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Ⅸ강 뻗어가는 새 공동체(4:35-5:20)


0. 기도


1. 지난 주 복습

- 참고 기다려라. 하느님이 이루신다.

- 등불은 비추려고 있는 것이고 숨길래야 숨길 수 없다.

- 하느님 나라는 보잘 것 없는 듯해도 온갖 새들이 깃들일 것이다.

- 하느님 나라는 누군가에게는 성가신 것일 수도 있어서 그것을 없애려고 하지만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2. 말씀 읽기: 마가 4:351)-5:20


3. 말씀 새기기

35그리고 저녁이 되었을 때에2) 그들에게 “건너편으로 가자”라고 말한다. 36그래서 그들은 무리를 내버려두고 그를 배안에 태워 데려 가는데, 다른 배들도3) 그와 함께 있었다. 37그런데 거센 바람을 동반한 폭풍이 일어나서4) 파도가 배 안으로 들어와 배에 가득 차게 되었다. 38그러나 그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자고 있었다. 그러자 (그들이) 그를 일으켜 그에게 말한다. “선생님, 당신은 우리가 망하는 것이 걱정이 안 됩니까?” 39그러자 일어나(일으켜져서) 바람을 꾸짖고 바다에게 말했다. “잠잠하라. 조용히 있어라.”5) 그러자 바람이 멈추고 아주 고요해졌다. 40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어찌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41그러자 (그들은) 크게 겁을 먹고 두려워하며6) 서로 말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길래 바람과 바다가 그에게 순종하는가?”


-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 2:1->5:1 언제 가는가?

- 누가 가자고 하였나?

- 바람과 바다는 유대인들에게 어떤 상징물이었을까?7)

- 배 안에는 누가 타고 있는가? 배의 이미지는?8)

- 언제 폭풍이 이는가? 예수가 잘 때, 언제 폭풍이 멈추는가? 예수가 일어났을 때. -> 예수는 야훼의 권능으로 자연계에 구현된 사탄과 싸운다? 요나이야기와의 유사점과 차이점(참고 눅 11:32)

- 제자들에게 없는 믿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4:12와 연결 지어서~

- 이 이야기가 전하려는 바는 무엇일까? 제자직! 4장 앞부분의 비유이야기와 연결지어서 더 깊게 생각해 보자!


*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 운동은 당대의 기득권자들에게는 거침돌이 되는 것이라 반대가 심하고 때로는 예수의 가족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많은 이들이 예수의 운동에 동참하였고, 새로운 이스라엘 대표하는 열둘의 제자단도 구성되었다. 늘 성공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다양한 실패들이 있었으나 예수는 이들을 격려하고 기다리며 너무 급히 서둘지 말 것을 말했다. 우리들의 운동이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은 결국 온갖 새들이 안식을 취하는 나무처럼 많은 이들은 우리의 운동에서 안식과 평안을 누릴 것이다. 기득권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는 성가신 존재라 잡초처럼 퍼져나가는 하느님 나라를 없애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땅이 저절로 식물을 키우듯이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이루실 것이다.

   이제 이 운동은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의 비전은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방 땅으로 가는 것은 먼저 자신은 선민이고 이방인은 죄인이라는 자신의 고정관념부터 벗어버리는 데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예수는 건너편으로 가자고 과감하게 제안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제자들은 예수의 꿈과 비전에 대해 아직도 확신이 없었다. 저녁이 되어 어둠이 깔리는 데 물설고 낯선 이방인의 땅으로 노를 저어야 한다. 일고의 계획도 없이, 일점의 준비도 없이, 이 밤이 다하도록 노를 저어 저 부정한 사람들의 땅으로 간다는 것이 어찌 그리 간단한 일인가? 어둠의 메타포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제자들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바다와 거센 바람이 불어 올 때, 자신들은 이겨낼 힘이 없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왜 우리를 돌보지 않습니까?” 제자들의 항변은 이해할 만하다. 언제 우리가 건너편으로 가자고 했는가? 가자고 한 것은 선생인데 이런 어려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고 있다니! 말이 되는가? 우리가 죽게 되었을 때 돌보지 않는 이를 선생이라 부를 수 있나? 그러나 예수도 제자들에게 다소 실망한 듯 하다. 제자들이 당한 어려움을 해결한 뒤 던지는 한마디에 예수의 아쉬움이 묻어난다.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느님 나라 운동을 곁에서 그렇게 많이 지켜보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치유를 받고 기쁜 소식으로 행복해졌는지 보았으면서도, 여러 가지 비유로 실망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리면 놀라운 성공이 오리라고, 모든 민족들을 품을 세상이 될 거라고 가르쳐 주었건만 제자들은 아직 모른다. 그런 꿈과 비전이 없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 생각해 봅시다.

1. 당신은 예수에게서 어떤 꿈을 보는가?

2. 나에게 닥친 곤란과 어려움은 어떤 종류의 곤란이며 어려움인가?

3. 지금의 나를 딛고 한 단계 성숙하는 힘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또 그렇게 성숙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4. 예수를 따르는 긴 여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또 가장 큰 어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런 어려움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5장 1그리고 (그들은) 바다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역으로 갔다. 2그가 배에서 내리자, 즉시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를 만났다. 3그는 무덤에서 살았고,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묶어둘 수 없었다. 쇠사슬로도 할 수 없었다. 4그는 이미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인 적9)이 있지만, 그에게서 쇠사슬을 끊고 쇠고랑도 부수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다. 5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항상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몸을 돌로 찧곤 했다. 6그런데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서 그에게 엎드려 절했다. 7그리고 큰 소리로 소리질러 말한다. “나와 당신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예수,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당신 하느님께 간청하니 나를 괴롭히지 마시오” 8왜냐하면 (예수가)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와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9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그리고 그(예수)에게 말한다. “나의 이름은 군대(레기온)다. 많기 때문이다.” 10그리고 자기들을 그 지역 밖으로 보내지 말 것을 그에게 많이 간청하였다. 11그런데 거기 산기슭에는 기르고 있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12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그에게 간청하여 말했다. “우리들을 돼지에게로 보내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시오.” 13그래서 그들에게 허락했다. 그러자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니, 돼지떼는 가파른 절벽을 통과해서 바다 속으로 내리 달렸다. 이천 마리 쯤 되었는데, 바다에 빠져 죽었다. 14그것들(돼지들)을 먹이던 자들이 달려가서 도시와 농가에 알렸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러 왔다. 15예수께로 가서, 귀신들렸던 사람, 즉 군대(레기온)에게 사로잡혔던 사람이 옷을 입고 멀쩡한 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다. 16그리고 본 사람들이 귀신들렸던 이에게 그리고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그들에게 얘기했다. 17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그들의 지역으로부터 떠나달라고 간청하기 시작했다. 18그리고 그(예수)가 배에 오르자 귀신 들렸던 사람이 그의 곁에 있게 해 달라고10) 간청하였다. 19그러나 그는 허락하지 않고 그에게 말한다. “너의 집과 너와 관련된 이들에게 가서 주께서 너에게 하신 것과 네게 베푸신 자비를 그들에게 알려라.” 20그러자 물러가서 예수가 그에게 한 일들을 데카폴리스에 선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모두들 놀랐다.


- 무슨 일이 있었나? 1:21-28과의 유사성

- 접신 현상에 대하여

- 무엇이 이 사람을 산 사람들과 못살게 하면서 무덤에 거주하게 하고, 이렇게 자학하게 만들었을까?11)

- 더러운 영의 이름이 군대12)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 다수(많음)의 힘이 작용할 때 생기는 부작용들을 생각해 보자.

- 돼지들은 무슨 죄가 있어 순식간에 몰살당하는가?

- 더러운 영 들린 사람이 고침을 받았는데 왜 도시와 농가의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고 두려워했을까?

-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상징들: 게라사 인의 지역, 무덤, 돼지떼와 몰살13), 옷을 입고 정신이 돌아옴

- 예수의 제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건너편으로 와서 한 일은 한 사람을 구원한 것과 2000마리 돼지를 몰살시킨 것이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 데카폴리스, 거라사, 군대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 19절 예수의 명령과 20절 보도와의 관계성: 예수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능력!


* 죽음을 무릅쓰고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역으로 온 제자들과 예수가 만난 이는 단 한명 군대 귀신으로 인해 몸을 망치고 공동체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예수는 이 사람을 고치면서 2000천 마리나 되는 돼지를 죽이고 도시와 농가의 사람들에게 경제적 손실을 끼치며 결국 거기서 떠나 달라는 사람들의 간청으로 다시 되돌아 온다. 제자들 입장에서 어떠했을까? 풍랑과 폭풍을 헤치고 올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한 사람의 구원은 데카폴리스 지역 전체에 복음이 선포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거라사는 데카폴리스의 제1도시로서 로마 군대가 주둔하는 곳이었다. 군대가 주둔하는 곳은 언제나 좋지 않은 군대 문화가 존재한다. 그것도 자국의 국민을 위해서 주둔하는 군대가 아니라 식민지의 백성이 느끼는 타국의 군대의 주둔이란 무엇을 상징하여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뻔한 일이다. 이 군대 문화에 빌붙어 사는 이들은 모르지만 거기에 적응할 수 없는 이의 삶이란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이 보여주듯이 처참한 것이다. 소수 혹은 다수의 사람들을 비인간화시키면서 얻는 경제적 이득은 예수의 눈에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2000천 마리의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더라도 한 사람의 구원이 중요하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과연 2000마리의 돼지는 누구의 배를 채우는 것이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 엄청난 숫자의 돼지는 시골 소작농들의 손에서 자라, 거라사의 부유한 엘리트 계층의 이익을 위하여 로마 군인들에게 팔리고, 마침내 그들의 식탁에 기름진 음식으로 올라오는 것들이었다. 예수는 더러운 영을 돼지에게로 내 보냄으로써 개인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거라사와 데카폴리스에 뿌리내린 로마 군단의 정치-경제 구조를 붕괴시키고 있다. 예수는 잘못된 터 위에 세워진 문명을 구원하기 위해 그 기반을 무너뜨리고 문명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변화시켜 새로운 문명을 지으려고 한다. 진실이 드러날 때 불의한 자들은 공포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공포를 이기는 방법은 무엇인가? 불의를 버리고 떳떳하게 사는 것과 아니면 잠시 위기의 상황을 모면하도록 궁여지책을 쓰는 것이다. 예수에게 떠나달라고 부탁한 행위는 궁여지책이었다. 예수는 떠났지만 예수에게 치유 받은 이는 남아서 자신의 가족과 사회의 품으로 돌아가고(사회적 치유) 데카폴리스 지역을 변화시킨다. 즉 그는 예수를 통해 자기에게 벌어진 일들을 알리고 선포함으로써 자기에게 임한 하느님의 능력과 나라를 퍼뜨린다. 이제 이 사람을 통해 거기에도 하느님 나라는 퍼질 것이다. 예수의 해방과 치유를 통해 개인이 갱생할 뿐만 아니라 사회가 변하자 모든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다. 


*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우리에게 공동체 생활을 어렵게 하면서 자신을 위축시키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가?

2. 생존을 위해 부지불식간에 내가 저지르는 잘못들은 무엇이 있을까? 부도덕한 사회에 도덕적 개인이 가능할까?

3. 정당한 힘의 사용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4. 다음 주 말씀

1) 마르코복음서 5장 21절-6장 6절을 꼼꼼히 읽어 보세요.(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며 읽거나, 손으로 베껴 쓰시면 좋습니다.) 시간 나시면 마르코 복음서 전체를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바라기는 마르코 복음서 공부를 하면서 이 복음서를 한 10번 정도 읽는 것입니다.


※ 질문들

-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무엇을 깨닫고 느끼는가?

- 여기 나온 두 여성의 상태에 대하여

- 열둘의 의미

- 고대 사회에서 여성의 불임

- 그대 믿음이 그대를 구원했다: 루가 7:50 창녀에게, 마가 10:52 거지에게, 루가 17:19 나병환자에게

- 구원과 은총에 대하여 

- 여러분에게 고향이란 어떤 곳입니까?

- 우리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 당신의 가능성을 막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 우리가 가진 편견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그런 편견을 깬 경험이 있나요? 함께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