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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의 “민중”개념

<전제>

안병무의 민중 개념을 ‘개념화’의 방법으로 삼기보다 개념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논의해야 함.
- 안병무는 민중에 대한 학문적 개념정의를 내리는 것을 주저하거나 회피. 사회과학적 이론과 분석으로 민중의 삶을 재단하려 하지 않았고, 신학적 이념과 논리로 민중을 규정하지도 않았음.
- 이유는 “내 대답이 ‘개념화’되어 실체로서의 민중을 박제해 버릴 두려움 때문이다.”
- 민중의 삶을 임의로 규정하고 판단하는 지식인의 오만을 경계

안병무의 개인적 체험은 70년대 민중발견과 민중이해의 뿌리
- 일제시대 간도 땅에서 어머니(선천댁)의 삶이라는 상징을 통해 민중의 삶의 실체에 접근
- 독일유학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추구 but 역사적 예수 찾기에 실패

전태일 사건은 안병무가 예수를 인격(persona)으로 보아왔던 입장에서 예수를 사건으로 보게 되는 전환점이자 민중신학의 출발점이었음.
- 로고스(말씀)의 신학으로부터 (로고스가 肉이 된) 사건의 신학으로
- 모든 사물을 아래로부터 보는 관점 : “진실은 음지로, 아래로, 주변으로 가면 갈수록 밝혀진다.”
- 주객도식의 이분법 극복 : “나 없이 너 없고 너 없이 나 없다. 따라서 실재 있는 것은 나, 너가 아니고 우리뿐이다.”  개인주의, 이기주의 극복

<다양한 민중 개념들>

성서 속의 민중개념
- 라오스(Laos) : 하느님의 라오스(백성)  소속이 분명하여 집단권 내에서 법의 보호를 받음
- 오클로스(Ochlos) : 예수 당시의 체제와 기득권자들에 의해 정죄 받고(죄인 취급) 눌리고 빼앗기고 철저히 소외당한 계층. 일정하게 소속된 데가 없어 의무나 권리를 말할 수 없음. 마가복음 기자는 목자없이 유리방황하는 오클로스에 둘러싸인 예수와 오클로스에 주목.
- 암하아레츠 : 배우지 못하고 경건하지 못한 反율법적 계층. 체제에서 멸시받고 밀려났기에 힘없는 계층

사회과학적 민중개념
- 민중 : 민족국가의 사회적 삶과 공적 정신에 기초를 두는 개념  국가_형태의 위기와 관련
- 다중(Multitude) : 공적인 무대에서, 집단적 행동에서, 공동체의 사태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종합적 통일로 수렴되지 않은 채 그 자체로 존속되는 다원성/복수성. 현대의 다중은 하나의 계급이 아니라 자신의 계급의식을 구축할 수 없으며, 계급투쟁에서 자본에만 관심을 쏟지도 않음. 지구적 다중은 잡종적이고 유동적이며 변동적이고 탈영토화되었음. 신비로운 방식으로 사다리의 밑부분에서 노동계급을 대체한 貧者(비조직화된 룸펜프롤레타리아트)를 포함.

<안병무의 민중 이해>

안병무가 민중을 이해하는 두가지 생각
- 지식층의 권력에 억눌리고 경제적으로 빼앗긴 가난한 자, 힘없는 자
- 일상적인 착취의 대상

안병무에 따르면 민중은 스스로의 삶과 갈구를 지닌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예수는 민중들을 규합하거나 또 어떤 가치를 가르치기 위해 능동적으로 저들에게 접근하지 않고 오로지 민중의 요청에 따랐다. 예수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민중과 하나로 되었기 때문에 민중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다. 마가복음의 예수를 민중의 사회적 전기로 이해.

안병무는 예수를 인격이 아니라 사건으로 보았기 때문에 민중사건과 예수사건이 연결 가능
- 개체적인 인격 개념에 기초한 서구의 인식론적 주객도식에서 벗어나 예수와 민중을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파악  “그(예수)를 싸고 돈 민중과 그를 주/객으로 보고 그 어느 쪽에서 민중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민중을 찾자는 것이다.”
- 예수의 기적은 민중의 청원에 순응한 것. 예수는 민중이었고 예수의 병고침은 예수의 초인성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예수와 더불어 표출된 민중의 능력을 나타냄. 예수의 수난과 죽음은 민중의 운명을 드러내며, 예수의 부활은 민중의 부활.
- 예수 사건은 유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민중 사건(집단적 사건)으로 지금도 일어남  화산맥 분출 비유
- 과거의 역사적 예수나 교리상 그리스도가 아니라 현존하는 그리스도 추구  “오늘의 그(예수)를 집단(민중) 속에서 역사적으로 경험하자는 것이다.” 오늘의 그리스도의 현존은 ‘성문 밖’ 소외당한 지역이요 고난의 역사현장
- 민중과 하느님(그리스도)는 동일시되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고난받는 민중에게서 하느님이 현존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민중이 곧 하느님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민중의 고난과 자기초월성
- 안병무는 민중을 미화하지도 민중을 도덕적/윤리적 관점에서 무죄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추하고 비겁하며 이기적이며 탐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놀랍게도 자기초월능력(폭력에 의한 복수의 악순환을 끊는 능력)이 있다.
- 예수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었다면 오늘의 한국상황에서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말이 적용된다.

예수를 구원자로 보고 민중은 구원받는 자로 보는 이원론적 주객도식 거부하고 민중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의 주체  민중구원론
- 이사야 53장의 ‘고난의 종’은 고난을 받음으로써 다른 사람을 구원. 마가복음의 수난사는 예수를 따르던 민중이 ‘고난의 종’에 비추어 예수를 메시아로 이해한 것
- 고난받는 민중은 생산의 주체로서 역사의 한가운데 서있는 존재이며, 하느님, 그리스도와 직결된 존재이다. 민중은 하느님의 구원사의 중심에 서게 된다.
- 민중의 고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민중이 자신의 고난을 전체의 집단적 고난으로 알 때 비로소 메시아적 민중이 되고 자신의 고난을 전체의 고난으로 절규할 때 메시아적 절규가 된다.
- 민중의 고난이 비민중 계층의 사회구조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 사회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또한 비민중계층이 민중에 대한 가해자로서 사회적 삶과 실천을 회개하고 민중의 손을 잡을 때 비로소 정의와 평화의 사회공동체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 뿐 아니라 개인적인 종교/도덕적인 견지에서 보더라도 민중의 고난을 외면하는 사람은 사람다운 삶을 포기한 자이고 정신적으로 죽은 자이다.
- 따라서 민중의 절규(메시아적인 부름)를 듣고 자기 영역에 안주해 있는 상태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구원(메시아적 경험)이다.

안병무가 민중과 하느님의 대상화와 객관화를 엄격히 금지하는 의도?
- 민중을 대상화/상대화하면 민중에 대해 거리를 두게 되고 민중을 우회할 수 있는 길이 열림
- 민중의 지혜와 주체적/창조적 역량에 대한 신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