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강 닫힌 장벽을 넘어 2(6:45-7:30)


0. 기도


1. 지난 주 복습

- 열둘의 파송

- 세례요한의 죽음의 의미와 파송보고

- 오병이어 사건


2. 말씀 읽기: 마가 6:45-7:30


3. 말씀 새기기


45 그리고 곧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베싸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당신은 군중을 헤쳐 보내셨다. 46 그들과 작별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기도하려고 산으로 물러가셨다 47 저녁때가 되어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그분은 홀로 뭍에 계셨다 48 -바람이 마주 불어와서- 제자들이 노를 젓느라고 몹시 고생하는 것을 그분이 보시고는 밤 사경에 호수 위를 걸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그 곁을 지나쳐 가시려고 했다. 49 제자들은 예수께서 호수 위를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50 모두 그 분을 보고 질겁했던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즉시 그들과 이야기를 하셨다. “힘을 내시오, 나요.1) 두려워하지 마시오”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51 그러고서는 그들에게로 (오시어)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52 그들은 빵의 (기적에) 대해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이 완고했던 것이다.


- 예수는 언제 기도하는가?

- 바다여행에서 겪는 두 번째 어려움이다. 이전 경험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 52절 빵의 기적에서 제자들은 무엇을 깨달아야 했을까?

- “마음이 완고하다. 둔하여지다”라는 말들이 앞에서는 주로 누구에게 쓰였는가?(3:5)


* 두 번째 서쪽에서 동쪽으로의 바다여행에서 또 곤란을 겪는다. 여기에서는 예수가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예수가 부재한 상황에서의 어려움은 더욱 이겨내기 힘들다. 가장 깊은 밤에 바람이 그들의 행진을 막는다. 아주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이전에도 이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4:35-41). 경험이 있으니 이번엔 좀 나을까? 예수가 계시지 않는다고 하지만 예수로부터 파송되어 그들끼리 선교 여행을 한 적도 있지 않은가?(6:6-13, 30-31) 그러나 여기는 낯선 이방 땅이고 어둠의 세력이 뒤덮고 무서운 사탄의 바람이 마주 불어온다. 스승 예수가 재촉해서(강요해서) 길을 나섰지만 역시 불안과 두려움이 제자들을 사로잡는다. 밤새 바람에 맞서 노를 저어 본다. 역부족이다. 맞바람이 여간 센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예수의 등장으로 곤란한 상황은 종료된다. 예수는 야훼 하느님처럼(욥 9:8, 시 77:20, 사 43:16) 바다를 밟고서 물위를 걸어오신다. 그러나 그는 그냥 거기를 지나치시려고 하신다. 왜일까? 이렇게 그냥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제자들에게는 유령으로 비쳐진다. 예수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제자들에게 안심하라고 위로하신다. 배에 오르자 바람이 멎는다.

예수 죽음 이후 깊고 어두운 불안 상황에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 이방 지역으로 또는 자신의 지역에서 선교를 하는 제자들의 삶이란 바람과 강풍에 시달리듯 곤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예기치 않은 도움으로 그런 어려움들을 이겨낸다. 그러나 어쩌면 제자들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던” 빵의 기적에서 예수 없이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었다. 아니 어쩌면 진정한 빵이신 예수의 현존에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했어야 했다. 예수 사후 제자들에게 예수는 유령처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희미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 “나다” “두려워마라” “힘을 내라”는 일종의 종교체험 및 내면의 확신이 곤란을 극복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53 그리고 일행은 뭍을 향해 (호수를) 건너가 겐네사렛2)에 이르자 닻을 내렸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은 곧 예수를 알아보고 55 그 지방 일대를 두루 뛰어다니며 앓는 이들을 침상에 눕혀 가지고 그분이 계시다는 곳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56 그리하여 촌락이든 고을이든 농가이든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너른 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당신의 옷단에 (달린) 술만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과연 그분을 만지는 사람마다 구원받았다.


7장

1 바리사이들과 예루살렘에서 온 율사 몇 사람이3) 예수께 몰려왔다. 2 그들은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부정한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들과 모든 유대인들은4)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웅큼의 물로라도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4 또한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 밖에도 지켜야 할 전통이 많이 있으니, 잔이나, 옹자배기, 놋그릇이나 [침대] 따위도 씻곤 하는 것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은 예수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5)을 따라 걷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빵을 먹습니까?” 하고 물었다. 6.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사야는 위선자들인 여러분을 두고 잘도 예언했으니,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도다. 7 헛되이 나를 흠숭하나니, 그들은 사람의 계명을 교리로 가르치는도다.’6) 8 여러분은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의 전통을 세우려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물리칩니다. 10 모세는 말하기를, ‘너의 아버지와 너의 어머니를 공경하라’7) 또한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8)고 했습니다. 11 그런데 여러분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코르반9)이라 하면, 그러니까 제게서 봉양(명목)으로 받으실 것은 (하느님께 바치기로 한) 예물입니다 하면 그만이다’ 하고 12 그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는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합니다. 13 여러분이 전하는 여러분의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무력하게10)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짓들을 많이 합니다.“ 14 그리고 예수께서는 군중을 다시 가까이 불러모아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으시오. 15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16 [“누가 들을 귀가 있거든 알아 들으시오.”] 17 그리고 예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당신께 그 비유에 관해서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도 그토록 깨닫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정말 알아듣지 못하겠습니까?11)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사람을 더럽힐 수 없으니, 19 사실 그것이 (사람) 마음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뱃속으로 들어가서 뒷간으로 나간다는 것을 말입니다.” - 이로써 그분은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힙니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음행,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속임수, 방탕, 악한 눈길, 모독, 교만, 우둔함 같은 것들입니다.12) 23 이런 악한 것들은 모두 안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힙니다.”


-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가 정결법 규정과 관련하여 예수를 공격하는 것은 이후 사건과 어떻게 연결될까?

- 정결법이 왜 이렇게 중요했을까?

- 율법학자와 바리새파의 비판에 대해 예수의 맞대응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 자신의 신앙은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

- 우리를 얽매고 있는 문화나 습관은 어떤 것이 있는가?(사회화의 과정에서)

- 15절에 동의하는가? 외적인 형식(제도, 교리)과 마음의 진정성(취지, 정신)의 관계에 대해 함께 나눠보자!

- 바리새파 공동체와 마가 공동체의 대결


* 제자들은 실패하여 이방 땅으로 가지 못하고 다시 유대 땅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게네사렛에서 예수는 폭발적인 신뢰 속에서 많은 병자들이 치유를 받고 구원을 얻는다. 예수를 만지는 메타포는 이미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은 여인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고, 예수는 그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를 만지러 오는 숱한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있다. 이방 땅으로의 선교여행에 실패한 마음 굳은 제자들과 비교되고 있다.

   율법의 본래 역할은 하느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이었다. 정결을 유지하고 율법을 준수하는 것은 곧 도래할 하느님 나라를 준비함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행위가 형식적인 데에 빠지고 특히 하느님의 눈이 아니라 사람의 눈을 의식하게 되어 행해질 때, 본래의 의미는 모두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외적인 형식에 만족하여 하느님의 깊은 요구를 거절하는 지경에 이른다.13) 

  외적 형식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사유와 생각에 대한 점검을 늘 새롭게 할 필요성이 있다.


24 예수께서는 거기서 떠나 띠로 지역으로 물러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서는 아무도 모르게 (묵으려) 하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곧 어떤 부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와서 당신 발치에 엎드렸는데, 그의 어린 딸이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있었다. 26 그 부인은 헬라 사람으로서 시로페니키아 출신이었다. 그는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주십사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27 예수께서는 그에게 “먼저 자녀들이 배불리 먹어야 합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자 부인은 대답하여 “주님, 그러나 상 아래 있는 강아지들도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였다. 29 이에 예수께서는 그에게 “돌아가시오. 바로 그 말 때문에 당신 딸에게서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하고 이르셨다. 30 이윽고 부인은 자기 집으로 물러가서 아이가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귀신이 떠나 간 것을 (알았다.)


- 시로페니키아 출신이라는 것은 여성이 어떻다는 것인가?

- 27절의 예수의 지역 차별적인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가 회당장 야이로를 대했을 때와 비교해 보라.

-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

- 이 치유기적이 다른 치유기적과 다른 점은?14)

- 이 이야기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의 이야기 속에서 한국의 지역 구도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라.


* 예수는 무척 지쳐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훌쩍 먼 곳으로 떠나 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허락되지 않는다. 여인의 요청은 간절한 것이었으나, 피곤에 지친 예수의 대답은 냉정하기만 하다. 식량이 늘 부족한 고대 사회에서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개나 다른 가축보다 앞서 자녀들을 먹여야 한다.” 이것은 지중해 연안의 모든 사람들이 알던 격언이고 속담이다. 예수는 이 말을 끌어 들여 여인을 돌려 보내려 했다. 지극히 당연한 속담이지만 이 상황에서 유대인 남성인 예수의 발설은 이방인 여성에게는 완전 모욕적인 말이었다. 이 정도면 여자는 욕을 하고 떠날 테고 어쩌면 예수는 원래의 목적 아무도 모르게 쉴 수 있는 시공간을 확보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인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인내와 기지, 확고한 의지로 예수를 역 공격한다. 예수가 패배를 인정한다. 예수의 말 자체가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발언이었기에 예수의 패배는 더욱 극적이다. 예수의 패배가 복음의 세계화를 가져온다. 여인이 새로운 복음의 주체로 등장한다. 특히 오천명의 급식사건과 이 여인의 사건 4천명의 급식 사건에서 빵에 주목하라. 빵은 곧 예수의 몸이다. 예수의 몸이 지금 이방 여인(시리아-페니키아 여인)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띠로는 갈릴리 지방 지중해변에 위치한 카르멜 산에서 북쪽으로 55km 떨어진 곳에 있는 항구도시로서 바다를 지배하고 세계를 다스리던 페니키아의 본고장이다. 지금은 레바논 공화국에 속한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여인 홀로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른다. 이 여인만이 예수를 야훼 하느님과 같은 주님으로 인식하고 있다. 여인은 겸손하게 그러면서도 집요하게 간청한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백성과 이방 사람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신앙이다. 하느님을 전유(專有)했다고 생각했던 유다인들의 사회-문화적 터부를 침범하고 도전한다. 혈루증 걸린 여인의 병이 접촉을 통해 나았다면 이것은 원격으로 낳는다. 이 여인의 믿음 또한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 6:30부터 8:21까지의 틀

A 먹이심 6:30~44 B 건너심 45~46 C 논쟁 7:1~13 D 가르침 14~23

1) 시로페니키아 여인과 귀먹은 반벙어리 고침

A 먹이심 8:1~10  B 건너심 10     C 논쟁 11~13  D 가르침 14~21


4. 다음 주 말씀

1) 마르코복음서 7장 31절-8장 26절을 꼼꼼히 읽어 보세요.(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며 읽거나, 손으로 베껴 쓰시면 좋습니다.) 시간 나시면 마르코 복음서 전체를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바라기는 마르코 복음서 공부를 하면서 이 복음서를 한 10번 정도 읽는 것입니다.


※ 질문들

- 반벙어리가 상징하는 것은?

-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용된 여러 가지 메타포들을 발견해 보자면?

- 5천명을 먹인 사건과 같은 점과 차이점을 이야기 해 보자

- 헤롯의 누룩과 바리새의 누룩은 왜 주의해야 하는 것일까? 오늘날 헤롯과 바리새의 누룩과 같은 것들은 무엇일까?

- 제자들의 몰이해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 소경의 눈뜸의 과정은 어떠한가? 왜 이런 단계를 두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