ⅩⅩ강 진실로 이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이었다(14:53-15:41)

 

0. 기도

 

1. 지난 주 복습

- 성만찬 예식

- 게쎄마니의 기도와 제자들의 약함, 무지, 배신

- 예수의 장례를 준비한 여인: 권력의 무화

 

2. 말씀 읽기: 마가 14:53-15:41

 

53 그들은 예수를 대제사장에게로 끌고 갔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54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를 뒤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마당에까지 들어갔다. 그는 하인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55 대제사장들과 온 의회가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를 고소할 증거를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하였다. 56 예수에게 불리하게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의 증언은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57 더러는 일어나서, 그에게 불리하게, 거짓으로 증언하여 말하기를 58 “우리가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내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 하였습니다.” 59 그러나 그들의 증언도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60 그래서 대제사장이 한가운데서 일어서서, 예수께 물었다. “이 사람들이 그대에게 불리하게 증언하는데도, 아무 답변도 하지 않소?” 61 그러나 예수께서는 입을 다무시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이 예수께 묻기를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하였다. 6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그이요. 당신들은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63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고 말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들이 더 필요하겠소? 64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예수는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정죄하였다. 65 그들 가운데서 더러는, 달려들어 예수께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고 하면서 알아 맞추어 보아라하고 놀려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인들은 예수를 손바닥으로 쳤다. 66 베드로가 안뜰 아래쪽에 있는데, 대제사장의 하녀 가운데 하나가 와서, 67 베드로가 불을 쬐고 있는 것을 보고, 그를 빤히 노려보고서 말하였다. “당신도 저 나사렛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닌 사람이지요?” 68 그러나 베드로는 부인하여 말하기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다하였다. 그리고 그는 바깥 뜰로 나갔다. 69 그 하녀가 그를 보고서, 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예수와 한패입니다하였다. 70 그러나 그는 다시 부인하였다. 조금 뒤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갈릴리 사람이니까 틀림없이 그들과 한패일 거요.” 71 그러나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여 말하기를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하였다. 72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엎드려서 울었다.

 

- 예수의 산헤드린 재판 과정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 베드로와 예수의 모습을 비교해 보라.

 

1 그리고 즉시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장로들과 율법학자들과 온 의회들과 함께 회의를 열어 예수를 묶어 데리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었다. 2 그래서 빌라도가 그에게 물었다. “네가 유대인들의 왕이냐?” 그러자 (그는) 그에게 대답하였다. “네가 말한다” 3 그러자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그를 고발하였다. 4 빌라도가 그에게 다시 물어 말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소? 얼마나 여러 가지로 당신을 고발하는가 보시오.” 5 그러나 예수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빌라도가 이상하게 여겼다. 6 (빌라도는) 축제(명절)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를 풀어주곤 했다. 7 폭동 중에 살인을 한 폭도들과 함께 바라바라고 불리는 한 사람이 감옥에 있었다. 8 그래서 무리가 (빌라도에게?) 올라가서 그들에게 해 오던 대로 해주기를 청하기 시작했다. 9 그러자 빌라도는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했다. “너희들에게 유대인들의 왕을 풀어주길 원하느냐?” 10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이 그를 시기하여 넘겨주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오히려 바라바를 그들에게 풀어달라고 하도록 무리를 선동하였다. 12 빌라도는 다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했다. “그러면 [너희가 말하는] 유대인들의 왕은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가]?” 13 그러자 그들은 다시 외쳤다. “그를 십자가에 매다시오” 14 이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했다. “무슨 나쁜 짓을 했단 말인가?” 그러나 그들은 더욱 외쳤다. “그를 십자가에 매다시오” 15 그리하여 빌라도는 무리를 만족시켜 주려고, 그들에게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는 채찍질한 다음에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넘겨주었다. 16 군사들이 그를 뜰 안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총독관저였다. 그리고 전 부대를 집합시켰다. 17 그리고 그에게 보랏빛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서 그에게 씌웠다. 18 그리고 그에게 절하기 시작했다. “기뻐하라! 유대인들의 왕.” 19 그리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고 무릎 꿇어 그에게 절했다. 20 그렇게 그를 조롱하고 나서 보랏빛 옷을 벗기고 그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그를 십자가형에 처하려고 데리고 나갔다.

21 그리고 시골에서부터 와서 지나가는 어떤 사람 즉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키레네 사람 시몬을 강요하여 그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22 그래서 그를 골고다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골고다는) 번역하면 해골 곳이다. 23 그에게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24 그를 십자가에 달고, 그의 옷을 나누었는데 누가 무엇을 차지할지 주사위를 던졌다. 25 시간은 세시였고 그를 십자가형에 처했다. 26 그의 죄목 명패에는 유대인들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다. 27 그리고 그와 함께 두명의 강도를 십자가형에 처했는데, 하나는 그의 오른편에 하나는 그의 왼편에 있었다. 28. 29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면서 그를 모독하여 말했다. “하하! 성전을 헐고 사흘안에 세운다던 이여, 30 너 자신이나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31 대제사장들도 율법학자들과 함께 그렇게 조롱하면서 서로 말했다. “남들은 구했지만 자신은 구할 수 없나 보네! 32 그리스도, 이스라엘의 왕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하여 보시지.” 그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자들고 그를 모욕하였다. 33 여섯 시가 되자 어둠이 온 땅을 덮어 아홉시까지 계속되었다. 34 9시에 예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밬타니번역하면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이다. 35 곁에 있던 몇 몇이 듣고 말하였다. “봐라! 엘리야를 부른다” 36 어떤 사람이 달려와 솜뭉치를 신포도주에 적신 다음 갈대에 꽂아서 그에게 마시게 하며 말하였다.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주나 보자” 37 그러나 예수는 큰 소리를 내며 숨졌다. 38 그러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39 그를 마주 보고 곁에 서 있던 백부장이 그가 이렇게 숨지는 것을 보고 말했다. “진실로 이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40 여자들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41 그들은 (예수가) 갈릴래아 있을 때부터 그를 따랐고 그를 섬겼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많은 다른 여성들이 있었다.

 

- 빌라도의 재판은 어디에서 벌어진 것인가?

-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 예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바울 편지들과 비교해서(고전 1:23-24, 5:8, 3:24-25, 2:19-20, 6:3-4) 마가의 해석은 무엇인가?

- 왜 군중들은 바라바를 요구했을까?

-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징조들은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가? 어두움, 성전 휘장이 찢어짐, 로마 백부장의 고백 등등.

-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시편 22편 이야기(고난 받는 의인, 고난 당하지만 하느님에 의해 정당함이 입증됨)

- 예수의 죽음의 필연성: 지배체제에 도전하는 인간의 운명과 그 사건이 벌어진 뒤 이어지는 제자들의 회고적 고백 -> 하느님의 섭리였다.

 

3. 말씀 새기기

 

예수의 재판 장면은 그동안 예수 죽음의 가장 큰 책임을 유대의 고위층에게 돌렸고, 이것은 역사적으로 유대교 박해의 근거가 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재판 장면을 읽으면서 아래와 같은 역사적 배경에 대해 고찰해야만 한다.

우선 마가는 (그리고 다른 초기 기독교인들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가와 다른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들 중 예수가 체포된 후 그와 함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도망쳤었다. 대제사장 측근의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후에 알려주었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에 관해 전혀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복음서들에 나오는 기억된 역사가 아니라 부활 이후의 기독교적 구성이며 마가에게는 70년경의 이야기를 말하는 방식이 된다. 마가에 나온 재판은 공인된 법률에 따라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식적인 재판인지, 아니면 법률에 준하는 절차를 따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청문회인지 확실하지 않다. 더구나 마가에 의해 언급된 <공회>는 후대의 산헤드린이 아니라 대제사장과 그의 고문들로 구성된 비밀의회일 가능성도 있다. 성전의 관원들은 유대인들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대표하기보다는 오히려 로마제국의 현지 협력자들로서 대다수의 유대인들을 압제하는 자들이었다.

의회의 재판은 세 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첫째 단계는 14:55-59로 예수를 탄핵하는 증언인데, 그 증언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두 번째 단계(14:60-62)에서 대제사장은 예수를 직접 심문한다. 유대교의 율법에 의하면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두세 사람의 증인들의 증언이 필요한데 서로 일치되는 증인들이 없자, 대제사장이 직접 자백을 받아내려고 한 것이다. 대제사장은 예수에게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묻는데 역설적으로 이 질문은 마가가 묘사하는 예수의 메시지와 일치한다. 왜냐면 마가는 예수를 한 개인으로 그리려 하기 보다, 지배를 추구하는 통상적인 지배체제들과 제국들에 도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대답은 자신을 인자로 표현함으로써 하느님의 아들로 불릴 경우 오해될 수 있는 소지를 교정한다. 반제국주의적 환상을 말하는 다니엘서 7장은 짐승 같은 제국들을 물리치고 인자 같은 이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주어진다는 긍정적인 확인을 하고 있다. 마가가 예수의 인자 언급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예수, 사람의 아들에게는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주어져 있고 그 나라는 결국 미래에 완성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나라가 현재 여기 있다는 것은 지금은 믿는 자에게만 알려져 있지만(1:15), 어느 날인가는 눈으로 볼 수 있게 드러날 것이다(9:1). 마가는 그 날이 이 세대가 가기 전일 것이라 기대했다. 그래서 예수를 따르는 자는 제국주의적 삶의 방식과는 전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의 대답 이후 세 번째 단계는 예수에 대한 사형선고와 권력남용, 예수의 육체적 고난의 시작이다(14:63-65).

마가는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까지 예수를 따르는 장면(14:53-54)과 베드로의 예수 부인 사건(14:66-72) 사이에 예수의 재판을 끼워 넣음으로써(14:55-65) 베드로와 예수의 대조적인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베드로는 심문을 받고 비공식적인 구경꾼들에게 겁을 먹고 대답한다. 예수는 심문을 받고 공식적인 대제사장에게 용기 있게 대답한다. 마가는 유대-로마전쟁기간에 가혹한 박해를 당하는 기독인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예수를 통해 이 공포의 기간 동안 기독인들이 가족 내에서 서로 배신하고 부인하지 않도록 경고한다.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데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13:12). 베드로와 예수의 이야기는 기독인들에게 여러 층위에서 위로를 제공하고 있다. 첫째, 베드로보다 예수를 닮았던 사람들은 그들의 용기에 대해 찬사를 받는다. 둘째, 예수보다 오히려 베드로를 닮았던 사람들도 회개와 용서의 희망을 가지고 위안을 받는다. 베드로는 결국 뉘우치기 때문이다(72). 그러므로 셋째, 배신과 부인보다 더 큰 죄는 절망에 빠져 회개하면 언제든 용서 받을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마저 상실하는 것이다. 유다가 회개했더라면 부활 예수를 만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베드로는 회개함으로 부활의 소식을 듣는다(16:7).

빌라도의 재판은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냐에 초점을 두면서 예수가 황제의 권력에 도전하면서 정치적 혁명을 시도하였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빌라도의 질문에 대해 예수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하고 이후로는 계속 침묵한다. 예수는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도 하지 않았고 정치적 혁명도 시도하지 않는다. 다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내놓을 뿐이다.

십자가 처형은 페르시아 사람들이 최초로 사용했는데, 본래 저항하는 외국인들을 처형하였다. 로마 시대에는 십자가형이 노예나 외국인, 또는 반란을 일으킨 자 등에 대한 처형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로마의 십자가형은 탈주, 비밀 폭로, 내란선동, 살인, 반역 등의 중죄에만 적용되었다. 십자가형이 정치범을 다스리는 형이 되자 십자가형은 로마변방의 속주들에서 가장 널리 행해졌다. 십자가형은 사회적 신분간의 차별을 분명히 드러내는 노예나 천민에 대한 사형방법으로 시작되어 후에는 정치적 군사적 처형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로마의 평화를 유지하는 이상적인 수단으로 쓰였다.

그러나 십자가형을 당하는 사람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을 당해야 했다.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은 네 명의 로마 군인의 경계를 받으며 형장을 향해 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는 죄목이 적힌 흰색 판을 들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수직으로 되어서 땅에 고정시키도록 되어 있는 십자가의 세로대(stipes) 부분은 형장에 미리 설치되어 있고, 죄수는 그의 팔을 고정시킬 가로대(patibulum)를 매고 갔다. 죄수 자신이 직접 이것을 매고 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마가에 의하면 군인들이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 하여금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다. 아마도 그것은 예수가 너무 쇠약하여 그 나무토막을 스스로 지고 갈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간 죄수는 형장에 이르면, 먼저 옷을 벌거벗기고 채찍질 당한 뒤, 두 팔을 십자가 나무에 대고 벌린 채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혔다. 그러고는 일으켜 세워 땅에 미리 세워둔 부착목에 십자가 나무를 고정시켰다. 체중이 앞으로 쏠림으로 해서 양손의 못 박힌 자리가 더 찢어진다. 심장의 긴장, 압박과 내리쬐는 햇볕, 달려드는 벌레들, 욕하는 구경꾼들 앞에서의 벌거벗은, 그 고통과 수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죄수는 빨리 죽지도 않았다. 보통은 3일씩이나 달려 있었다. 마침내 주림과 목마름, 고통으로 죽는다. 이런 처참한 고통을 면하기 위해 망치로 죄수의 다리를 쳐서 속히 죽게 하는 것은 오히려 자비를 베푸는 행위에 속했다. 죽은 뒤 보통 나무에 달아두어 새들의 밥이 되거나 굶주린 들개들이 먹게 하곤 했다. 십자가형이 최악의 형벌이 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장례를 위해 남아있거나 혹은 허용된 것이 아무 것도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와 비슷하게 우상숭배자나 신성 모독자들을 나무에 달아 죽이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하느님께 저주받음을 뜻했다(21:23). 대제사장들과 무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했던 것은 예수가 하느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자로 십자가상에서 죽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유대와 같이 통치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명절마다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었다는 성서의 보도를 어디까지 역사적 사실로 보아야 할지 무척 어렵다. 바라바 이야기는 오히려 70년경의 마가상황에서 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바라바와 예수는 모두 로마 제국에 도전했다는 의미에서 혁명가들이었다. 그러나 바라바는 폭력에 호소하였으나 예수는 비폭력(또는 폭력의 최소화)에 호소했다. 66년까지 예루살렘 군중들은 그리고 유대의 많은 이들은 예수의 방식이 아니라 바라바의 방식을 택했다. 66-70년까지 그 방법으로 로마의 전쟁이 지속되었고, 마가공동체는 그러한 사실을 바라바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한다.

십자가 위에 붙어 있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 패는 예수를 조롱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예수를 고발한 자들까지 조롱하는 역할을 한다. “이 사람은 너희들의 왕인데 로마는 그를 처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예수가 강도(로마에 대항해 싸우던 게릴라 전사들, 테러리스트, 자유의 전사들) 사이에 매달렸다는 보도 자체가 십자가형이 로마의 제국주의적 권위를 조직적으로 거부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예수 또한 그런 사람으로 취급받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예수는 옆의 강도들에게도 욕을 먹는다(32).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총 6시간을 있게 된다. 후반부의 3시간 동안은 온 땅에 어둠이 깔렸다. 이것을 문학적 상징으로 보면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못 박은 자들에 대한 심판 뿐만 아니라 우주조차도 십자가 처형을 슬퍼하고 있음을 나타낸다.(출애 10:21-23, 예레 15:9, 스바 1:15, 요엘 2:2, 31, 아모 8:9 등 참조)

예수는 시편 221절을 외친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이 외침은 고통의 극에 서 있는 한 인간의 절규이다. 그러나 시편 22편을 외우는 유대인들은 모든 실패와 절망과 비극 속에서도 여전히 그 너머에 있는 궁극적인 하느님의 돌보심과 승리의 확신을 잃지 않는다. 마르코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다. 예수의 죽음과 함께 성전 휘장이 찢어진다. 이제 성전의 시대는 지나갔다. 예수 에게 사형을 선고하기 위해 로마제국과 결탁한 성전과 성전관리들은 심판을 받는다. 한편으로 성전의 멸망은 그리스도인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가리던 성전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성전 없이도 예수 안에서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을 통해 이제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사형을 집행하는 로마 장교의 입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나온다. 제국의 백부장이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고 그것도 최초의 사람이다. 제자들도 그를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메시아에 대한 모든 예상과 기대가 여기서 다시 한 번 뒤집어 진다. 유대인의 원수인 로마의 적장에게서 메시아인 예수에 대한 고백의 진정성이 획득된다. 신비의 영역을 함께 공유하는 귀신들의 고백과 수제자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 집단의 신앙고백보다 이방인 장교의 고백이 더 신뢰성을 얻는다. 한편 로마의 제국 신학에 따르면 황제는 <신의 아들>, 즉 지상에 계시된 신의 능력과 의지였다. 황제는 주님이며, 구세주이며, 지상에 평화를 가져온 사람이다. 그런데 로마를 대표하는 백부장이 이 제국에 의해 처형된 이에게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한다. 따라서 더 이상 황제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다. 백부장의 선언에서 제국은 스스로를 부정한다.

마지막까지 예수의 길을 따르는 자는 누구인가? 여인들이다. 이들은 섬기는 것으로 특화된 이들이다. 예수가 섬기러 세상에 오신 대로 예수 운동의 처음 순간부터 예수 운동의 마지막까지 예수의 섬김을 실천한 이들은 당시 사람 취급 받지 못하던 여인들이었다. 이 여인들이 부활의 첫 증인들이 된다.

 

4. 다음 주 말씀

1) 마르코복음서 1542-1620절을 꼼꼼히 읽어 보세요.(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며 읽거나, 손으로 베껴 쓰시면 좋습니다.) 시간 나시면 마르코 복음서 전체를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바라기는 마르코 복음서 공부를 하면서 이 복음서를 한 10번 정도 읽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