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가 제목을 잔치라고 했는데, 집에서 울던 분도 계시겠지만 울지않던 분도 함께 울라고 오늘 이렇게 매워서 눈물의 잔치가 됐습니다. 모두 기침들을 하고 눈물을 흘리던 판에 이런 제목을 정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가지 상황이 제게 그런 주문을 한 셈입니다.   하나는 여러분이 아시는데로 바로 오늘이 향린교회 창립된 38주년 기념예배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잔치를 치러야할 날입니다. 둘째는 겸해서 오늘 오순절 기념을 하는 주일입니다. 즉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세계 교회가 함께 이날을 오순절로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저 자신이 경험한것을 꼭 전달하고 싶은 생각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요새는 신학적으로 말하면 종말론적으로 삽니다. 다음 달 이 강단에 또 설 수 있을는지 모르는 상황에서사는데 하고싶은 말은 꼭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석헌 선생이 얘기를 2시간하라고 했는데 4시간을 계속했습니다. 3시간쯤 됬을때 할수없어서 쪽지를 올려보냈더니 그걸 읽고선 "사람이 할말을 다하고 죽나,뭐 그만두지" 그러다가 "그래도 해야겠다"고 1시간을 더하면서 "내가 내일 여기서서 할수 있는지 보장이 없잖아요" 그러고서 시작을 했는데 나도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지금 꼭 하고싶은 것은 지난 연초에 젊은사람들이 새해인사를 왔는데 상당히 많은수가 왔습니다. 물론 세배는 안받습니다. 두가지 않하는데 정조는 다깨고 새배를 안받는 정조하고 주례 안 하는 정조만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중교회하는 목사들이 한30명,그것도 미리 전화를 하고 점심준비 하라고 하고 찾아왔었습니다. 언제나 매년 그러는데 그중의 한목사가 책을 하나 놓고 갔는데 공개하지 않는 등사로된 책입니다. "우리가 만난 예수님" 그런 표지가 붙어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니까 교인들과 노동자들과 목사와 함꼐 마가복음을 읽어나간 결실을 편집한것이었습니다. 전 무심코 그 책을 손에 들어서 펼쳐보다가 점점 빨려들어가는 듯한 것을 느꼈고 점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읽어가면서 나하고 보는 눈이 다르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매일 한장씩 읽으면서 정말 기도하고 읽으면서 그들의 눈으로 정성껏 마가복음을 다시 읽으리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한장씩 경건을 기울이고 내눈을 뜨게 해달라고, 내가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매일 한장씩 읽고 거기에서 동의하는 부분 또 그들이 미처 배경을 몰랐던 부분을 첨가하는 것, 그리고 내눈에는 이런면이 보인다는 것을 첨가해서 응답을 적어나갔습니다.  꼭 두달이 채 않되서 45마당을 끝냈습니다. 아마 6월중에 이책이 나올겁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노동자들과 마주앉아서 얘기는 못했지만은 그들이 담백한 수수한 마음으로 성서를 읽은 그것을 제가 대응해서 응답을 한 첫시도입니다. 성서해석의 주체가 과거에는 교황청에 집결되어있다 해방되서 모두 읽게 했지만은 해석권은 또 다시 전문가들이 가지게 되었는데 점점 평신도에게로 옮겨지고, 그것도 별로 생각할 시간도 없는 노동자에게로 해석권이 옮겨진 것을 보고 신학성서의 전문가로서 제가 거기에 대해서 감격도하고 또 응답도 한 시도로서 우리나라로서 처음 나오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을 꼭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과 상관없이 전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났는데 그 일단 하나를 골랐는데, 잔치하고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마가복음 6장14절 이하의 내용입니다. 그들이 "헤롯의 잔치상과 민중의 밥상"이라는 그런제목을 붙인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제해서 오늘것을 "잔치"라는 말을 일단 붙였습니다. 먼저 아까 마지막에 말한 돌샘교회 노동자들이 본 잔치에 대한 이해와 즉 응답내용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간단히 얘기를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이른바 성서학은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목사들이 어떠했거나 무시했다는 것, 두번째 중요한 것은 성서는 원래 다 붙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서는 제목이 붙어있고 1장,2장,3장 하고 절수가 다 붙어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저도 모르게 여기에 매여버립니다. 아 여기 몇절몇절 끊었다 하고 여러분이 딱딱 끊습니다. 실상 처음에 몇장 몇절 그런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내리 쓴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이 절을 무시해버렸습니다. 사람이 얘기할 때 절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냥 쭉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마가의 배경에는 민중들이 입으로 얘기한 내용이 중심의 골격이 되서 얘기를 계속했던 것인데 뭐 꼭 앞뒤를 맞춰서 한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당히 여기에 노예가 되있는데 그들은 거기서 해방이 됐다. 그거 참 재미있다. 그리고 보니 보는 눈이 달라진다. 여러분도 그렇게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6장을 보시면 14절과 29절에 있는 내용은 세례자 요한이 죽임을 당하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거기에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30절부터 44절까지를 한데 묶어서 얘기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30절부터 44절까지는 예수가 5천명을 먹이는 내용입니다. 내용적으로는 다른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이들은 분리시키지 않고 한데 놓고 이것을 해석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따라 읽어나가다 보니까 이상한 생각이 났습니다. 묘하게도 헤롯의 잔치얘기 하고 5천명을 먹이는 잔치 얘기가 대조가 되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마가 기자가 우연히 나열한 것이 아니고 대조해 봐라, 그는 문장을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민중들에 대한 얘기를 한데 엮어가면서 헤롯의 잔치와 이 민중들의 잔치가 어떤 대조로 있는지 독자로 하여금 보십시오 라는 전제를 했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어쨌든 노동자들은 그렇게 읽었습니다.


이들을 이제 대비시키기 위해서 헤롯의 잔치는 민중의 고혈을 빨아서 버린 것인데 노동자들은 그것을 우리나라의 변사또 생일잔치하고 비유를 합니다.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그래서 변사또 얘기를 비교하고 오늘의 권력자들의 잔치를 상상해 봤습니다. 그리고 맹렬한 비판을 그것에 퍼붓고 그것과 대조시켜서 광야에서 사흘씩이나 굶으면서 "참"을 찾아 예수를 따라 다니고 기진맥진 되있다가 벌어지는 잔치얘기를 대조시켰습니다. 이들은 나같이 밤낮 신약책만 들고있는 불행한 바리세파의 후예들이 아니지만, 그런것은 다 무시하고 읽는데 어떻게 분명하게 들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가 떡 5개와 생선2마리로 5천명을 먹인것이 예수가 요술을 부린겁니까? 이렇게 질문을 한데 대해서 또 한사람이 대응해 말하기를 자기가 먹을 것을 혼자먹으려고 숨겨두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반성하고 내놓은것 같아요 이렇게 반응을 합니다. 그리고 또 한분은 혼자만 먹는 이기심에서 같이 먹는 공동체 의식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한국의 부유층들이 하루밤 술값이 몇백 몇십만원이란 것을 다 얘기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밥상과도 비교를 하고 흥분을 합니다.   난 그것을 읽고 먼저 문자를 넘어서 저들을 높이 평가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상당히 문자의 노예가 되어있구나 얘기를 할 때하고 문자를 쓰기 시작하면 또 달라집니다. 본래 이얘기는 글로써서 세상에 내놓을 생각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호롱불을 켜고 모여앉아서 한편으로는 밖에서 들을까 걱정을 하면서 그런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가 듣고 본것을 그대로 얘기해서 이렇게 이어진 것이 내용인데 결국은 하나도 어색할 것이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전적으로 어색하지 않다고 받아들였습니다. 마가가 헤롯의 잔치와 5천명을 먹인 얘기를 나란히 엮은 것은 대조시켜서 생각하라는 의도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것을 우리는 문자주위에 매여서 볼 눈을 못가졌다. 그런 반성을 했습니다. 헤롯의 잔치가 로마식 이었더라면 너무 먹어 포식을 해서 마침내는 토하는 약을 먹어가면서 춤과 음악으로 한바탕 화려한 잔치를 벌였던 것이었겠지만은 세례자 요한은 마침내 가두어 두었던 때였기에, 아마 그래서 저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가득 가둬두고 지금 정부와 계속해서 구 무슨 야당원로니 별 허깨비 같은 놈들을 불러들이는 것 비슷하게 잔치를 벌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여간 그 잔치배후에는 어떤 불안이 감돌고 있었고 결국 그 잔치의 끝은 음식을 담아야 할 그릇에 음식대신 세례자 요한의 잘린 머리가 놓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상상을 해봤습니다. 그들의 한말을 보면서 잔치에 기뻐 야단을 하는데다가 머리가 이만큼 길고 수염이 긴데 어디서 피가 쿨쿨 솟아오고 머리하고 수염이 막 뒤범벅이 된그런 눈이 분노에 차서 감지않은 머리를 쟁반에 받혀들고 들어왔습니다. 헤롯의 잔치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난 그전에도 밤낮 읽으면서 그렇게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의 민중의 잔치는 자기것이라고 제입에 넣지않고 배고픈 이들에게 내놓으면서 시작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 아닙니까?  이자체가 기적입니다. 그 기적은 기적을 낳을 수밖에 없는것입니다. 그 결과로서 그들 모두가 포식하고도 그 사랑이 변해서된 먹을 것이 너무도 많이 남아서 포만한 행복의 잔치라는 내용이 담긴 그런 내용이라고 우리가 응답을 했습니다. 두 잔치얘기를 그들이 본것을 내가 꼭 소개를 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우리 향린교회와 관련이 되서 얘기를 하는것입니다. 두번째가 향린교회 얘기입니다. 이건 이제 제가 밤낮 반복하는 것인데요 구약에서 그렇듯이 똑같은 말을 제사때 마다 반복을 합니다.


향린교회는 6.25동란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6.25전쟁의 산물입니다. 민족상잔의 뼈아픈 현실에 직면한 교회가 얼마나 무력하고 이기적인 집단인 것을 폭로한 것입니다. 개인의 경험을 먼저 얘기하면은 6.25전쟁 약 2년에 걸쳐서 전 신학의 문전에도 못가봤습니다. 그런데 그 주제에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이북에서 넘어온 피난민들에 엎혀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30세전의 팔팔한 청년이었습니다. 오늘도 보니까 벌써 10주년 감사패 받는데 그때 여기왔을 때는 처녀도 있었고 도기순 장로가 벌써 늙어서 70세로 됐다는 것이 시집간 첫날밤이 생각이 나서 지금 이상한 생각이 드는데 저기 최장로하고 둘이서 첫날밤을 지새웠는데  우린 질투가 나서 밤을 새면서 못살게 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70이 되서 은퇴한다니 세상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간 6.25가 터진 2년전에 저는 어떻게 엎혀서 교회를 시작했는데 일생의 제 20대의 말인데 그렇게 정렬을 쏟아서 호소한 기억이 없습니다. 온 정력을 쏟아서 2년동안 설교를 했습니다. 대학에 있는 동창의 친구들이 끝난후에도 우리가 관계를 가지고 있자고 해서 일신회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건 홍장로가 제안한 것인데 에베소 4장에 있는 말입니다. 그 내용은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 부르심도 하나 희망도 하나 신도,  믿음도 하나라는 뜻으로 일신동지회라는 것을 만든일이 있습니다. 하여간 그이름을 따서 교회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만2년동안을 제 온 정력을 기울이면서 열렬히 새벽기도하고 야단하니까 난 세상이 뒤집어진줄 알고 이들이 완전히 변했다 나도 이런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교회에서 트럭한대를 어떻게 구했습니다. 그래 나는 어머니를 태우고 내가 가지고 있는 책얼마를 싣고 나는 떨어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제가 담임이지만은 목사도 나오는데 트럭가지고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라도 더타야하는데 목사라는 사람이 나는 여기 어른이라면서 평신도하고 싸움이 벌어졌는데, 왜 싸움이 벌어졌나하면 자기 김치독하고 된장독을 올려놨습니다. 그래서 김치독하고 된장독 내려놓고 사람하는 더태우자고 했더니 아니라고 해서 싸움이 붙어서 아수라장이 됬습니다. 그걸 보고서 아직 순진한 눈으로 바라보던 20대 청년인 저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제가 2년동안을 온 정력을 쏟아부었는데 결국 속은 느낌이었습니다. 교회는 희망이 없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서 2번이나 피난을  내려갔지만 제가 결국 생각에 잠겼다가 이래서는 않되겠다 아직은 서울에 올라갈 수 없으니까 우리 한번은 모여서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살자. 우리가 정말 예수를 사랑한다면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대로 다하자. 제가 글도 쓰고해서 아는 것은 다압니다만은 우리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첫째로 대구에서 장하구 형을 만났습니다. 내가 설명을 열심히 했습니다. 납득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구미에 가서 이영환형을 만났습니다. 설득을 햇습니다. 우리 모이자. 모여서 하느님의 뜻을 준비하자. 그 다음에는 제주도에 있는 홍창의 장로를 만났습니다. 그때 나를 대접을 제대로 못한다고 변권사가 욕도 먹고한 그런장면도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비장한 각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서 장소를 전주로 정했습니다. 전주로 다 집결하자. 그래서 1년동안을 그렇게 보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되지 않고 모인사람은 홍장로, 이영환, 곽상수선생 그다음에 저 넷이 1년 동안 지냈습니다. 거기서 지내면서 매일 매일 1주일을 정해놓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교회를 다 나눠줘서 나가게해서 여러 영향을 끼치면서 계속 해서 기도의 제목이 그거였습니다. 밖에서 오지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때를 정해서 모여서 1주일 정도씩 얘기를 토론하면서 결정한 내용이 결국 기성교회가지고는 않되겠다 목사 중심의, 목사의 월급이나 겨우 주고 일 다됐다는 것 가지고는 않되겠다. 그래서 평신도 전원이 총동원되는 공동체어야 되겠다. 그걸 일러서 "평신도 목회"라는 말을 썼습니다.


두번째는 주일날 나와서 설교를 한시간쯤 듣고 아무것도 변화가 없더라. 우리 다시하지 말자 생활 전체를 간섭하고 서로 돕고 해야지 설교나 해서 어느 부분적인 귀나 자극해서는 안되겠다. 생활전체를 관여하자. 그리고 거기의 중심부를 이루는 사람들을 절대로 목사에게나 맡기고 앉아서 무슨 헌금이나 거둬주는 것 말고 직접 나서자. 신학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은 철학하는 사람도 있고  음악하는 사람도 있고  의사들도 있고 저는 사회학인지 뭔지 하는 척했습니다만은 여러분류의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것이 입체적으로 그들의 생활전반을 지도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중심을 이룰 사람들은 흩어져서 다른 일 하지말고 함께 모여살자. 함께 모여살되 돈을 한주머니에 넣고 밥을 한데 끓여 먹고 생활을 균일하고 반수도원적으로 살면서 교인들에게도 그렇게 상대를 하면서 입체교회로, 입체목회로하자. 두번째 정한 것입니다.


세번째는 집단적인 공동체를 형성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출발이었습니다. 다시는 기성교회는 않하는거다 그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늘 하는 말이지만 호랑이 그리려다가 고양이 한마리를 그렸습니다. 그랬는데 지금은 그때 출발해서 설교를 꼭 4사람이 돌아가면서 했는데 여기 홍장로하고 장하구 장로하고 이영환 장로하고 그다음에 저 이렇게 넷이서 돌아가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얼마있다 삐걱삐걱 하기 시작햇습니다. 밤새도록 결정하고 돌아가며 갔다와서는 난 못하겠오 하고 발을 뺍니다. 그때 여자들이란 어떻게 밉든지, 집에 가면 달라집니다. 그때 여자라는 것이 요물이라고 생각햇습니다. 나만 결혼않했을 때인데 그때 결혼까지는 못하겠다 않하겠다. 지금 내가 후회하는 것이 뭐냐하면 왜 남자들끼리만 모여서 결정을 했느냐말입니다. 여자들도 함꼐 했어야 하는데 그것이 잘못인 것을 회개합니다만은 어쨌든 무슨힘을 가졌는지 밤새도록 결정하고 옳소하고 돌아갔다와서는 아무래도 않되겠어. 무슨 일이 일어났어. 절대로 부인때문에 라는 말은 자존심때문에 안합니다. 내용은 뻔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공동체를 목적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같이 한가마의 밥을 못먹었고, 집도 신문을 바르지 절대로 도배지를 바를 수 없다. 이렇게 제가 심하게 독재라는 말을 들으면서 막 밀고 나갔습니다. 제가 목수노릇도 그때 배웠는데 판자를 사서 막 못을 박고 별짓 다했습니다. 밥상까지 짰습니다. 그때 모여서 산사람이 홍장로,이영환,곽상수,나 이렇게 네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두분이 우리의 뜻을 동의하는 분이 있어서 여섯이 한울타리 저 남산아래 지금 중국요리집 동보성자리입니다. 한 1,300평 되는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훨씬 1년쯤 후에 장하구 선생이 울타리 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그때 경제적이 문제가 있어서 뭘 했는지 아십니까? 제일학원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만든 것입니다. 뭘할까 하다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학원을 하나 만들어서 중앙신학교를 또 맡아서 서울 분교를 만들고 제가 책임자고, 저는 신학교 문앞에도 않가봤는데, 홍장로도 가르치고 그 다음에는 이전하면서 마당에다 텐트를 치고 학원을 하자고 해서 학원에서 돈은 한푼도 벌지 않으면서 그걸 가지고 그 적산가옥을 사는데 투자를 했습니다. 재판에 쫒아가고 별짓을 다했습니다. 마지막에 큰 돈은 그때 책을 팔아서 돈을 벌게된 난 그때 뭘 하는걸 절대 반대했지만 어쨌든 장하구형이 책판돈 상당한 액수를 내놓아서 우리가 학원을 한 돈과 그런거가지고 지불을 해서 마침내 우리소유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들은 교회를 그렇게 출발하려고 한것이 아니었고 공동체를 할려고 했는데 끝까지 않되고 말았고 그러니까 맥이 빠지고 그리고 하나 남는 것은 주일날만 우리끼리 모이자는 그교회가 점점 커져서 교회가 꽉차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도 않되고, 입체교회도 않되고 단지 평신도 교회라는 이름으로 전임 목사를 안썼던 것입니다. 우리끼리 아마추어 들이죠. 저를 포함해서 아마추어들이 돌아가면서 설교를 했는데 단 그것이 힘이있었던 것은 성서만 읽고 한것이 아니고 생활속에서 나오는 호소였기 때문에 아마 설득력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 전통을 버릴 수가 없어서 내가 독일 갔다가 돌아와서 저도 한 10년동안을 부득이 제가 맡아서 설교를 계속 했습니다. 10년동안 설교한 내용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면 에서는 저의 평생은 여기에서 설교된 정신사라고 하겠는데 그걸 대개 문장화 했지만은 그걸 다시 할려면 누가할까? 요샌 그런생각도 하고 다 불살아 버릴까?  놔둘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은 하여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민족적인 수난 속에서 기독교는 아주 이기적인 단체고, 무능한 단체고 이대로 우리는 않되겠다. 우리는 적어도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사람들이니까 적어도 어떤 의도의 수도자는 못되더라도 이렇게라도 살자고 했던 그 결과라는 것, 그 정신은 어느 의미로나 그래도 살려야 향린은 산다. 그래도 처음 38년전에 5월17일 첫 예배에 그때 참여했던 것은 홍장로,이영환,곽상수, 나 이렇게 하고 첫설교를 제가 했는데 그것을 홍장로가 스스로 기록했는데 거기 싯구를 하나 적은 것을 아는분은 압니다. 그때 감격스러운 시를 썼습니다. 그렇게 보면은 이 향린교회가 태어난 이날, 우리는 잔치를 벌여햐 합니다.


어느 잔치일까? 헤롯의 잔치가 될까? 아니면 5천명에게 나눠준 잔치가 될까? 그건 모릅니다. 모르겠지만은 우리는 어떤 결단을 하면서 잔치를 벌일 준비를 새로운 의미에서 해야 할겁니다. 그리고 오늘 오순절 얘기입니다. 이것도 난 잔치라는 시각에서 봤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이 오순절 얘기였습니다. 사실은 제가 첫 제목을 주기를 잔치비유를 전했다 곧 수정해서 오순절 것을 읽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이건 누가복음을 쓴 저자가 기록한 얘기입니다. 참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여기서 저는 이 본문가지고 여러번 향린교회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시각을 조금 달리해보려고 합니다. 잔치라는 시각에서 해보려고 합니다. 자 예루살렘은 예수를 처형한 장소입니다. 아직도 예수를 처형한 세력이 사기 등등한 그때에 예수의 흘린 피가 아직도 땅을 적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도망을 갔던 갈릴리의 민중들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는 바로 그날을 기념한 오순절날 그 많은 각지에 흩어졌던 유대 교포들이 모이는 그날 그들이 거기에 뛰어들었다. 그 자체부터가 사건입니다. 그 비겁장이들이 어떻게 거기로 모여들었을까? 특히 갈릴리에서, 갈릴리라는 자체에 대해서 비중을 별로 두지 않는 누가 기자가 이 사람들을 "갈릴리에서 온" 이라는 말을 꼭 붙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이 많은 군중들 한가운데 지금 섰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불고 해 같은 것이 한불길위에 나타나더니 이게 갈라져 가지고 각 사람머리 위에 임했다. 그러자 저들이 영이 충만해서 그 영이 지시하는대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 촌놈들이. 기적이죠. 그런데 거기모인 사람들이 저것들이 뭔가하고 보는데 처음에는 이상한 소리다 하고 가만히 들어보니까 의미를 알겠어요. 그들이 놀라는 겁니다. 각기 다른 곳에서 모국어를 잊어버리고 그나라 말밖에 모르는 교포들이 모여 들었는데 아 저들은 분명히 갈릴리 말을 쓰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는 모른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나 하는 대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날이 교회의 탄생날입니다.


적어도 누가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교회의 탄생날은 예수이후의 성령에 의해서 시작된 날 그것이 바로 오순절날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면은 새로운 막이 열린겁니다. 역사 예수시대에는 지나고 이제 새롭게 성령에 의해서 새 공동체가 탄생된 날 그러면 중요한 하나의 단서가 됩니다. 그런데 그 개벽과 같은 이 새출발의 동력이 뭔가? 그게 희랍말로 하면 "푸뉴마" 두 말을 한줄에 썼는데 푸뉴마라는 말만 써서 그게 "영"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또 같은 말로 "푸뉴마 토스 아기오" 라고 하고 그걸 우리가 성령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정확히 "구별된 영"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동력이었습니다. 푸뉴마 또는 영 또는 "구별된 영"이 동력이 됬습니다.  그런데 이 "영"이라는 걸 "성령"이라고 우리가 부르는데 거기다가 우리 문제가 생겼습니다. 후에 페르조나라는 소위 인격성, 위격을 부여하게 된것입니다. 부여시켜서 성령님이라는 생각을 한것입니다. 난 요새는 상당히 절실히 느낍니다만은 세찬 바람이 불었고 한 큰불덩이가 갈라져서 각 사람에게 임했다 그러므로 저들의 막혔던 말문이 열렸다. 비겁하던 저들에게 용기가 주어졌다. 평등의 사건이 주어졌는데, 나가서는 저들의 주장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서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서 저들과 관통할수 있는 에너지를 줬다. 그런 내용입니다.


내가 아직도 정확히 살피지는 못했지만은 김창락 교수가 자세한 것을 살피는데, 아주 실례를 하는데 신학전체를 통해서 성령이라는 말 이 인격적으로 표현한 것은 단 한번 밖에 없다. 대개 그게 없습니다. 푸뉴마 라는 말자체가 바람이라는 말, 숨이라는 말, 교류하는 힘 에너지 등등의 의미입니다.


이건 히브리 말에 하느님이 사람을 흙으로 빛고 숨을 불어넣었다는 그 숨, "루아하" 하고 같은 말입니다. 또는 에스겔에 환상 속에 나타나는 해골들이 전부 흩어져 있는데 그 해골들이 그냥 죽어버렸는데 숨이 불어와서 그들이 살아났다는 그게 숨입니다. 그게 푸뉴마입니다. 즉 죽은 사람을 살리는 힘, 하늘과 땅을 꿰뚫는 힘, 산것과 죽은 것을 있게 하고 물과 정신 막힌담을 열게하는 아니 우주를 뚫어서 천기, 지기, 인기 이 모든 것을 통괄하는 동양의 개념인 기(氣)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기(氣)자가 본래 글자는 바람이 부는 것입니다. 상형문자입니다. 전에는 쌀미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점점 쌀미자를 넣는 것은 아무래도 힘은 그저 않나오더라. 배에 밥이 들어가야 되겠더라 해서 쌀미자를 집어 넣은 것이고 원래는 없습니다. 거기 인격이라는 개념을 빼면은 인격이라는 힘을 넣으면 우리는 좋습니다. 성령님 하면 뭔가 의지하고 싶은게 있지만은 하나 중요한 것은 님이라는 것을 붙이면은 간격이 생깁니다. 한계를 규정합니다. 그 성령은 벌써 규정을 받아 힘이 빠집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대화도 끊어집니다. 기라는 것은 삶과 죽음도 넘어서는 것, 모이면 생이고 기가 모이면 생이고, 기가 흩어지면 죽음이다. 그런데 죽느냐 사는냐 그것은 그런 현상뿐이고 끝끝내 남는것은 기다. 죽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보통 기가 막히다. 그러면 죽는 것입니다."기똥 차다"그러면 그것은 기가 통했다는 것입니다. 기차다. "기"자 하나 가지고 별 소리를 다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어떤 신학전문지가 나하고 기막히다는 제목으로 대담을 하겠다고 그럽니다. 우리는 기가 막히게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러분, 최루탄 그게 기를 막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면 젊은 사람들이 자기를 분신해 죽겟습니까? 자기 목숨을 분신해 죽는데 뒤에 조종자가 있다고, 어떤 놈이 사람을 죽이는데 마음대로 조종할 사람이 어디있겠습까? 그런 미친발상을 한 그런 놈들이 기를 죽이려는 놈들입니다. 반 성령 새력들입니다. 그런데 기가, 영이 내려서 이 죽었던 이들 비겁했던 이들 이 갈릴리 민중을 살아 일으킨 것이 오순절 사건입니다.


향린교회가 만약 의미가 있다면 개개인이 무슨 누가 창립자요 나도 그중의 하나이지만 그건 우스운 얘기이고 이 기가 움직여서 처음부터 거기 내동한 것중에 이름은 누구 창시자 하지만은 우리 도기순 장로도, 최봉삼 장로도 다 같이 움직여서 휘말려 들었던, 설교만 않했지 다 창시자 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는 이 기를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게 향린교회라면 우리는 잔치를 벌여야 합니다. 이 죽어가던 무능하던 갈릴리 민중들, 배신자 그중의 12중의 하나까지 완전히 예수를 팔아 먹게 까지 한 이것들이 이렇게 변화돼서 예수를 죽인 현장을 뚫고 들어가서 그 중심이 되서 그들을 이끌고 나가서 마침내 정착했던 이 순간을 역사를 뒤집어 놓는 하나의 계기가 됐으니까 우리 이날은 잔치를 벌이자. 바로 이민중이 다시 살아난 이때가 그리스도 공동체가 탄생된 첫날입니다. 잔치에 대한 얘기는 여러번 했으니까 않하겠지만 어쨌든 잔치라는 이생각과 우리 기독교 생활을 분리시켜서는 않됩니다. 성찬식을 오늘도 할거지만 난 성찬식을 할 때마다 분합니다. 원래는 애찬식입니다. 흥겹게 나눠먹는 것입니다. 돈가진 사람들이 이날 다가지고 와서 그냥 떡잔치하고 배불리 먹는 것입니다. 흥겨워하고 술도 한잔씩 먹고 그러는데 이게 복잡해 지니까 식구가 많이 모이니까 이렇게 조그마하게 해서 나눠먹었다고 이 술 넘기고 예수의 피 나눠먹었다고, 이거 치사하고 더러운겁니다. 그래도 청년들은 뜻이 있어서 그래도 막걸리를 나눠먹었다고 야단하는데 왜 못합니까? 왜 서양 포도주는 먹고 막걸리는 먹으면 왜 않된다는 겁니까? 난 막걸리에다 떡을 좀 뚝뚝 뜯어 먹고 그리고 흥겹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뜻이 애찬이지 예수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후에 발달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도 교회가 문란해지니까 서로 먹겠다고 떠들고 가진 것들은 자기가 음식을 싸가지고 오는데 부자놈들은 저희들끼리만 돌아앉아 먹고 야단피우니까 바울이 할수 없어서 안되겠다 애찬보다도 이것만 하자고 해서  사크라멘트화 시킨것입니다. 여기에 병이 나기 시작한것입니다. 하여간 한몸에서 받은 힘을 나눠먹는 공동체 내가 부락공동체 얘기나 우리 제사법 얘기도 할려고 했습니다. 이건 다시 살려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부모에게 밥을 떠났다가 그걸 내려서 나눠먹는거, 가정이 거기서 시작한 것입니다.


부락제도 그런의미에서 그 정신을 이어받아야 하는데 선교사들이 다 죽여 버렸습니다. 한몸에서 받은 힘을 나눠 먹는, 공동체 힘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뜻을 다 퇴색되 버린 것이 사크라 멘트라는 것으로 박제된 그런 것이 나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미 벌써 교회가 형성됬을때 이게 벌써 그렇게 맥이 빠졌기 때문에 요한이 반발을 하고 일어 났습니다. 여러분 요한복음을 읽어보십시오. 만찬얘기가 없습니다. 왜 없는지 아십니까? 벌써 만찬이 퇴색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장소를 이동했습니다. 예수가 죽는 그날로 정하지 않고 어느 다락방을 정하지 않고 민중들과 함께 모인 들에서 이걸 먹어라 그런것이 아니고 예수가 몸을 내밀면서 내 살을 먹어라. 바꿨습니다. 성찬으로의 본뜻이 없어지니까. 너희들 내 살먹어야 산다. 우리가 지금 살을 먹고 있습니다. 8명의 살을 먹고 있습니다. 이 기가막힌 판이기 때문에 기막혀 죽은 저들의 살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들,학생들,노동자들,고등하교 학생들 그 살을 실제로 먹고 있는 것입니다. 2천년전에 일어난 사건 오순절에 일어난 사건, 향린교회가 탄생할 때 일어난 사건, 그리고 우리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사건들 내 살을 먹어라 하는 그래서 이것이 서로 연관이 돼서 그냥 피가 흐르고 시공을 떠나서 계속연결되서 죽지 않고 태동하고 있는 것이 무어냐? 그것이 기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성령입니다. 성령, 기 그것은 우주를 관통합니다. 역사를 관통하는 힘입니다. 기가 일으킨 것이 사건입니다. 이 기가 사건을 일으킨것을 누가가 4장에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내가 영을 받으니까" 하고 여러분이 잘아시는 무슨무슨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끝에가서 은혜의 해가 이제 임박한다는 마지막 평화의 최후의 그걸 바라보고 그 영이 그 기가 그렇게 시킨 것입니다. 일보 더나가서 바울은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닙니다. 이 자연을 보면서 자연도 신음을 하면서 해방받기를 원한다고 하고 그것은 참사람이 나올 때에만 자연은 해방받을 것이다. 나아가서 성령도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면서 참 하느님의 아들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온 우주가 하느님과 사람과 그것을 전부다 통틀어서 "기막힌" 것을 뚫을 수 있는 것을 일러서 성령이라고 합니다. 결국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고 역사에 한하지 않고 자연과도 상통합니다. 그런 사건이 일어나는 그것이 종국적인 우리가 기대되는 하느님 나라의 비전입니다.


잔치 우리는 어떤 잔치를 벌이나? 이기적인 잔치를 벌이나,헤롯의 잔치를 벌이나 아니면 5천명이 받아 즐기던 그 잔치를 벌이나 이것이 앞으로 우리를 가늠하는 중요한 표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