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이의 발자취]

통일운동 헌신한 홍근수 목사

병마와 싸우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으시던 홍근수 목사님! 맨 몸으로 불의의 권력에 맞서 싸우며 민주주의와 통일을 꿈꾸셨던 분이기에 반드시 다시 일어나실 것이라고 믿고 기도했는데 이렇게 떠나시니 그 자리가 너무 크고 무겁습니다.

<한국방송>(KBS) 심야토론에서 사상의 자유와 사회주의를 허용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옥고를 치를 때도 그렇게 당당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목사님이 이끌어 왔던 향린교회, 목사님이 중심이 되어 창설하고 활동해왔던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을 그대로 남겨두고 떠나시다니 정말 가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목사님이 앞장서서 이끌어 오셨던 역사의 무거운 과제들인 민족화해와 자주통일의 과제들을 누가 과연 목사님처럼 감당해 갈지 막연하기만 합니다.

사람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지만, 또한 역사는 사람을 내세워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홍근수 목사님을 통하여 알 수 있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기나긴 군사독재의 억압을 무너뜨리고 마침내 국민이 주권을 되찾던 그때 홍근수 목사님은 미국생활을 접었습니다. 이어 기독교 민주운동의 중심 중 하나였던 향린교회 담임목사가 되어 ‘혜성’같이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의 한가운데 예언자 예레미아처럼 우뚝 섰습니다. 아니 역사가 목사님을 앞에 내세운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서울 법대를 나와 법관의 길을 가지 않고 목사의 길, 아니 모세의 길을 가겠다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역사의 부름이었습니다. 아버님이신 홍성만 장로님의 진보적 신앙의 영향 속에서 어려서부터 남달리 조국과 민족, 해방과 자유, 진리와 정의의 역사의식을 키워온 목사님은 ‘위대한 개혁자’로서 ‘민족 해방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4·19 민주혁명이 군부세력에 의하여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군사쿠데타의 비극 속에서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고 유신통치의 무서운 억압에 어찌 저항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미국 루서신학대학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마친 뒤 편한 학자의 길을 마다하고 귀국하여 민주화운동, 평화운동, 통일 운동의 그 모진 길로 매진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산 아래 현실로 내려가자”고 외치던 목사님이 마침내 ‘광야에서 온 도전장’을 내밀고 빈들에서 외치며 증언하던 그 설교들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기독교와 정치>(1987)로부터 시작하여 <양키 고 홈>(2006)에 이르는 20여권의 저작들은 기독교가 민족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말씀과 함께 오늘도 우리에게 민족통일의 비전과 평화통일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때가 올 것입니다. 홍근수 목사님 무거운 짐과 병마에 시달리던 육신을 이제 내려놓으시고 꿈꾸시던 민족의 해방과 자유, 평화와 통일, 평등과 정의를 바로 그 나라에서 즐기며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