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7~20]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넓찍하여 그리고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고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16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17 이와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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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절에서 ‘청하는 이’, ‘찾는 이’, ‘문을 두드리는 이’ 라는 말을 통하여 예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체적 행위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누구를 향한 청함이요 찾음이요 두드림입니까? 자신을 향한 청함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청함입니다. 하느님은 여기서 ‘아버지’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11 절에서 다시 ‘당신께 청하는 이들’이라는 말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체적 행위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간절히 청함이 없으면 하느님의 비추임이나 응답도 없습니다. 하느님께 간절히 청하는 것 이것이 하느님께서 자녀인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삶의 자세입니다.

 

12절은 1성서(구약) 전체의 핵심 정신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1성서를 읽어보면 수 많은 전쟁과 인간의 타락과 하느님의 징벌과 은혜가 통시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 전체를 이 한 마디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1성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관점을 열어주는 듯 합니다. 1성서를 이렇게 해석한다면, 그것은 ‘좁은문’으로 들어갈 것을 요청하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따라가는 자본주의적 삶의 메카니즘을 그 정신에 있어서 수용하지 않고, 그 메카니즘에 틈새를 내고 하느님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약자에 대한 우선 배려입니다.

 

15~20에서는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태복음을 낳은 마태공동체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거짓예언자들이 누구였을까요? 여하튼 ‘예언자’라는 말에서 짐작케 하듯이 그들은 극도의 이중성을 띤 어떤 종교지도자급 인물들임을 짐작케 합니다. 마태 공동체는 그들을 식별할 수 있어야 했고, 그 기준으로 ‘열매를 확인하기’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6장에도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실성의 식별 기준은 마태 공동체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맥락에서도 귀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