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천 명의 사담 후세인이 있다.
최근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IS와 직접 혹은 간접 방식으로 연계되어진 무차별 총기 난사와 자살폭탄의 소식을 계속 듣고
있다.
작년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파리의 무차별 총격 사건은 단지 서곡에 불과했다. 그간 1년에 가깝게 일어난 사건들은 모두
차치하고서라고 최근 한 두주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을 나열해 보자.
49명의 젊은 목숨을 앗아간 미국 올랜드 바에서 일어난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 외국인이 거주하는 나이로비 호텔 총기 난사
사건, 지난 금요일 방글라데쉬 수도 홀에이 카페에서 점심을 먹다 살해당한 20여명의 외국인들, 그 가운데는 일곱 명의 일본인 간부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자살 공격은 단지 외국인들만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 미국의 꼭두각시 국가로 생각되는 아프카니스탄에서의
경찰들을 향한 박격포 폭격과 끊임없는 자살 폭격, 엊그제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는 차량에 실린 냉장고 안에 폭약을 넣어 백화점 앞에서 폭파시킴으로
160여명이 무차별 죽임을 당했다. 이 지역들은 모두 이런 자살폭탄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는 지역들이다.
게다가 이번이 첫번째는 아니지만, 이슬람교의 두번째 성지인 메디나에서도 자살 공격이 시도되었다. 이러한 공격이 심화되는
지금은 이슬람교의 가장 성스럽다는 라마단의 축제가 절정에 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달동안 해가 떠 있는 동안은 물마저도 마시지 않는 철저한
금식을 통해 참회 기도를 하는 라마단에 맞춰 일어난 자살폭탄에 이슬람 자신들마저 혼란속에 빠져 있다.
지금 IS를 비롯한 이슬람 극단주의자 무장단체들의 공격은 세계를 향해 있다. 시아파고 수니파고 구별이 없다. 언제 어디서
이런 무차별 자살 폭탄 공격이 나올지 알수가 없다. 이슬람 무장 단체들의 전선은 단지 이락크와 시리아 내의 전투지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선은 게릴라전 형식으로 민간인들이 거주지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가? 지난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BBC가 게재한 한 글을 보면 그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글의 제목은 "이제는 천명의 사담 후세인이 있다."
우리는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후 거대한 사담 후세인의 동상이 무너지는 사진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승리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진이다.
이때 이 동상을 넘어뜨린 장본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카딤 알 자보리이다. 2003년 4월 9일 미군이 채 바그다드 중심가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카딤은 본래 이라크의 국가대표 역도선수였으며 한때 오토바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고 자신이 또한 오토바이 선수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사담 가족들의 오토바이를 수리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일가 중 14명이 사담 정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후, 그는 이를
거절했고 결국 그로 인해 2년동안 감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카딤은 감옥에서 나온 이후 체육관을 운영하며 역도를 가르치고 있었다. 운명의 그날 4월 9일 그는 사담에게 복수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집에 있는 도끼를 들고 광장 한 가운데 세워져 있는 사담 후세인의 동상의 아랫 부분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앞 호텔에 머물고 있었던 외국 기자들이 몰려들어 이를 방송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당시 주위에 있었던 사담의
비밀경찰들로부터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고 사담은 회고한다. 몇 시간 후 미군들이 현장에 도착을 했고, 미군들은 그를 도와 동상 머리에 철줄을
엮어 이를 무너뜨렸다. 그러자 이라크 시민들은 환호를 하였고 사담의 넘어진 머리에 침을 뱉고 신발을 던져 모욕을 했다.
이로 인해 카딤은 백악관의 초청을 받아 부시 앞에서 이 얘기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제 후회하고 있다. 그때 도끼를
들고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다른 많은 이라크인처럼 그는 지금 이 나라를 망친 것은 사담이 아니라 미군들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오히려
사담의 통치 아래에 있을 때가 더 안정된 사회였다고 말한다.
카딤은 지금 미군이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왔음을 깨닫고 있다. 그는 지금 이라크에 만연한 부패와 타락 그리고 폭력에
진절미를 내고 있다. 대부분의 이라크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현재의 정치 지도자를 경멸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은 사라졌지만,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천 명의 사담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사담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지도자들보다는 나았다. 사담은 이유없이 사람들을 살해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의 단단한 벽과도 같았다. 그때에는 부패도 약탈도 없는 안전한
사회였다."
사담은 독재자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미워했지만, 그가 사라진 13년이 경과하고 보니 그때가 더 안전하고 평온한 사회였음을
이라크인들은 깨닫고 있다. 한주 전 이라크인들은 바그다드에서 불과 30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팔루자 도시를 IS의 손으로부터 정부군이
회복했다는 소식에 모두 안도를 했다. 그러나 지난 일요일 160여명이 희생당한 자살폭격을 보고 나서 모든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카딤은 말한다. 만약 할수 있다면 그는 죠지 부시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너는 이라크의 수많은 어린이들과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학살자"라고.
그는 조지 부시와 토니 블레어를 정의의 법정에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도 IS 동조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은 미군이 운영하는 수백 대의 드론 공격에 의해 전쟁과 관계없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계속 살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 중 누군가가 드론 공격에 의해 아무 이유도 없이 무차별한 죽임을 당했다면, 이를 그냥 지나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더구나 모슬렘 전통 사회는 오랜 세월동안 가족들의 희생에 대한 복수를 정당시 여길 뿐더러 하나의 종교적 의무로 여겨왔다.
사담 후세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인지 아니면 미국이 책임을 져야 할는지 확실하게 판단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2003년봄의 미국과 영국의 침공 이전에는 이라크 내의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교전쟁이나 부족전쟁은 없었다는 것이다. 수백년동안을 평화롭게
공존하여 오고 있었다.
결국 있지도 않았던 대량학살무기 파괴를 목적으로 시작한 미군과 영국군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미미했던 지하드와 알케다의 존재감은
분명해졌고, 저들의 공격은 더욱 치밀해져가고 있으며 전선은 민간 지역으로 계속 확대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말에 열 명의 파수꾼이 한 명의 도둑을 지키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미국이 911 이후 국가안전부를 신설하고 공항마다
몸 전체를 꿰뚫어볼수 있는 최신의 엑스레이 투과기와 바늘 하나도 통과할 수 없는 고가의 검색대를 설치하고 시민들의 이메일을 몰래 들여다 본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정책 전환 곧 세계 패권국가로서의 점령 정책을 포기하고 모든 무기를 땅에 묻는 평화공존정책으로 전환을 하지 않는 한, 살해의
공포로부터 그리고 무차별 총기 난사로부터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2016년 7월 5일 아바나에서 여명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