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근수 목사

평화군축운동 홍근수 목사 별세

향린교회 담임맡아 교회개혁 실천
평통사 창립·소파개정운동에 앞장
기독교·사회운동 큰 발자취 남겨

교회개혁과 사회민주화·평화통일 운동에 헌신해온 홍근수 목사(사진)가 7일 오전 9시45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6.

홍 목사는 1987년부터 향린교회 담임목사를 맡으면서 진보적 목회활동을 펼쳐왔다. 1994년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을 창립해 평화군축운동이 전문성과 대중성을 갖추는 데 기여했다. 박정희기념관반대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상임대표, 불평등한 소파(SOFA) 개정 국민행동 공동대표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실천적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줬다.

홍 목사는 서울대 법대 3학년 때 강제징집을 당했다. 법대를 마친 뒤 바로 한신대 대학원에 진학해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신학교 졸업 이후 6년간 시골의 농촌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1974년 37살의 늦은 나이에 가족을 한국에 남겨둔 채 미국 시카고 루서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보스턴한인교회 등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홍 목사는 1987년 고 문익환 목사의 추천으로 향린교회 담임목사를 맡으면서 다시 한반도의 현실과 직접 대면하게 된다. 향린교회에서 홍 목사는 교회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목사 및 장로의 임기제를 도입하는 등 교회 개혁에 힘을 쏟았다. 그 자신은 70살 정년까지 향린교회에서 목회를 하면 교단의 연금을 받을 수 있음에도 65살에 조기 은퇴를 결정했다.

홍 목사는 또 목회자로서 1988년 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주도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의 선언문을 작성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선언은 △남북 정부 당국이 남북 양쪽에 관한 정보를 독점하거나 통일논의를 독점하지 말 것과 △남북한 양측은 체제나 이념의 반대자들이 자기의 양심과 신앙에 따라서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도록 최대한 허용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홍 목사는 1988년 티브이 토론에서 소신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돼,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년 반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한국방송>(KBS) ‘심야토론’에 토론자로 나선 그는 “유럽 여러 나라들처럼 공산당을 합법화시켜야 비로소 민주주의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홍 목사는 1994년 문규현 신부와 함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을 결성했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큰 실천’이라 할 만하다. 평통사는 평화군축을 목표로 삼는 최초의 대중단체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의 기반이 돼는 군축활동 등을 벌여왔다. 홍 목사는 파킨슨병의 일종인 진행성 핵상마비 증세로 2010년 입원하기 이전까지 평통사 상임대표를 맡으며 평통사를 전국 19개의 지부와 2200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큰 조직으로 키웠다.

홍 목사가 이끄는 평통사는 △매향리 미군 폭격장 폐쇄운동 △미군 장갑차에 숨진 미선이·효순이 사건의 사회화 △북한에 공격적인 군사무기 도입 반대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등을 통해 “통일은 전쟁 없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홍 목사는 ‘한반도 평화기반 조성’에 힘쓴 일을 평가받아 2006년 한겨레통일문화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 목사와 아들 성산, 성봉, 딸 정화씨를 남겼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특실 303호, 발인은 11일 오전 7시30분이며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평통사는 9일 오후 5시 장례식장에서 추모행사를 열고, 을지로2가 향린교회에서는 11월 오전 9시 영결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02)927-4404.

글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