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1일. 일욜.

향린인들과 아현동에 있는 정교회를 찾았습니다.

이 땅에서 만나는 낯선 예배 현장입니다.

 

 

크리스트교 약사

 

로마제국 초기에 크리스트교(기독교)는 박해받는 종교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에 크리스트교는 공인(밀라노칙령, 313)되어 박해는 없어졌습니다.

박해가 아니라 제국의 종교로 나아갔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에 제국의 서울을 로마에서 비잔틴으로 옮겼습니다.(330)

수도 비잔틴은 황제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로 바뀌었습니다.

넓은 영토의 로마제국은 둘로 나뉘었습니다.(395)

콘스탄티노플을 서울로 하는 동로마(비잔틴)제국과 로마를 서울로 하는 서로마제국이죠.

서로마제국은 멸망(476)되었지만 크리스트교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졌습니다.

 

로마제국은 둘로 분열되었지만 크리스트교는 로마, 콘스탄티노플, 안티오크,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에 대교구청을 두고

옛 로마영토를 지배했습니다.

크리스트교도 로만 카톨릭(Roman Catholic)과 그릭 오소독스(Greek Orthodox)로 갈라집니다.(1054)

이 땅에선 로만 카톨릭을 천주교, 그릭 오소독스를 정교라 부릅니다.

정교는 동로마제국의 멸망(1453)으로 중심지를 잃고 맙니다.

러시아가 그 중심을 하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정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러시아도 볼셰비키혁명(1917) 뒤 소련으로 바뀌면서 종교가 인정 받지 못했습니다.

소련의 영향을 받던 동부유럽이 정교를 믿는 지역이었으니 정교는 위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서부유럽과 남부유럽은 로만 카톨릭이 지배했습니다.

16세기에 로만 카톨릭에 반발하며 개혁을 요구하는 세력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이 프로테스탄트(개신교)입니다.

 

오늘날 크리스트교(기독교)를 크게 분류하면 카톨릭, 정교, 개신교가 되겠죠.

크리스트 교인 중에서도 이 용어에 헷갈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한반도의 크리스트교

 

7세기에 크리스트교의 네스토리우스파가 중국(唐)에 전파되어 교회를 세웠습니다.

경교(景敎)라 불렀죠.

많은 신라 사람들이 당나라를 드나들었는데 크리스트교를 알지 않았을까요?

신라 사람 몇은 크리스트교인이 되지 않았을까요?

 

13세기에 중국(元) 땅에 다녀간 마르코폴로는 중국에서 로만 카톨릭을 소개했을 겁니다.

17세기에 소현세자는 베이징에서 로만 카톨릭 교회도 찾았고 신부도 만났습니다.

조선의 로만 카톨릭은 수 만명의 순교자를 내고 1866년에야 박해에서 벗어났습니다.

갑신정변(1884)은 개신교를 이 땅에 쉽게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교는 어떻게 이 땅에 들어왔을까요?

 

 

조선의 임금 가족이 사는 경복궁에서 임금의 부인이 일본인에게 잔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을미사변(1895)'이라 부르죠.

불안한 임금은 고민 끝에 러시아를 선택했죠.

러시아공사관으로 도망쳐 1년(1896~1897)을 지냈죠.

'아관파천'이라고 하죠.

러시아공사관을 나온 임금은 경복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사관 가까운 경운궁(현재 덕수궁)에서 살다 죽었습니다.

 

1900년. 이 땅에 영국의 성공회 교회가 들어오고 러시아의 정교회가 들어옵니다.

미국 사람들이 전파하는 개신교처럼 러시아 사람들도 정교 전파의 꿈을 꾸었을 겁니다.

러일전쟁(1904~1905)이 일어났죠.

일본에게 진 러시아의 종교는 힘을 잃었습니다.

혁명(1917)이 일어나 조선 정교를 지원해 줄 돈도 끊겼습니다.

해방, 한국전쟁, 남북 분단은 정교가 들어설 자리를 더욱 좁혔습니다.

 

돔 형태의 지붕과 교회 출입문 위 이콘은 동방교회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서소문 밖 애오개

 

한양 도성 안 사람들의 주검은 대문(大門)이 아니라 소문(小門)으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의 주검은 서소문으로 많이 나갔나 봅니다.

서소문에서 공덕리를 거쳐 마포로 가는 낮은 언덕 위에 주검이 묻혔습니다.

아이(애)들의 주검이 묻힌 고개......

'애고개'로 불리다가 'ㄱ'이 탈락해 '애오개'가 되었습니다.

한자로 쓰면 '아현(兒峴)'이죠.

아이들의 죽음은 그 어떤 죽음보다 안타깝습니다.

이번에 어른들의 잘못으로 태안에서 죽은 공주사대부고 5명의 학생들처럼 말입니다.

 

무덤 자리가 도시 확장으로 집들이 들어섰지만 부자 마을은 될 수 없습니다.

최근에야 뉴타운 재개발 사업으로 모두 헐리고 고층의 아파트가 들어 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가난한 동네에 낡아서 더 가난해보이는 정교회가 있습니다.

 

1978년에야 이 교회를 세웠습니다.

 

실내에서 보는 돔과 천정화.

 

 

두 시간 정도 진행된 예배였습니다.

사제가 성경을 들고 서 있으면 교인들이 줄을 서서 한 명 씩 성경과 사제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외국인 사제의 강론을 한국인 사제가 통역을 합니다.

 

교회 안의 벽화.

 

예배를 마치고.

 

정교는 이 땅에서 아직 낯선 종교입니다.

오르간 소리와 어우러진 두 성부의 음악소리가 돔을 휘돕니다.

형식이 아주 두드러진 예배였습니다.

 

그리스 사람으로 보이는 사제와 러시아 사람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예배당.

식당에는 그 풍경이 더 어우러졌습니다.

일행 중 누가 그랬죠.

"러시아에 여행와서 한국 식당에 온 느낌"이라고......

점심이 비빔밥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