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강 닫힌 장벽을 넘어 1(6:7-44)


0. 기도


1. 지난 주 복습

- 믿음에 대하여: 하혈증 걸린 여인의 믿음과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

- 익숙함의 위험: 고향과 탈향


2. 말씀 읽기: 마가 6:7-44


3. 말씀 새기기


7 또한 열둘을 부르시고, 그들을 둘씩둘씩 파견하시기 시작하며, 더러운 영들을 제어하는 권능을 그들에게 주셨다. 8. 아울러 그들에게 명하시어,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갖고 가지 말 것이니 빵도 자루도 전대에 돈도 갖고 가지 말고, 9 다만 샌들을 신되 “속옷은 두 벌 껴입지 마시오” 하셨다. 10 또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 머물러 있으시오. 11 그리고 어느 곳이든 여러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러분 말을 듣지 않거든 그곳을 떠나가며 여러분 발 아래 먼지를 털어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시오. 12 그래서 그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외쳤다. 13 그리고 많은 귀신들을 내쫓고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고쳐주었다.


- 여행(또는 방랑)이 주는 경험의 특징들은 무엇일까?

- 제자들을 불러 파송한다는 것은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 왜 둘씩 짝을 지어 파견했을까?

- 선교 여행을 위한 준비물이 어떠한가? 이런 행색이 의미하는 바를 발견해 보자.

- 떠난 제자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가?

- 파송 받은 제자들이 한 것은 무엇인가? 먹고 마심과 선포와 치유의 결합(누가 10:3-11, 도마 14, 막 6:10-13)

- 이런 제자들의 행색을 본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 심부름꾼을 둘씩 보내는 사례는 유다교 문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유다교의 영향을 받아 초대교회에서도 둘씩 파견하는 관례가 있었다(행 8:14, 13:2, 15:36~40) 그리고 둘은 상호적인 도움이 가능하며 중요한 것은 증거의 신빙성이다(신 17:6, 19:15 전 4:9) 제자들의 선교 여행을 당시 견유학파들과 비교하면 재밌다. 견유학파들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채 더럽고 남루한 옷을 입고, 샌들은 신지 않고 배낭을 짊어지고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급자족을 강조하고, 물질에 근거한 문화와 문명과 권력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면서 무소유의 삶과 정신적 자유를 누리는 개인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사들은 공동체적 의존성(이사 58:6-7)과 상호성을 말하고 있다. 견유학파들의 현상이 도시현상이라면 예수의 방랑운동은 시골현상이었다. 이들의 옷차림 자체가 메시지이다. 여행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요구된 검소한 차림은 그들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 즉 곧 불쌍한 하류층 및 빈민층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라는 명령이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무주택, 무가족, 무소유, 무보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느님보다 자기의 물질적 혹은 정신적 장비를 더 신뢰하는 사람은 그 자신과 구원의 소식을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으로 만들게 한다. 예수 자신이 이러한 방랑자였다. 빵을 금지시킴으로 당장 다음 끼니를 보장받지 못하여 굶주림과 취약성에 노출시킨다. 주머니가 허락되지 않는 것은 제자들이 여행 중 얻은 것을 지닐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당장 먹을 빵만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준비가 금지된다. 무소유만이 떠남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무소유는 하느님이 공급하실 것이라는 낙관주의 없이는 사실 불가능하다(마태 7:9-11, 누가 11:11-13/ 누가 12:28-31, 마태 6:30-33). 하느님의 공급은 제자들을 영접하고 그들의 말씀을 듣는 선한 사람들을 통하여 주어질 것이다. 잠자리든 먹을 것이든, 모든 것은 제자들의 말씀(선포)과 은총(치유와 축귀)에 대한 응답으로서 마을 사람들에게 의하여 공급된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 머물러 있으라는 말은 더 좋은 집을 찾아다니지 말라는 것이다.(디다케 11:3~12 참조) 먼지를 털어 버리는 것은 절교의 상징이다(참조, 느헤 5:13, 왕상 2:5, 행 13:51, 18:6). 털어버린 먼지는 제자들이 그곳에 다녀갔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배척했다는 표시로 남아 종말심판 때에 불리한 증거가 된다. 제자들의 여행은 영접과 거절의 경험이 될 것이다. 영접의 경우와 거절의 경우 이 모두는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극적일까? 하느님 나라 운동의 여정에서 겪는 영접과 거절은 예수의 제자가 겪어야할 일종의 현장 실습이었다. 이러한 삶의 유형과 존재의 방식이 오늘 안정 추구의 신앙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팡이는 맹수와 강도를 물리치는데 필요하고, 샌들은 가시와 돌이 많은 땅을 돌아다니는데 필요하다. 또 독사의 위협에서도 도와준다. 즉 이 두 가지는 생존의 위협을 받을 때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속옷을 두벌 껴입는 것은 부자들이 하는 짓이다. 병자들에게 올리브기름을 바르는 치유법은 당시 널리 유행했다(눅 10:34, 야 5:14~15) 단순한 의약품의 역할 뿐 아니라 여기서는 병자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도움을 나타내는 표징이다.


14 그런데 헤로데 왕1)이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 그분의 명성이 알려졌던 것이다. 사람들은 “세례를 주는 이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난 것이니, 그래서 그에게 기적의 힘이 솟아난다”고 했다. 15 다른 이들은 “그는 엘리야이다”라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그는 예언자들 중의 어느 한 분과 같은 예언자이다.”라고 했다. 16 그런데 헤로데는 듣고서 “내가 목을 벤 요한 그 사람이 살아난 것이다”라고 했다. 17 사실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 요한을 체포하여 그를 감옥에 결박해 두었다. 그것은 그의 동기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는 그 여자와 결혼했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당신이 당신 동기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곤 했었다. 19 그리하여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원한을 품고 그를 죽이고자 애썼으나 할 수가 없었다. 20 사실 헤로데는, 요한이 의롭고 성스러운 사람임을 알아보고 그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헤로데는 요한을 감싸주고, 또한 그의 말을 들을 때 매우 난처해하면서도 그의 말을 기꺼이 듣곤 했던 것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 유지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한 날이었다. 22 그의 딸 헤로디아가 들어와서 춤을 추어2) 헤로데와 또한 그와 함께 식탁에 자리잡은 사람들3)마음에 들었다. 왕은 어린 소녀에게 “원하는 것을 나한테 청하라. 네게 주겠다”고 했다. 23 그러고서는 소녀에게 소녀에게 “나한테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비록 내 왕국의 반이라도 네게 주겠다1)” [굳게] 맹세했다. 24 그러자 소녀는 나가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했다. 그러니까 그 여자는 “세례를 주는 이 요한의 머리를” 하고 말했다. 25 소녀는 즉각 서둘러 왕에게로 돌아가서 청하여 “바라오니 당장 제게 세례를 주는 이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주옵소서” 했다. 26 그러자 왕은 괴로웠지만, 맹세 때문에 또한 식탁에 자리잡은 사람들 때문에 소녀를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왕은 즉시 경비병을 보내어 그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2) 곧 경비병은 나가서 감옥에서 그의 목을 베었다. 28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들고 와서 어린 소녀에게 주니, 그 어린 소녀는 자기 어머니에게 그것을 주었다. 29 요한의 제자들은 (소문을) 듣고 와서 그의 시체를 거두어다가 그것을 무덤에 안장했다.



- 헤로데 왕이 들은 예수의 소문은 어떤 것이었을까?

- 예수의 소문에 대해 얘기할 때 사람들은 예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6:4 참조)

- 예수의 소문과 세례요한의 죽음 이야기를 연결하는 이유는 뭘까?

- 세례요한의 죽음 이야기4)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발견하는가?

- 역사적으로 세례요한은 어떤 이유로 죽었을까?


* 제자들의 파송과 귀환 사이의 시간적 공간을 연결하기 위해 복음서 기자는 사람들이 그리고 특별히 헤롯 안티파스가 예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기술한다. 그리고 세례요한과 비교함으로 그의 최후 죽음을 예고한다. 세례요한과 예수의 죽음은 세상이 얼마나 몽매하며 진리에 얼마나 거세게 반항하는가를 보여준다. 이는 또한 파송된 제자들이 직면하는 세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또 세례요한의 죽음이 예수의 죽음과 연결되며5) 동시에 제자들의 파송과 복음 선포와 연결된다면 예수의 죽음은 제자들의 선교의 시대를 알리는 것이 된다. 요한과 예와 제자들의 상호관계는 다음과 같다.

* 세례자 요한이 선포하고 (1,4-8) 넘겨진다.(1,14; 6,17-29)

* 예수가 선포하고(1,14-15) 넘겨진다.(9,31; 10,33; 14-15장)

* 제자들이 선포하고(6,7-13) 넘겨질 것이다.(13,9-13)

 14-16절은 예수의 정체에 대한 백성들의 세 가지 견해와 세례자 요한의 죽음과 연결시킨다.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로서 기원전 4년부터 후 39년까지 요단강 서쪽 갈릴래아 지방과 강 동쪽 베레아 지방의 영주로 군림했다. 세례요한 처형이후 예수의 공공연한 활동이 이런 견해를 만들었던 것 같다.

 헤롯 안티파스는 이복 동기 헤로데 보에투스(헤롯 대왕이 마리암느 2세와 결혼해서 낳은 아들)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했다. 이는 유다교법으로 금지된 일이다(레 20:21, 출 20:17/ 레 18:16도 참조) 이 결혼은 여러 가지 정치적인 문제와 맞물려 있다. 헤로디아는 보에투스와 이혼하고 헤롯 안티파스와 결혼하여 헤롯 안티파스의 전처인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4세의 공주를 쫓아냈다. 헤롯 안티파스의 첫 번째 결혼은 외교동맹의 성격을 지녔는데 이 혼인이 파기되자 아레타스 4세는 크게 노해서 나바테아 왕국과 이스라엘의 접경지대엔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활동했던 지역이 바로 나바테아 왕국과 멀지 않는 접경지대였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정치적인 역량이 커지자 그를 투옥시켜 32년경에 처형해 버린 것이다.6) 요한이 죽고 난 바로 직후에 아레타스 4세는 국제 무역에서 발을 빼면서 갈릴리 경제는 급속도로 불황에 빠지게 되었고, 36년에는 헤로데를 쳐서 격파하였다. 헤로데는 시리아 로마 총독의 개입으로 위기를 모면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왕에서 파면되어 추방되었다. 백성들은 이를 요한을 죽인 데 따른 벌로 여겼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8권 5장 2) 

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와서, 그들이 행하고 가르친 것을 죄다 그분께 보고했다. 31 그러니까 그들에게 “여러분은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도록 하시오”7) 하셨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식사할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외딴 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이 가는 것을 보았고 많은 이들이 알아차렸다. 그래서 모든 도시에서 도보로 그곳으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가 있었다.8) 34. 그래서 그분은 (배에서) 내리면서 큰 군중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9)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이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5 그런데 이미 저녁때가 되자 그분의 제자들이 다가와서 아뢰었다. “이곳은 외지고 이미 저녁때가 되었습니다.10) 36 사람들을 해산시켜, 주변 농가와 마을로 가서 먹을 것을 제각기 사게 하십시오.” 3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대답하여 “여러분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오” 하시니 제자들은 그분께 “저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을 사다가 그들에게 먹도록 주라는 말씀입니까?” 했다. 38 그러자 그분은 그들에게 “여러분이 빵을 몇 개나 갖고 있습니까? 가서 보시오” 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알아보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했다. 39 그러자 제자들에게 명하여 모두 푸른 풀에 패를 만들어 자리 잡게 하라고 하셨다. 40 그래서 사람들은 백명씩 또는 오십 명씩 떼를 이루어 자리잡았다.11) 41 이윽고 예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복하신 다음, 빵을 떼어 당신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12) 또한 그분은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이에게 나누어 주셨다. 42 그리하여 모두 먹고 배가 불렀다. 43 그리고 빵 조각들을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고, 이어 남은 물고기도 거두었다. 44 [빵을] 먹은 사람들 중 남자들만 오천 명이었다.


- 30절에 제자들이 이제 사도로 불린다. 그 이유는?

- 열둘의 파송 - 세례요한의 죽음 - 열둘의 보고의 구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 목자 없는 양 같은 이들에게 예수는 무엇을 하였나? 

- 경제적 궁핍 상황에서 제자들의 방식과 예수님의 방식을 비교해 보라.

-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 37절의 예수의 명령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유효하다면 그 명령을 수행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 파송 받았던 제자들이 돌아와 그들이 행하고 가르친 것을 보고한다. 이들에게 “사도”라는 새로운 칭호가 주어진다.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을 때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예수와 함께 있을 때는 제자이지만 예수 없이 보냄 받은 자로 자신의 사명을 실행에 옮길 때 사도가 된다. 제자들의 파송과 귀환 사이에 세례요한의 죽음을 배치한 것은 제자들의 활동 공간이 의로운 예언자가 죽는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 줌과 동시에 예수 또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전조가 된다. 그러면 제자들만 남게 될 것이다.

자연이적(바다를 잠잠케 한 사건, 바다 위로 걸은 사건, 오천 명과 사천 명을 먹인 사건 등등)은 그 뜻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그 뜻을 밝히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엘리야와 엘리사의 기적사화를 살펴야 한다(왕상 17:8~16, 왕하 4:42~44). 특히 엘리사의 기적사화와 비슷한데 예수님은 엘리사보다 훨씬 위대하다. 둘째, 모세가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먹였듯이(출 16: 14-35, 신 18:15, 18) 예수도 외딴곳에서 같은 백성을 기적적으로 먹이신다. 셋째, 수천 명을 먹이는 종말잔치의 예표일 수 있다(사 25:6~8, 55:1~2, 65:13~14). 넷째, 식사 전에 기도하고 빵을 나누어 주신 일은 유다인들의 식사예절에서 주인이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최후의 만찬도 이와 같았다. 초대교인들은 이 장면에서 성만찬 예식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이 급식사건은 예수가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마르코에서는 딱 한번 여기서 제자들을 사도라고 부른다. 사도는 예수 없는 상황을 뜻하고 예수 없는 상황에서 제자들은 이러한 사건들을 이어야 한다. 예수의 지시를 따르면 제자들도 양을 돌보는 목자가 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훈련시키는가?

 구약성서에서 야훼는 목자다(시 23:1). 모세는 목자 같은 지도자를 달라고 하느님께 간청했다(민 27:17)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대부분 목자처럼 처신하지 않았다(겔 34장) 하느님께서는 참 목자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겔 34:23, 37:24). 이제 참 목자 예수께서 오셔서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다(요 10:7~21 참조) 예수는 가르치시고 바로 먹을 것도 주신다. 즉 예수는 영혼과 몸을 동시에 돌보신다. 하느님의 통치는 그 사람 전체에 해당된다. 제자들은 몸과 영혼 전체에 걸쳐서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다. 영혼은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면 된다. 그렇다면 몸은 어떻게 돌보는가? 백성들이 경제적 문제에 처해 있고 제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경제행위에 의한 것으로 가능한 것으로 보았으나, 예수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4. 다음 주 말씀

1) 마르코복음서 6장 45절-7장 30절을 꼼꼼히 읽어 보세요.(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며 읽거나, 손으로 베껴 쓰시면 좋습니다.) 시간 나시면 마르코 복음서 전체를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바라기는 마르코 복음서 공부를 하면서 이 복음서를 한 10번 정도 읽는 것입니다.


※ 질문들

- 예수는 언제 기도하는가?

- 바다를 건너며 또 다시 어려움을 겪는다. 이전에 바다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같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 52절 빵의 기적에서 제자들은 무엇을 깨달아야 했던 것일까?

- 자신의 신앙은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

- 우리를 얽매고 있는 문화나 습관은 어떤 것이 있는가?(사회화의 과정에서)

- 외적인 형식과 마음의 진정성의 관계에 대해 함께 나눠보자!

- 시로페니키아 출신이라는 것은 여성이 어떻다는 것인가?

- 27절의 예수의 지역 차별적인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이 치유기적이 다른 치유기적과 다른 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