ⅩⅨ강 죽음 앞에 당당하게?(14:1-52)

 

0. 기도

 

1. 지난 주 복습

- 유대전쟁과 성전의 파괴에 대한 마르코 공동체의 입장

- 종말론적 삶: 늘 깨어 조심하라.

 

2. 말씀 읽기: 마가 14:1-52

 

1 유월절과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흉계를 꾸며서 예수를 죽일까하고 궁리하고 있었다. 2 그런데 그들은 백성이 소동을 일으키면 안 되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하고 말하였다. 3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으로 고생하던 환자 시몬의 집에 머무실 때에,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는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4 그런데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자기들끼리 말하기를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하였다. 그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 6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7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8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9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10 열둘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를 넘겨 줄 마음을 품고, 그들을 찾아갔다. 11 그들은 유다의 말을 듣고서 기뻐하여, 그에게 은돈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를 넘겨 줄 적당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 유월절과 무교절 분위는 어떤 분위기일까?

- 여성이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어디에 붓는가? 이건 무슨 의미일까? 이 여인의 행동이 유례가 없는 칭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8:31, 9:31, 10:33-3414:8 참조)

- 이 사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6-9, 특히 9)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 유다는 왜 배신했을까?

- 유다의 배신 이야기는 마가복음에서 어떤 효과를 얻는가?

 

12 무교절 첫째 날에, 곧 유월절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가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드시게 준비하려 하는데 어디에다 하기를 바라십니까?” 13 예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말씀하셨다.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을 만날 것이니, 그를 따라 가거라. 14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가서, 그 집 주인에게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내 사랑방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십니다하여라. 15 그러면 그 사람이 자리를 깔아서 준비한 큰 다락방을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니, 거기에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를 하여라.” 16 제자들이 떠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월절을 준비하였다. 17 저녁때가 되어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와 함께 가셨다. 18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이 나를 넘겨 줄 것이다.” 19 그들은 근심에 싸여 나는 아니지요?” 하고 예수께 말하기 시작하였다.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로서,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고 있는 사람이다. 21 인자는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떠나가지만,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다.” 22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23 또 잔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은 모두 그 잔을 마셨다. 24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새 언약의 피다. 2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26 그들은 찬송을 부르고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 왜 제자 두 사람을 보냈을까?(마태 26:17-19와 비교)

- 친근한 삶의 친교와 우정의 표현인 식탁 공동체의 일원이 배신의 주인공이라는 비극적 이야기

- 성만찬 제정의 의미는 무엇일까?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모두 걸려서 넘어질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하였기 때문이다.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뒤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 29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모두가 걸려 넘어질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3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 밤에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31 그러나 베드로는 힘주어서 말하였다. “내가 선생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나머지 모두도 그렇게 말하였다. 32 그들은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예수께서는 두려워하며, 괴로워하셨다. 34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서 깨어 있어라.” 35 그러고서 조금 나아가서 땅에 엎드려서, 될 수만 있으면 이 시간이 자기에게서 비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36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바,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37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보시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느냐? 38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여라.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39 예수께서 다시 떠나가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들은 졸려서 눈을 뜰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41 예수께서 세 번째 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은 시간을 자고 쉬어라. 그 정도면 넉넉하다. 때가 왔다. 보아라, 인자는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42 일어나서 가자. 보아라, 나를 넘겨 줄 자가 가까이 왔다.” 43 그런데 곧, 예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열둘 중 하나인 유다가 왔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그와 함께 왔다. 44 그런데, 예수를 넘겨 줄 자가 그들에게 신호를 짜주기를 내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잡아서 단단히 끌고 가시오하고 말해 놓았다. 45 유다가 와서, 예수께로 곧 다가가서 랍비님!” 하고 말하고서, 입을 맞추었다. 46 그러자 그들은 예수께 손을 대어 잡았다. 47 그런데 곁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서 어느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쳐서, 그 귀를 잘라 버렸다. 48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강도에게 하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성전에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가르치고 있었건만 너희는 잡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다.” 50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 51 그런데 어떤 젊은이가 맨몸에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니, 52 그는 홑이불을 버리고, 맨몸으로 달아났다.

 

- 예수의 겟세마네의 기도이야기는 예수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게 만드는가?

- 예수의 기도와 제자들의 모습의 대비 속에서 느끼는 바는?

- 48-49, 왜 예수를 이런 방식으로 체포했어야 했을까?(14:1-2, 요한 11:45-53, 요세푸스의 <유대인 고대사> 중 세례요한 처형 이유 참조)

 

3. 말씀 새기기

 

14장부터 본격적인 수난이야기가 나온다. 이 수난이야기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등장한다. 제자들의 배신, 겟쎄마니의 기도에서 나타나는 예수의 순종,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의 성만찬으로의 변화, 장례 준비, 산헤드린과 빌라도의 심문, 군인들의 조롱, 백부장의 고백, 십자가 처형, 그리고 부활과 현현. 이러한 수난이야기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예수의 초기 제자들에 의해서 수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코는 이 이야기들을 자신의 신학에 맞게 재편집하고 있다.

예수의 중요한 사역 중 하나는 사람들과 먹고 마시는 것이었다.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2:16) 예수의 식사는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소외된 이들에 대한 사회적 통합 프로그램 중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그날 필요한 양식을 섭취하도록 하는 경제적 평등의 실현이었다. 당시 백성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에게 있어서 생존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문제는 하루에 필요한 양식과 빚이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마지막 만찬에서 사용한 가지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떼어’, ‘주다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6:40) 배고픔의 문제해결은 공평한 배분에 있음을 가르친다. 이제 예수의 마지막 만찬의 제정은 이러한 사회적 실천 프로그램의 지속성을 요청하는 것이다. 한편 예수를 죽일 음모가 유월절과 관련하여 진행되는 것은 예수의 죽음이 유월절 희생양의 죽음과 동일시되어 예수의 희생이 새로운 출애굽 사건이 됨을 암시한다.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노예였던 우리 조상들이 이 유월절 만찬을 통해 해방을 얻었듯이 로마제국의 압제에 시달리는 우리들도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유월절 만찬에서 빵이 찢겨지듯이(부수어지듯이) 예수의 몸은 찢겨지고 폭력적인 죽음에 의해 흘린 피의 잔은 새로운 언약의 표징이 된다. 즉 예수의 죽음을 통해 시내산 계약은 해체되고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새 언약의 시대가 시작된다(31:31). 이제 성전제의는 필요 없다. 희생제물 대신 예수의 몸이 바쳐졌고 희생제물의 피 대신 예수께서 흘린 피로 죄의 용서와 속죄가 이뤄진다. 유대교에서는 피를 뿌려 계약을 체결했는데 예수의 성만찬에서는 계약의 피를 함께 마신다. 피를 마시는 행위는 율법에 비추어 보았을 때 엄청 충격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일이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의 생명을 받아들이며 그분과 하나 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일은 예수 자신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겟쎄마니의 기도는 예수의 철저한 순종을 보여준다.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인간적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철저히 하느님께 자신을 던진다. 하나님의 뜻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인다기보다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한다. 예수는 여전히 하나님을 아빠라 부른다. 또 유대인의 기도방식 대로 서서 기도하지 않고 죄를 자복하듯이 땅에 엎드려 기도한다. 반면 그의 제자들은 인간의 나약함으로 잠에 빠진다. 예수의 측근 제자들의 몰이해와 무능은 여기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들은 예수를 팔아 넘기거나, 달아나거나, 모른다고 부인한다. 예수의 죽음 예고가 세 번씩이나 되풀이되었음에도 아무도 예수의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다. 예수의 예루살렘행을 다윗적 왕위 계승 곧 또 다른 지배세력의 등장으로 이해하고 기대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예수의 죽음을 준비하는 한 여인의 모습은 유난히 부각된다. 예루살렘 성전과 맞대고 있는 올리브산 베다니의 집에서 예수는 기름부음을 받는다. 집권층의 권력 승계와는 전혀 무관한 문둥병자의 집에서 이 사건이 벌어지고 기름 붓는 주체도 대제사장이 아닌 한 여인이다. 기름부음은 주로 왕이나 선지자, 대제사장의 임명식에서 이루어지거나 주인이 손님에게 존귀와 축하의 표식으로 행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여인의 기름부음은 장례의 준비였다. 죽음으로써 왕과 메시아가 된다는 역설이 여기에 녹아 있다. 다윗적 메시아는 사라지고 새로운 메시아를 임명하는 순간이다. 수난과 죽음의 길을 가는 예수를 따르는 길이 예수의 제자 되는 길임에도 열둘은 계속 두려워하고 실패할 뿐만 아니라 그 중 한명은 예수를 권력자들에게 팔아 넘기는데, 이 여인은 예수의 그 길이야말로 진정한 메시아의 길임을 노골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이 여인은 빈무덤을 발견하기 전에 이미 수난 예고를 하신 예수 말씀을 믿고 미리 기름을 바른 것이다. 부활하기에 다시는 예수의 몸에 기름을 바를 수 없음으로. 누가 진정한 제자인가? 이런 절대절명의 순간 들려온 몇몇의 비난은 얼마나 편협한가? 가난한 농촌에서 그런 엄청난 고가의 향유를 깨뜨려 허비해 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평균생활 수준을 넘는 모든 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돌려져야 한다는 생각은 한편으로는 공감이 된다. 이들의 항의는 가난한 사회에 침투해 들어온 부와 사치에 대한 일종의 항거지만 그들은 일의 한 면만을 본 것이다. 일의 선후와 가치를 제대로 분간할 눈이 필요한 것이다.

 

4. 다음 주 말씀

1) 마르코복음서 1453-1520절을 꼼꼼히 읽어 보세요.(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며 읽거나, 손으로 베껴 쓰시면 좋습니다.) 시간 나시면 마르코 복음서 전체를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바라기는 마르코 복음서 공부를 하면서 이 복음서를 한 10번 정도 읽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