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배움 자료 안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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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2 기독교인과 조상제사(숭배)
2008년 2월 23일(토)
✻ 찬양 : 장속도 집사
✻ 성서 낭독하기 : 시편 1장
✻ 예수마음기도 : 정용재 전도사
(반가부좌나 무릎을 꿇은 자세로, 손은 자유롭고 편하게 두고 마음을 모읍니다)
(다음 문구들 중 하나를 선택하여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심중에서 읊습니다)
(과거의 회상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일상을 생각하기도 하며, 그 가운데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일지 묵상합니다)
- 나의 주 예수님,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에게 당신의 의를 보이소서.
- 주님, 나와 늘 동행하소서.
✻ 주제토론
1) 본문과 관련된 예비적 토론
2) 본문에 대한 각자의 느낌과 의견 나눔
✻ 2월 새청 모임 돌아보기: 첫주-성서공부(창1-11); 둘째주-친교모임(영화감상:마지막선물); 셋째주-한국근현대사특강(오리엔테이션); 넷째주-주제토론 및 정리
✻ 정리 나눔 및 침묵기도(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자세를 갖추어)
- 토론을 위한 자료 -
중국전래논쟁(中國典禮論爭: the Chinese Rites Controversy)이란?
정용재 전도사
우리나라에서 교회를 다닌 사람치고 ‘기독교인으로서 제사를 지낼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고개를 갸우뚱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잘못이지만) 보통 개신교를 지칭하는 ‘기독교인’이라는 말에는 분명 천주교인과 개신교인의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개신교인들은 대부분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이미 장례문화에도, 영정(影幀) 앞에 절을 하지 않고 기도를 하는, 왠지 어색한 개신교식 장례가 일반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명절이나 제삿날에도 개신교인들은 가족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으로 제사를 대신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느 편이 하느님 뜻이나 성서의 메시지에 맞는지를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실천방향을 그려보자는 것입니다. 첫째, ‘중국전례논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이 한국의 기독교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고, 둘째는 오늘날 우리나라 개신교에서 제사문화는 왜 배척받게 되었는지를 뒤돌아보는 것,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한 사람으로서 이 사회의 제사 문화들에 대해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한지 세세한 실천방향들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제사를 지내면 안 된다’라는 명제가 참인가, 거짓인가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제기된 수많은 이야기들과 논쟁은 어쩌면 ‘중국전례논쟁’이라는 큰 박물관에 전시된 안내 책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그것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상의 기록으로 1645년에 포교성성(Congregatio de Propaganda Fide)1)이 중국전례를 금지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잠정적으로는) 제2차바티칸공의회(1962-65년)2) 때 막을 내립니다. 제2차바티칸공의회 때 토착민의 의례가 교회 안의 예배에도 들어올 수 있음이 선포되었기에 현재 천주교에서는 제사와 관련된 일련의 의례들을 허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중국전례논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아마 수십 권의 책으로도 그것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기란 부족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간단히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만 짚어보고, 관련된 문서 기록들(전체의 먼지만큼도 되지 않겠지만)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논쟁이 촉발된 1645년 포교성성의 교령은 1500년대에 중국에서 활동한 마테오리치의 선교방식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독교 토착화’, ‘토착화 신학’과 같은 이야기는 모두 그의 선교업적으로 인해 자라난 큰 나무의 열매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만큼 그의 선교는 혁신적이었고 선구적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서양의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중국 땅 이곳저곳에 세우는 것과 같은 선교를 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사상과 종교가 그 십자가의 의미를 이야기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하느님은 당시부터 중국에서 ‘천주(天主:t’ien-chu)’ 또는 ‘상제(上帝:shang-ti)’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당시 리치에 의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던 몇몇 중국인들은 조상들의 위패에 하느님의 이름을 적어 모시기도 했습니다. 리치 또한 중국인들의 옷을 입고 그들의 공자숭배, 조상숭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며, 심지어 유학을 공부해 관료로서 활동하는 자격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중국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가 어떤 점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은 물론 그들의 삶을 함께 살아 내었습니다. ‘천주실의(天主實義: De Deo Verax Disputatio, <하느님에 대한 참된 논의>라는 뜻)’ 그러한 그의 노력이 빚어낸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에서는 물론, 동서양 문명 교류 역사에 있어서도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동서양 문명이 만나 또 하나의 거대한 문명의 역사를 펼치게 하는 빅뱅과도 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일본 동경대 교수인 히라카와 스케히로는 그의 일대기를 ‘동서문명교류의 인문학 서사시’3)로 그려 눈부신 역작을 쓴 바 있습니다.그렇게 포르투갈 출신 마테오리치라는 예수회선교사를 통해 촉발된 선교정책의 변화에 대해 1645년 포교성성의 교령으로 시작해 여러 방면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 반대진영에 포교성성과 관련된 얀센주의자4)들, 로마교황청의 보수주의자들, 파리외방전교회(Société des Missions Etrangères de Paris)5)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있었고, 리치의 방향을 지지하는 이들은 그를 이어 중국에서 선교를 하던 예수회 선교사들과 그들을 본국에서 지원하는 예수회 회원들이었습니다. 또한 중국의 황제들, 즉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또한 ‘전례논쟁’의 핵심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 모든 인물이나 그룹들의 관계를 살펴볼 수는 없고, 우리가 물음을 던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리치와 그를 잇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선교정책에 반대한 그룹들은 단순히 교리적인 이유로 그들을 반대한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사실 그들의 관계 내면에는 종교권력들(로마교황청과 프랑스 카톨릭)간의 갈등과 세속권력들(대외적으로 약해지던 포르투갈과 점점 힘을 키워가던 프랑스)간의 갈등, 종파들(예수회와 얀센파)간 갈등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힘이 미약했던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원들의 목소리는 포교성성에서 그 자리를 잃어 갔고 ‘전래논쟁’은 1704년과 1715년에 발표 교령(교황 클레멘스 11세)을 통해 로마교황청은 공식적으로 중국전례를 금지하게 됩니다. 강희제와 그를 이은 청나라 황제들이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들에 대해 완강히 비난하고 거부한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리치 이후 중국인들이 그리스도교에 대해 갖게 되었던 좋은 감정들, 청나라 황실이 선교사들에게 보인 호의는, 로마교황청의 그러한 태도에 맞물려 힘없이 무너져 갔습니다. 그 후 더 이상 서양 선교사들은 중국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었고, 신앙을 가졌던 중국인들도 그것을 숨기기나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3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당시 여러 사안들에 맞물려 로마교황청이 취했던 태도들은 (결정적으로 제2차바티칸공의회에서) 과오로 인정되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문화의 융화와 관련하여 교부들이 생각했던 것과 같이 마테오 리치도 그리스도교 신앙이 중국 문화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 문화를 더욱 풍부하고 완전하게 할 수 있다는 올바를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6)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나라 개신교에 널리 퍼져있는 제사거부 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더욱이 그것이 교리적인 근거로 거부된다면 말입니다. 그런 근거라면 우리는 1900년대 초반 한국 땅에 왔던 2,3세대 외국인(주로 미국) 선교사들의 어설픈 교리해석과 유치한 문자주의 성서해석을 들추어내어 반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나라의 유교적 제사문화를 무턱대고 찬성해서도 안 됩니다. 그 가운데 스며들어 있는 허례허식과 파렴치한 가부장적 문화 속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이어받아온 조상제사(숭배) 문화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더 아름답게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참고 인용문들...7)
* 1659년 포교성성이 각지의 선교사 대표들에게 전달한 교령
❝여하간 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관습과 풍습, 행동양식들을 바꾸라고 설득할 생각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면에서 분명한 가치를 지키고 있다면 말입니다. 중국 땅에 프랑스, 이탈리아, 그 외에 다른 유럽 나라들을 옮겨 놓으려 하다니,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들을 우리 유럽인들처럼 되게 하지 말고 신앙만을 나누어 주십시오. 그들이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라면, 그 신앙은 어떤 사람들의 관습과 풍습이라도 거부하거나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그들을 온전하게 보존되도록 도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말하자면 본성적으로 자신의 문화와 자신의 나라를 다른 모든 이들의 그것들 보다 우월한 것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을 바꾸라는 것 보다 더 거부감을 일으키고 미움을 사는 것은 없다. 더군다나 그들은 항상 그들의 조상들을 기리며 살아왔는데 그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더 심하게 그들의 풍습을 그만 두는 대신에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 것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들에게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즉 결코 그들의 관습을 유럽의 그것보다 열등한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들이 그들의 문화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다.❞
* 1693년 파리외방전교회측 추기경이 그 소속 선교사들에게 전달한 교령
❝1. ‘하느님(God)’에 대한 용어로 t’ien-chu(天主)를 사용하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t’ien(天)이나 를 사용해서는 안됨.
2. 교회에서 t’ien(天)이나 shang-ti(上帝)을 세긴 위패들(tabellae)을 사용해서는 안되며, 특히 ching t’ien(敬天), 즉 ‘하늘을 숭배함’을 세긴 것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위패들과, 특히 ching t’ien이라는 두 단어들을 새긴 것이 우상숭배의 의혹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 문제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복음의 일꾼들이 거룩한 곳에 생기 없는 가증스러운 물건을 두는 위험을 저지를만한 작은 가능성 때문에라도 우리는 그런 비문의 사용을 삼가 해야만 한다.’
3. 그 사실들에 관한 허위 진술들에 대응하여 교황 알렉산더 7세의 결정이 내려졌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공자 및 조상들에 대한 제식을 허용해 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여 질 수 없다.
4. 그리스도인들은 일 년에 두 번씩 있는 공자 및 조상들에 대한 종교적 희생 제사에 참여하거나 참석하는 것조차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것에 미신적 요소들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5. ‘가정집에 모셔진 망자를 위한 위패들을 없애는 데 열심을 보이는 선교사들에게 우리는 경의를 표할 것이며, 그들을 격려하여 계속해서 그런 일들을 수행하도록 도울 것이다.’ 만약 위패들을 그대로 모셔 두어야 한다면, `xin chu( )`, `xin goei( )` 그리고 `ling goei( )`와 같은 말은 없애야 한다. 그리고 망자들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앙과 그들에 대한 공경심을 표현하는 고지를 ‘큰 글자로’ 근처에 정식으로 게시해야 한다.❞
* 유교에 대한 예수회 선교사들의 해석 문구들
❝−적절히 이해한다면, 중국인들이 신봉하는 철학은 그리스도교 교리에 배치되지 않는다.
− t’ai-chi( )라는 말로써 고대의 현자는 만물의 근원인 하느님을 정의하려 했다.
−사당에서 모시는 의식은 종교적인 것이라기 보다 시민 예법이다.
−I Ching(易經)이라고 부르는 책은 이상적인 자연과 도덕에 대한 간략한 사상을 담은 책이다.❞
* 1721년 교황사절단의 포고문을 읽은 강희제의 반박문 중
❝이 포고문을 읽고 있자니, 나는 서양인들의 도량이 너무도 형편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찌 그들이 중국의 근 사상을 이야기 할 수 있으랴? 그 어떤 서양인도 중국의 문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이 그것들을 논할 때면, 우리 중국인들은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우스운지 알게 된다. 이제 나는 교황사절의 포고문을 보며, 그것이 불교와 도교와 마찬가지로 이단적이고 미신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와 같은 터무니 없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향후 서구인들은 중국에서 자신의 종교를 전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아라.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선교를 금지해야만 하겠다.❞

5.13~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