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에서 놀기

 

한동안 중단되었던 '이야기가 있는 여행'을 계속하자고 길목에서 제안이 왔습니다.

한여름을 피해 닷새간의 추석연휴가 이어지는 토요일을 잡았죠.

2013년 9월 21일. 10시에 한성대 입구 '나폴레옹과자점' 앞에서 만났습니다.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시인 조지훈(동탁)이 살던 집터입니다.

지훈이 1968년 죽은 뒤 가족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했나 봅니다.

기와집이었던 이곳은 집터로 여럿으로 쪼개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비석 하나가 이곳이 조지훈 시인의 옛 집임을 알려줍니다.

 

조지훈 보다 아버지 조헌영과 할아버지 조인석 얘길 했지요.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실 산골에서

큰아들 조은영과 작은 아들 조헌영을 일본으로 유학보낸 아버지 조인석입니다.

조헌영은 일본에서 신간회 활동과 조선인 유학생 회장을 하죠.

박열의 재판 때는 사모관대를 박열에게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조헌영은 조선에 돌아와서는 이 땅 한의학이 자리를 잡는데 많은 일을 했죠.

해방이 되어 조지훈은 27살의 젊은 나이에 고려대학 교수가 되었죠.

1948년 5.10 선거에서 조헌영은 영양에서 제헌의원으로 당선됩니다.

반민특위 활동으로 이승만의 한민당과는 결별하게 되죠.

 

1950년의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지만......

한국전쟁으로 이 집안의 시련이 찾아옵니다.

조인석의 셋째 아들 조준영이 경북의 경찰 책임자로 있었죠.

북한의 점령 하에 있던 영양에서 조인석은 젊은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조헌영은 북으로 잡혀 갔습니다.

조지훈은 한국전쟁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잃어야 했습니다.

 

표지석에 조지훈이 30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했으니 조헌영, 조동탁 부자의 삶이 담긴 집터입니다.

땅은 그 땅인데 사람이 지은 건축물은 변했습니다.

한 때 이곳에 살았던 사람의 흔적은 흩어지고 없습니다.

시간의 공간이 다른 시기에 찾아와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선잠단 터.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고....

고치에서 실을 얻어서 비단을 짜서 옷감을 얻는 일......

지배 계층의 필요 때문에 생산하는 피지배계층, 특히 여성들의 고충이 많았을 겁니다.

 

누에농사가 잘 되어 비단을 많이 얻게 해 달라고 제사를 지냈던 장소가 선잠단입니다.

이곳의 나무는 당연히 뽕나무죠.

제기동의 선농단에서 '설렁탕'을 먹었다면 선잠단에서 '뻔데기'를 먹었을까요?

오늘 우리의 답사 점심엔 설렁탕을 먹었습니다.

 

심우장으로 가는 찻길 옆에는 새로운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조형물이죠.

 

기념 사진을 남겨야죠.

 

심우장으로 오르는 골목길입니다.

 

53세(1933년)의 한용운이 병이 들어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마련한 집입니다.

한용운은 간호하던 한영숙과 결혼해서 이듬해 딸을 얻습니다.

기미독립선언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 친일의 길을 갔지만

한용운은 이곳에서 64세(1944년)로 죽을 때 까지 항일의 길을 갔습니다.

스님도 인간인지라......

 

심우장의 사랑방입니다.

 

한참을 이곳에 머무르며 쉬고 얘기하였죠.

 

점심을 먹고 수연산방을 찾았죠.

해방 뒤 스스로 북으로 간 작가 이태준이 살던 집입니다.

지금은 찻집이죠.

오미자차와 빙수를 주문했습니다.

 

커플 룩 같아요?

 

이태준은 구인회 구성원입니다.

KAFF 활동도 했죠.

 

백석과 첫 눈에 반해버린 자야(子夜) 김영한.

백석은 함께 러시아로 가자 했지만 자야는 서울에 남았습니다.

해방......

백석은 러시아에서 고향이 있는 북으로 갔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자야는 수완이 좋았나 봅니다.

요정과 음식점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 많은 재산보다 젊은 날 그녀를 사랑했던 백석의 시 한 줄에 더 회한이 서렸나 봅니다.

그녀는 법정스님을 만나 모든 재산의 기부했습니다.

법정은 그녀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주었습니다.

대원각은 길상사로 변했습니다.

백석도, 길상화도, 법정도 이젠 이승 사람이 아닙니다.

 

첫 눈에 반해버린 사랑......

엄청난 재산의 형성 과정......

기부......

이야기가 참 많은 절집입니다.

 

새로운 문화는 융합에서 나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닮은 듯한 관음보살상입니다.

인간 삶의 고통소리를 듣고 평화를 주시겠죠?

 

여름은 아직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길상사의 나무 그늘 아래엔 약하지만 가을 바람이 불었습니다.

많은 이야기와 쉼이 있는 답사를 꿈꿉니다.

 

극락전엔 예불을 드리고 있습니다.

 

영안모자 회장이 2012년 11월 기증했다는 7층 석탑입니다.

기단석의 풍화로 보아서는 꽤 오랜 석탑인 것 같은데 어디 있는 걸 옮겨 왔는지는 밝히지 않았네요.

 

길상사에서 오늘 답사를 마쳤습니다.

바쁜 분들은 먼저 가시고 남은 사람들은 한성대역 부근에서 뒤풀이를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