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기사입력 2013-07-07)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왼쪽)이 올해 창립 60돌을 맞은 향린교회의 조헌정 담임목사를 찾아가 ‘향린 60년’의 의미와 한국 교회의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정지윤 기자

ㆍ독재권력에 저항한 향린교회 창립 60돌… 조헌정 담임목사·김진호 ‘그리스도교연구소’ 실장 대담

독재권력에 저항한 교회로 잘 알려진 향린교회가 올해 창립 60돌을 맞았다. 향린교회는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어지러운 도심 재개발공사 현장 한가운데 있다. 꽤나 누추한 3층 건물에 십자가조차 내걸지 않은 ‘교회 같지 않은 교회’. 하지만 소외된 이들에겐 ‘향기나는 이웃’(향린)이 돼주었다. 이곳에서 1987년 5월27일 비밀리에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됐다. 활발한 사회 참여, 평신도 중심의 민주적인 교회 운영으로도 유명하다. 정문 기둥에는 ‘6월 민주항쟁 시발지’ 동판, ‘녹색교회’ 기념패 등이 붙어 있다. 또 20년 가까이 ‘국가보안법 철폐’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지난 3일 진보 신학자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51)과 함께 향린교회를 찾아가 조헌정 담임목사(60)를 만났다. 두 사람은 청년 시절 민중신학의 대부이자 향린교회 설립자 중 한 사람인 심원 안병무 선생(1922~1996·전 한신대 교수)에게서 민중신학과 진보적 신앙관의 세례를 받았다. 조 목사는 2003년부터 향린교회 제3대 담임목사로 일했다. ‘심원 안병무 기념사업회’에서 조 목사는 회장을, 김 실장은 학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요즘 매주 금요일 저녁 향린교회에서 ‘<민중신학 이야기> 다시 읽기’ 강좌를 열고 있다.

▲ ‘평신도교회’ 창립정신 고수하며 7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 뒷받침

성인 교인 500명 넘으면 교회 분립… 아름다운 ‘작은교회’의 길 걸어

성장 일변도 한국교회 개혁은 물론 평화·인권·생태 등 사회선교 추진


김진호 실장(이하 김)= 향린교회는 민주화와 사회 선교 등으로 한국 교회와 사회에 기여한 것이 너무나 많다. 향린교회 60주년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인가.

조헌정 목사(이하 조)= 향린교회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안병무 선생 등 12명의 젊은 평신도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밥 먹고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신앙공동체로 출발했다. 지난 60년 동안 평신도 교회의 창립정신을 지키고 있다. 1970년대 이후에는 민주화운동을 뒷받침했고, 북한 형제자매까지 품에 안으려 노력했다. ‘청년예수’ 깃발을 들고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운동, 한·미 FTA 저지 운동, 용산 재개발 참사 현장, 쌍용차 노동자 지원 운동, 4대강 죽이기 사업 반대 운동,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감히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민족교회라고 말하고 싶다.

김= 교회의 성장보다는 사회적 책임과 진보적 가치를 강조하는 교회로서 하나의 모델을 제시했다. 60돌을 맞아 성인 교인이 500명을 넘으면 교회를 분립한다는 원칙에 따라 얼마 전 세 번째로 섬돌향린교회가 분가했다. 대형화를 추구하고 세습을 일삼는 기성 교회들과 정반대로 아름다운 작은 교회의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향린교회 60돌은 어떤 내용들로 채워질지 궁금하다.

조= 향린의 핵심은 공동체성이다. 교인이 많아 옆사람이 누군지조차 모르면 공동체라고 할 수 없다. 1993년 강남향린교회와 2004년 들꽃향린교회에 이어 이번에 목사와 시무장로 3명, 교인 80명을 내보냈다. 새로 분립한 섬돌향린교회는 지난 6월30일 마포구 성산동 인권센터 3층에서 입당예배를 드렸다. 또 60돌을 기념하는 여러 사업 중 하나로 교회 안에 사회선교센터를 세우고 ‘길목협동조합’을 출범시켰다. ‘교회 갱신과 사회 선교의 실천을 위한 제안’도 준비하고 있다. 민주주의 후퇴, 양극화 심화, 분단체제 고착, 무분별한 환경파괴에 맞서 정의와 평화,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교회 개혁, 평화·통일, 인권, 생태·환경, 교육 분야의 실천과제들을 구체화하고 있다. 민족정서가 담긴 제사와 절기를 수용하고 이주민,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노력을 펴나갈 계획이다.

김= 향린교회가 다른 교회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적인 소통방식에 있다고 본다. 그것은 평신도 설교, 국악예배 같은 독특한 문화로 나타났다. 평신도 중심, 목사·장로 임기제 등 향린교회의 규약과 문화가 널리 확산되면 목사 1인의 원맨쇼 같은 한국 교회가 확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평신도가 예배를 진행하고 징·가야금·해금·대금·장구 등의 국악기와 국악찬송가로 예배를 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조= 목사, 장로의 특혜와 권위주의가 한국 교회를 망쳤다. 임기제를 하면 세습 같은 일은 꿈도 못 꾼다. 우리는 특별신도의 반대말처럼 들리는 평신도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목사는 교회목회자, 신도는 생활목회자라고 부른다. 생활목회자들이 돌아가며 예배 진행과 하늘뜻펴기(설교)를 한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 당연히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인정하고 치열하게 토론해서 답을 찾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영성이다. 우리는 예배 중 침묵기도 시간을 갖는다. 국악예배는 1995년 국악선교단 ‘예향’이 창단되면서 본격화했다. 이제 외국에서까지 일부러 국악예배를 보러 온다.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서 ‘국악예배와 영성’을 주제로 국악예배를 보여주고 토론도 하기로 돼 있다. 80개 워크숍 중 외국 참가자들의 신청이 제일 많았다.


김= 향린교회의 도농 교회 간 교류와 협동조합 설립 또한 매우 선도적인 활동이다.

조= 오래전부터 전북 완주 들녘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교인들이 들녘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쌀과 참기름 등 유기농 농산품을 직거래한다. 사회선교센터가 중심이 돼 설립한 길목협동조합은 인문학 강좌, 우리소리 배우기 같은 교육사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교회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던 도농 교류와 재능활동을 교회 밖으로 확대하는 새로운 실험이 될 것이다.

김= 교회가 세상의 고통을 가중시키면서 한국 교회의 위기라는 말이 터져나오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조= 성전을 키우고 신도를 늘리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 되고 있어서 문제다. 교회는 사회를 정의롭고 평화롭게 만드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소금은 자기 몸을 녹여 부패를 막고, 빛은 자기를 태워 세상을 밝힌다. 결국은 자기를 희생하고 사라지는 거다. 몸집이 커지고 부와 권력이 집중되면 타락하기 마련이다. 폐쇄적 보수성부터 깨부숴야 한다. 지역사회, 어려운 이웃들과 더 깊은 유대를 갖고 사회적인 섬김의 정신으로 연대해야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다.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는 성전은 성전이 아니라 벽이라고 했던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새겨야 한다.

<김석종 선임기자 sj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