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ⅩⅣ강 새공동체의 영원한 기준(8:27-9:29)


0. 기도


1. 지난 주 복습


- 반벙어리의 치유: 불완전한 의사소통의 해결

- 사천명을 먹이시다: 이방인에게 동일하게 벌어지는 하느님 나라 잔치

- 바리새들의 표징 요구와 제자들의 몰이해

- 소경을 고치심


2. 말씀 읽기: 마가 8:27-9:29


3. 말씀 새기기


27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필립보의 가이사랴 지역으로 떠났다. 그리고 길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물어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는가?” 하셨다. 28 (그들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세례를 주는 이 요한, 그리고 다른 이들은 엘리야, 다른 이들은 예언자들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29 그러자 그가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나를 누구라고 말합니까?” 베드로가 그에게 대답하여 말한다. “당신은 그리스도입니다.”1) 30 그러자 (예수는) 그들을 꾸짖으며 그에 관하여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31 그리고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2)이 많은 고난을 겪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거부당해 죽었다가 삼일만에 일어나야 할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3) 32 (예수가) 이 말을 드러내놓고 말한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를 붙들고 꾸짖기 시작했다. 33 (예수는) 돌아서서 그의 제자들을 보고 베드로를 꾸짖으며 말한다. “내 뒤로4) (물러가라), 사탄아!5) 하느님의 것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것만 생각하는구나” 34 그리고 무리들을 그의 제자들과 함께 불러 그들에게 말하였다. “만약 누가 내 뒤로 따라오길 원한다면 자기를 거절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시오. 35 자기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그것을 잃을 것이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잃으면 그것을 구할 것이다. 3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의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37 사람이 제 목숨을 대신하여 줄 무엇이 있겠는가? 38 간음하고 죄 짓는 이 세대에서 나와 나의 말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사람의 아들도 그의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 그를 부끄러워 할 것이다. 9장 1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 하느님의 나라가 능력 안에서 오는 것을 볼 때까지 죽음을 맛보지 않을 사람들도 있다.”


- 필립보의 가이사랴는 어떤 곳일까?

-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무슨 뜻인가? 왜 예수는 그들을 꾸짖었는가? 이 후 예수의 수난 예고와 베드로의 반응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 당신이 생각하는 메시아 상에 대해 말해 보라.

- 예수를 따라 사는 길이란? 자신을 부인하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6) 또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7)

- 9장 1절의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희망의 말씀?


* 오늘 본문과 이어진 본문들은 예수가 누구이며, 예수의 하느님 나라는 어떤 것인지를 제자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제목을 새 공동체의 영원한 기준이라고 했듯이,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가르친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첫째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메시아 이해이다. 세 번의 수난예고(8장 31절, 9장 30~32절, 10장 32~34절)와 제자들의 몰이해와 무지(8장 32~33절, 9장 33~34절, 10장 35~39절)에는 전통적인 유대적 메시아 상을 대체하는 새로운 그리스도교적 메시아 상이 나타나고 있다. 타민족에 의한 오랜 핍박에 시달린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는 유대의 독립과 번성을 이루어 주는 이였다. 베드로는 그런 메시아를 기대했기에 예수의 수난과 죽음은 결코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지금 예수와 그의 일행은 예루살렘으로 진격하는 길에 있지 않던가? “예수가 누구인가?”하는 질문이 던져진 가이사랴 빌립보는 분봉왕 필립이 건설하고 티베리우스 가이사(눅 3:1)의 영예를 위해 가이사랴라고 이름 붙인 도시로 정치인들이 외국으로 망명할 것인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선에 해당된다. 예루살렘으로 방향을 정한 예수 일행이 예수에게 바란 것은 당연히 이전의 메시아 상이었던 것이다. 예수가 이스라엘을 회복하면 자기들이 한 자리 차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예수는 그러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기적과 치유 능력과 놀랍고도 핵심을 찌르는 그의 가르침을 보아라! 그러나 예수는 죽음의 길을 택한다. 그리고 이 죽음의 길은 예수의 제자들만 알아서는 안 되고,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도 알아야만 한다(34절). 그래야 예수를 따르려는 사람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또 어떤 각오를 해야 하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2 그리고 엿새 후에 예수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그들을 따로 높은 산으로 이끌고 갔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였는데, 3 그의 옷이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하얗게 빛났다. 4 그들에게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나타나서 예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5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에게 대답하여 말한다. “랍비여, 우리들이 여기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들이) 초막 셋을 만들지요. 당신에게 하나, 모세에게 하나, 엘리야에게 하나.” 6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기에 (베드로는) 무엇을 대답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7 구름이 일어8) 그들에게 덮였는데 구름으로부터 소리가 있었다.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의 (말을) 들어라.” 8 (그들이) 얼른 둘러보았으나 이미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그들과 함께 예수만 홀로 있었다. 9 그리고 그들이 산으로부터 내려올 때 (예수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어나기까지 그들이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10 그래서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으나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논쟁하였다.


- 예수 변모 사건은 무엇을 말하려고 쓰였을까? 영광 전에 고난을~

- 예수가 세례 받을 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과 7절과 비교해 보고 차이점을 찾아 보자

- 왜 모세(신 18:15 이하)와 엘리야(말 4:5-6)가 함께 나타났을까?

- 10절의 논쟁의 내용은 무엇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난다는 것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을 말해 보라.


* 예수의 변모 사건은 예수가 죽음의 길을 택한 것에 대한 하느님의 인정이다. 세례 사건 때 예수에게만 들리던 하늘의 음성이 예수가 죽음의 길을 택하자 제자들에게도 들리고 그에게 순종하라는 명령도 내린다. 참된 메시아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계속 교육이다. 환상과 이상에 머물러 초막 셋을 짓기보다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내놓고 예수를 따라 가야 하는 것이다.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의 고난 후에 가능한 것이다. 제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지만 예수 때문에 하느님 나라의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게 될 것이다. 9장 1절에 의하면 목숨을 잃는 사람은 죽음을 겪지 않고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 세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순간 맛보았다. 


* 복음에 대하여

마르코는 우선 복음을 자신의 책의 표제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르코가 말하려고 하는 복음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마르코 복음 전체를 읽어야 한다.

둘째 마르코는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기적 이야기로 구성된 영광의 신학 전승과 수난 이야기로 구성된 십자가 신학 전승을 연결하고 있다. 1장 14절은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 그러니 회개하고 믿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로 예수가 전한 하느님의 복음을 요약한다. 이어 8장까지 이어지는 예수의 공적인 행위(귀신 축출, 병자 치유, 평등의 식사)와 말씀(가르침)은 모두 복음이다. 첫 번째 수난 예고로 시작하는 복음서의 두 번째 부분에서 예수는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8:35) 수난의 선포와 이은 예수의 수난 이야기 전체 또한 복음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그리하여 예수의 장례준비를 위해 자기 몸에 향유를 바른 여인은 다음과 같은 찬사를 듣게 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알려져서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14:9) 즉 마르코 복음서에서 첫 부분의 기적과 후반부의 예수의 수난 모두는 복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적과 수난이 하나로 묶여지는 것은 예수의 삶에 근거한다. 1장 14절에서 예수는 분명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한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일차적으로 기적으로 영광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8장 35절에서 복음은 예수와 병치되면서 곧 예수를 가리키게 된다. 즉 예수는 복음 전파의 주체이자 복음의 객체로써 복음의 내용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면서 맛본 하느님의 경험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 때문에 사라지기엔 너무 본질적인 근원적 경험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바울의 도식 즉 부활의 빛에서만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의 삶과 연결된 십자가여야만 했다. 그렇다면 왜 마르코 복음서 기자는 이렇게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해 주목하는가? 이 문제는 마르코 복음서가 복음을 외치는 세 번째 이유로 우리를 안내한다.

 마르코 복음서는 기원후 70년 전후에 쓰였다. 이 당시의 시대상황을 보면 로마는 네로의 죽음 이후(기원후 68년) 내란에 시달렸고, 동쪽에서는 유대-로마 전쟁이 벌어졌으며, 북쪽에서는 바타비아인의 반란이 일어났다. 66년부터 4년간 계속된 유다전쟁이 로마군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처참하게 끝장이 났을 때 그 파급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엄청난 것이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한 투쟁, 인간으로서의 생존권을 향한 발버둥이 무참히 꺾여 버린 시점에서, 특히 삶의 중심이요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겼던 성전과 예루살렘 도시가 파괴되면서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그들의 존재 근거가 무너지는 절망을 경험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로마는 플라비안 가문의 베스파시안 장군이 내란을 종식시키고 로마의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하여 로마제국의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였다. 이러한 로마의 정치적 안정은 많은 이들에게 복음이었다. 합법성과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플라비안 가문은 자신들의 통치가 신이 인가한 것이라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예언과 기적 이야기를 사용했다. 사람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베스파시안이 일으킨 기적적인 치료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기적을 신으로부터 온 기적으로 해석하였고, 신들이 베스파시안을 선택하였다고 여겼으며, 이집트 사람들은 베스파시안이 “하느님의 아들”(Ammon)로 선택되었다고 수군거렸다. 로마에 투항한 유대의 장군인 요세푸스는 그 당시에 베스파시안이 세계의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요세푸스는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유대인의 기대를 황제의 왕실에 투사하였다. 그는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세상을 통치할 사람(또는 집단)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재해석하였다. 그래서 로마의 장군 베스파시안이 팔레스타인에서 전쟁을 치룬 이후로, 이 예언이 베스파시안에게 적용되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베스파시안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래한 메시아적 세계 통치자였다.9) 그런데 베스파시안의 통치는 곧 유대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마르코 공동체는 플라비안 가문의 이런 등극을 어떻게 이해하였을까? 마르코 공동체도 메시아가 팔레스타인에서 나온다는 믿음과 희망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메시아가 아닌 로마의 황제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르코 기자는 플라비안 가문의 권세에 대항하는 반-복음서(Anti-Gospel)를 기록한다. 그는 의식적으로 “복음”이라는 용어를 소개하며 전략적으로 자신의 복음서의 첫 마디를 플라비안 가문의 베스파시안의 복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단다. 마르코 공동체는 이제 베스파시안을 따를 것인가? 예수를 따를 것인가? 누구의 복음이 진짜 복음인가,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11 그리고 (그들은) 그에게 여쭈어 말했다. “왜 율법학자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12 그가 그들에게 말한다.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많은 고난을 겪고 멸시(거부)를 당한다고 기록된 것은 어떤가?” 13 너희들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왔다. 그리고 그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대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람들이) 그를 다루었다.”


* 마르코공동체의 종말 해석.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역할을 하였으나, 그것은 고난과 죽음의 길이라고 하는 인자의 길을 예비한 것이다. 모든 것의 회복에는 고난과 죽음이 뒤따른다는 것을 세례요한이 먼저 보여 주었다.


14 그리고 제자들에게 돌아와서 많은 무리들이 제자들 둘레에 모여 있고, 율법학자들이 그들과 논쟁하는 것을 보았다. 15 그리고 즉시 모든 무리가 그를 보고 놀라서 달려와 그에게 인사했다. 16 (예수가) 그들에게 물었다. “그들과 무엇 때문에 논쟁합니까?” 17 무리가운데 한 사람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선생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저의 아이를 당신께 데리고 왔습니다. 18 어디서든지 (이 영이) 그를 사로잡으면 쓰러져, 거품을 물고, 이를 갈며, 뻣뻣해집니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를 쫓아내달라고 말하였으나, 그들은 못했습니다. 19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한다. “아! 믿음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란 말이냐! 그를 내게 데려오라.” 20 그래서 그를 그에게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를 보자 영이 즉시 그에게 발작을 일으켜 땅에 고꾸라져 거품을 내며 딩굴었다. 21 (예수는) 그의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그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물었다. 그는 말했다. “어릴 때부터입니다. 22 (그 영이) 자주 아이를 불 속이나 물 속에 던져서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할 수 있다면 우리를 측은히 여기어 도와 주십시오.” 23 이에 예수가 그에게 말했다. “‘할 수 있다면’이라구?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4 아이의 아버지가 즉시 소리쳐 말했다. “믿습니다. 믿음 없는 저를 도와 주시오” 25 이 때 예수는 무리가 몰려오는 것을 보고 더러운 영을 꾸짖어 그에게 말했다. “벙어리요 귀머거리인 영아, 내가 네게 명령한다. 그에게서 나와서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말아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치며 (아이에게)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나왔고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라고 말했다. 27 그 때 예수가 그의 손을 잡고 그를 일으키자, 일어났다. 28 그가 집으로 들어갔을 때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따로 물었다. “왜 저희는 그를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 29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이런 종류의 것은 기도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떠나게 할 수 없다.”  


-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의 상태 묘사를 통해 배울 수 있거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은?

- 제자들은 왜 못 고쳤는가? 29절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갖는가?

-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의 치유 사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둘째, 메시아 부재 상황에서의 삶에 대한 충고이다. 메시아가 죽는다면 그 다음에 우리는 어떻게 살란 말인가? 로마의 지배는 여전하고, 삶의 환경은 지옥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살란 말인가? 기득권들의 폭력 앞에 몸이 뻣뻣해지고, 거꾸러지며,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삶을 계속하란 말인가? 그에 대한 첫째 답변은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할 수 있다면”이란 가정을 하지 말고 믿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9장 22~24절) 둘째는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늘의 도움을 청하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제자들은 무능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4. 다음 주 말씀

1) 마르코복음서 9장 30절-10장 52절을 꼼꼼히 읽어 보세요.(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며 읽거나, 손으로 베껴 쓰시면 좋습니다.) 시간 나시면 마르코 복음서 전체를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바라기는 마르코 복음서 공부를 하면서 이 복음서를 한 10번 정도 읽는 것입니다.


※ 질문들

- 오늘과 같은 경쟁 사회에서 9장 35절의 예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까?

- 아이 영접이 예수의 영접이고 예수의 영접이 예수를 파견한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된다. 이런 논리는 마르코 공동체의 신앙고백일 것인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 9:30-10:52의 내용을 읽고 예수 따르미의 윤리덕목 또는 실천항목 등을 만들어 내 본다면?

- 부부관계에 대해 모세의 율법과 창조 신앙은 어떻게 다른가? 예수의 입장은 어디에 서 있는가?

- 위의 내용(10:1-12)은 이혼금지인가? 아니면 약자인 여성에 대한 차별금지인가?

- 왜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들과 같은 이들의 것인가?

- 영원한 생명과 돈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 지 서로 의논해 보자~

-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는 말씀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말인가 없다는 말인가? 예수의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정도 소유해야 부자인가?

- 베드로의 고백(28)에 따른 예수의 대답(29-31)을 잘 살펴보고 특이한 점을 말해보라!

- 소경이 어디에 있었나?

- 이 이야기에 나오는 예수에 대한 여러 호칭에 대해 얘기해 보자! 나자렛 사람, 다윗의 아들, 랍비 등등 소경의 예수 인식은 어떤 변화를 겪는가?

- 소경은 결국 어떻게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