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Ⅴ강 새 세상이 싫은 사람들: 갈릴리 논쟁 2(2:18-3:6)


0. 기도


1. 지난 주 복습

- 피부병 고침과 정결법의 무효화(피부병 환자의 경우)

- 중풍병 고침과 죄용서: 믿음의 본보기, 사회적 고통(낙인찍기)의 치유,

- 예수 따름과 식사1): 제자들의 구성, 평등, 인간 존엄성의 회복, 먹고 마시는 즐거움 그리고 생존. 


2. 말씀 읽기: 마가 2:18-3:6


3. 말씀 새기기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와서 그에게 물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왜 당신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가?” 19 예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혼인잔치 손님(oi` ui`oi.)들이, 신랑이 자기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수 있는가? 신랑이 자기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신랑을 자기들로부터 빼앗길 날이 오면 그 때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그 기워 댄 새 헝겊조각이 그 낡은 곳을 당겨 더욱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 아무도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그 포도주가 가죽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가죽부대도 못쓰게 된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 속으로.

- 언제 금식하는가? 금식을 한다면 왜 하는가? 금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좋은가? 나쁜가? 금식의 유용성은 무엇인가? 금욕주의와 축제

- 금식과 관련한 질문을 한 사람들은 누구일까?(16절, 18절 참조) 금식(속죄일)에 대하여, 진정한 금식(이사야 58:6-8)

- 혼인잔치에 대하여, 7일 또는 두 주간 지속됨(창 29:27, 사사 14:12, 토빗 8:20)

- 새 포도주(1:27 참조)와 낡은 가죽부대는 공존할 수 없다. 


* 유다인들은 일년에 한번 속죄의 날에 의무적으로 단식했다.(레 16:29-31, 23:27-32, 민 29:7) 이것은 유다인들이면 누구나 해야 하는 공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을 본받아 자주 단식했던 것 같다. 바리사이들은 매주 두 번(눅 18:12)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했다(디다케 8:12)). 유대인들에게 구제(자선을 베푸는 일)와 기도, 금식은 자신들의 경건함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것들이다(마 6:1-18 참조). 혼인잔치의 비유는 구약의 약속이 실현되어 종말론적 구원이 이룩되는 시기라는 것이다(호 2:16, 사 61:10, 62:5, 렘 2:2, 겔 16), 즉 하느님이 오시면 이전의 모든 규약과 율법은 무효화된다. 또 불필요해진다. 바로 하느님을 만나면 되는 것이다. 금식을 해야 하는 상황과 하지 말아야 하는 상황은 시대적인 변별성을 요구한다. 시대적 변별성이 바로 새 술은 새 부대라는 것으로 이어진다. 바로 하느님을 만나는 혼인잔치에 금식할 필요가 있을까? 20절은 예수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했던 것도 어쩌면 요한의 죽음 이후 그를 애도하며 금식했는지도 모른다. 18절은 교회공동체와 바리새파, 요한의 공동체의 대립구도를 보여준다. 서기관들은 제자를 두지만 바리새파는 제자를 두지 않는다. 앞서서 예수가 세리와 죄인들과 먹고 마신 것이 문제가 되었듯이 이제는 그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고 밥상친교를 나누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렇게 마가복음은 예수와 마가공동체와 긴밀히 연결시키고 있다. 이런 연결과 더불어 이 본문은 독자로 하여금 누구의 제자가 될 것인가를 암시적으로 묻고 있다. 금식할 것인가?, 아니면 먹고 마실 것인가?(마태 11:19, 루가 7:34) 21절의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는 행위는 여성의 행위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가 인용하는 노동이 누구의 노동인지 생각하며 마가복음을 읽어 보자. 예수는 누구와 가까울까?  


23 그가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제자들이 밀이삭을 뜯으며3)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24 바리새파들이 그에게 말했다. “봐라! 왜 안식일에 허락되지 않는 것을 하는가?4)” 25 그러자 (그는) 그들에게 말한다. “다윗이 그와 함께 한 자들이 궁핍하고 굶주렸을 때 무엇을 했는지 읽어 보지 못했는가? 26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5)에 (그가) 어떻게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제사장이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차려놓은 빵을 먹고 그와 함께 있던 이들에게 주었는가?”6) 27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는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 제자들은 무엇을 하는가? 밀 이삭을 뜯은 것과 길을 내는 것. 이것은 단순히 배가 고파서 한 행동일까? 아니면 일종의 시위일까?

- 예수의 공식적 활동 기간 중 두 번째로 맞는 안식일이다(1:21, 2:23). 안식일에 대하여(출 20:8-11, 신 5:12-15)7), 바리새파들의 율법적 사고(안식일 법)와 예수의 예언적 메시지(안식일의 본래 의미)!(24절과 27절)

- 안식일의 주인은 누구인가? 레위 23:3, 예수는 2:10에서처럼 하느님의 특권을 모두 사람에게로 가져온다.

- 여기서 사람의 아들8)이란? 강조 용법?


* 안식일은 포로기 이후에 할례와 더불어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들에게서 구별하는 표이자 이스라엘과 하느님이 맺은 언약의 표가 되었다(출 31:13, 16, 겔 20:12). 신약 시대에는 율법학자들은 안식일 규정문제를 상세하게 확정했다. 아래에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1. 씨 뿌리는 것 2. 경작지를 가는 것 3. 추수하는 것 4. 곡식 단을 묶는 것 5. 타작하는 것 6. 알곡을 고르는 것 7. 까부르는 것 8. 체로 치는 것 9. 반죽하는 것 10. 굽는 것 11. 양털을 깎는 것 12. 양털을 표백하는 것 13. 빗질하는 것 14. 물들이는 것 15. 양털을 자아 실을 만드는 것 16. 짜는 것(직조) 17. 실을 뽑는 것 18. 실을 꼬는 것 19. 두 가닥 실로 나누는 것 20. 매듭을 묶는 것 21. 매듭을 푸는 것 22. 두 땀 이상 바느질하는 것 23 두 땀 이상 바느질하기 위해 찢는 것 24. 사냥하는 것 25. 영양의 가죽을 벗기는 것 26. 영양을 절이는 것 27. 영양의 가죽을 무두질하는 것 28. 가죽을 긁어 깨끗이 하는 것 30 가죽을 자르는 것 31. 두 장 이상 편지를 쓰는 것 32. 두 장 이상 편지를 쓰기 위해 다시 지우는 것 33. 건물을 짓는 것 34. 건물을 허무는 것 35 불을 켜는 것 36. 불을 끄는 것 37. 망치로 때리는 것 38.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

 이렇게 안식일에 대한 규정은 상세하고도 엄격하였다. 그러나 안식일에 외국이 침범하는 사례가 증가하였기에(마카베오 시대) 생명을 구하는 경우9)에는 안식일 규정을 순화하였다. 본문에서 추론할 수 있는 안식일에 대한 입장은 이렇다. 굶주렸을 때 법을 지키지 않은 사례가 있다.(유다계 그리스도인 반영) 안식일 법은 인간 위주로 이해해야 한다.(예수님) 예수는 사람의 아들로서 하느님이 제정한 안식일법조차 고칠 수 있는 전권을 받으셨다.(헬라계 그리스도인 반영) 예수가 인용한 다윗의 고사와 예수와 제자들의 상황은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이들은 성소에 놓였던 거룩한 빵을 먹는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밀 이삭을 먹는다. 제사장만 먹을 수 있었던 거룩한 것을 배고픈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세속인)이 먹을 수 있다면 밀 이삭을 먹는 것이 뭐 그리 큰 문제란 말인가? 성스러운 종교적 제도 보다는 인간의 자연스런 생리적 욕구이다. 다윗과 일행에게 빵이 제공된 곳이 거룩한 하느님의 전이었다면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게 먹을 거리가 제공된 곳은 자연의 밀밭이다. 예수에게는 세상 그 자체가 하느님의 전이다. 어떠한 법도, 설사 그것이 신과 관련된 법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생존을 침해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용납될 수 없다.

1 그리고 다시 회당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 한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다.10) 2 (사람들은) 안식일에 그(손마른 자)를 고칠지 그(예수)를 고소하기 위해 그(예수)를 지켜보았다. 3 그러자 (그는;예수) 손마른 사람에게 말한다. “일어나 가운데로!” 4 (그는) 그들에게 말한다. “안식일에 선한 일이 적당하냐, 아니면 악한 일이냐? 생명(yuch.n)을 구해야 하느냐? 죽여야 하느냐?”11) 그러나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 5 (그는) 화를 품고 그들을 둘러보고 그들의 마음이 굳은 것12)을 깊이 슬퍼하고 그 사람에게 말한다. “손을 뻗어라.” 그리고 (그가) (손을) 뻗자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6 그러자 바리새파들은 즉시 나가서 헤롯당들과 함께 그(예수)에 대하여 논의를 하여13) 그를 죽이기로 하였다.


- 생명이 위험하지도 않은데 치유한다.

- 병의 성격들(소외, 위축, 주변화 등)

- 예수 죽음의 그림자

- 바리새인과 헤롯당의 연합전선

- 이원적 대비: 예수와 바리새인

예수

회당에 들어간다. 1절

말한다. 3-5절

화를 내며 둘러본다. 5절

치유한다. 5절

살리기 때문에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6절

바리새파

회당에서 나간다. 6절

침묵한다. 4절

책잡으려고 엿본다. 2절

방관한다. 

방관함으로 산다.


* 이 사건은 앞의 치유사건과 비교할 때 치유의 기적 이야기의 구조를 보이지만(상황묘사, 치유기적, 기적의 실증, 목격자의 반응) 예수의 이름도 쓰지 않고, 병자의 사정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따라서 치유 기적보다 오히려 논쟁이 전면에 드러난다. 이 사건이 앞의 사건과 다른 경우는 생명의 위협이 없음에도 안식일에 예수가 손 마른 자를 치유하였다는 것 때문에 논쟁의 강도가 심화된다. 또한 논쟁을 일으키는 것도 예수다. 이러한 예수의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긴 바리새파들이 헤롯당들과 연합하여(8:15, 12:13 참조, 마태 12:14과 누가 6:11 비교)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민다. 악을 행하기 위해 야합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예수께서 손 마른 자를 고치는 과정은 매우 당당함이 느껴진다.

정리: 예수는 사람(1:16-20), 귀신과 질병(1:21-45), 죄(2:1-17), 율법(2:18-3:5)을 완벽하게 장악한다. 그러자 바로 죽음의 그늘이 그에게 다가온다. 예수의 가르침과 행동은 유대의 랍비와도 헬라의 현인(소크라테스와 같은)과도 다르다.


4. 함께 생각해 봅시다.

- 예수 운동과 유대 종교의 관계, 오늘날 종교제도로써의 향린교회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하느님 나라 운동의 관계는 어떠한가?

- 시대를 변별하는 힘은 어떻게 가능한가?

- 모두가 먹고 마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오늘 우리들에게 낡은 부대는 무엇이고, 새 포도주는 무엇인가?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는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 마음이 굳어질 때(완고/완악) 생명은 질식된다. 우리는 언제 마음이 굳어지는가? 그럴 때 어떻게 하면 풀어질까?


5. 다음 주 말씀

1) 마르코복음서 3장 7절-3장 35절을 꼼꼼히 읽어 보세요.(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며 읽거나, 손으로 베껴 쓰시면 좋습니다.) 시간 나시면 마르코 복음서 전체를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바라기는 마르코 복음서 공부를 하면서 이 복음서를 한 10번 정도 읽는 것입니다.


※ 질문들

- 어디로부터 사람들이 몰려오는가?(7-8절)

- 계속되는 꾸짖음의 의미는 무엇일까?(12절)

- 왜 열둘을 부르는가? 그리고 왜 산에서 부를까?

- 구성원들은 어떠한가?

- 이들의 임무는 무엇인가?

- 율법학자들의 예수 인식:

1. 저 사람이 누구이길래 죄를 용서하는가?

2. 저 사람은 어떻게 죄인들과 함께 밥을 먹는가?

3. 왜 금식하지 않는가?

4. 왜 안식일을 어기는가?

5. 예수는 사탄의 하수인이다.

- 악령을 쫓아내는 방법은?

- 왜 예수의 가족들은 그를 붙잡으려 하는가?

- 거룩한 영을 모독하는 것은 무엇을 나타내는 말인가?

- 33절과 35절은 왜 순서가 바뀌어 있을까?

- 35절에 자매가 첨가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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