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은 생각할 때는 불교인이요, 禮를 행할 때는 유교인이요, 삶의 위기 앞에서는 다 무당 종교인이 된다고 한다.



성경은 죄짓지 말라는 데서 출발하지 않고 바로 죄진데서부터 출발하며, 죄지은 나를 살리기 위한 투쟁사로 되어 있다. 똥물에 빠졌으니 그대로 죽어야 한다는 것은 나를 살리는 사상이 아니다. 그 똥물에서 빠져나오려는 비명을 뒷받침해줄 때 사상은 시작된다. 히브리인은 죄지은 나 자신과 대결하며, 이 죄를 규정한 그들의 신에게 애걸하며 반항한 결과가 그들의 메시아사상이고, 이 사상이 삼천년 전에 죽었던 고목에 꽃 피게 하는 기적을 낳게 한다.

막힌 데서 뚫는 것이 사상이지, 열린 길에서 외치는 것은 아첨일 뿐이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체념주의가 있다. 우리가 위기에 섰을 때 지식인이나 언론인의 자세가 그것을 잘 말한다. 이 현상 뒤에는 공자가 숨어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러한 공자와 대결함으로써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비겁에서 구할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 사람은 오랫동안 스스로 小國으로 자인하고 그러한 콤플렉스에서 자기발견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학성에 가까우리만큼 스스로 위축되어 있었다.


우리는 세계라는 한 배에 탄 한 단위다. 그러므로 세계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되며 따라서 우리의 운명과 직결된 세계사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세계사적 역할 따위를 운위하면 자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힘의 원칙 아래서 보는 약소 민족이라는 콤플렉스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희랍이나 히브리 민족과 같은 작은 민족들이 세계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오늘에도 판도상으로 가장 작은 나라의 하나인데다다가 거의 산악지대로 된 악조건의 땅과 그리고 최소한 세 개의 다른 민족과 그에 따라 세 가지 이상의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스위스가 민주주의의 창시적 모델 케이스가 되어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민족은 무력적인 야성보다는 역시 정신적인 문화 민족이라는 판단이 옳으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