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의 남북 교회 만남, 정례화해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는 지금 축구로 본다면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10분 휴식 시간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축구와 달리 전쟁은 심판이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시작하면 전멸하는 겁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지난 17~19일 스위스에서 개최한 ‘한반도 정의, 평화, 화해에 관한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던 조헌정 목사(60·향린교회)를 26일 만났다. 남북한 등 15개국 교회 대표들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의 날’을 정하고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북한 조선그리스도교련맹(조그련)이 공동으로 기도문을 작성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기도문에는 “한반도 평화조약을 통해 전쟁이 종식되게 하소서. 약탈과 지배, 죽임의 군사문화를 종식시키고 사랑을 통한 생명역사를 세우게 하소서” 등의 내용이 담겼다. WCC는 공동기도문을 다양한 언어로 번역해 세계 교회에 제공할 계획이다.



NCCK 화해통일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 목사는 “전쟁과 분단 이후 6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안의 적개심과 미움이 크다. 교회는 이런 일에 앞장 서서 화해와 용서를 말해야 한다”고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양희은의 노래 ‘작은 연못’을 예로 들었다. “한 연못에 물고기 두 마리가 살았는데 한 마리가 죽게 돼 남은 한 마리가 좋아했지만 죽은 물고기 사체 때문에 연못이 썩어버려서 남은 물고기도 죽게 된다는 내용의 가사다. 한반도도 하나의 생명체로 허리가 잘려서 피가 안 통하는 상태에서 거의 70년을 미워하고 증오해왔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 마음 속에 있는 38선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WCC는 ‘기독교의 유엔’으로 135개국 350교단 6억명의 회원이 함께하고 있는 협의체다. 조 목사는 “WCC는 단순히 종교
집단이 아니라 정치적 평화와 화해를 위한 일에 일정한 영향력을 끼친다”며 미국과 베트남이 평화협정을 맺기 2년 전 양국 교회가 먼저 평화협정을 체결했던 것을 예로 들었다. NCCK도 지난해 한반도 평화협정문 작성을 위한 제안서 ‘한반도 평화체제와 평화협정 체결을 위하여’를 발표했다.

이번 회의는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열린 WCC 제10차
총회의 연장선상에서 WCC 대표단이 모여 발표된 성명서들을 다시 점검하고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부산 총회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가 채택됐지만 북한은 참여하지 못했다. 이번 회의에는 북한 대표단 4명이 참여했다. 이번에 논의된 내용들은 다음주 제네바에 있는 WCC 중앙위원회에서 정식 활동 사항으로 채택될 예정이다.

올해는 1984년 WCC가 남북 교회를 초청해서 일본 도잔소에서 만났던 ‘동북아 평화·정의에 관한 국제회의(도잔소 회의)’ 30주년이 되는 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WCC 도움 없이도 남북 교회가 수시로 만났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으로 교류가 끊겼다가 이번 회의에서 5년 만에 양측 대표단의
만남이 이뤄졌다. 2009년 ‘도잔소 회의’ 25주년 기념으로 홍콩에서 만난 이후 처음이다. 조 목사는 “앞으로 남북 교회의 만남을 정례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는 조그련 강명철 위원장이 새로 선출되고 남북 교회 대표가 처음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강 위원장은 2012년 작고한 조그련 강영섭 위원장의 아들이다. 조그련의 전신인 조선기독교도연맹 위원장을 지낸 강 위원장의 할아버지 강양욱 목사(전 부주석)까지 포함하면 3대 기독교 집안이다. 강 목사는 김일성 주석의 친모인 강반석의 아버지 강돈욱 장로와 6촌 관계다.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의 증언을 듣는 시간도 마련됐다. 조 목사는 “길원옥 할머니가 ‘전쟁만은 막아달라.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이라고 말했다. 북한 쪽에서도 깊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WCC는 이번 회의에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것을 촉구했다. 분단과 해방 70주년을 맞아 내년에는 WCC 국제협의회를 개성·금강산 등 한반도 내에서 개최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글 임아영·사진 김창길 기자 layknt@kyunghyang.com
2014.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