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게르하르트 로핑크

 

개인주의 유산 p. 11

1. 19세기말 독일의 한 대학 강의실에서 20세기의 주류가 되는 신학이 강의된다. 하르낙종교적 개인주의, 주관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에 의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공동체에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온다. 하르낙의 교회는 영적 공동체, 마음들의 결사이다. 하느님과 영혼, 그 영혼의 하느님을 강조한다. 이러한 개인주의 교회상과 속량관(속죄관)은 당시는 물론 지금도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2. 교회란 사회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관계로 구체화되어 드러나야 하며, 구원을 전달하는 공동체를 뜻한다. 공동체에 대한 예수의 견지는 어떤가? 예수는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이라는 관계를 지향했나? 아니면 개인 각자만을 상대했나? 예수의 관심이 하느님과 영혼, 그 영혼의 하느님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안다면 예수의 하느님나라 선포가 교회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드러난다.

 

오늘날 기독교 문제의 발단이 되는 부분을 제대로 비판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회나 사회를 비판하려 하지 않으려 합니다. 나와 너는 이런 비판을 이겨내고 있는가? 이겨내는 방식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를 고민하고 싶습니다.

 

저도 개인주의교회관을 긍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에게 유리한 일에서는 매우 개인주의로 저를 자랑합니다. 저는 저에게 불리한 일이 있으면 개인주의로 저를 방어합니다. 저에게 개인을 충분히 뛰어넘어 이야기 나누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이 부분에서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우선 나와 안해의 사이, 관계는 어떻게 파악되는 사이, 관계일까? 누가 우리 사이를 파악하고 있나? 누구에게 우리 사이를 드러내고 있나? 생활공동체 모임에서 만나는 우리들의 사이는 어떨까? 어떻게 드러날까?

우리는 서로에게 구원을 전달해 주는 사이일까?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런 꿈을 꿉니다. 서로가 서로를 드러내고 구원을 전달하는 사이, 행복한 사이가 되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