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안병무읽기 128번째 모임 발제문입니다.

3부 : 한국의 민족 운동


민중운동의 새 기원

- 4/19는 동학봉기나 3/1운동처럼 삶의 현실에서 박해받는 민중이 사건의 중심에 있지 않았고, 생존의 전선에 있지 않은 학생이 주동이 되었다. 당시 학생들은 민족이라는 개념에 무비판적인 계층과는 다른 새 세대였다. 그들은 전통적인 권위주의적인 사고 세계를 거부하고 자신의 자유를 추구했지만 자유를 남용하지는 않았고, 인간과 악을 구별할 줄 아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민족 또는 국가와 정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불의한 정권이면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고 볼 수 있었다. 4/19를 계기로 민족지상, 국가지상의 슬로건은 내려지고 현실적이며 합리주의적인 사고가 민중의 힘으로 대두하게 되었다.

- 그러나, 4/19 의거는 민중의 加勢까지는 유발했지만, 민이 권력을 되찾는 민권운동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학생의 뒤를 계승하는 민중이 없었다. 이것은 그때까지 민중이 자기 권리를 찾음으로써 참 민족을 형성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 4/19 정신을 측정하는 세가지 시각. 첫째 시각은 4/19봉기를 민주주의 체제의 수호를 위한 궐기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낭만적인 갈망의 표출로 보는 것이다. 부패한 독재정권을 타도하면 민주주의 질서가 실현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민주당에 새로운 질서 수립을 맡기면 된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둘째 시각은 4/19 주도세력인 학생들이 이승만 정권을 타도한 뒤 학원에 돌아갔다가 민주당 정권의 정체를 인식하고 또다시 재기하여 민족통일의 의지를 행동으로 구현하다가 군사쿠데타로 좌절되었을 때까지를 한 단락으로 본다. 이는 단순히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이거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차원에 그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생존권과 자주 독립을 위한 투쟁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승만 정권의 퇴진으로 싸움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식민세력의 잔재 청산, 남북통일을 위한 행동의 조직화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셋째 시각은 보다 긴 역사적 맥락에서 4/19 정신을 찾아본다. 이는 4/19 주역들의 계획이나 의식과는 직접적인 상관 없이 4/19가 민권적 민족운동사에서 차지하는 마당을 묻는다. 동학농민전쟁을 기점으로 의병전쟁, 3/1운동, 광주학생사건, 4/19 등으로 이어진 민권적 독립운동들은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우리 민족사의 밑에 깔린 중심적인 염원이 큰 맥을 이루어 연쇄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4/19를 우리 민족의 자기 구현의 장으로 혁명운동의 한 단막으로 보아야 둘째 시각의 해석도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4/19 정신의 핵심은 ‘자유’이다. 이 자유는 민족의 자유, 민중의 자유를 통하며, 사회 각 구성원들이 각기 제자리에서 이 자유를 쟁취하는 운동을 펼 때 우리가 염원하는 진정한 민족사회가 열릴 것이다. 4/19가 내세운 자유 정신은 자기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지 누가 대신 싸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4/19정신은 학생들의 독점물이 아니다. 학생들이 학원 외의 문제들을 모두 끌어들여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자, 언론 등 기성사회가 자율권을 쟁취하고 제 구실을 다하며 앞서 나아간다면, 학생들이 학원에서 자기 분야에 몰두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사람됨을 형성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