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한양성곽 안에는 다섯 궁궐이 있었습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덕수궁), 경희궁이죠.

 

궁궐은 궁(宮)과 궐(闕)을 합친 용어입니다.

궁은 임금 가족의 개인적인 생활 공간입니다.

궐은 임금과 신하가 업무를 보는 공적인 공간입니다.

궁궐의 배치에는 임금과 신하의 힘의 대결이 숨어 있습니다.

 

조선이 건국되고 도읍을 개경(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겼습니다.

한양에 처음 세운 궁궐은 경복궁입니다.

경복궁은 정도전의 의지가 담긴 궁궐 배치를 했죠.

남북 축을 따라 중심 건물을 배치하고

동은 궁역, 서는 궐역으로 나누었죠.

궐역이 상대적으로 넓은 궁궐입니다.

 

창덕궁은 태종 임금이 개성에서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지은 궁궐(1405)입니다.

자연은 그대로 두되 강력한 왕권을 드러낸 배치를 했습니다.

궁역은 넓고 궐역은 좁습니다.

대칭 구조도 아닙니다.

 

임진년(1592), 경복궁과 창덕궁은 이 땅 백성의 손에 불탔습니다.

군림만 했지 위기가 닥치자 제 살기 바빠 도망친 임금과 사대부들이었습니다.

백성은 분노했죠.

 

일본군대가 남쪽으로 물러나자 임금은 한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집이 전에 월산대군(1454~1488)이 살던 집이었습니다.

임금이 사니 경운궁이 되었죠.

선조 임금은 여기서 죽었습니다.

선조 임금에 이어 광해 임금 시대에 경복궁 재건은 포기하고 창덕궁을 재건(1610)했습니다.

 

소수의 북인을 기반으로 했던 광해 임금은 서인의 쿠데타로 물러났습니다.

인조반정(1623)이라 부르죠.

쿠데타 와중에서 창덕궁은 또 불탔습니다.

인조는 경덕궁(지금의 경희궁)에 머물며 창덕궁 재건 10년 공사를 했습니다.

창덕궁이 완성되던 해(1636), 병자호란이 일어납니다.

 

고종 임금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세울 때(1867)까지 창덕궁은 임금이 살았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근대의 문물이 들어오자 변했습니다.

 

 

장남 회원들과 창덕궁 나들이를 했습니다.

처음엔 후원을 생각했지만 사전 예약을 해야하고

인원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66세에서 89세에 이르는 연세에 따른 체력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건물을 설명하는 해설은 피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한 번도 백성과 민중을 고려하지 않는 권력들......

그들의 집이 어떻다는 얘긴 하고 싶지 않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왕권을 세운다고 터만 남은 경복궁을 다시 지었습니다.

그 경복궁에서 고종 임금의 아내가 처참하게 죽었습니다.(1895.10)

고종 임금은 러시아공사관으로 도망쳤습니다.(1896.02)

1년 뒤(1897.02), 고종 임금은 러시아공사관을 나와 경운궁에 머물렀습니다.

10년 뒤(1907),

살아 있는 아버지(고종)를 두고 임금이 된 아들(순종)이 임금이 되었습니다.

순종 임금도 경복궁으로 돌아가지 않았죠.

창덕궁에서 살면서 나라가 망했고, 그리고 창덕궁에서 죽었습니다.

 

계동 언덕 위에서 보는 창덕궁 전각들입니다.

여운형 선생이 살던 집 '안동칼국수'는 일요일이라 쉬었습니다.

할 수 없이 '북촌칼국수'로 대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