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소개

1. 권정생(權正生) 작가

  

1937년 9월 10일에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2007년 5월 17일에 별세하였습니다. 1946년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하였으나 가난으로 인해 가족들과 헤어져 어렸을 때부터 각종 험한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결핵에 걸려 늑막염, 폐결핵 등의 병에도 많이 시달렸으며, 전국을 떠돌며 구걸을 하다가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하여서 그 마을 교회의 문간방에 거주하며 종지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1969년에 단편동화인 <강아지똥>을 발표하면서 <기독교 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았고 동화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여러 작품을 쓰다가 1973년 <조선교육> 신춘문예 동화부문에서 또 하나의 유명작인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고, 1975년에 제 1회 한국 아동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떠돌이이던 삶을 마치고 교회의 종지기가 됐기 때문인지,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밑바탕이 됩니다. 언제나 약한 존재지만 자신을 죽여 남을 살리는 주인공을 그려냈습니다.

 

2. 대표작

유명한 <강아지똥>, <무명저고리와 엄마>, <한티재하늘>, <몽실언니>, <하느님의 눈물>,

<점득이네>, <사과나무밭 달님>, <오소리네집 꽃밭> 등 100여 편의 동화를 쓴 훌륭한 이

시대의 본받아야할 마음 따뜻한 동화작가입니다.

 

3. 생애

일제 강점기 도쿄 빈민가에서 가난한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복 후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다. 가난 때문에 재봉기 상회 점원,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등을 하며 객지를 떠돌던 그는 5년 뒤인 1957년 경상북도 안동 일직면 조탑리에 들어왔다. 그때 나이가 18세였다. 이후 22세 때에 지병인 결핵 때문에 집을 나갔다가, 1966년에 다시 정착하여 1982년까지 마을 교회 종지기로 살았다. 동화 작가로서 많은 인세를 받아 왔지만, 1983년 이후 직접 지은 5평짜리 오두막집에서 강아지와 둘이서 사는 검소한 삶을 실천하며 살다가 2007년 5월 17일 지병이 악화되어 대구 가톨릭대학교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기독교 신자인 권정생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그리고 무고하게 고난 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을 작품의 주요 주제로 다뤄왔다.

→ 유서

권정생은 세상을 뜨기 전, "인세는 어린이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굶주린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여력이 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서도 써 달라. 남북한이 서로 미워하거나 싸우지 말고 통일을 이뤄 잘 살았으면 좋겠다' 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4. 발제

*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피가 나의 피가 되고 내 피가 내 이웃의 피가 되고 그래서 인류는 한 목숨 한 핏줄로 이어진 것을 알 때만이 평화는 가능해질 것이다. 어느 한 사람, 그 어떤 위대한 사람의 힘으로도 평화를 만들지는 못한다. 다만 인류가 함께 하느님의 형상대로 본래의 인간으로 돌아가 따뜻하게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길밖에 없다. 이처럼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사는 이들이 이 시대의 성인들이 아니겠는가?

* 우리들의 하느님

하느님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인간들의 마음이다. 종교는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려는 의지이지, 종교가 요구하는 대로 하느님의 섭리를 바꾸는게 아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바로 자연의 섭리가 된다. 하느님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분이 아니라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 했다. 그러니 하느님은 곧 자연인 것이다.

* 물 한 그릇의 양심

예수는 두벌 옷이 있으면 한 벌은 이웃에게 나눠주라고 했지만 요새는 옷 같은 것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남는 옷을 버린다고 한다.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럽지 않지만 나오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다고 한다.

* 녹색을 찾는 길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이사야서 11장이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 효선리 농부의 참된 농촌이야기

농업은 업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삶의 근본이며 전부이다. 쌀을 경제적 이득이나 전쟁의 무기로 이용하는 것은 하느님을 악마로 둔갑시키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농촌의 황폐화는 자연을 파괴하고 다시 인간의 정신을 파괴시킬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자연을 그대로 자연다워지게 가꾸는 길밖에 없다.

*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할 수 있다.

통일만이 미국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통일이 되고 난 다음에라야 우리는 온전한 하나의 국가로서 미국과 동등한 동맹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가난한 삶을 우리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 인간의 삶과 부활의 힘

벌써 기독교는 망해버렸고 죽어버렸다.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허수아비 하느님이다. 지금 우리가 거대하게 지어놓고 모이고 있는 교회는 망한 교회 죽은 교회이다.

오직 물질과 현실의 성공만이 있는 썩은 교회다. 목자는 양들의 지배자이지 섬기는 종은 아니다. 어쩌면 그토록 독재군주와 한 통속이 되어 예수를 팔고 양들을 팔아먹는 장사꾼이 되었는지 두렵지도 않은가.

교회는 성공을 했는데 왜 나라는 만신창이인 채 버림받고 있는가? 왜 살인강도는 늘어나고 집 없는 사람이 늘어나고 감옥이 늘어나고 있는가? 왜 인권은 유린당하고 모두가 이웃끼리 믿지 못하는가?

결국 코쟁이 선교자님들은 허수아비에다 뺑끼칠을 한 가짜 하느님을 업고 와서 속인 것이다.

사람 죽이는 걸 예사로 아는 세상에 교회는 빛도 소금도 되지 못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하던 중에 자신의 마지막 소원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는 것이라 했다. 무척 감동적인 말이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덧붙여서 한다는 말이, 지금은 신앙의 자유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순교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목사님은 눈이 먼 것이 아니라 아예 잠들어 꿈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얼빠진 눈으로 시대를 보고 사회를 보고 설교를 한다니. 하늘이 울고 땅이 통곡할 지경이다.

5. 서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

ㄱ. 자발적 가난

ㄴ. 예수의 삶을 닮고 싶은 우리들의 자세는 무엇인가?

권정생 선생은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이렇게 이 땅 ‘마지막 한 사람’이었던 분이다.

부디, 선생이 일생토록 견뎌왔던 그 고통의 빛으로, 그리고 거기서 당신이 길어올린 사랑의 빛으로 지금 이 땅의 아픔에 참예하려는 영혼의 일렁임이 일어날 수 있기를. “슬픈 동화의 샘처럼 맑디맑은 그 눈동자”로 우리들 영혼의 샘을 감쌀 수 있기를, 갈수록 화탕지옥이 되어가는 이 가망 없는 세계에서 무언가를 위해 희생할 용기를 갖게 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가난하고, 불쌍하고, 쓸쓸한 것들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 갈 수 있기를...

권정생 선생님과 관련된 잘 알려지지 않은 몇가지 예화

1. MBC <느낌표 책책책 읽읍시다>가 한창일 때였다 <느낌표>에서 선정되는 책들은 단연 최고의 책들이다. 제작진에서는 아마 권정생 선생님의 책을 한권 선정할려고 했었나 보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극구 반대 하셔서 못했다고 한다. 이유는 이랬다 아아이들의 가장 행복한 경험 중 하나가 자기 손으로 책을 고르는 일인데, 왜 그걸 빼앗으려 하느냐.

독서는 누군가와의 대화이기도 하다. 한데 누군가 책을 골라주면 대부분 대화가 아닌 강요가 되고 만다. 그러니 우리는 책을 고를 때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실패 또한 하나의 대화니. 그것이 타인의 강요보다 훨씬 낫다. 많이 실패 하시길...

-좋은생각 5월호에 게재된 글 중에서

2. 서울에서 권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무슨 시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권 선생님은 빨리 안동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지능이 좀 모자라는 아이에게 숫자를 가르쳐 주고 있는데 6까지 가르쳐 주었고, 오늘 7자를 가르쳐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6자를 배우기 위해 아이가 오기 때문에 간다는 말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자석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아프고 힘들고 병든 이들과 함께하는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사람입니다. 권 선생님은 얻어맞고는 하소연 할 곳도 없이 하염없이 울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 시대에도 우리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분들도 그렇게 적은 사람들과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권정갱 3주기 추모식에서 이현주 목사님의 여는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