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글

 

정의를 심어 생명 평화의 열매를

 

 

불과 한 달전 우리는 남한 정치사에 가장 비극적이고 극적인 사건을 경험했다. 전임 대통령 노무현이 이명박정권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한 목 조리기에 자신의 몸을 던져 대항하였던 것이다. 이에 온 국민은 현 정권의 그 비열함과 추악함에 분노하며 추모의 길은 끊어질 줄은 모른다. 이는 단지 개인 노무현의 죽음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작년의 촛불항쟁에서 경험하였지만, 현 정권의 공권력의 폭행은 대한민국의 가장 핵심적 요소인 언론 집회의 자유민주주의를 크게 위협하고 있으며, 친재벌정책은 빈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대한통운의 박종태열사나 용산에서의 철거민 5명이 진압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일에서도 불수 있듯이 서민들이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는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게다가 우리 민족의 미래를 결정지을 남북관계는 어떠한가? 지난 10년동안 애써 이룩해 놓은 남북화해와 공조의 물결을 완전히 차단함으로 반민족, 반평화의 길을 걸으며 동북아에 긴장을 고조시킴으로 무기를 팔아먹고 패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미국의 애완견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게다가 한반도의 강바닥을 헤집어 생명의 순환계를 죽음으로 내몰아가고 있다.

 

이에 4,000명의 교수, 1,200명의 스님, 1,100명의 신부, 2,300명의 목사들 외 각계 각층에서의 대정부 시국선언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이제는 해외의 교수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외국인 교수들까지 이에 동의하며 나서고 있다. 87년 민중항쟁의 시작과 비슷한 위기의 순간이다. 이제 우리는 이명박정부의 제2의 629 항복선언을 받아내든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의 포기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왜 우리는 이러한 정치사회경제 현실에 관심하며 분노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정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제1성서(구약)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바로 왕과 그의 지배세력에 대항하는 정치적 저항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모세를 부르는 그 현장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신다. ‘나는 눌린 자들의 고통의 소리에 관심하는 스스로 존재하는 님’이라고. 그리고 이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왕권이 서자 왕을 비롯한 지배계층들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예언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셨다. 그리고 제2성서(신약)의 시작인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이 운동을 이어 받은 세례 요한의 회개의 예언 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4개 복음서가 모두 세례요한을 언급하고 있으며 마가복음은 ‘(헤롯왕에 의해)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시어 하나님의 복음 운동’을 시작하셨다고 밝힘으로 예수운동이 반정부적인 정치운동이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마태복음은 아기예수를 죽이려는 헤롯왕의 폭거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으며, 누가복음 또한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은 가난한 자와 눈먼 자와 눌린 자의 (정치적) 해방과 (사회경제적) 구원에 있음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다. 요한복음 또한 예수 운동은 당시 지배체제의 상징이었던 성전을 숙청하고 이를 허물라는 선포로 시작함으로 비판의 대상과 복음의 성격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최일선에서 일하는 사회운동가들이 다시금 모였다. 우리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굳게 세우고,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우리의 결의를 다시 한 번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맘몬의 신과 야훼의 신이 스스럼없이 중첩되고 혼돈되는 오늘의 혼탁한 남한 사회에 복음의 밝은 촛불을 밝히는 카이로스의 현장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2009년 6월 25일 민족화해의 날에

 

조헌정목사(집행위원장, 향린교회)