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에 대한 안내글
목회자칼럼에 대한 안내글
(용산참사 현장 목요 촛불기도회. 2009년 9월 10일)
[그들을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본문말씀: 요한 11장 38절-44절
제가 섬기는 향린교회의 집사님이자 이 목요 촛불교회의 대표님으로 수고하시는 권혁문집사님께서 지난 주 토요일 대한문 기도모임에 참석하였다가 인도에 앉아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가 되어 수서경찰서에서 조서를 받으며 이틀 밤을 지냈습니다.
그래 일요일 오후 예배가 끝나고 나서 저희 교우들 약 50여명이 수서경찰서 앞에서 항의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때 사회를 보시던 한 교우님께서 용산학살의 책임자를 처벌하고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명박정권은 퇴진하라고 구호를 외치자 정보과장이라는 사람이 저에게 오더니 기도를 순수하게 드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경찰이 순수해지라고. 지금 국민이 서민이 이렇게 억울하게 죽었고, 그리고도 226일째 장례도 치루지 못하고 유가족들이 울부짖는데, 경찰이 나서서 이 억울함을 해결해 주어야지 권력자들과 한편이 되어 강자편에 서면 되겠느냐고 제발 순수한 경찰이 되어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권익을 보호해 달라고 얘기했습니다.
우리 종교인들보고 순수해지라고 하는데, 이보다 더 순수해질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데 교회 건물 안으로 들어가 기도한다고 손을 들고 주여 주여 소리치는 일이 불순수한 일입니다.
여러분 성서에 나타나신 야훼 하느님은 약자의 하느님이요 억울한 자의 한과 외침에 귀를 기우리시는 분이십니다. 정치적 구호를 외치지 말라고 하는데, 세례 요한이 왜 옥에 갇히고 목이 잘렸습니까? 헤롯왕의 비리를 고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비판하고 고발했기에, 옥에 가둬도 그치질 않으니 그를 목을 자른 것입니다. 이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히자 예수님은 이 세상에 그를 대신해서 나오셨습니다. 마가복음에 분명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세례 요한을 대신해서 정치발언을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권력자들이 잘못된 정치에 대해 비판하고 고발하는 것 그것은 종교의 사명이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가장 순수한 모습입니다. 진실을 찾는 것 그 이상으로 순수한 행위가 어디에 있습니까?
구약성서를 보면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야훼 하느님은 모세 앞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그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애굽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히브리 노예들이 고통 속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을 때에 처음 그 모습을 이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시키시는 분이 야훼 하느님이십니다. 노예 해방 이게 정치적 사건입니까? 종교적 사건입니까? 노예 해방 이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오늘날로 말한다면 억울한 자들의 한을 풀어주는 일이야 말로 교회가 책임져야 할 일인 것입니다.
‘히브리’라는 단어는 핏줄로 이루어진 어떤 민족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히브리라는 말은 고대 중동에서 노예들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을 통틀어 부르는 ‘하비루’의 다른 이름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사회적 약자, 서민, 빈민 철거민, 노숙자들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나중에 이 히브리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들면서 하나의 민족을 뜻하는 말로 변질을 시켰고, 그래서 야훼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 되고 말았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본래 성서의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하느님이 아니라, 약자 억울한 자 곧 히브리인들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까 과거 이스라엘 민족이 약자로 있을 때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지만, 그들이 강자가 된 오늘에 있어서는 그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팔레스틴인들의 하느님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놓고 하느님께 제사를 지낸다고 하면서 계속 권력자들, 부자들 편에만 서고 힘없는 자, 빈민, 민중들을 차별하고 억압하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채찍을 들어 휘두르시고 성전 탁자를 뒤집어 엎으시고 하느님의 집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소리치시며 성전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결국 로마에 반대하는 정치범들만 처형하는 십자가형을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 가장 늦게 써진 요한복음에 보면 그 처음에 예수께서 성전을 깨끗케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
여러분 이게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성전을 허물라고 하셨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교회 를 허물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요? 요즘 목사님들마다 교회 짓겠다고 멀쩡한 교회 허물어서 크게 짓겠다고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요 예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데, 왜 예수님은 성전을 교회를 허물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건 성전이 본래의 성전됨을 교회가 교회됨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약자의 편이 되고 억울한 자의 대변자가 되어야 하는데, 권력자의 편이 되고 부자편이 되었기에 성전을 허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시 가난하고 억울한 자들이 함께 모여 사는 갈릴리로 가셔서 그곳에서 하느님 나라 복음 운동을 하신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이명박장로가 대통령이 되면서 사람들이 혼돈하고 있습니다. 10번이 넘도록 위장전입하여 부동산 투기하여 돈 모으고, BBK 사기 쳐서 돈 모으고 그래 부자되는 것이 하느님의 뜻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 교회가면 모두 부자되는 곳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씨가 처음 대통령되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재벌들을 불러 하는 말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기에게 직접 전화하라고 했습니다. 이 무슨 잘못된 일입니까? 가난한 자 서민들을 불러 어려운 일이 있으면 직접 자기에게 얘기하라고 해야 마땅한 일이지요.지금 이 정권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500년 전 조선시대에도 백성들이 억울한 일이 생기면 직접 왕 앞에 나아가 소원할 수 있는 자명고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법을 제대로 집행해야 할 검찰 법관들은 출세를 위해 권력자들의 앞잡이가 되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떡값 때문에 재벌들의 눈치만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분명 죄가 있음에도 삼성재벌 이건희나 이재용씨는 무죄가 되고, 아무런 죄가 없는 용산 학살의 피해자들은 죄인이 되었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가족들은 감옥에 가 있습니다. 검찰은 지금 자신들이 스스로 기록해 놓은 기록까지 그것도 3천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을 숨겨놓고 내놓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법관은 재판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그래 이를 항의하는 사람들을 옥에 가두고 있습니다. 천하에 몹쓸 놈들이고, 하늘의 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명박장로가 보는 성서는 지금 우리가 보는 성서와는 다른 성서이고 이명박씨가 부르는 하느님은 분명 반성서 반예수의 하느님입니다. 분명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하느님의 나라가 저희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부자들을 향해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씨는 지금 이렇게 무고한 시민이 5명이나 경찰의 폭력으로 숨져 있는 일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채 시치미를 떼고 있습니다. 그는 분명 벌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성서에 나타나신 야훼 하느님은 분명 여러분의 편이십니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여러분의 고통은 기쁨이 되고 여러분을 고통스럽게 하는 저 권력자들은 슬퍼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한번은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 나사로가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워낙 좋은 사람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하였고, 특별히 그의 자매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슬퍼합니다. 그래 예수님은 무덤 앞에 가서 무덤문을 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벌써 죽은지가 나흘이나 되어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열라고 합니다. 그래 무덤 문을 막고 있던 돌문을 치우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소리칩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러자 그는 묶여 있는 채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다시금 소리치십니다. “그를 풀어 주어 가게 하여라.” 이는 예수님께서 죽음 또한 주관하는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부활한 나사로가 살아 있나요? 부활했다면 영원히 살아야 할터인데, 또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무슨 뜻입니까?
죽음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 끝으로 알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 우리 인간은 속수무책입니다. 부자도 권력자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죽음을 넘어서십니다. 죽음은 어둠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어둠의 권세를 꺽어 이기시는 분이십니다. 영어로 ‘부활’을 resurrection 이라고 하고 ‘폭동’ 혹은 ‘반란’을 insurrection 이라고 합니다. 둘 다 라틴어 ‘일어서다’ 라는 뜻을 지닌 ‘surrect'에서 나온 말입니다. 종교적 용어와 사회적 용어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이 부활의 힘을 믿기를 바라십니다. 그래 죽음의 권세를 이기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지금 이 정권은 죽음의 권세자들입니다. 의인들을 잡아가두고 바른 소리를 외치는 사람들을 옥에 가두고 있습니다. 지난 주만 해도 문정현신부님을 비롯한 많은 사제님들과 유가족 평화운동가들이 어려움을 겪었고, 이강실목사님 또한 옥에 갇혀 있습니다. 지금 이 정권은 미쳤습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굴복하지 않고 힘을 합쳐 일어서면 하느님은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분명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의인들은 끝내 승리한다고. 지금은 옥에 갇히고 어려움에 처하지만, 정의는 끝내는 승리하는 것은 이 땅의 역사가 증명하는 일이고 하느님이 보증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앞에 죽음의 세력이 아무리 많더라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저 너머에 계시는 정의의 하느님 평화의 하느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는 모두 이제 저 순천향병원의 냉동실에 묶여 있는 저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부르면서 나오십시오! 라고 외치십시다.
이상림님 나오십시오!
양회성님 나오십시오!
한대성님 나오십시오!
이성수님 나오십시오!
윤용헌님 일어서서 나오십시오!
이들을 향해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외치십니다.
저들을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역사는 반드시 우리 편입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집니다.
그날까지 우리 한 치도 물러남 없이 끝까지 한 몸 되어 투쟁하십시다.
한번 죽은 그분들을 우리의 비굴함으로 두 번 죽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평화와 위로가 이 자리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