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쟁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나간이  목욕 봉사에 참여하다보면 가끔은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한 달전에는 이승 사람이였는데 이번 방문에는 저승 사람으로 바뀌곤 합니다. 
사람은 갈 때가 되면 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갈 때를 사람의 안목으로는 알 수없다는 것입니다.
목욕을 시켜 드리면서도 때론 그 분의 죽음을 예측하는 불순한 의도를 갖곤합니다.
마치 저리도 지겹게 사실바엔 차라리 고통없고 무시안당하는 그런 세상으로 가시는게 낫지 하는  
불충한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그런데 죽울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처럼 그 의도대로 가시지 않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아니 밤중에라도 틀림없이 이세상을 등지겠구나 하는 어르신도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가기도 합니다.
반대로 저 분은 '쉽게 돌아가시지 않을꺼야, 적어도 수 년은 거뜬히 사실거야 ' 하고 어설픈 추정을 하고, 다음 달에 방문하면 보이지 않습니다. 궁금하여 직원에게 확인하면 지난 방문 후 곧바로 좋은 세상으로 가셨다고 말합니다. 욕쟁이 할아버지는 우리 겯을 떠났습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욕쟁이 할아버지는 서지도 못하셔서 침대에 누워서 사시는 분이였습니다.
피골이 상접하여 뼈위에 피부만 앙상하게 입혀져 있습니다. 기력도 있어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입만 살으셔서 욕을 곧잘 하셨습니다. 개새끼는 기본이고, 상스러운 욕을 쏟아냅니다.  여기다 전동작 없이 민첩하게
상대를 향해 침을 밷습니다. 재수가 좋으면 상대방의 얼굴에 찰싹 붙입니다.
공격을 당한 사람은 참 황당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분풀이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됩니다.
그래서 그 분을 목욕 시켜드릴 때는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합니다,. 손은 그 분의 은밀한 곳을 더듬더라도  눈은 항상 그 분의 입을 따라다녀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하고 긴장해도 침을 가끔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나간이 회원치고 그 공격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가 밉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분에게 더 다가가게 되었고, 더 친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기운이 다소 회복되어 침대에서 휠체어로 승진되었습니다. 우리도 함께 승진을 즐겼습니다.
욕을 하셔도 좋고, 침을 밷어도 좋으니 오래만 살아 계시라고 큰 마음으로 빌었습니다.
휠체어를 타시드니 욕소리에 더 힘이 들어갔고, 침빨도 더 강해졌습니다.
그런 그 욕쟁이 할아버지가 이 번 방문에는 저의 시야에서 멀찍히 사라졌습니다.
참 섭섭하고 슬펐습니다.
그 분을 통해서 우리는 '배려"라는 경험을 했습니다. 배려는  우리 스스로를 넘어서는 도약대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려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보았습니다.
그 욕쟁이 할아버지는 저 세상에서는 침을 밷을 필요가 없이 사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