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하려고 하는 평화나눔공동체 '생활공동체'에 관심이 있고,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은, 설두복 교우님께 문의하시거나, 댓글로 이름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새 날은 살아가는 것(공동체의 꿈)


1. 고뇌의 지점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하나님나라 복음과는 딴 길에 있는 현실교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는 과연 하나님나라를 소망하고 있는가? 나와 교회는 세상의 가치질서에 포로되어 있지 않는가? 한국사회에서 작동되는 우상화된 가치질서와 문화를 숭배하며 살고 있지 않는가? 종교적으로는 야훼를 제사하지만 일상의 삶에서는 바알을 섬기고 있지 않는가? 성서의 이스라엘처럼!

성서를 ‘실패자들의 이상’을 기록한 것이라 치부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하나님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는가 하는 삶의 근원에 대한 질문. 도래하는 하나님나라는 왜곡된 세상에 충격을 일으키며 동시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합니다. 무엇을 파괴하고 넘어뜨릴 것인가? 어떻게 건설하며 심을 것인가?


2. 공동체로 부르심

‘공동체’는 세상에 대해 지니는 강력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이 시대의 우상은 욕망을 조작하며 우리를 지배합니다. 세상가치질서가 우상으로 작동할 때 이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새로운 욕망을 생성해 낼 수 있는 공동체’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는 하나님나라 운동을 일관성 있게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마당입니다. 세상이 억지로 시키는 삶을 거스르고, 하나님나라의 대안 가치질서를 만드는 증인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줍니다.

교회사 속에서 대안 공동체 운동은 한 시대의 패러다임이 그 생명력을 다하고 위기를 맞을 때 새로운 대안 가치질서를 담지 하는 운동으로 생성되곤 하였습니다. 거대한 교권체계의 위기를 깨우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영감을 담고 나타났습니다. 동일한 패러다임 내에서의 논점은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지만, 전환 시대의 논점은 ‘현실을 변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삶, 새로운 가치질서를 만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대안 공동체의 생성은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것이 억지로 시키는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나라 공동체는 관습적 사고와 정서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가능성과 능력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거대 조직화되고 세속화된 틀로는 실천할 수 없는 ‘하나님나라 제자도’, 세상의 가치질서를 거스르는 새로운 생활양식 등이 보다 철저하게 구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과 성령의 사건에 보다 민감해지는 은총입니다.

초대교회공동체는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 사건을 통해 생성된 공동체입니다. 성령이 임하자 사람들은 은사와 물질을 함께 나누고 공유했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도 부족함이 없었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했다고 성서는 증언합니다. 사람을 소유물로 거래하던 세상에. 가난함과 부유함이 천지 차이던 세상. 그 세상 한 가운데서 새로운 삶의 양식, 관계를 창출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되어 전파되었으며 하나님나라가 세워졌습니다.

이후 많은 핍박과 소외 속에서도 하나님나라 공동체 운동은 그 생명력을 지속해 왔으며, 이후 종교개혁의 중요한 영감으로 계승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세속화되고 국가 종교화된 교회를 하나님나라 공동체로 개혁하려했습니다. 하나님나라 공동체 운동은 가혹한 핍박과 세속화 유혹을 뚫고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습니다. 오늘도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철저한 제자도를 구현하는 하나님 백성들은 곳곳에서 세속 가치질서를 거스르는 대안 공동체를 생성하며 하나님나라 운동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3. 어떻게 만들어 가야하는가?

거룩한 위치로 올려놓은 종교행위를 일상 삶의 자리로 끌어 내리면 됩니다. 물론 이게 싫으면 일상을 거룩하게 살면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사귐, 나눔, 예배, 공부, 실천을 함께 하는 단위로 공동체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정한 지역에 모여 이웃을 이루어 살아야 합니다. 지체들은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삶을 나눕니다. 서로 잘 알고 돌보며, 공동의 선교과제를 수행하기 적합하도록 비교적 적은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독립된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보편 교회의 본질을 내포하는 ‘교회안의 교회’입니다. 이 공동체들은 공동체 단위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됩니다. 동시에 연대성으로 균형을 유지합니다.

“나도 다 해봤는데, 다 부질없는 이상이야!”, “생각은 좋은데 현실에 맞지 않아!”, “이정도면 돼!” 이런 생각은 그 자체가 불신앙, 체념적 삶의 표현일 뿐 아니라 하나님나라 운동을 위협하는 위험한 속삭임입니다. 예수께서는 시내산 언약 정신을 은폐하고 거짓 신앙으로 이권을 누리던 세상에 대해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선포는 서로 반목하는 것처럼 보였던 자들의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되어 예수를 죽였습니다.

불신앙은 내면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거부합니다. 자신이 세상의 가치질서에 오염되었다는 것이, 세상 욕망과 집착을 ‘거룩한 종교성’ 뒤에 감추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을 거부합니다. 성령의 사건을 통해 그것이 드러나면 잠시 근심하다가 어둠을 향해 질주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드러내고 깨우치고 돕는 힘을 오히려 대적하고 죽이려 드는 것입니다. 부자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가듯이.

죄는 내면질서의 왜곡과 영적 교만, 분별력이 상실된 종교성, 체념적 삶, 가치질서의 독점, 생명평화의 파괴를 통해 드러나고 확장해 갑니다. 현대의 우상은 우리를 역사비판 의식이 상실된 대중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일상, 심지어 무의식에까지 지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외양은 지니고 있지만 일상의 삶은 자본과 권력이라는 우상에 종이 되어 살아갑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를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하고 정직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와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것인가?”
자본과 권력이 결합되어 작동하는 세상 가치질서를 섬기며 살고 있는 것인지!
“나와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시는 하나님나라를 살고 있는가?”
한국사회 속에 우상화되어 작동하는 가치질서와 문화를 숭배하며 사는 것인지!


4. 자세한 생각은 있는가?

우선은 공부를 하여야 합니다. 같이 공부하며 생각을 나누어야 합니다.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기독청년 아카데미’ 강좌를 함께 수강하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다음은 가능한 빠른 시간에 마실 다닐 수 있는 거리에 모여야 합니다. 이게 이루어지면 그 다음은 매우 자연스러운 성장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형태와 하는 일 등은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표현되는 것은 관계에 의해서입니다. 누구의 아빠는 자녀와 관계일 때 아빠입니다. 그 아빠가 일터에 가면 일터 동료가 되는 것이며, 남편이 되고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후 그 혼자만의 실존적 자아는 무인도에 혼자 살던 그 친구 하나 뿐이었습니다. 공동체도 이처럼 관계 맺는 정황에 따라 무한한 모습을 갖게 됩니다.

공동체를 이루며 이루어야 할 시작과 끝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의 확인이 관계 확인으로 되듯이 자기변화도 관계를 변화시킴으로서 가능합니다. 죄와 구원도 하나님과의 관계 맺기 이며, 동시에 자매와의 관계 맺기입니다.

공동체에서는 자기희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요소 중 하나가 자기희생입니다. 공동체는 모두에게 이익을 끼치지만 그것이 누구의 희생을 대가로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이는 언젠가 그 희생에 대한 대가를 바라게 됩니다.

생활 공동체를 이루어 성령의 사건들을 체험하고자 합니다. 우리가운데 문익환을 태일이를 이재유를 부활한 그 분들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꿈을 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