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2005년 10월 9일 오전 9시 향린교회 하반기 교사대학 1강

나 성 국 목사
Ⅰ. 예수는 공동체를 의도했는가?

예수는 "때가 찼다"(마가 1:15)는 종말론적 역사의식으로 충만했다. 따라서 그에게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었다. 아니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눅9:60) 쫓아야 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역사의식을 따라 자신의 모든 삶을 하느님과 역사 앞에 온전히 바쳤다. 그는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누가 12:49)고 선언했다. 그는 결코 집을 짓거나, 조직을 만들기 위해, 곧 “지상 위에 자기 집을” 짓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예수가 던진 불을 받은 사람은 그 이후 어떻게 살아야 했던 걸까?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수는 없었고, 여전히 이 지상 위에 남아 지상의 삶을 영위해야 했던 사람들은 어떤 방식의 삶을 살아야 했을까? 예수가 남긴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삶을, 어떤 식으로 살았을까? 그들의 목표는 교회였을까?

예수는 공동체를 의도했는가?
예수의 종말론을 임박한(imminent) 것으로만 해석하던 사람들은 예수가 공동체를 의도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마24:34) 이라고 믿었던 예수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리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거부되었다. 거부의 이유는 첫째, 예수는 임박한 종말만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의 종말론에서 더 중요한 것은 실현된(realized) 차원이었다. 예수는 자신의 일 안에서 하느님의 종말론적인 구원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와 그의 사람들에 의해 “이미” 와 있고, 구원의 백성들은 한 공동체로 모였을 것이다. 둘째, 예수의 행동이나 말씀을 보면 실제로 예수가 공동체를 모으려고 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열 두 제자를 모은 것도 종말론적인 구원의 역사를 위한 "근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벌써 열둘이라는 숫자가 민족 단위, 곧 공동체를 상징한다. 또한 자신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나누었던 식탁 교제(table-fellowship) 역시 예수의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시사한다.

따라서 "예수가 공동체를 의도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분명하게 "그렇다"고 답해야 할 것이다.

[예수와 공동체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는, G. 로핑크,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분도출판사]

로핑크는 공동체에 대한 예수의 의지를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를 개인에게 선포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단위로 하는 공동체에 선포했다. 즉 구원의 단위를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포의 상징이 12 제자단, 12이라는 제자들의 공동체이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이스라엘을 대표한다. 즉 이스라엘 전체의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느님 나라의 임박함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곧 예수는 “단독자”(키에르케고르)나 “개인”(하르낙)에게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에 말씀을 전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하는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결국 십자가 사건으로 온 인류를 위한 대속의 사건으로 확대, 전환한다.(사도 바울) 곧 이스라엘의 실패가 전인류라는 보다 커다란 공동체의 구원으로 확장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표징으로 나타나는 것이 교회공동체이다.

결국 예수는 공동체를 지상에 건설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세우고자 하였고 그것을 준비하도록 했다. 종말에 있을 하느님의 백성은 공동체적인 삶을 통해 쇄신되고 그 나라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예수가 선포했던 복음의 구체적인 현실태는 공동체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수의 이러한 의지는 보선을 통해 12제자를 채우는 제자들의 모습과 뒤이어 출현하는 초대교회의 생활상을 통해 연장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공동체에 대한 예수의 의지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 체험에 기초하고 있다. 예수의 하느님 체험은 사랑 그 자체였고 그것의 현실적 표현이 공동체로 집중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동체적인 삶의 방식이 그리스도교 정신의 핵심이며 복음적 삶의 구체적인 현실태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Ⅱ. 예수공동체의 독특성

*구성의 다양성-종교, 계급, 지역, *원리의 선명성- 하느님 나라, 삶의 갱신, 새로운 관계 속의 삶, *방법의 대조성- 지배의 철폐, 나눔과 섬김과 돌봄

예수운동이 최초에 지역공동체들에 기반을 두고 그 갱신을 지향했다는 것은 두 개의 다른 유형들 곧, 쿰란의 광야 공동체나 민중적 예언운동들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쿰란 공동체는 예수운동과 같이 자신들을 새 이스라엘로 간주했다. 그러나 쿰란 공동체의 성원들은 일상적인 삶의 문제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신들만의 “구별된”공동체에 참여하기 위해 고향을 등졌다. 이와는 반대로 예수운동의 구성원들은 그들의 지역, 주민공동체에 남아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국과의 갈등, 가난과 불안, 그리고 지역의 긴장 등 모든 문제와 직접 맞서면서 지역공동체의 삶을 회복시키려 노력했다. 전체적인 예수운동의 범위에서 보면 때로는 방랑하고, 때로는 정착했던 예수와 그의 열두 제자는 각 지역과 계층 속에 존재했던 광범위한 지지자 그룹들의 지원과 보호가 있었기에 활동이 가능했다. 또한 민중적 정치운동과 예수운동 사이에는 참여자가 가난하고 평범한 백성들이라는 유사성이 있었지만 민중적 정치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이 환상적인 새 해방을 대망하며 가정을 버렸던 반면, 예수운동의 보다‘현실적인’구성원들은 거듭난 공동체의 삶을 성취하기 위해 그들의 마을에 남아 있었다.

예수공동체의 구성원들

-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촌락의 어부나 수공업자를 포함한 가난한 농민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부자와 세리도 배척되지 않았다. 예수공동체는 어떤 계급적 단일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다. 예수는 계급과 지역과 종교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는 갈릴리를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예루살렘을 배척하지는 않았다. 그는 가난한 자들로 공동체를 이루었지만 그것이 계급적 배타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제자 중에는 부자도 있었다. 마태복음 27:57절에 보면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하여 장례를 치른 아리마태아 요셉이 나오는데, 그는 부자였고, 역시 예수의 제자였다.

- 예수와 그의 공동체는 민족의 염원을 함께 소망하였지만, 그것이 그들의 정체성은 아니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로마제국과 분명히 대립하였다. 예수는 로마제국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고(그는 로마총독 빌라도의 질문을 아예 무시한다) 결국 로마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만, 로마제국과의 적대가 예수공동체의 본질은 아니었다. 그의 공동체 안에는 로마와 협력하던 세리가 있었고, 초기 교회에는 로마제국의 유력자들이 다수 있었다.

- 따라서 예수공동체를 어떤 계급운동이나 민족운동으로 수렴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예수는 그의 추종자들을 그 만남의 시점에서는, 어떤 모습으로든지 받아들여 주었다. 그러나 예수와 만나고 나서는, 만난 이후에는 옛날 방식대로 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와 만나기 이전에는 부자여도 괜찮지만 예수와 만난 이후에도 부자여서는 안된다. 그는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자기의 것을 내놓는 결단을 요구받게 된다.

- 지역공동체라는 견지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운동이 하나의 새로운 ‘가족’이었다는 점이다. 새 공동체들은 분명히 그들 사이에 어떤 지배적 권위형태도 없는 형제 공동체들이다. 이처럼 확대된 비가부장적 ‘형제’의 ‘가족’으로 생각된 공동체 내의 관계들은 평등한 것이었다. 운동은 공동체를 위한 봉사에 가치를 두면서 지위, 권력과 특권을 거부했다. 어떤 결점과 긴장에도 불구하고, 예수운동은 고도로 (그러나 개방적이고 자발적으로) 훈련된 평등한 가족공동체 형태에서 사회적 삶의 갱신을 구현하였다.

- 서로를 구체적으로 돌보는 것, 곧 그리스도인들의 협동과 상호 돌봄은 분명 팔레스타인 예수운동의 초기단계에서 비롯되었다. 자원의 공유와 분배는 공동체 규율에서 중요한 측면이었다. 일정한 예수전통에서 자신의 소유에 집착하는 데 대한 분명한 경고(마르 10,17-25; 루가 12,13-21)는 금욕주의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상호공유와 협동을 위한 것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 예수운동은 역사적 성취나 회복에 대한 강렬한 의식을 갖고 존속하였다. 민중전통은 분명히 모세와 엘리야가 이끈 출애굽이나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과거의 기억들을 지속시켜 왔다. 백성들의 새로운 해방과 회복은 이제 예수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러한 성취감은 공동체들의 성만찬에서 가장 생생하게 표현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와의 밥상친교를 계속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회복의 완성이나 ‘하느님의 나라’ 또는 ‘하느님의 백성’을 대망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미 자신들으 사이에서 이루어져 있는 “사랑의 나라”를 경험했다.

- 예수운동의 많은 특징들은 예수운동이 분명히 ‘갱신’하려고 시도했던 그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했고 영향을 미쳤는가에 관한 측면들이다. 따라서 병, 자기비하, 그리고 낯선 정신적 세력에 사로잡히는 것 등에 대응하여, 예수운동은 예수가 시작한 치유와 죄의 용서, 귀신추방을 계속했다. 많은 백성들을 괴롭혔던 무거운 빚, 가난, 그리고 절망에 대처하기 위해서 예수운동은 상호간의 빚의 탕감, 사회-경제적 협동, 그리고 지역공동체에서의 여러 가지 상호성의 형태들을 주창하였다.

- 로핑크에 의하면 예수공동체는 대조(對照)사회였다. 당시 사회의 일반적인 질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의 질서가 지배되어야 하는 일종의 대조사회를 요구하고 있다. 랍비나 선생님, 지도자의 호칭을 금지하는 예수의 말씀(마태 23,8-12)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된다.
예수가 요구하고 있는 대조사회의 실천적 원리는 섬김으로 요약할 수 있다. 스스로 지배하는 자보다 섬기는 종이 되고자 할 때 공동체는 가능해진다. 섬김의 구조는 공동체의 다른 표현이다. 섬김을 통해 사람들은 상대방을 진정한 인격체로 존중할 수 있게 되고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예수는 스스로 섬기는 사람으로 처신할 뿐만 아니라(루가 22,27) 사람들에게도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한다.

Ⅲ. 처음 교회의 실천

이러한 예수공동체의 비전이 초대 교회에서는 어떻게 실천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사도행전의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사도행전은 처음 교회의 공동체적인 삶의 모습에 대하여 세 번씩(2:43-47; 4:32-37; 5:12-16)이나 요약하여 전해주고 있다. 이 요약문들이 말하는 대로 본다면, 처음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가 살아 생전에 모았던 공동체의 성격을 그대로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종말론적인 구원의 즐거움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공동체 안에는 종말론적인 구원의 현실들(예컨대, 기적들)이 넘쳐 났다. 그들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그들의 소유를 함께 나누었다. 그들은 가족처럼 한 마음이 되었으며, 그들의 삶은 외부 사람들이 매료될 정도로 높은 덕성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날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동체로 모여들게 되었다. 부활과 오순절 체험 이후, 예루살렘의 예수 공동체는 진정한 의미에서 공동체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체적 성격은 시간이 흐르면서 초대 교회의 삶 속에서 점차로 사라져 갔다. 학자들은 그 동안, "왜 누가가 세 개의 요약문을 전반부에 소개하고 있는가?"를 질문해 왔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누가는 이 요약문들을 일종의 "원시 신화"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후의 교회는 이러한 공동체성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것을, 누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려니" 생각하고 그냥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실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더라도, 교회는 처음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그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실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누가는 이 요약문들을 일종의 원시 신화로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가능한 한 원래의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