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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사람들 (미가 4:3) / 2017.08.02. 청남 주관 수요 거리기도회
우리 모두가 평화의 사람들이 되기를 다짐하는 기도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예언자 미가의 말씀을 토대로 오늘 한국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명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오늘본문은 잘 알려진 미가 예언자의 평화선언. 공동번역 성서로 읽으면, 본문이 조건문이 된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지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터이니, 그리 되면...” / 조건문으로 읽으면, 하늘에서 무언가를 해야지만 땅도 응답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할 필요 없다는 식으로 읽을 수 있다.
현실에서는 대체로 하늘이 무감하고 무심한 듯이 보인다. 하느님께서 민족 사이의 분쟁을 판가름하지도 않고, 강대국 사이의 시비를 가려주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예언자의 비전은 허망한 개꿈에 불과한가?
오늘 본문은 조건문으로 읽기보다는, ‘그리 되면’을 빼고 두 문장을 이어서 병행문으로 읽는 것이 좋다. 하느님이 할 몫이 있고, 우리가 할 몫이 있다고 읽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꿈을 갖고, 동시에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과제도 있다는 것이다.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현실을 넘어서는 믿음의 꿈. 이 둘을 잘못 활용하면 곤란하다. 현실을 해석할 때 꿈을 이야기하면 몽상가가 되고 말 것이고, 꿈을 펼쳐야 할 때 현실논리에 묶어버리면 제도 질서의 노예가 되고 만다.
예언자 미가. 그는 누구인가? 그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그는 분단의 상처와 고통이 깊이 배어있는 땅에서 살던 농부였다. 1장 1절을 보면, 그가 살던 고장은 모레셋(Moresheth)이다. 모레셋은 라기스에서 아얄론 계곡으로 이어지는 산악지대의 통로가 되는 남쪽 유다의 전방 초소라고 한다. 1장 10-15절에 많은 지명들이 열거되고 있는데 이곳들은 모레셋 부근의 도시들로서, 앗시리아 제국이 북왕국을 멸망시키고 남쪽을 침공할 때 크게 피해를 입은 지역들로 추정된다. (Aharoni, The Land of the Bible, 339)
그러니까 예언자 미가는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채 갈등하다가, 제국의 침략에 의해서 먼저 북녘 동포들이 살육당하고 나라를 잃고, 이어서 남쪽마저 침략을 당하던 시절에 예언활동을 했다. 그의 눈에는 동포들이 당하던 참상이 가득 찼고, 그것을 3장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할 지도자들이 선한 것을 미워하고, 악한 것을 사랑한다. 내 백성을 산 채로 그 가죽을 벗기고, 잡아먹는다.” (3:1-3) 소위 시대의 진리를 말한다는 예언자들도 마찬가지였다. 3장 5절에서, “예언자라는 자들이 나의 백성을 속이고 있다. 입에 먹을 것을 물려주면 평화를 외치고,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전쟁을 벌일 준비를 한다.”
한편에서는 불의한 약탈이 자행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거짓 이데올로기가 진리로 포장되어 날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미가가 보았던 이 비극과 참상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왔고, 오늘 우리 역시 미가의 심정을 이해할만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 민족은 질곡의 역사를 살아왔다. 특히 해방을 맞았지만 외세에 의해서 남북이 분단되었고, 한국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쟁을 겪고도 아직까지 정전상태에서 온갖 낡은 이데올로기의 포로상태를 살아가고 있다. 심판을 받았어야만 할 세력들이 끈질기게 기득권을 누리면서 정의의 감각을 마비시켜 왔다. 전쟁연습과 무기경쟁을 통해서 안전이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평화의 이상은 일그러지고 말았다. 이것이 과연 생명의 현실일 수 있을까 하고 의심케 하는 고단함과 참혹함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삶을 적시고 있다.
그러나 한국 민중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나라의 꿈을 잃지 않고, 역사를 밀고 온 것도 사실이다. 지난겨울 촛불혁명을 통해서 보았듯이, 우리 민중들은 역사의 한 고비를 또 하나 넘어섰다. 그런데 아직도 남은 과제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금석과 같은 것이 있다. 사드배치 문제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 문제에서 패착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현 정부의 한계이자 역사의 고질적인 병폐이기도 하다. 사드문제를 보면서, 성주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 전체의 문제를 보게 된다.
며칠 전 7월 29일에 문재인 정부는 왜관에 있는 주한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보관되어 있는 ‘사드 발사대 4기를 성주 소성리에 배치하기 위해 조속히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그것은 분명히 자기모순적인 주장이다. (1) 스스로 강조했던 사드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를 스스로 위반한 것. 작년 7월 사드 배치가 결정된 이후부터, <재검토와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했고, 공약집에도 <국회비준 동의>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그런가? (2) 그 이유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라고 하는데, 사실 발사된 사거리 1만km에 이르는 ICBM급 미사일은 미국 본토를 겨냥한 것으로서, 사드의 요격범위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왜 그런가?
그것은 아직도 이 정부가 한미동맹이라는 오래된 냉전시대의 유습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미국의 계획에 순응하여, 일본을 포함한 한미일 동맹체제를 구축하는 작업에 편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냉전 대결구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남과 북 사이에 새로운 전환점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7월 1일 워싱턴 D.C.에서 한/미 정상 공동성명을 통해서, (1)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평화적인 방식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협력하고, (2) ‘한국과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고, (3) ‘한반도 평화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을 미국이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 그러나 북은 이에 대해서 “친미사대의 구태에 빠지고 대미굴종의 사슬에 얽매인 가련한 몰골”이라고 비판했다. (「로동신문」 7월 2일 사설)
문대통령은 지난 7월 6일에는 베를린에서 「신한반도 평화비전」이라 불리는 공식제안을 북에 했다. 5대 정책방향과 4대 실천과제를 발표했다. 이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2000.3.9.)보다 더 진취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이다. / 그러나 북한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해오던 미사일 발사시험을 멈추지 않고 6차례나 강행하고 있다.
남과 북은 말로만이 아니라, 신뢰감 있는 행동을 서로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정책담당자들이 과거의 관료들로 채워지는 불길한 징후들이 나타나면서, 지난 정권의 잘못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인다.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통일을 위한 과정에서는 과거의 틀에 갇히지 말고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관료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최소한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을 중지시키면서 대화의 전기를 마련하려면, 최소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는 적극적인 제안을 해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2015년에 새롭게 수립된 「작계 5015」는 기존의 작전계획(작계 5027)과는 달리, (1) 북한 핵심시설 700곳 선제 타격에 초점을 두고 있고, (2) 북한 지도부의 참수작전을 훈련내용으로 담고 있다. / 이런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벌이면서 어떻게 대화와 교류를 말할 수 있겠는가?
한 달 전에 제네바에서 세계개혁교회연맹(WCRC) 총회(6.29-7.7)가 열림. 거기에 남북한 교회의 지도자들이 만났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초의 공식 민간교류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서 북한교회는 의외로 강경한 입장을 표현했다고 한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하면서 어떻게 통일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분명히 지난 보수 정권 10년의 적폐를 떠안은 문재인 정부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건을 탓하기보다,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의 비전을 갖고 현실을 돌파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 있었던 경험을 배울 필요도 있다. 1999년 6월 15일에 NLL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연평해전이 벌어져서 북한 경비정이 여러 척 침몰하고 군인 수십 명이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화해와 교류 문제를 어떻게든지 돌파하려고 노력해서, 1년 뒤인 2000년도에 남북정상이 만나서 6.15공동선언을 만들어냈지 않았는가!
북이 핵을 갖게 된 과정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자위적인 측면이 강하다. 한반도에서 핵문제의 근원은 미국이 제공했었다. 미국은 정전협정 규정(13항 ㄹ목)을 어기면서, 남한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한 것이 1957년이다. 1978년부터는 남한에 핵우산을 제공했고, 한 때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는 천여기에 이르기도 했다. 1991년에 전술핵무기를 남한에서 철수시켰지만, 대북 핵선제공격 전략을 유지해오고 있다.
‘핵 없는 세상’을 지향하겠다고 하며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오바마 정권에서도 미국은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로 북한을 지목했다. (Nuclear Posture Review, 2010) / 북이 2012년부터 헌법에 ‘핵보유국 지위’를 명시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개발은 핵 선제공격 전략을 비롯한 미국의 적대정책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이 자위적 방어 목적이라는 것을 미국도 인정한다. (“북한 핵 개발은 미국의 대북 군사적 행동에 대한 두려움 때문” Atlantic Council. 2007.4) /
북한은 2016년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핵을 폐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핵화 문제도 대화의 결과물이어야지, 대화의 선결요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화와 협력의 길을 내기 위한 담대한 구상/노력이 필요하다.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발자취가 크다. ‘통일’이라는 말을 끄집어내기만 해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시절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88선언」(‘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해서, 통일운동의 전기를 마련했다. 신앙인이 가진 믿음의 비전이요, 평화의 꿈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교회도 민족의 운명과 함께 하려는 믿음의 고백을 갖고 있다. 통일 이후 시대를 대비하여 통일헌법을 만들고, 평화통일 운동에 매진해 온 전통이 있다. 이 평화의 행진을 이어가야 한다. 더 깊고 넓게 흘러가기 위해, 새로운 비전을 새로운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
우리 모두 성서의 꿈을 따라 평화의 사람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