한 인간들의 어리석음 탓이었겠지요.

 안녕하십니까. 무지개빛 수다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여성들입니다만, 오늘은 좀 다른 시각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전하려고 합니다. 앞서 릴리스와 이브는 남편의 아내로서의 여성의 이야기였습니다. 다음에 들으실 이야기는 바리데기공주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딸이라는 여성의 이야기랍니다. 

바리데기 : 저의 아버지는 오구대왕입니다. 아버지 오구대왕에게는 아들이 없었지요. 위로 언니들만 6명이 있었어요. 그런데 또 아들이 아닌 제가 태어났어요. 그래서 저는 버려졌어요. 버려진 저를 비리공덕 할아비와 할머니가 키워주었어요.

처음에는 원망도 많이 했지만, 왕권을 잇는 것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차대한 일인데, 또 딸이 태어났으니 화가 났겠나 싶었어요. 참, 제가 버려진 것에 대해 경악해 하는 요즘 사람들이 있나봐요. 하지만 만약 제가 지금이라면 태아 성 감별을 통해 세상 빛 구경도 못했을 거예요. 하여튼, 그렇게 시간이 가고 그만 아버지 오구대왕께서 몸 져 누운 신거에요. 저승에 있는 생명수를 마시지 않으면 가망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 아버님을 위해서 길을 떠났지요. 동몽선습, 대학, 소학, 공자, 맹자 ,주역을 일찍이 끝낸 저는 유교의 근본사상인 충효사상의 실현을 통해서 세상이 질서와 조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부친은 작은 천하의 임금이요, 군왕은 대가족의 아버지라, 제가 목숨을 바쳐 효를 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단지 전 배운 데로 했을 뿐이랍니다.

 하지만 그 길은 참 어렵고 험했어요. 물 긷기 3년, 불 때기 3년, 나무하기 3년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마음에도 없던 무장승과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는 일이었습니다. 무장승과의 첫날밤은…….(한숨을 쉰다) 그 손길, 숨소리,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 이를 깨물어야 했습니다. 낯설고 아프고 더러운 느낌을…….하지만 저는 아버님의 병구완만을 생각하며 참았습니다. 딱 한 가지 부모님께 허락도 받지 않고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게 마음에 걸렸었지요.

이야기꾼 : (기막히다는 웃음을 웃으며) 그래서 아버지를 구했나요?

바리데기 : 네, 생명수를 가져다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꾼 : (비꼬듯이) 지극한 효를 실천하고 나니 세상이 달라졌던 가요? 혹시 달라진 건 극한의 상황을 견뎌내느라 뼈 속까지 골병이 든 당신 육신과 원치도 않는 결혼을 한 바리데기 당신 뿐은 아니던가요? 우리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을 여럿 알고 있습니다.

 70년대 오빠를 대학생을 만들기 위해,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공장에서 미싱을 돌려야 했던 꽃다운 나이의 영자들, 지금도 많습니다. 단지 희생해야하는 가족공동체의 사이즈가 작아진 것뿐이지요. 흔히들 쉽게 여성들에게는 희생에 익숙한 본성이 있어서 할 수 있는 거라고 이야기해요. 이게 본성이라고요? 글쎄요. 본성치고는 굉장히 이데올로기를 닮은 것 같은데요. 

다음은 처음에는 우리야의 아내였다 두 번째에는 다윗의 아내가 된 밧세바의 이야기입니다. 

 밧세바 : 저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입니다. 저는 먼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어요. 저는 폭력의 피해자이지만 나중에는 권력을 잡게 됩니다. 그렇게 되고 보니 제가 피해자가 아니라 원인제공자가 되어버리더라고요. 제가 후세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뭔지 아세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제가 제 집에서 목욕을 했습니다. 옷을 벗고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집에서 목욕을 하지 않나요? 그리고 목욕을 할 때 옷을 입고하십니까? 제가 제 집에서 목욕을 하는 모습을 몰래 훔쳐본 것은 다윗 왕이었고 나쁜 맘을 품은 사람도 다윗 왕이었습니다. 왕의 권력을 이용해 저를 궁으로 불러낸 것도 다윗 왕이었고, 그 폭력에 의해 임신을 하게 된 사실을 은폐하려고 남편까지 살해한 사람도 역시 다윗 왕이었습니다. 유혹을 했다면 그건 다윗 왕이 저를 유혹한 것입니다. 그런데 후대의 사람들은 이후 제가 권력을 잡았다는 이유로 성폭력의 피해자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목욕을 하게 된 것도 다 다윗 왕을 유혹하기 위한 저의 음모였다고까지 이야기를 합니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력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겁니까? 맞을 짓을 한 여자는 맞아도 된다는 것입니까?

 저는 이미 부당한 권력의 폭력으로 갓난아이를 칠 일만에 잃었습니다. 그런데 원인제공자라니요? 한 가지 씁쓸한 것은 그런 말을 남성들 보다 나의 상황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같은 여성들에게 더 많이 들었던 것입니다. 왜, 왜 일까요?

이야기꾼 : 부당한 폭력 앞에서 주저앉아 울기나 하지는 않았다는 말씀이지요. 여자니까 라는 이유로 인고의 시간을 보내다 죽어버린 폭력에 희생당한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당한 폭력의 부당함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여성의 모습이었군요.

아, 저기 뒤에서 손을 드시는 분이 계시네요. 네 말씀하십시오.

향린여인 : 네 저는 초대 손님은 아니지만, 향린교회에 다니는 교인으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30대에 들어선 기혼 여성인 저는 지금의 현실에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건지, 낳는다면 그 아이를 지금과 같은 교육 현실에서 다른 대안적인 방법들을 잘 찾아 나갈 수 있을지, 그러기 위해 경제적인 여건은 잘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일과 육아 및 가사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잘 해 나갈 수 있을지, 여성으로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에 일상 속에서도 고민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저의 고민과 향린에서 말해지고 있는 이슈들이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못하는 느낌은 왜 일까요? 얼마 전 무건리 예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예배 후 주민 분들이 음식을 준비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연되자 여성 주민분들이 돌아가서 챙겨주어야 할 식구들 걱정에 남겨진 설거지를 어찌해야 할 지 몰라 하고 계셨고, 결국 너무나 미안해하며 향린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와 친구가 설거지를 하게 되었지요.

물론 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우러나서 한 것이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저 여성분들이 미안해 하셔야 되지? 저분은 집에 가면 식구들에게 또 미안한 마음을 갖으시겠지?

그렇담 우리는 왜 무건리 여성주민들이 안팎의 가사 일을 신경쓰지 않도록, 그 이후 설거지며 뒷정리 하는 마무리까지 세세하게 논의하지 못했을까? 또 감사히 먹은 것에 대해 향린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주민들과 함께 정리에 나서지 못하고 청신 등, 일부 교우들의 몫처럼 남겨져 있었던 걸까?..

솔직히 그 날, 저는 무건리의 상황보다도 그 풍경에 더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교회는 밖으로는 사회참여적인 훌륭한 교회로 인정받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면 부족한 점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사회정의감 지수는 굉장히 높으면서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폭력에 대해서는 둔감합니다. 이런 이중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물론 평화, 통일, 부정의를 향한 정의로운 외침. 이것이 저의 고민과 무관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소수자들의 절실하고 다급한 문제들은 너무 쉽게 간과시켜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기에 우리의 소통에는 공감하며 나누는 이야기의 한계가 이미 너무 명확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교회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평화, 통일만 있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삶- 비혼, 한 부모 가족, 비혼모 가족, 자녀 없는 부부, 동성애, 소외당한 노년 등 그것이 소수의 이야기일지라도 개인들에게 놓인 다양한 삶의 방식에서 오는 고민과 아픔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자신의 이야기들을 꺼내어 우리의 주제로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과정을 통해 더욱 풍부해지는 감수성으로 공감하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민감하게 들여다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우리 향린인 모두가 배려를 바탕으로 한 공감과 위로 그리고 치유 이런 것들에 대한 마음이 좀 더 많아 졌으면 합니다. 예수님처럼요.


이야기꾼 : 네, 정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참 많군요. 이제 우리의 이야기도 거의 끝에 왔군요.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어느 사마리아인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습니다. 무척 고통스러워하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 앞에서 발을 뗄 수 가 없었습니다. 이 사회가 이렇게 무질서하고 정의가 실종된 것에 대해 정의감이 강한 사마리아인은 분개했습니다. 강도는 그리 멀리 가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인적이 많은 곳도 아니기 때문에 발자국을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강도를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착한 사마리아인은 강도당한 사람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당부를 하고 부리나케 강도를 잡으러 갔습니다. 처음이야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이번에는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느 사마리아 인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정도는 아니지만 무척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을 빨리 덜어주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 강도당한 사람을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그 다음은 잘 아시겠지요.

 어느 사마리아인이 더 착한 사마리아인이다라고 규정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위로와 치유를 통한 살림이 필요한 우리시대에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공감능력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강도는 언제 잡냐고요? 강도를 잡아야지요. 강도가 미워야 잡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강도가 왜 미울까요? 내가 다친 것도 아닌데. 사회정의 때문에요? 실은 그건 나의 이기심 앞에서는 한낱 구호뿐일 때가 많지요. 그런데 사회정의 그게 정말 필요한 거거든요. 그러면 그건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왜 강도를 잡으려고 합니까? 아프니까요. 강도만난 사람을 보니 그 처지가 너무 딱하고 억울하고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가지고 식구들 먹을 쌀을 사가야 하는데 그만 몽땅 다 털리고 말아서, 나도 한때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나, 그만 내 일 같아서. 가엾은 마음이 생기고 그 강도 만난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가슴 한켠이 찡하게 무너져 내리고 눈가에 갑자기 이슬도 맺히고 이래야 강도가 진정으로 미워지는 것이고 강도의 정체를 밝히고 강도를 끝까지 찾아 잡을 용기가 생기는 것 아닐까요? 진정한 용기 말입니다.

 성서에는 사마리아인이 가엾은 마음이 생겼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엾은 마음, 이것은 공감이고 배려이며, 연민입니다. 릴리스와 이브의 공감, 밧세바에 대한 공감이 바로 지금 도둑을 잡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의 원천인 셈이겠지요.

 본 훼퍼 님은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죽이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세웁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처와 은사를 가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제대로 행해지려면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관행, 권력과 권위, 복종과 지배의 질서가 아니고, 배려와 연민, 사랑과 보살핌의 원리가 중심이 되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이상 저희들의 무지갯빛 수다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