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Ⅵ강 새로운 공동체(3:7-3:35)



0. 기도


1. 지난 주 복습

- 금식과 하느님 나라 잔치

- 안식일의 주인(법과 생명)

- 하느님 나라 운동과 죽음의 그림자


2. 말씀 읽기: 마가 3:7-3:35


3. 말씀 새기기


7 그리고 예수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갔다. 많은 군중(plh/qoj)들이 갈릴래아로부터 [따랐다.] 또 유다로부터 8 예루살렘으로부터 또 이두매아로부터 그리고 요단 건너편과 띠로와 시돈 주변에서도 많은 군중들이 (그가) 한 모든 일을 듣고 그에게로 왔다. 9 그리고 무리들이 그에게로 몰려들지 않게 하기 위해 그의 제자들에게 근처에 작은 배를 마련하라고 말했다.1) 10 많은 이들을 낫게 하였기에 병 든 이들이 그를 만지려고 그에게 밀려왔기(fall upon) 때문이다. 11 더러운 영들은 그를 보았을 때, 그에게 엎드려서(fall) 외쳐 말했다. “너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12 그러자 (그는) 그를 드러내지 말라고 호되게 그들을 꾸짖었다.


- 바다는 어떤 곳인가?(복영광사: 福永光司 후쿠나가 미쓰지ふくなが みつじ의 말 문화와 배 문화 이야기, 성서의 바다 이미지: 사탄적 혼돈의 영역, 통제불능의 장소 - 시 74:13-14, 89:9, 요한계시록 12-13, 이사야 27:1, 욥기 3:8, 41장)

- 어디로부터 사람들이 몰려오는가? 빠진 동네가 있는가? 당시 사람들이 몰려든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이 몰려들었을까? 오늘 우리는 왜 예수에게로 가는가? 몰려드는가? 아니면 따르는가?

- 누가 작은 배를 마련하였을까? 작은 배의 마련은 이후 4:35-6:35의 기적 여행을 위한 도구!

- 계속되는 꾸짖음의 의미는 무엇일까?(12절)

* 죽음의 그림자가 예수 주위에 점차 드리울 것을 예고하는 상황 속에서도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더욱 확장되어 간다. 유대와 예루살렘(요한의 활동영역) 뿐 아니라 이두매아(남쪽), 요단 건너편(동쪽), 띠로와 시돈(북쪽)에서도 사람들이 몰려 온다. 이들은 예수가 한 모든 일들 즉 치유, 귀신축출, 제자의 선택 등을 듣고 온 것이다. 이제 예수의 부르심이 이스라엘을 넘어서까지 작용한다. 후에 예수님은 이들 지역으로 가실 것이다(요단건너편 4:35-5:20, 7:31-8:9, 8:13-22 북쪽 7:24-30, 8:27-9:29 유대와 예루살렘 10:1-16:8). 더러운 영들의 고백은 정확한 것이지만 그것이 곧바로 예수를 따름으로 이어진다든지, 그들의 구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진실성을 확보하지 못한 입에 발린 고백은 용납되기 어렵다. 그래서 예수는 여전히 그들이 선전하지 못하게 하신다(1:34, 44, 3:11-12, 8:29-30, 9:7-9). 예수를 따르는 자와 예수께 몰려드는 자는 어떻게 다를까? 아무튼 예수는 그냥 몰려드는 자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된다(4:1, 35-36).


13 그리고 (그는) 산으로 올라가 그가 원하는 사람들을 부른다.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로 나아왔다. 14 그리하여 열둘을 만들고 [또 그들을 사도라고 이름 지었으니] 그와 함께 있게 하고 그들을 보내어 선포하게 하며 15 귀신들을 쫓아내는 권위를 갖게 하려는 것이었다. 16 [그리하여 열둘을 만들었다.] 베드로라는 이름을 덧붙여 준 시몬, 17 제베대오에게 속한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그들에게는 보아네르게스 즉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이름을 덧붙였다. 18 그리고 안드레아, 그리고 필립보, 그리고 바르톨로매오, 그리고 마태오, 그리고 토마, 그리고 알패오에게 속한 야고보, 그리고 타대오, 그리고 열혈당원(가나안 사람) 시몬, 19 그를 넘겨준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 왜 열둘(3:14, 4:10, 6:7, 9:35, 10:32, 11:11, 14:10, 17, 20, 43; 열두 제자는 마태의 표현, 열두 사도는 누가의 표현, 마르코는 그냥 열둘이라 부른다)을 부르는가? 예수는 공동체의 일원이지, 독립적인 예언자가 아니다. 이 열둘도 단순히 배우는 사람의 의미에서 제자가 아니라 친구들 혹은 동지들이다. 그리고 왜 산에서 부를까? 방금 전에 바다에 있었는데 산으로 오른다. 산 VS 바다?

- 구성원들은 어떠한가?

- 이들의 임무는 무엇인가?(6:7-13, 30-31에서 자세히 다룸) 

- 우리는 누구와 함께 하며 무엇을 선포하는가? 그리고 어떤 귀신을 쫓아내는가?(1:39 참조)

- 왜 제자들에게 별명을 덧붙이는 것일까?(마태와 누가는 열둘을 부르기 전에 이미 베드로라는 별칭으로 시몬을 부르고 있는데 마가는 여기서 처음 베드로라고 부르고 이 후에는 계속 베드로로 불린다[14:37만 예외], 바위 또는 돌의 의미인 베드로라는 별명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사야 51:1-2 참조. 아브라함과의 관계?), 

*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가 군중을 가르치는 것은 회당(1:21~22; 6:2)과, 집(2:2), 바닷가에서 하고(2:13, 3:7~8, 4:1~2, 5:21), 기도하거나(1:35; 6:46; 14:32), 당신 제자들에게 중요한 일을 하실 때에는 군중에게서 떨어져 산으로 오르신다(3:13, 9:2). 시나이 산에서 12지파가 생성되듯이 새 이스라엘이 창조된다(출애 18-19장).

 열둘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대표한다. 이로써 예수는 열두 지파의 민족 즉 전체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려고 하신다. 예수 당시에는 두 세 지파 정도가 남아 있었는데 12명을 뽑은 것은 이스라엘이 종말론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상징한다(이사 49:6, 에제 45:8, 시락 36:10, 48:10, 솔로몬의 시편 17:26-32, 시빌리온 신탁 2:170-76, 요셉의 계약 19:1-7, 요세푸스 고대사 11. 133). 예수의 전권이 역시 강조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부르듯이 예수 또한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부른다. 제자들의 삶의 중요한 요소로 선생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14:27, 50 참조)은 마가복음만 강조한다. 제자의 선택의 목적은 공생(함께 함)과 파견이다. 공생은 제자들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 자발적 선택이 정해지면 파견되어야 한다. 열둘을 선택하셨다고 하는 구절로 소명사화와 열둘의 명단이 연결된다. 예수와 수평적 관계를 맺고 예수가 했던 복음 선포와 악령추방의 능력을 동시에 받는다. 마가가 “열둘”과 “제자”라는 단어를 단 한번도 결합시키지 않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2)

 보아네르게스(보아너게)는 직역하면 “폭풍의 아들들”이다. 두 형제는 질투심(9:38, 누가 9:54 참조)과 명예욕(10:35~40)이 강할뿐더러 다혈질적이었다.(눅 9:54) 필립보는 요한복음에 자주 등장한다(1:43~51, 6:5~7, 12:20~26). 유일하게 그리스 이름을 가지고 있다. 도마 역시 요한복음에 자주 등장한다.(11:16, 14:5, 20:24~25). 바르톨로매오는 사실 개인의 이름이 아니다. 이 말은 탈마이(Thalmai)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 사람의 본명을 알지 못한다. 로마제국의 지배자들과 그 동조자들에 대항하여 이스라엘 민족 독립을 쟁취하고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자 무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기원후 6년에 갈릴래아 출신 유다라는 사람의 영도 아래 열혈당을 결성했다. 여기 시몬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 열혈당원이었다. ‘열혈당원’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카나내오스’인데 이는 ‘가나’ 또는 ‘가나안’ 출신이 아니라 열혈당원, 열성주의자를 뜻하는 아람말 ‘칸안’을 음역한 것이다. 유다의 별명 ‘이스카리옷’은 여러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가리옷(Kerioth) 사람’, ‘자객(sicarii)’, ‘거짓말장이’, ‘넘겨준 사람’ 여기서 베드로를 제일 먼저 쓰고 이스가리옷 유다를 제일 나중에 쓴 것은 마가의 생각을 반영한다. 베드로는 제자단의 대표이며 유다는 배신자이다.


20 그리고 집에 들어가니 무리들이 다시 모여들어 그들은 빵을 먹을 수도 없었다. 21 그의 가족(친척)들이 듣고서 그를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그가) 정신이 나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22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그가) 베엘제불3)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고 또 “귀신들의 두목 안에서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말했다. 23 그래서 (그는) 그들을 불러 비유로 그들에게 말했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는가? 24 나라4)가 서로 갈라진다면(계속해서) 그 나라는 버틸 수 없다. 25 집5)이 서로 갈라진다면(계속해서) 그 집은 버틸 수 없다. 26 만약 사탄이 서로 일어나 갈라진다면 버틸 수 없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이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힘센 이의 집에 들어가 그의 세간6)들을 털 수 없다. 그(묶어 놓은) 다음에야 그의 집을 털게 될 것입니다. 28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들이 짓는 죄와 모독 그것이 어떤 모독이라도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거룩한 영에 대한 모독을 하는 이는 영원히 용서를 갖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놓인다.” 30 그들이 “그가 더러운 영에 사로잡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 바닷가에서 산으로 그리고 이제는 집으로 간다.

- 율법학자들의 예수 인식:

1. 저 사람이 누구이길래 죄를 용서하는가?

2. 저 사람은 어떻게 죄인들과 함께 밥을 먹는가?

3. 왜 금식하지 않는가?

4. 왜 안식일을 어기는가?

5. 예수는 사탄의 하수인이다.

- 왜 예수의 가족들은 그를 붙잡으려 하는가?

- 낙인찍기 : 예수는 사탄의 화육(化肉)이다. 우리는 언제 타자를 정죄하는가? 타자를 정죄하는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 논쟁의 핵심은 무엇인가?

- 예수의 답변: 1) 나라-집-사탄, 2) 강한 자를 결박, 3) 진정 용서받지 못할 죄7)

- 거룩한 영을 모독하는 것은 무엇을 나타내는 말인가?


* 마가는, 예수께서 당신의 친척들과 맞서는 상황이 전개되는 20~21과 31~35절 사이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과 벌어진 논쟁(22~30)을 삽입한다(같은 형식을 5:21~43, 6:7~33, 11:11~21, 14:1~11에서도 볼 수 있다). 친척들 및 적대자들과 관련된 두 경우에서 모두, 예수는 악의적인 중상의 희생물이 되고, 당신의 친척들과 예루살렘의 종교당국자들에게 배척을 당한 것을 보인다.

 예수는 고향, 친척, 직업을 저버리고 정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신 때문에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았다. 사실 형제들과(요 7:5) 동향인들은(막 6:1~6) 그분을 믿지 않았다. 사실 예수는 문제를 일으킨다. 왜냐면 하느님 자신은 우리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직접적인 문맥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수행하시는 일들을 사탄에 의한 것으로 돌려, 예수님을 통하여 활동하시는 권능의 주체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회개의 거부는 용서에 직접적으로 배치된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 자체를 거부하는 자들이야말로 거룩한 영을 모독하는 자들이다.


31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리고 밖에 서서 그를 부르러 그에게 보냈다. 32 그의 주위에 무리가 앉아 있었는데 그에게 말한다. “보시오. 당신의 어머니와 당신의 형제들[과 당신의 자매들]이 밖에서 당신을 찾는다.” 33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한다.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인가?” 34 그리고 그의 주위에 빙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고 말한다. “보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을! 35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이들, 그가 내 형제요, 자매요 그리고 어머니다.”


- 안과 밖의 묘한 대조, 내부인과 외부인의 역전!

- 33절과 35절은 왜 순서가 바뀌어 있을까?

- 35절에 자매가 첨가된 이유는 무엇일까?


* 누구든지 하느님의 뜻에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예수에게 속한다. 가족 소속이나 민족소속 그 자체는 이것을 보증해 주지 않는다.


5. 다음 주 말씀

1) 마르코복음서 4장 1절-20절을 꼼꼼히 읽어 보세요.(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며 읽거나, 손으로 베껴 쓰시면 좋습니다.) 시간 나시면 마르코 복음서 전체를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바라기는 마르코 복음서 공부를 하면서 이 복음서를 한 10번 정도 읽는 것입니다.


※ 질문들

- 언제 비유를 말하는가?

- 이 비유의 제목을 붙여보라

- 이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 이해되지 않는 구절이 있는가?

- 이 비유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비유는 어떤 특성을 가질까? 해석의 용이성과 난이성

- 12절에 대하여

1. 적대자들에게 하는 말로

2. 후대 교회 상황반영

3. 예수를 배척한 자들에 대한 해석

4. 예수의 십자가는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