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Ⅹ강 뻗어가는 새 공동체 2(5:21-6:6)


0. 기도


1. 지난 주 복습

- 예수의 바다여행, 낯선 세계로의 여행과 수용

- 거라사에서의 귀신 축출의 의미, 인간을 황폐화시키는 폭력에 대하여


2. 말씀 읽기: 마가 5:21-6:6


3. 말씀 새기기


21 예수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1) 가자, 많은 무리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2) 그는 바다근처에 있었다. 22 그런데 야이로라는 이름의 회당장이 와서 그를 보고 그의 발 앞에 엎드렸다. 23 그에게 많이 간청하여 말했다. “저의 어린 딸이 거의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오셔서 그에게 손을 얹어 구원받아 살게 해 주십시오.” 24 그리고 그와 함께 떠났다. 그런데 많은 무리가 그를 따르며 그에게 몰려들었다. 25 그런데 12년 동안 피를 흘리는 여인이 있었는데, 26 많은 의사들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했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소비했으나, 아무런 효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 악화되고 있었는데3), 27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무리들 안에 들어와 뒤에서 그의 옷을 만졌다.4) 28 왜냐하면 만약 그의 옷을 만지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 (속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29 그러자 즉시 그의 피가 솟던 곳이 말랐다.5) 그리고 몸이 병으로부터 나았음을 알게 되었다. 30 그러자 즉시 예수가 자기에게서 그의 능력이 나간 것을 알고, 무리들에게 돌아서서 “누가 나의 옷을 만졌느냐?” 고 말했다. 31 그러자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말했다. “보시는 대로 무리들이 당신에게로 몰려들고 있는데 누가 나를 만졌느냐? 라고 말합니까?” 32 그러나 (그는) 이런 일을 한 사람을 찾으려고 둘러보았다. 33 그러자 여인은 그에게 생긴 일을 알았기에 두려움에 떨며 그에게 나아와 엎드려 그에게 모든 사실을 말했다. 34 그러자 (예수가) 그에게 말했다. “딸아6), 너의 믿음7)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화 속으로 가라. 그리고 너의 병에서 건강해져라.” 35 그가 아직 말하고 있을 때8), 회당장의 (집)에서 와서 “당신 딸이 죽었다. 이제 무엇으로 선생님을 고생하게 하는가?”라고 말했다. 36 그런데 예수가 (그들이) 말하는 그 말을 언뜻 듣고 회당장에게 “두려워 말라. 믿기만 해라.”고 말한다.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는 아무도 그와 함께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38 회당장의 집으로 갔다. (예수는) 소란스럽게 울고 크게 통곡하는 많은 이들을 보았다.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말한다. “무엇 때문에 소란을 피우고 우는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40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그는 모두 내쫓고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그리고 그와 함께한 이들을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그에게 말한다. “탈리다 쿰.” 번역하면 “소녀야, 너에게 말하니 일어나라!”이다. 42 그러자 즉시 소녀는 일어나 걸었다. 왜냐하면 열두 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크게 놀라 [즉시] 넋을 잃었다. 43 그리고 그들에게 아무도 이 일을 모르게 하라고 엄히 명령하고, 먹을 것을 그에게 주라고 말했다.


-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회당장의 사회적 지위?

- 무엇을 깨닫고 느끼는가?

- 여기 나온 두 여성의 상태에 대하여

야이로의 딸

행복의 12년

임신 가능

임종의 순간

구원의 은총(몸의 온전한 치유)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혈루증 걸린 여인

불행의 12년

임신 가능?

치유의 순간

- 열둘의 의미: 열둘이 유대교를 상징한다면 유대교는 이제 어떻게 갱신되어야 한다는 것일까?

- 혈루증: 레위기 15:25-30 참조-제의적 정결 문제

- 고대 사회에서 여성의 불임, 사회구조적 위기(많은 의사에게 보였으나 효험이 없었고, 가산이 탕진되었는데도 악화되었다).

- 치유는 기본적으로 육체적 치유이다. 동시에 사회적 고통도 치유된다.

- 그대 믿음이 그대를 구원했다(행동하는 용기?): 루가 7:50 창녀에게, 마가 10:52 거지에게, 루가 17:19 나병환자에게

- 여인을 치유하는 그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9:35, 10:31)

- 회당장의 심경과 신앙: “인내와 기다림” -> 비판적 지성을 통한 자기극복

- 시체 접촉: 민수기 19:11-13, 예수가 시체에 손을 댈 수 있었던 것은 혹시 혈루병 걸린 여인에게 배운 것이 아닐까?

- 먹을 것을 그 여자에게 주라! : 빵의 담론과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까? 빵이 예수의 몸이라면 여성들이 예수를 얻게 된다. 

- 구원과 은총에 대하여

- 참 구원이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남성 12제자는 배제되고 있다. 오히려 어리석음을 대변한다(30-31절). 한 여인과 열둘과의 대조.


* 참고: 2003년 7월 6일 향린청소년부 설교


본문: 마르코복음 5,21-43

제목: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본문

1. 하혈증 걸린 여인의 고백


저는 평범한 여인입니다. 평소에는 열심히 일하고 쉬는 날이면 친구와 재잘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가까운 교외로 나가 푸른 나뭇잎을 보며 시 한편 읊고 싶은 그런 여인입니다. 친구들처럼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고 싶습니다. 예쁜 딸과 씩씩한 아들도 낳고 싶고 단란한 가정도 가꾸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은 저에게는 부질없는 이야기입니다. 왜냐구요? 저는 몹쓸 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12년 동안이나 이 병에 시달렸습니다. 한 달에 한번 피를 쏟는 날이면 저는 두려움과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한번 나온 피는 멈추지 않고 며칠이고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의 율법으로는 피를 흘리는 기간은 부정한 기간이기 때문에 저는 이 기간 동안 누구를 만날 수도 없고 누구와 대화를 나눌 수도 없습니다. 부정한 사람과 접촉하거나 함께한 사람은 모두 부정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괴로움을 끝내려고 저는 소문난 의사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제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제가 가진 얼마 안 되는 재산까지 모두 다 쏟아 부었지만 제 병은 더욱 악화되어 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내가 무슨 잘못이 있는 것처럼 저만 보면 쑤군거립니다. 내가 죄를 지어 하느님이 못된 병을 내리셨다고들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잘못한 것이 정말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저는 하루하루 고통 가운데 제 삶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예수라는 한 나사렛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용한 의원처럼 귀신들린 자들과 나병환자, 중풍병자들을 고쳤다고 하였습니다. 저 멀리 이방지역에서 심한 우울증에 걸려 제 몸을 상하던 군대 귀신 들린 남자도 고쳤다고 들었습니다. 온갖 의사들에게 시달린 터라 이 남자도 다른 의사들과 똑같은 돌팔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갔지만 이 남자는 좀 다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보통의 의사들은 고위직 사람들과 부자나 고쳐주고 가난하고 천한 사람은 무시하는데 이 사람은 세리들하고도 어울리고 못난 사람들하고도 친구가 되어준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 예수라는 청년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가서 그 사람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내 몸의 이런 고통이 없어질 것 같았습니다. 예수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어디론가 바쁘게 막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그를 항상 따라다니던 몇 몇과 수많은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저와 비슷한 사람들인 것 같았습니다. 모두들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온 동네에서 예수에게로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군중을 뚫고 예수 뒤로 다가갔습니다. 내 몸을 남에게 대는 것은 부정을 퍼뜨리는 일이라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는 저는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차피 죽을 바에야 예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주위 사람들을 보지도 않고 무작정 그 청년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순간 저는 저의 몸에 이상한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흐르던 피가 곧 바로 멈춘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말을 잃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예수는 내가 그의 옷자락을 만진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누가 자기 옷을 만졌냐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전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냐며 그냥 갈 것을 재촉했으나 예수의 눈은 나에게로 와서 꽂혔습니다. 저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 콧물 쏟아내며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12년의 아픔이 저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몰려 왔습니다. 전 흐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그는 조용히 내게 말했습니다. “여인이여!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병을 고쳤습니다. 이제 평안히 가십시오!”


제 귀에 들린 그 말을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 믿음이 나를 구원하였다니..... 난 남이 부정타든말든 생각지 않고 나만을 생각했는데 그 분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저의 사정을 이해하셨던 것입니다. 그 때 그분의 인자한 그 눈빛 속에 빛나는 하느님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내 곁에 계셨던 것처럼 너무나 익숙한 모습으로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몸이 성하게 된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동안의 고통도, 의사들에 대한 미움도, 동네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도 모두 모두 날아갔습니다. 그 순간 전 하늘을 훨훨 나는 한 마리 비둘기처럼 어느 새 저 푸른 자유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2. 회당장 야이로의 고백


저의 이름은 야이로입니다. 저에게는 아주 사랑하는 딸아이가 하나 있지요. 그 아이가 태어나던 날을 전 기억합니다. 그 조그만 발과 오물거리는 손가락이 어찌 그리 깜찍하던지요. 늘그막에 얻은 제 딸은 하느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유치원에 들어가 재롱을 피우며 하느님 말씀을 곧잘 외울 때 저는 동네방네 다니며 자랑을 해 댔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학부형이 되었을 때 별 것도 아닌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괜시리 눈물을 짓기도 했지요. 아침저녁으로 “아빠! 사랑해!”하며 제 뺨에 해대는 제 딸의 뽀뽀에 저는 가슴이 벅차곤 했습니다. 저는 회당장으로 동네의 사소한 일에서부터 다툼, 종교적인 문제들을 상의해주고 해결해 주며 살았습니다. 모두 내 일처럼 열심히 도와주고 최선을 다했기에 사람들도 저를 모두 믿고 따랐습니다. 그렇게 저는 회당장으로 한 아이의 아버지로 평안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것이 행복이구나 싶었습니다.


딸아이가 열두 살이 되어 거대하게 생일잔치를 해주고 난 뒤 며칠이 지나서 딸아이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불덩이 같고 아이는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동네 의원들을 모두 불렀으나 모두들 고개를 젓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 딸아이는 곧 죽을 것 같았습니다. 제 앞에 칠흑 같은 어둠이 덮쳤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놔두면 이 아이는 곧 죽고야 말 것 같았습니다. 이제 진정한 여성이 되어 생명을 잉태할 열두살 나이에 내 딸아이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동네에 요즘 한참 용하다고 소문이 나도는 한 목수 청년이 들어왔다고 하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조건 그 청년에게 달려갔습니다. 저의 명예와 신분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생명 같은 딸아이가 죽고 사는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청년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제 딸을 살려 주십시오. 제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제 집에 오셔서 제 딸아이의 몸에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제 딸아이가 나을 것 같습니다.” 그 청년은 아무 말 없이 저를 따라서 저의 집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온 동네 사람들이 예수를 못 가게 막았습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들고 나와서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가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몰려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더욱 조급해 졌습니다. “빨리 가야할 텐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예수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누가 자기 옷자락을 만졌냐고 제자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며 예수에게 그냥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계속해서 주위를 돌아보며 자기 옷을 만진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더욱 속이 탔습니다. 이러다가 제 딸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때 한 여자가 자기가 한 일을 속속들이 예수에게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여자는 바로 늘 피를 흘려 부정을 타서 동네에 들어 올 수도 없는 여자였습니다. 예수는 그 여자와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긴 일어난 모양이지만 저는 갈수록 불안해 졌습니다.


아! 으~윽! 일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예수가 여인과의 대화를 끝내기도 전에 우리 집에 있던 사람이 저에게로 달려 왔습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소리였습니다. 저 먼 옛날 우리 조상 욥이 당했던 그 고통이 떠올랐습니다. 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예수를 밀치던 동네 사람들이 미워졌습니다.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 그 여자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주저주저하며 머뭇거린 예수라는 청년이 못내 서운하였습니다.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아무런 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태연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믿음을 가지세요.” 그리고 뚜벅뚜벅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단 믿기로 한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일단은 나도 그를 따라 갔습니다. 우리 집은 이미 초상집이 되었습니다. 집안이 온통 울음바다였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라도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였지만 내내 흐르는 눈물만큼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나와 내 아내 그리고 그의 세 제자만을 데리고 딸이 누워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는 신비한 말을 남기고는 사람들이 비웃든 말든 예수는 아이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린 딸아! 일어나거라!” 그 소리는 작고 부드러웠지만 이상하게 강한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 청년은 내 딸의 손을 잡고 그를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정말 잠들었다가 깨어난 듯이 그 죽은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하고 조용히 집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꿈을 꾼 것 같았습니다. 잠시 지옥에라도 갔다 온 기분이었습니다. 살아난 딸아이를 연신 껴안으면서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계속 말했습니다. 모든 것은 얼마나 고마운지 만나는 사람마다 꾸벅꾸벅 절을 해 댔습니다. 끝까지 기다린 나를 하느님은 버리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문득 예수와 그 부정탄 여인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그 여자는 12년 동안이나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딸과 제가 행복하게 지내던 지난 세월동안 그 여인은 괴로움의 나날을 지냈던 것이고 회당장인 나는 그것도 모르며 그녀의 아픔을 무시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는 그 여인의 아픔을 살피고 동시에 우리의 아픔도 알았던 것입니다. 설사 그녀만 살았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12년의 소중한 행복의 기억이 있지만 그녀에겐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모두를 구원했고 나와 그 여인은 모두 그에게서 하느님을 보았습니다. 오래전 선지자가 했던 그 고백을 떠올렸습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이미 꺼져가는 불도 끄지 않으시는 하느님!” 이제 그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3. 하느님의 고백


나는 그 때 거기에 있었다. 내가 서로 사랑하라고 한 것을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고 너희는 너희끼리 구별을 만들었다. 누구는 의인이고 누구는 죄인이라고 누구는 깨끗하고 누구는 더럽다고 너희 스스로가 판단하고 너희 스스로가 정죄하였다. 누구는 어떻다고 정죄하는 그 미움의 손길에서 새로운 생명은 탄생할 수 없다. 너희는 모두 병든 여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너희가 정한 그 기준이 필요 없다. 나는 너희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때 거기 있을 때 나는 한꺼번에 두 여인 모두 고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부정한 몸이 되었다. 부정하다고 규정하는 여인이 나를 만진 것을 내버려 두었고 나는 자진해서 너희가 부정하다고 하는 한 아이의 시체에 손을 얹었다. 부자로 명예를 지니고 살던 야이로가 12년 동안 그 아픈 삶을 살았던 여인의 삶을 이해하길 바랐다. 또 그 여인의 억척스럽고 파렴치한 것 같은 믿음이 큰 용기였다는 사실을 그 여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너희는 너희 맘대로 사람들을 구별한다. 지금은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규정하고 제는 30평짜리, 제는 50평짜리라고 말한다지.... 또 지금도 너희들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세상이 주는 가치관에 따라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온 인류를 만들고 온 우주를 만들 때부터 너희 모두를 사랑했다. 아픔과 고통과 좌절과 절망 속에서 괴로워하는 얘들아! 희망을 가져라. 용기를 가져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할 것이다. 가진 자들아. 여유로운 자들아! 안락한 자들아! 네 것을 나누어라! 너희보다 더 급한 자들을 위해 기다려라! 그래도 너희는 괜찮지 않느냐! 둘 다 기억해라! 난 너희 둘 다 사랑한다. 둘 다 나의 자녀다. 그러니 너희는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함부로 말하지 말고 함부로 무시하지 말라. 그 구별과 차별을 모두 없애라. 그러면 너희는 오늘도 생생하게 나를 만날 것이다.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


6장

1 그리고 거기로부터 떠나 그의 고향으로 갔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도 그를 따랐다. 2 그리고 안식일이 되자 회당에 들어가 가르쳤다.9) 많은 사람들이 듣고 놀라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로부터 (배워서? 힘을 얻어서?) 이런 일을 하는가? 이 사람에게 주어진 지혜는 무엇인가?(어떻게 된 것인가?) 그의 손을 통하여 이런 능력들이 이루어지다니!10) 3 이 사람은 목수11)이며, 마리아의 아들이고12)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의 형제가 아닌가?13) 그의 자매들도 여기서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은가?”14) 그러면서 그에게 걸려 넘어졌다. 4 그러자 예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예언자는 (어디서도)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는데 자기의 고향에서, 자기의 친척들 사이에서 그리고 자기의 집에서는 그렇지 않다.15)” 5 그래서 거기서 아무 능력도 행할 수 없었고16), 몇 몇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 치료할 뿐이었다. 6 (그는) 그들의 불신에 대하여 놀랐다. 그리고 마을 주변을 다니며 가르쳤다.


- 여러분에게 고향이란 어떤 곳입니까? 예수의 고향 나자렛은 어떤 동네였을까?(요한 1:46) 고향 사람들의 경탄과 의혹의 눈초리들!, 마조 도일의 고향방문기(勸君莫還鄕 還鄕道不成 溪邊老婆子 喚兒久時名)

- 혈육/고향의 배척과 열둘과의 관계(3:13-19/3:20-35, 6:1-6/6:7-31)

- 우리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 당신의 가능성을 막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 우리가 가진 편견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그런 편견을 깬 경험이 있나요? 함께 나눠 봅시다.


* 예수는 공생애 기간 동안 한번 고향을 방문하셨다. 고향방문기의 문맥은 이렇다. 지금까지 예수께서는 맹활약을 하셨으나 인정을 받기보다 불신을 당하셨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당원들은 그분을 죽이기로 결정했고(3,6) 친척들은 그분이 정신나갔다고 했으며(3,20~21, 31~34) 백성 뿐 아니라(4,10~12) 제자들조차(4,13~40) 그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고향사람들도 그분을 배척하게 된다. 예수는 늘 외로운 사람이다.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배척받는 예수는 결국 자신을 몽땅 내어준다. 그 때 누가 예수를 이을 것인가?

 예수의 인간됨을 강조하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 불신앙의 요소가 된다. 예수가 아비 없는 홀어미의 아들이고, 그의 가족들을 알고 있고, 그들 모두가 똑같이 우리와 살고 있고 또 무력한 인간처럼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라는 사실 등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소식을 가리는 구실을 한다.

 예수와 그의 소식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자신을 개방하는 곳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고, 불신앙으로 스스로를 폐쇄하는 곳에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는 자신의 권능을 보여주기 위해서나 믿음을 강요하기 위해 기적을 일으키지 않는다. 신비한 마술로 기적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기적은 주변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믿음 안에서 자신들을 예수에게로 개방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를 배척하는 세력은 정치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본래부터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친구들도, 친척들도 가족들도 예수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서 이상히 여긴다.   


4. 다음 주 말씀

1) 마르코복음서 6장 6b절-44절을 꼼꼼히 읽어 보세요.(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며 읽거나, 손으로 베껴 쓰시면 좋습니다.) 시간 나시면 마르코 복음서 전체를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바라기는 마르코 복음서 공부를 하면서 이 복음서를 한 10번 정도 읽는 것입니다.


※ 질문들

- 왜 둘씩 짝을 지어 파견했을까?

- 선교 여행을 위한 준비물이 어떠한가? 이런 행색이 의미하는 바를 발견해 보자.

- 떠난 제자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가?

- 파송 받은 제자들이 한 것은 무엇인가? 

- 이런 제자들의 행색을 본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 여행(또는 방랑)이 주는 경험의 특징들은 무엇일까?

- 예수의 소문과 세례요한의 죽음 이야기를 연결하는 이유는 뭘까?

- 세례요한의 죽음 이야기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발견하는가?

- 역사적으로 세례요한은 어떤 이유로 죽었을까?

- 30절에 제자들이 이제 사도로 불린다. 그 이유는?

- 열둘의 파송 - 세례요한의 죽음 - 열둘의 보고의 구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 경제적 궁핍 상황에서 제자들의 방식과 예수님의 방식을 비교해 보라.

-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