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안병무) 추모비 제막예배

201451710시 모란공원

 

사람이 죽어 비석 하나쯤은 다들 세우지만, 그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추모비를 세우는 일은 그리 흔치 않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추모비는 단지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울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분의 삶이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될 만큼 훌륭하였을 때, 그리고 그의 사상과 삶이 일치하였을 때에 세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후학들이 일찍이 안병무선생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추모비를 세웠던 것이고 오늘 또한 박영숙선생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추모비를 세우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곳 모란공원의 규칙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병무선생님과 박영숙선생님의 추모비를 하나로 묶어 세우게 되었는데, 이런 예가 남한 땅 또 어디에 있는지는 제가 과문한 탓에 잘 알지 못하고 있고, 또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두 분은 단지 부부로서가 아니라, 각자가 걸어온 삶과 사상 자체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독특한 분들입니다. 안병무선생님은 한국신학이라고 세계가 인정하는 민중신학의 기초를 만드시고 이를 세계신학에 어깨를 같이할 만큼 그 깊이를 만드신 분이시고, 박영숙선생님은 척박한 남한의 현실에서 여성들의 연대를 이끌어내시고 이를 단순한 정치적 구호 차원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인류 미래에 큰 위협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환경 문제에 일찍이 눈을 뜨고 이를 전파하고 실천해 오신 매우 드문 여성 지도자이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두 분과 약간의 삶의 끈이 있어 이 자리에 서긴 하였지만, 이 자리가 주는 역사적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안병무선생님은 70년대 초 암울한 군사독재정치 시절 민중신학의 산실인 한국신학대학 교정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고 박영숙선생님은 안병무선생님의 꿈과 삶 대부분이 녹아들어가 있는 향린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목사와 교인으로 만났습니다. 오늘 517일은 박영숙선생 추모 1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61년 전 향린교회가 이 땅에 첫울음을 터트렸던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사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곧 미국으로 건너가 20여년을 지내다 돌아왔기에 이 두 분을 부부로서 동시에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 분이 제게 있어 따로따로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생명살림이라는 사상적인 면에서 이 두 분은 온전히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한 분은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이 땅의 분단현실 속에서 구조적으로 차별받고 억압받는 백성의 한 계층을 민중 해방이라는 사상과 실천으로 살려내셨고, 또 다른 한분은 이 민중 안에서 조차 차별받는 여성을 정치 영역 안에서 그리고 여성들이 도맡아온 집안 살림살이를 지구살리기라는 거대한 차원으로 끌어올리셨던 것입니다.

 

어제 고은 선생께서는 추모사에서 안병무선생님의 호 심원(心園) 곧 마음동산 혹은 마음밭에 견주어 박영숙선생님을 심경(心耕) 곧 마음밭갈이로 부르셨는데, 저는 이 탁월한 제안에 깊이 동감합니다. 실로 안병무선생님은 제게 성서를 통해 깊은 신학적 각성과 깨달음을 던져 주심으로 저의 마음동산의 높이와 넓이 그리고 깊이를 만들어주셨다면 박영숙선생님은 제가 목회하는 동안 10년동안 시간이 허락하는 한 주일마다 예배실 뒷좌석에 앉아 잔잔한 미소로 저의 마음밭을 넉넉하고 고르게 갈아주셨던 것입니다.

 

목사로서 저는 박영숙선생님 그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두 시간이 넘게 걸어온 삶의 발자취를 고백적으로 듣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많은 사랑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 하셨고 후배들을 더욱 따뜻하게 보살피지 못한 점에 아쉬워하셨습니다.

 

그리고 병실 창밖으로 펼쳐진 환상을 보셨는데, 저는 그것이야 말로 박영숙선생님께서 가지셨던 무의식의 현현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그 장면을 밤이 아닌 낮에 눈을 뜨고 있는 상황 속에서 너무나 똑똑히 보셨기에 현실로 온전히 인식하고 계셨습니다.

 

그 환상은 병실 창문으로 흰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장면이었는데,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만장을 들고 가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얘기를 통해 마치 31독립만세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기도 하였고, 선생님께서 어렸을 때 고향에서 보셨던 장례 행렬을 다시금 보고 계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얘기를 통해 제가 받은 강한 인상은 그 행렬이 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해석하기를 죽음이 가까우신 가운데 하느님께서 선생님을 통해 어떤 계시적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그간 품어 왔고, 오늘 이 시간에 비로소 그 얘기를 공개적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남편 안병무선생은 평안남도 안주에서 그리고 박영숙선생님은 평양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두 분 다 고향땅을 밟을 수 없는 현실 더 나아가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들이 서로 미워하고 원수시하는 이 남북분단의 현실을 평생의 한으로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끝없는 행렬이라는 단어를 통해 남아 있는 우리에게 그 행렬에 동참하라고 하는 하늘명령으로 이해했습니다.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향한 순교자적인 투사들이 되어줄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일상에서부터 자유인으로 살림이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두 분께서는 부부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암울한 정치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 투쟁하고 연대하고 서로를 섬길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두 분은 수천 개의 잎새들을 이끌고 끝내 벽을 넘어선 한 개의 담쟁이였습니다. 민중차별의 벽을 넘으셨고 여성차별의 벽을 넘으셨고 그리고 남북분단의 벽을 넘으셨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추모비를 세우는 것은 이 두 분의 실천과 사상을 우리들 자신의 것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금 두 분께서는 저 푸른 하늘 위에서 우리를 미소로서 내려다보실 뿐만 아니라 천개의 바람이 되어 우리들을 깨우시고 배후에서 우리를 밀어주고 계십니다. 먼 훗날 아니 어쩌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하늘나라에서 다시 뵙게 될 테인데, 그때 선생님!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그 길을 힘차게 걷다 왔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하면서 예수의 말씀으로 추모의 얘기를 갈무리 하겠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 버린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