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날
본문 : 누가복음 1장 34절 35절 - 1장 26절 - 38절
제목 : 불임의 땅에서 생명을 품다
[말씀들여다보기]
마리아의 모국 이스라엘 왕조가 위치했던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의 세 대륙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세력을 팽창하기 원했던 강대국들은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였고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착후 지파공동체가 왕권 국가로 바뀌고 2대가 지나 분단 된 후 1000여년간 그 지배 세력이 바뀌는 아픈 식민의 역사를 경험했다. 시리아의 지배아래 있었던 팔레스타인 BC 63년 로마의 장군 폼페이는 예루살렘을 정복했고 이스라엘은 다시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로마는 식민지 정부는 인정하면서도 총독을 파견하여 세금을 걷는 통치 방식을 채택했다. 하스모니안 왕조의 마지막 공주와 결혼한 헤롯 집안은 로마의 섭정을 받으며 많은 세금을 바치는 대신 허락된 범위 내에서 지배와 수탈의 자유를 인정받는 공생의 지배 관계를 맺는다. 마리아가 예수를 임신하고 출산 한 때를 마태복음은 헤롯왕이 죽기 전(BC 14년 즈음)으로 누가복음은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BC44―AD14)가 인구조사를 명령 했을 BC 4년 즈음 이라고 전한다. 연대는 10년 정도 차이가 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리아가 예수를 낳고 키운 삶의 터전은 이미 수탈당할 대로 당한 피폐한 식민지 상황 이었다 것이다. 이런 역사적 조건으로 인해 소수의 친 로마 지배 세력을 제외한 유대민족에게 하나의 강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는데 바로 ‘메시아 사상’ 이었다. 이 억압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1000년 전 조상 다윗 왕 때의 번성기를 다시 한번 원하는 강렬한 희망이 하나의 응집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때 바로 마리아는 결혼 전 처녀의 몸으로 생명을 잉태한다.
[말씀 묵상]
이 식민지 상황에서 한 여성 마리아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던 장인 목수 요셉과 결혼하기로 한
마리아 역시 그리 화려한 배경을 가진 집안의 딸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부모에게 의존하는 관계에서 남편에게 의존하는 관계로 자신을 자리를 옮기는 것이
당시 역사적 상황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전부였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임신이 이라니! 약혼자 요셉이 모르는 아기가, 아니 자신도 모르는 생명이 자신의 몸 안에서 커가고 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단 말인가?
이 아기는 제도권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협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는 대조적으로 사도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결혼하고도 오랫동안 불임이었다.
촌락의 영적 지도자였던 남편과 결혼한 여성이 잉태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큰 결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엘리사벳의 그 마음의 고통을 어떻게 그의 아들 요한이 태어났을 때 사람들이 하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눅1:58)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렇게 제도적 삶 속에서 정형화 되지 않았던 두 여인을 통해 시작되었다.
식민의 시대 불임의 땅에서 역사의 고난은 두 자매,
여성의 몸 안에서 생명의 자양분이 되어 미래의 희망을 준비하고 있다.
[도전 받기]
신자유주의 남성 중심 권력의 사회에서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와 여성의 인격적 자아 돌보기를 어떻게 병행할 수 있을까?
한국은 세계최저의 출산국이다. 출산률 저하가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반면 여성노동자에게 임신과 출산 육아는 사적인 영역으로 직장에서 공동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정규직 여성노동자가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 휴가를 신청하는 것도 자유롭지 않는 풍토에서 언제나 해고당할 수 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게 출산은 곧 사직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의 모순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