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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_ 앨버트 노울런

4부 : 대결


정치와 종교

- 예수 당시 이스라엘과 로마제국 간의 관계를 현시대의 판단기준인 정치와 종교로 구별하여 볼 수 없다. 유대인들에게 정치문제도 종교문제의 하나였다.
- 이스라엘의 정치적 해방에 관해 거듭 언급한 원루가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이스라엘의 해방이라는 종교적/정치적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했다. 다만, 그 방식이 정권의 이동(로마유대)을 추구한 젤로데 등과 달리 이스라엘이 근본적으로 회개하도록 설득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 참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압제 자체이지, 이교도인 로마인들이 감히 하느님의 선민을 압제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압제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무자비였다. 자비심 없이는 온갖 종교적 행업과 믿음들이 헛되며, 모든 정치(비록 혁명의 정치라도)가 압제가 된다. 참된 해방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 만인과 연대하는 것, 근본적으로 인간을 인간으로 받아들임이다. 포도원 일군들의 비유, 잃었던 아들의 비유 등에서 일반적으로 정의롭다고 통하던 생각들이 무자비한 =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으로 지적된다.
- 예수의 하느님나라 비유에서 죄인들은 하느님의 인정을 받는 반면 의인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일찍이 하느님과 종교와 덕행과 정의가 뜻해 온 바를 모조리 때려부수는 ‘폭행’이었다. 예수의 관심사는 종교적 부흥이 아니라 종교/정치를 막론한 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혁명이었다.

성전에서 일어난 일 / 폭력의 유혹 / 고통과 죽음의 역할

- 공관복음서에서는 성전사건이 수난사화의 일부에 포함되어 있으나, 트로크메의 논증에 따르면 성전사건은 공생애 초기의 예루살렘 방문 동안에 일어난 일이며, 이 사건이 공관복음서의 중간에 빠져 있는 연결부분(예수가 公人으로 전국적으로 화제거리가 된 이유)을 마련해 준다. 성전사건과 예수의 체포 사이에 언젠가 예루살렘 당국자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모의와 결정을 했었고, 예수는 도망자가 되어 타국 땅을 전전하게 된다. 그 기간 동안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칼을 지녀 방어태세를 갖출 수 밖에 없었고, 예수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더욱 철저히 가르치고, 그 나라의 구조를 설계하게 된다. 12 제자는 예수와 더불어 하느님의 통치(나라, 바실레이아)에 참여하여 12지파를 심판(통치)하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제자들간의 자리 다툼,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자기를 부정하고 죽을 각오를 하며 섬기는 자가 되고 끝자리를 택하라.)을 이해할 수 있다.
- 당시 유대인들이 대망하던 메시아는 정권과 무력을 장악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부흥시킬 한 인간인 왕이었다. 예수가 설교하던 나라의 성격을 감안할 때, 예수가 메시아를 자처했을 가능성이 없다. 예수는 자기의 메시아 지위를 하나의 사탄의 유혹으로서 배격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5천명을 먹인 사건으로 군중들이 예수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상황에서 도피. 필립보의 가이사랴 도상에서 베드로에게서 받은 유혹. 사막에서 40일간 금식기도시 사탄의 유혹
- 예수는 만인을 위한 완전한 해방의 나라는 칼의 힘이 아니라 신앙과 연민의 정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무기는 믿음이지 실력행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자기방어를 위한 무장을 지시하고, 일정한 폭력이 동원된 성전정화사건을 감안할 때, 그는 원칙상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실천상 평화주의자였다. 폭력도 더 심각한 폭력을 방지하는 수단인 한에서 허용되었다.
- 예수는 어떤 대의명분이 아니라 남을 위해 고통을 겪고 남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기에 생명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예수는 은신처에 머물러 죽음을 피할 것이냐, 은신처에서 나와 죽음과 대결할 것이냐 하는 양자택일 직면해 있었다. 그는 메시아 칭호를 받아들여 폭력에 의존하는 타협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당분간 권력자의 비위에 맞는 말로 미봉책을 쓸 생각도 없었다. 죽음만이 세계를 향해 말하고, 그의 나라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는 그 나라가 오게 하고자 자발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예수는 여느 유대인들처럼 마지막 날의 부활에 대해 믿고 있었으나, 자신의 죽음 이후의 부활 문제에 대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빼어난 인간 / 재판

- 나중에 교회가 예수에게 귀착시킨 존칭들 중의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예수 스스로 그것을 자처했다는 증거는 없다. ‘사람의 아들’이란 용어를 사용할 때도 스스로 어떤 칭호, 권한이나 지위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그저 자기가 설교한 대로 실천할 따름이었고, 사람들이 해방되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지 누가 해방의 사역을 성취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를 지도자라 부르고자 했으나, 그는 그들의 종이 되고자 하였고, 암시적으로라도 권위를 주장하지 않았다. 예수가 행사한 유일한 권위는 하나의 은유적인 권위로서 신앙의 힘을 의미하는 惡에 대한 권위, 진리 자체의 권위였다. 그는 어떠한 권위에라도 호소하여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으며, 자기가 행하고 말하는 바의 참됨을 보라고 하였다.
- 예수의 그르침 없는 통찰과 흔들림 없는 확신의 비밀은 그의 하느님과의 연대성의 체험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과 자연과의 연대성의 체험으로서 계시되고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예수는 유일무이하게 해방된 인간, 유일무이하게 용기있고 두려움 없고 독자적이고 희망차고 진실한 인간이었다.
- 로마의 정책은 예언자나 메시아일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조리 제거하는 것이었다. 예수를 죽이려 한 것은 바로 로마인들이었고, 대사제와 그의 공회는 로마와 협력하여 예수를 찾아내어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 예수는 재판과정에서 자기자신을 변호하지 않았고 침묵만 지켰으며, 말을 한 경우도 대답을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늘의 표징이나 권위에 의거한 주장을 결코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정에서도 자기 행동을 변호 또는 정당화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예수는 침묵을 통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시험하고 있었다. 빌라도, 가야파와 그의 협조자들은 진리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예수의 죽음 앞에 모든 이들(그를 배척한 이들, 따르던 이들, 예수 자신도) 시험을 받았다. 예수만이 그 시각의 도전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시련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으로서 홀로 죽었다. 그리하여 그는 만인 위에서 각자를 심판하는 무언의 진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기회가 주어졌다.

예수를 믿음

-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와 예수가 뜻하는 바를 우리의 가치 서열에서 첫째 자리에 갖다 놓는 것 = 자기의 하느님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신에 대한 선입관을 예수의 생애와 인품에 덮어씌우는 과오를 삼가고 예수에서 출발하여 신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 내야 한다. 신은 우리에게서 봉사 받기를 원하는 분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하여 우리에게 봉사하기를 원하는 분이다. 신은 어떠한 인간보다도 더 참으로 인간다운 분이며, 더 철저히 인정스러운 분이다. 예수의 신성은 그의 인간성의 초월적인 깊이이다.
- 예수 자신이 진리란 그저 지키고 간직하는 것(orthodoxis)이 아니라 선택하면서 생활하고 체험하는 것(orthopraxis)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믿음을 참된 삶으로 실천하는 것만이 우리의 믿음이 참임을 입증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연민 없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거짓이며, 예수와 일치함이란 만인과 일치함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정신으로 우리 시대의 표징을 분석하고 악의 체제에 맞서 대항하고 행동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